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삶, 즉 生老病死를 苦라고 한다. 하지만 그 고의 거의 대부분은 사서 하는 고통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인간 삶은 대개 사서 하는 고생으로 연속되어진다.
재벌은 걱정이 없겠는가. 있는 재산을 지키고 더 늘리고 자식에게 한푼이라도 더 많이 물려주려고 전전긍긍한다. 벼슬을 탐하여 높은 자리에 앉은 자들도 전전긍긍하기는 마찬가지다. 대통령이라고 예외이겠는가. 세상에서 욕심이 가장 많고 큰 사람인데...... 욕심은 걱정의 씨앗이기에 하는 말이다.
거지처럼 마음 편한 사람 없다는 말이 있다. 거지 생활 3년이면 재벌도 대통령도 부럽지않다는 말도 있다. 다리 밑에서 자고 일어난 거지 부자가 가까이서 일어난 엄청난 아비규환의 화재현장을 지켜보면서 아버지 거지가 아들에게 말했단다. "이놈아, 애비 잘 만난 줄 알아라."
모두가 부자가 되길 바라고 높은 자리를 탐하는데 이 무슨 뚱단지같은 소리인가.
거지는 욕심도 꾸밈도 탐욕도 가장 적은 축에 들기에 나온 말일듯 싶다. 그러기에 그들에겐 재벌이나 대통령과 같은 고가 없다. 탐욕은 무엇이든지 꾸미려고만 드는 허식이다. 허식은 거짓말을 참말처럼 해야 한다. 이 얼마나 고행인가. 하기사 거짓을 밥 먹듯 하는 자라면 고통 없이 할 수도 있다고 우겨대면 할 말은 없다.
음모의 창고를 짓고 거짓말을 끊임 없이 엮어대는 고행에서 벗어나려면 소박해야 한다. 소박은 겉과 속이 같다는 말과도 통한다. 창자 속에 있는 똥이나 밖으로 배출된 똥이나 똥이긴 마찬가지다. 그 똥이 우리가 먹는 음식의 자양분이 되어 돌고 돈다는 사실을 안다면, 인분을 그렇게 이해한다면 그게 바로 소박함이다.
한 교사가 교장. 교감에게 상납하는 교육계의 관행을 질타하는 글을 올렸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지만 어째 새삼스럽게 씁쓸하다. 교장. 교감 쪽이나 상납하는 교사 쪽이나 똑 같다. 그 어느 쪽도 소박하지 못하고 뭔가 자기의 이익을 위한 얄팍한 수를 부린 것인데 어느 쪽을 나무라겠는가. 소박하지 못하고 끊임 없이 허위 의식을 만들고 음모의 창고를 짓는 이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종인 인간의 짓인 것을!
그래서 인간들의 허식은 변소도 화장실이라고 하지 않든가.
허식을 줄이고 소박함으로 삶을 살려는 확고한 의지가 없는 한 해결이 난망한 문제가 아닌가. 그럴려면 욕심을 줄여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거의 불가능으로 봐야 한다. 극히 소수의 지인을 제외하곤 말이다.
彫琢復朴, 이상향을 향한 희망사항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