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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알아야 술 맛이 한결 더해진다. 여름이 덥다고 술을 무조건 차고 시원하게 마시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여러가지 술에는 각기 적당하고 합당한 온도가 있다고 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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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운 여름이다. 여름철, 다양한 술마다 마시기에 적당한 온도가 있다. 적당한 종류도 있다. 술은 물과 불의 결합이라고 했다. 과하면 불이 일어난다. 그래서 더더욱 여름철 술은 적당하게 마셔야 한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적당량을 정해 마시기가 쉽지 않은 것이 술이기도 하다. 최학림 기자 theos@busanilbo.com
맥주 - 너무 차면 미각 마비...7~8도 적당
△여름 맥주 4도 너무 차다? 7~8도가 좋다=일반적으로 여름 맥주는 4도 정도로 차게 마시는 게 적당하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호텔농심 허심청브로이의 허정석 브루마스터(맥주 제조 기술자)가 하우스 맥주의 하나인 '필스' 한 잔을 가져왔다. 깔끔했다. 갈증으로 칼칼한 목구멍이 필스 한 모금으로 뻥 뚫렸다. 필스는 먼저 혀를 싸아하게 자극했다. 다음에는 목청을 톡 하고 쏘았다. '목청으로 마시는 술, 맥주'를 느끼는 것이다. 맥주는 식도를 훑고 위에 이르러 미약한 알코올의 기운으로 확 퍼졌다. 이제 맥주 한 모금의 냉기는 온몸으로 기분좋게 번지고 있다.
허 브루마스터는 "금방 마신 필스는 4도 정도로 아주 차다"고 했다. "그러나 전문가의 입장에서 볼 때 4도는 너무 차다"고 그는 말했다. 한국 사람들에게 맥주는 워낙에 시원한 술의 장르이고, 여름철에 제일 좋아하는 술이지만 너무 차게 마신다는 것이다. 그는 "너무 차면 미각이 마비돼 맥주의 맛을 100% 느낄 수 없다"고 했다.
허 브루마스터는 "여름철 맥주의 온도는 7~8도가 적당하다"고 했다. 그래야지 맥주에 들어 있는 과일향, 맥아향, 호프의 쓴맛 따위 아주 다양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맥주의 본고장이라는 독일에서는 7도 정도의 온도로 맥주를 즐긴다고 한다. 문지성 부산롯데호텔 바비런던 지배인도 "맥주는 7도 정도에서 마시는 것이 적당하다"고 했다.
△톡 쏘는 맛, 발효 과정에서 생긴다=맥주의 톡 쏘는 맛의 정체는 탄산(이산화탄소)이다. 맥주가 발효할 때 알코올과 탄산이 생기는데 이때의 탄산을 적당한 온도와 압력으로 맥주 속에 그대로 녹아 있게 하는 것이다. 하우스 맥주 제조 과정을 보면, 1차 발효 뒤 숙성조에서 3~4일간 후(後)발효시키는데 이때 탄산을 농축시킨다.
허 브루마스터가 거품이 날아간 맥주 잔을 흔들었다. 거품이 올라왔다. 그는 "흔들어 생긴 거품이 200초 이상 유지되어야 좋은 맥주다"라고 했다.
△맥주의 변주=하우스 맥주의 알코올 도수는 4.8도가량이다. '라들러(Radler)'는 저 알코올 맥주다. 원래 '라들러'는 '자전거 타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 맥주를 마시고서도 자전거를 무리없이 탈 수 있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이름은 갖가지로 함부르크에서는 '알스트바서(Alsterwasser, 알스트 호수의 물)'라고 한다. 맥주에다가 레몬에이드를 섞거나 '맥주+사이다'의 조합도 가능하다. 맥주와 레몬에이드의 비율은 5대5, 6대4, 7대3으로 다양하게 가능하다. 맥주 쓴맛에 거부감이 있을 때, 땀을 많이 흘려 갈증이 날 때 마시기 적당하단다. 여성들도 곧잘 좋아한다.
소주 - 5도보다 낮으면 맛과 향 못 느껴
△8~10도가 마시기에 가장 적당=여름철 소주의 온도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대선주조기술연구소 이용수 소장은 "8~10도가 가장 적당하다"며 "개인적으로는 9도, 8도가 가장 좋다"고 말했다. 소주의 단맛 쏘는맛 쓴맛 알코올이 조화를 이루는 온도가 그렇다는 것.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입맛은 다른지라 "여름철 소주의 온도에 대한 감(感)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고 이 소장은 말했다. 즉, "소주의 온도는 7도가 적당하다"고 말하거나, 또는 "5~10도가 적당하다"고 범위를 더 넓게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5도로 온도가 아주 낮을 때는 소주의 맛과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고 한다.
△소주 슬러시도 있다=하지만 맛이고 향이고 간에 시원해야 제맛이라는 애주가들이 있다. 소주를 얼음을 넣은 잔에 부어 "아, 시원타"를 연발하며 마시는 이들도 있다.
