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려면(2) 엡6:14~17
싸움은 어떤 무기를 가졌느냐에 따라서 전쟁의 승패가 판가름 납니다. 이러한 사실은 영적인 전투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은 영적인 전쟁의 현장입니다. 정사와 권세, 이세상의 어두움의 주관자 사탄이 우리를 공격합니다. 본문은 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6가지무기를 설명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영적인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좋은 무기를 가져야 합니다.
첫째, 영적인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먼저 진리의 허리띠를 띠어야 합니다.
14절-“서서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왜 영적인 무기를 말씀하시면서 허리띠를 먼저 말씀하셨을까요?이것은 로마 군병들의 복장을 파악할 때 비로소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로마 군병들은 보통 짧은 치마를 입습니다. 이 치마를 입고서 그 위에 호심경(흉배)을 부쳤습니다. 호심경과 치마를 허리띠로 단단하게 묶지 않으면 걸거적 거립니다. 이 허리띠를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유하십니다. 영적인 전투를 위해서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은 진리입니다 .진리는 허리띠와 같습니다.
왜 진리가 우리에게 이렇게 중요합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방황과 혼돈가운데 살아갑니다. 그 마음에 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은 진리가 없기 때문 이예요. 진리가 없을 때 사단은 언제나 우리를 속이는 자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단을 거짓의 아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단이 우리를 파멸시키는 방법 중에 하나가 다름 아닌 우리에게 거짓을 심어 주는 것입니다.
요사이를 일컬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라고 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객관적인 진리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진리냐 그 물음에 내가 진리다. 나에게 좋으면 그만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세상에는 분명히 진리가 있습니다. 그 진리로 띠를 띠라는 것입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그 다음에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사는 삶입니다.
둘째.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의의 호심경(흉배)를 착용해야 합니다.
이 호심경(흉배)은 인체의 가장중요한 곳을 방어하는 물건입니다. 이 호심경은 하나님의 의 라고 말씀합니다. 왜 의의 호심경일까요? 그 이유는 사탄이 다름 아닌 우리를 가장 강하게 그리고 자주 공격하는 부분이 바로 우리의 의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의의 호심경이 중요합니다. 언제 우리가 쉽게 낙심할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죄 문제요, 실패의 문제입니다. ‘나는 가치가 없어’ ‘나 같은 것이 나도 실패 했잖아.’ 너 또 죄 지었잖아!‘. 결국 이 문제는 의에 대한 문제입니다.
의의 호심경은 누구의 의일까요? 나의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말합니다. 그것이 전가된 의입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많은 죄책감에 시달렸겠습니까? 교회를 핍박하던 자. 스데반의 죽음에 가담하던 자란 사실이 그것이 그를 늘괴롭혔을게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실패 했어도 의의 호심경을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과거의 지은 죄가 나를 괴롭혀도 의의 호심경을 기억해야 하지요.
셋째, 영적인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신"을 신어야 합니다.
본문에 3가지 단어가 나오는데 평안, 복음, 준비한 것, 이 세가지 중에 주어는 준비한 것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예비한 것일까요? 항상 복음을 전할 마음을 준비해 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평안의 복음으로 준비한 신을 신어야 합니다. 로마 군인들이 신은 신발을 오늘 말로 하면 워커입니다. 어떤 훈련에도 제일 좋은 것이 워커입니다. 준비한 신은 항상 복음을 전하는 분비된 마음입니다. 그 신을 신어야 합니다. 신앙의 꽃은 복음선교요, 전도요, 영혼 구원입니다. 신앙의 점점이 어디 있을까요 신앙의 자라나고 있는가를 알려면 여러분의 마음속에 복음을 전할 마음이 있는가를 보면 됩니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우리의 마음일 것입니다. 잠언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했습니다. 세상 살면서 육체의 질병보다 무서운 것은 마음의 질병입니다. 질병과 어려운 환경이 우리에게 때로는 직접적인 고통을 주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마음의 고통이 더 심하여 우리 인생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가 마음의 중요성을 알지만 이 중요한 마음을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분명 내 마음인데 내가 원하는 대로 이끌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가 마음먹는 대로 움직일 수 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은 그러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낙담, 혼돈, 의심, 염려 근심 걱정, 두려움, 무감각,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분노 등 누가 이러한 마음을 갖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살면서 이러한 마음을 결코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찾아온다는 것이지요. 어느 날 갑자기 특별한 이유가 없이 우울한 마음이 찾아옵니다. 어느 날 눈을 떴는데 갑자기 마음이 착 가라 않습니다. 때론 괜히 화가 납니다. 때론 이유 없이 누군가 미워집니다. 어느 날 갑자가 나쁜 생각들이 찾아옵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어느 순간에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과 마음들이 어디로부터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은 우리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잘못된 마음의 출처를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의 배후에는 분명히 영적인 세력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넷째,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고 말씀합니다.
