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년과 결혼했어요. 오히려 늙은 사람은 나였죠" 피카소의 마지막 뮤즈였던 <자클린 로크>가 피카소와 결혼할 때 한 말이다.
자클린의 아버지는 그녀 나이 2살 때 가정을 버렸다. 그녀는 평생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있었다. 빈곤으로 공부 기회를 잃어버리고 어려운 삶을 살던 그녀는 18살 결혼을 하고 딸을 낳고 아프리카에 가서 돈을 벌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하고 생활고로 이혼을 한다.
그녀는 발로리스에 있는 마두라도자기 공방에서 일을 배우고 카운터 보조를 하게 된다. 그녀의 이웃에 피카소가 살고 있었다. 피카소는 그때 가장 사랑한 여인과 이별을 했다. 그리고 그 이별의 대상자는 피카소를 떠난 것만이 아니라 피카소를 공격하던 <프랑스와즈 질로>로 인해 고통이 심했다. 미국CIA가 질로에게 접근하여 피카소는 공산주의자이며 사생활을 폭로하였다. 미국은 사회주의자 피카소를 두려워했다. 질로를 통해 피카소의 나쁜 이미지를 왜곡해서 사람들이 피카소의 영향을 덜 받게 했던 것이다. 피카소는 이 심란한 상황에서 돌파구로 도자기를 배우는데 심취했다.
자랑할 것, 내세울 것을 없는 자클린은 미모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그녀의 선하고 맑은 모습에 피카소는 그의 고향 코스모스처럼 평화를 느꼈다. 피카소와 그녀는 1973년 피카소가 운명할 때까지 20년을 동행한다. 그녀는 피카소가 그림에만 집중 하도록 배려하고 피카소의 가족들이 서로 화목하게 지내도록 지혜로웠다. 피카소는 그녀를 모델로 하는 그림을 400점이나 그린다. 이 그림들이 수백억에 지금 경매가 된다.
피카소의 8조 넘는 유산과 수만 개의 작품 등을 정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피카소가 사망하자 이전의 여인들과 가족 등이 벌인 유산 싸움도 긴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자클린은 피카소의 사후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상황을 잘 정리하고 재산이 유족들에게 골고루 배분되도록 하고 자클린 그녀는 피카소와 살던 집으로 들어가 권총을 꺼내 자살한다.
피카소와 함께 잠들은 이들의 묘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피카소가 전부였고 그를 향한 배려만 있던 그녀는 유산에 욕심내지 않는 것이 그녀가 할일이고 돈이란 것은 분쟁과 파괴만이라고 느꼈다. <프랑스와즈 질로>처럼 자아를 갖고 피카소와 싸우며 자신의 행복과 권리를 찾은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어딘가 아쉽고 미 정보국에 이용당해 반미 공산주의로 몰리는데 기여를 한 것이 아쉽다. 그러나 섬김과 배려로 예술가의 혼 하나만을 지켜간 <자클린 로크>의 삶은 특별한 귀감이다.
피카소는 자클린을 만나고 나서는 여성 집착증을 버리고 작품의 몰입과 마음의 평화에만 집중했다. 그녀가 고맙게 새겨진다. 역시 선함과 순수함은 모든 성공보다 감동적이다
첫댓글 자클린 로크를 화병에 그려넣고..
춤추는 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