특이한 경우로 소주를 슬러시 형태로 만들어 마시는 이들이 있다. 슬러시는 가루 얼음. 냉동실에 4~5시간 넣어둔 소주의 병 밑바닥을 주먹으로 갑자기 세게 치면 얼음 결정이 생기는데 이를 슬러시 소주라고 한다. 그걸 따라 마시는 이들은 "끝내준다"며 이색적인 시원함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대선주조기술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소주 도수가 25도일 때는 아예 얼음 결정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소주 알콜 도수가 20도로 낮아지면서 소주의 첨가물이 순간적인 충격으로 얼음 결정이 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담금술은 15도가 적당=여름철 소주 담금술의 온도는 어느 정도가 좋을까? 담금술은 각종 과실로 인해 소주보다 고유의 향과 맛이 더 짙다. 그 맛과 향을 즐기기 위해서는 15도 내외가 적당하다. 담금용 소주는 30도로 일반 소주보다 알코올 도수가 높다. 과실의 수분으로 희석되는 것을 고려한 것이다.
△재미있는 소주 상식=대선주조는 '음향진동숙성'을 하고 있다. 소주는 분자 크기가 다른 알코올과 물을 섞어 만든다. 콩과 좁쌀을 한데 섞는 경우처럼 완전하게 잘 섞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소주 탱크에 미세한 음향 진동을 가하면 두 분자 사이의 틈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때의 음향은 많은 악기들의 화음으로 어우러진 모차르트 혹은 베토벤의 교향악곡을 택한다. 그러면 음향 진동을 가한 소주의 부피는 줄어드는가? 신기하게, 두 분자가 적절하게 섞였는지 부피가 1% 정도 미세하게 줄어든단다.
와인 - 여름엔 '쇼비뇽 블랑' 잔디밭 풀내음 솔솔
△여름에는 화이트 와인이 적당=더운 여름, 아무래도 색채에서도 부담이 없는 화이트 와인이 좋다는 이들이 많다. 화이트 와인의 온도는 9~12도 사이가 적당하다. 12도에 가까울 때는 화이트 와인 본래의 풍미를 더 느낄 수 있고, 9도에 가까울 때는 시원한 느낌을 만끽할 수 있다. 그 사이의 적절한 지점을 찾는 것은 마시는 이의 고유한 몫이다.
이동규(노보텔앰배서더 밴타나스 지배인) 한국소믈리에협회 부산지부장은 "화이트 와인 중에서도 '샤르도네' 품종의 것보다는 '쇼비뇽 블랑' 품종의 것이 여름철에 마시기 좋다"고 했다. "'쇼비뇽 블랑'의 경우, 여름 아침 6시께 이슬이 있는 잔디밭의 신선한 풀냄새 같은 향을 느낄 수 있다. 혹은 청소년기의 첫사랑 같은 풋풋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는 두 가지 화이트 와인을 추천했다. '몰리나 쇼비뇽 블랑'(칠레, 3만5천~4만원)은 '2008 코리아 와인 챌린지'에서 화이트 와인 부문 1위를 차지한 것이고, '상세르 블랑'(프랑스, 5만원 전후)은 프랑스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가장 많이 찾는 것이라고 한다.
신동훈 소믈리에(파라다이스호텔 부산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지배인)도 두 가지 화이트 와인을 권했다. '클라우드 베이 쇼비뇽 블랑'(6만5천원)은 향과 산도가 매혹적인 조화를 이루는 뉴질랜드 쇼비뇽 블랑의 대표 와인이며, '리즐링 쥬빌레'(프랑스 알자스, 7만원대)는 화이트 와인의 최고급 품종으로 만든 와인으로 초보자에게 좋다. 이동규 부산지부장의 말. "쇼비뇽 블랑의 화이트 와인과 생선 회의 결합은 환상적이다. 쇼비뇽 블랑의 산도가 회를 더욱 신선하게 해줘 새로운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적극 추천한다."
△스파클링 와인도 좋아=스파클링 와인(sparkling wine)은 탄산의 톡 쏘는 청량감을 만끽할 수 있는 여름철에 제격인 와인. 흔히 '샴페인'이라 부르는 와인이다. 스파클링 와인은 6~8도로 마시는 것이 적당하다. 산도가 높아지고 신선한 맛이 살아나는 온도다.
이동규 신동훈, 두 소믈리에는 공통적으로 '베브 클리코'(8만원대)를 권했다. 신동훈 소믈리에는 "프랑스 상파뉴 지역 최고의 샴페인으로, 음식 없이 샴페인 자체만으로도 완벽하다"며, 이동규 소믈리에는 "여성 CEO들이 많이 찾는 최고의 샴페인"이라며 추천했다.
그리고 이동규 소믈리에는 '모엣 샹동' 반병짜리(375ml, 프랑스 상파뉴, 4~5만원)를 부담없이 마실 수 있는 스파클링 와인으로 권했고, 신동훈 소믈리에는 '반피 로사 리갈'(이태리, 5만원)을 클레오파트라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시저가 재배토록 한 브라케토 품종의 와인이라며 연인이 마시기에 적당한 최고 와인으로 소개했다.
