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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꽃이 폈다. 부사가 익어가는 과수원에서 여름 품종인 양광 나무가 하얗게 꽃을 피웠다. 제철을 잊은 걸까. 꽃 진 자리마다 풋사과가 소복하게 열려있다. 보는 이마다 철부지 꽃을 보며 곧 닥쳐올 추위를 걱정하건만 정작 나무는 아무 걱정이 없는 듯 늦가을 햇살을 봄볕처럼 즐긴다.
귀농한지 얼마 되지 않은 농부가 나무를 제 때에 관리 해 주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봄부터 꽃의 상태가 시원치 않았다. 여느 때보다 개화한 수가 적었을 뿐만 아니라 수확철인 여름이 지척에 오도록 열매가 튼실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약을 치지 않아 벌레마저 꼬여들었다고 한다.
마리아는 우리 동네에서 제일 잘 나가는 미용실 원장이었다. 빨간 머리와 세련된 몸가짐은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말투마저 서울말을 써서 미용실에 들릴 때마다 주눅이 들곤 했다. 그런 마리아가 초등 과정을 마치지 못했다. 시대를 잘 만나 계산기를 사용했기 때문에 사칙연산마저 익힐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마리아와 일주일에 두세 번을 만났다. 육 개월 만에 초등과정을 통과하고 그 기세를 몰아 중학교 과정도 무난히 합격했다. 일 년 만에 초등과정과 중학과정을 소화한 마리아의 열성으로 보아 고등과정도 어렵지 않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고등과정은 생각만큼 만만하지 않았다. 특히 영어와 수학에서 기본점수를 넘기지 못했다. 계절이 두 바퀴쯤 지나가자 마리아와의 만남도 뜸해졌다.
꽃 필 시기가 아닌데 나무가 개화하는 것을 불시개화라 한다. 영양이 부족한 나무일수록 생식을 위해 불시개화를 더 자주 한다. 제철이 아닌데도 ‘나 여기 있소’ 하고 얼굴을 내민다. 불시에 꽃을 피움으로써 나무는 살고 싶다는 신호를 농부에게 보내는 것이다.
얼마 전, 벚꽃이 활짝 핀 강변 옆 까페에서 대학생이 된 마리아를 만났다. 그녀는 검정고시를 접고 방송고등학교에 다녔다. 정규과정이라 프로그램을 따라가기만 했더니 그냥저냥 졸업이 되더라. 지금 방송대학에서 문화 교양을 공부하는데 서술형 과제물이 힘드니 도와달라고 한다. 테이블 위에는 그녀가 미리 조사해 온 자료들로 수북했다. 물오른 수양버들이 응원하는 듯 바람을 타고 그녀의 뒤에서 살랑거리고 있었다.
나무는 잎으로 양분을 만들지만 꽃을 피워야만 돋아나는 것이 잎이다. 태풍이나 비바람이 닥친 해에 유독 불시개화가 많지 않던가. 나무인들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싶었을까. 무리인줄 알면서도 에너지의 대부분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 나무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지 싶다. 눈앞의 양광 나무 역시도 더 알찬 열매를 위해 모험을 감행한 것이리라.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더 늦기 전에 못했던 공부를 하고 싶을 따름이라고 수줍게 말하는 그녀는 새로운 사람들과 색다른 친분을 만들어가는 기쁨에 들떠 있었다. 이순의 농익은 삶에 대학생 특유의 발랄함이 보태어진 모습이 사과 꽃만큼이나 풍성하고 해맑았다.
단풍 구경 길에서 벚꽃을 만났다. 가지마다 앙증맞게 흰 꽃등을 달았다. 봄, 가을 두 차례에 걸쳐 꽃을 피우는 춘추 벚꽃으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개량종이라 한다. 온실 효과로 변한 지구의 계절 시계가 나무에게 한 번 더 꽃 피울 기회를 준 듯하다. 꽃송이 사이로 보이는 쪽빛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렀다. 튼실한 열매를 맺기 위해 달려야하는 봄꽃에 비해 가을 벚꽃은 천천히 걸을 수 있어 좋다.
지천명의 중반에 선 내게도 은퇴 바람이 불어온다. 일하고 싶어도 몸이 이제 그만 쉬라고 한다. 의학의 발달로 사람은 백세 시대를 살게 됐다고 하지 않은가. 생계를 위해 치열하게 살아 온 30년만큼, 그저 살아가야 하는 30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 뜯지 않은 선물 같은 시간을 나는 어떻게 써야 할까.
취업을 준비하는 아들이 자기 소개서를 쓰고 있다. 기업에서 제시한 양식에 따라 인생을 십년 단위로 설계한다. 취업을 한 후 결혼을 한다. 그때부터 일들이 점점 늘어난다. 아내와 배낭여행하기, 아이들과 캠핑하기. 축구리그전에서 우승하기 등. 그런 아들의 빽빽한 여정 속에 내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문득 남은 나의 시간을 설계하고 싶다는 충동이 인다. 못했던 공부를 뒤늦게 시작한 마리아처럼 찾아보면 나에게도 나만을 위한 어떤 일이 남아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지난날이 조급함으로 가득한 봄꽃이었다면 이제는 느긋한 가을꽃으로 살아보고 싶다. 지금까지 나를 위해 살아 왔다면 이제는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펄펄 끓는 에너지가 아니면 어떤가. 남은 불씨만으로도 충분히 주변의 어느 방 하나는 따뜻하게 품을 수 있으리라. 설령 에너지가 고갈되어 멈춰야 할 때가 다가온대도 두렵지 않을 담대함도 있지 않은가.
뜻이 맞는 이들과 방과 후 마을 학교를 열었다. 서류상 증명이 안 되어 학교 돌봄에서 밀려난 아이들이 머물 수 있는 작은 사랑방이다. 부모가 양육을 거부해 조부모나 친척집에서 생활하거나 이제 막 동생이 태어나 엄마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큰 아이, 등 돌봄이 필요한 아이라면 누구든지 사랑방에 머물 수 있다. 나는 사랑방 아이들이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내가 가진 시간과 마음을 나누어준다.
가을 벚꽃은 소박하다.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봄꽃에 비해 한결 여유가 있다. 뭔가를 이루겠다는 열정에 앞서 피어있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남들에게 보이는 겉모습이 아닌, 내 속에서 차오르는 자존감이 먼저인 것이다. 내가 피운 꽃이 결실로 가지 않아도 그다지 슬프지 않고 추위가 닥쳐와 금세 질지라도 위안이 되는 꽃, 그런 꽃이 바로 내가 꿈꾸는 가을 벚꽃이다.
나의 가을이 여유로웠으면 좋겠다. 생일을 맞은 친구에게 커피 쿠폰을 보내고 갑자기 연락 온 친구에게 바쁜 일정을 기꺼이 양보할 수 있으면 얼마나 근사할까. 한 줄 메시지 속에서 감동을 받고 웃고 울 수 있으면 된다. 오색 단풍 속에 가려져 있어도 조급함이 없는, 내가 피운 꽃 하나에 위안을 받는 이 하나면 족할 성 싶다.
2020년 에세이문학 살살이 꽃 등단
미당문학 신인문학상
수필집 ‘이소’
시집 ‘바람아 너라도 올래’
동화책 ‘시계탑열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