본문 16절“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악한자의 불화살을 소멸하고” 여기 ‘악한자의 불화살’이란? 악한 자 즉, 사단은 지금도 우리를 과녁 삼아서 불화살을 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마음속에 생기는 부정적인 생각들 괜히 든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격을 향해, 우리의 마음을 향해 계속해서 불화살을 당기고 있습니다. 왜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것일까? 우리의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은 사단의 불화살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단이 우리에게 그러한 생각을 어느 순간 어떤 사건을 통해 심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이 우리 마음속에 불화살을 쏘고 있다는 증거라고 성경은 말씀한 것입니다. 사단은 지금도 계속해서 우리마음속에 부정적인 생각과 나쁜 마음을 집어넣고 우리 마음에 불화살을 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16절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 ”말씀합니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여기 “모든 것 위에”는 앞에서 언급한 무기들과 뒤에서 앞으로 언급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영적인 싸움을 치루기 위한 무기들 위에 “이 모든 것 위에”믿음의 방패를 가지라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악한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라 말씀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여기 믿음의 방패란 뭘까요? 성경에는 믿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됩니다. 예를들어‘주예수를 믿으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등등..‘구원과 관련해서 사용되기도 하구요. 믿음으로 란 단어를 사용할 때 살아가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여기서 사용되는’믿음의 방패‘ 라는 단어는 행하는 믿음을 말씀하는 것으로 하나님에 대한 나의 믿음을 나의 삶에 적용하며 사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방패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진리, 성경에 나타난 진리, 설교시간에 나타난 진리를 내 삶에 적용하며 사는 믿음 그것을 믿음의 방패라고 하는 겁니다. 사단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불화살을 쏩니다. 그때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다섯째,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려면, 구원의 투구를 써야 합니다.(17절)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이 투구는 머리에 쓰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의 생각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살면서 개인의 갈등 교회간의 갈등 사회 간의 갈등을 우리가 해결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렇게 수많은 생각들로 방황하기 쉬운 인생인데 우리는 어떠한 태도로 살아 가야하는가? 하면 바로 구원의 투구를 쓰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투구는 이사야 59장 17절에서 묘사된 전사(warrior)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를 빌려온 개념입니다.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며 구원을 자기의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시며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으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구원자로서 모습은 이사야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자기 백성에게 한약속을 신실하게 시행하시는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자기 백성들을 모든 대적으로부터 반드시 구원하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8절에서 이 투구를 “구원의 소망의 투구”로 완전하게 묘사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쓰는 이 투구는 구원의 확실한 소망입니다.구원의 확실한 소망 즉, 오늘 죽어도 천국간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천국 가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이 있다면 생명이 있고, 우리에게 예수님이 없다면 생명도 없는 것입니다. 영생은 그의 아들 안에 담아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그의 의와 더불어 영생을 선물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거부하는 이들은 동시에 천국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가 천국에 가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여섯째,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려면 성령의 검을 가져야 합니다.
마귀를 이기기 위하여 성령의 검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성령의 검을 뭐라고 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왜 성경은 그냥 말씀이라고 하시지 성령이 검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셨을까요?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헬라어에는 두 단어가 있어요.. 1)하나는 로고스, 즉 66권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 2)다른 하나는 레마라고 하는 단어인데 이 레마는 문자로 기록된 성경을 입으로 선포해서 나에게 들려지는 말씀이지요. 14절의 ‘진리의 허리띠’와 오늘 본문의 ‘성령의 검’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진리의 허리띠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었지요? 오늘 본문에 쓰인 ‘말씀’이라는 단어는 ‘로고스’가 아니라 ‘레마’입니다. 사실 로고스라는 단어와 레마라는 단어는 큰 차이가 없는 단어입니다. 굳이 그 차이를 따지자면 ‘로고스’는 ‘전체’의 의미가 있는 단어이고 ‘레마’는 ‘부분’의 의미가 있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진리의 허리띠는 ‘전체로서의 복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성령의 검에서의 하나님의 말씀’은 상황에 따라 적용할 수 있는 ‘부분으로서의 말씀’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이 닥쳤을 때 바로 말씀으로 대응 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힘으로 마귀를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속임수로 밀고 들어오는 마귀에 대항해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응수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의 진의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언제든지 꺼내어 응수할 수 있도록 익숙해져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에 걸 맞는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해서는 배우고 확신한 그 말씀 안에 거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입니다. 말씀이 살아있는 성령의 검을 내가 소유할 때 이 말씀이 우리의 생각을 고칩니다. 우리의 인격과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이 놀라운 무기를 주셨습니다. 진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나는 의인이다 ) 그리고 평안의 복음의 신 (복음을 전하는 태도), 믿음의 방패(사탄의 불화살을 소멸), 우리 마음속에 조금의 사탄의 속삭임도 오지 않도록 믿음의 방패로 막아낸 겁니다. 그리고 구원의 투구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말씀 성령의 검을 가집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