한편, 스파클링 와인은 일명 버블 와인. 미국식 이름이다. 스파클링 와인 중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 생산되는 것에만 '샴페인'이란 이름을 붙인다. 스페인은 카바(cava), 이탈리아는 스푸만테(spumante), 독일은 젝트(sekt)라고 한다.
△레드 와인도 빠질 수 없다=여름에 적당한 레드 와인도 있다. 레드 와인을 만드는 포도 품종 중 '쉬라즈'와 '카베르네 쇼비뇽'은 강한 덟은 맛의 풀 바디감을 주며, 다른 종인 '메를로'는 부드럽지만 중간 정도의 바디감을 준다.
그래서 여름에는 덟은 맛을 내는 탄닌은 적으나 과일향이 풍부해 상큼한 느낌을 주는 '피노 누아' 종이 좋다. 이동규 소믈리에는 '피노 누아'(뉴질랜드, 6만~8만원), '부르고뉴 피노누아'(프랑스, 3만~4만원)를 추천했다. 여름철 레드 와인의 온도는 16도 전후가 적당하며 실온에서 그대로 마셔도 상관없다.
막걸리 - 냉장고에서 꺼내 조금 뒀다 마셔야
△7~10도가 제 맛 내는 온도='생탁'을 생산하고 있는 부산양조 신용섭 대표는 "여름철 마시는 막걸리의 온도는 7~10도가 적당하다"며 "더 정확히는 7~8도가 좋다"고 했다. 너무 차가우면 맛을 정확히 알 수 없단다. 신 사장은 "막걸리에는 단맛 쓴맛 신맛 짜운맛 매운맛의 오미(五味)가 들어 있다. 그 풍미를 느끼기 위해서 7~10도가 좋은 것이다"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7~10도는 가게의 냉장고에서 곧바로 꺼낸, "아 시원하다"를 연발할 수 있는 것보다는 약간 높은 온도다.
△막걸리의 변신=부산양조의 김홍국 이사는 "컬러 막걸리가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막걸리에 노랑 빨강의 갖가지 색채의 과일 주스를 타서 마시는 게 젊은 층이 찾는 컬러 막걸리. 막걸리에 요쿠르트나 사이다를 섞어 마시는 경우도 있다. 이중 '막걸리+사이다'가 '막사이사이'. 탄산의 톡 쏘는 색다른 맛과, 단맛을 더하는 잇점은 있지만 애주가들은 역시 다른 것을 가미하지 않은 순수 막걸리를 최고로 친다. 생탁의 경우, 발효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산가스를 막걸리 속에 그대로 '잡아 놓았단다'.
△막걸리를 빚는 α의 요인=막걸리는 미묘하다. 부산양조는 부산 연산동과 장림동에 35년 이상 된 공장이 있다. 신용섭 대표는 "생탁을 빚을 때 공장 일대의 자연적인 야생 효모도 큰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물론 인공적으로 효모를 배합한다. 하지만 생탁의 맛에는 35년 이상 된 공장의 야생 효모 맛이 함께 배합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막걸리 공장을 함부로 다른 곳으로 옮길 수가 없다. 신 대표는 "일본 '사케'를 빚는 양조장의 경우, 재난으로 공장 일부가 무너져도 함부로 수리하지 않는 것은 술을 빚는 공장 특유의 야생 효모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위스키 - 제 맛 느끼려면 스트레이트로
△상온에서 풍미가 최고=위스키는 이른바 상온에서 그대로 마셔야 풍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이동규 소믈리에는 "비싼 위스키는 절대적으로 스트레이트로 마셔야 비싼 만큼의 풍미를 충분히,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했다.
40도의 위스키 알코올 도수가 부담이 될 때는 스트레이트를 마신 다음 얼음 물이나 탄산수를 마셔주는 게 좋다. 이때 독한 술을 마신 후의 입가심으로 마시는 것을 '체이서(chaser)'라 한다. '온 더 록스(on the rocks)'는 얼음을 넣은 잔에 위스키를 부어 마시는 것을 말하는데 좋은 방식은 아니다. '록스'는 네모 잔 혹은 얼음을 뜻한다. 이 소믈리에는 '조니워커 블루'의 스트레이트와 온 더 록스, 두 잔을 내왔다. 향과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조니워커 블루의 스트레이트가 강하고 미묘한 향기들을 남긴 채 혀 위에서 미끄러졌다.
△천사의 몫=위스키는 오크통에서 오래 숙성될수록 좋다. 숙성되면서 불완전한 알코올 입자가 정제되고 위스키 진액만 남아 그 맛은 깔끔해진다. 위스키는 숙성 과정에서 오크 통의 결 사이로 매년 1~2% 정도 날아가 버린다. 증발해 버리는 그것에 '천사의 몫'이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 놓았다.
술 종류별 적당한 온도 종류 온도 조언자
맥 주 7~8도 호텔농심 허심청브로이 허정석 브루마스터 소 주 8~10도 대선주소기술연구소 이용수 소장 와 인 9~12도 한국소믈리에협회 이동규 부산지부장 막걸리 7~8도 부산양조 신용섭 대표 위스키 상온그대로 한국소믈리에협회 이동규 부산지부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