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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明山(ありあけ やま)(558m)
1.산행구간 : Tsushima izuhara 터미널- 西日本銀行-八幡宮 神社-とりごぇ 齒科醫院-청수산-아리아케야마(왕복)
2.산행일자 : 2012. 06.04(월요일)
3.산행거리 :
4.산행참가자 : 아내.처제3.4와 지인
5.코스별 산행시각
◎ 울산 출발(05:30)
◎ 부산 국제여객터미널(06:25)
◎ 부산 국제여객터미널 출발(08:00)
◎ Tsushima izuhara 터미널(09:50)
◎ Tsushima 수속(09:50~10:10)
◎ 西日本銀行/八幡宮 神社(10:25)
◎ とりごぇ 齒科醫院.아리아케야마(有明山) 들머리(10:27)
◎ 有明山案內板 1(표고558m)등산입구 0m /산정2850m/표고 55m(10:34)
◎ 有明山案內板 2(표고558m)/등산입구 300m,산정2550m/표고 120m(10:40)
◎ 성터/NO10 기준점(10:42)
◎ 전망대(10:46)
◎ 淸水山/210m(10:50)
◎ 이정표/資料館,八幡宮1.0km,有明山2.1km,城跡(10:54)
◎ 有明山案內板 4(표고558m)/등산입구 900m,산정1950m/표고 190m(10:57)
◎ 有明山案內板 5(표고558m)/등산입구 1200m,산정1650m/표고 220m(11:01)
◎ 有明山案內板 6(표고558m)/등산입구 1500m,산정1350m/표고 290m(11:06)
◎ 이정표/有明山1.0km,成相山,資料館,八幡宮3.0km(11:13)
◎ 有明山案內板 7(표고558m)/등산입구 1800m,산정1050m/표고 340m(11:16)
◎ 有明山案內板 8(표고558m)/등산입구 2100m,산정750m/표고 420m(11:23)
◎ 이정표/有明山0.6km,久田道2.0km,万松院,資料館,八幡宮(11:28)
◎ 有明山案內板 9(표고558m)/등산입구 2400m,산정450m/표고 490m(11:32)
◎ 有明山案內板 10(표고558m)/등산입구 2700m,산정150m/표고 540m(11:39)
◎ 아리아케야마/有明山/558m/万松院,八幡宮,久田道 資料館까지 3.0km,上見坂8.0km(11:40~12:05))
◎ 有明山案內板 3(표고558m)/등산입구 600m,산정2250m/표고 160m(12:34)
◎ 有明山案內板 1(표고558m)등산입구 0m /산정2850m/표고 55m(12:48)
◎ 대마역사민속자료관(12:52)
◎ 朝鮮國通信使之碑(12:53)
◎ 金石城(12:55)
◎ 宗伯爵家李王家御結婚奉祝記念碑(12:57)
◎ 万松院(13:07~13:20)
◎ TIARA(13:30~14:10)
◎ 八幡宮 神社(14:17)
◎ Tsushima izuhara 터미널(15:00)
◎ Tsushima izuhara 터미널 KOBBE 츌발(16:30)
◎ BUSAN 터미널 KOBBE 도착(18:30)
6.산행기
지난 5월말주차...
인터넷 검색을 하다 티몬이라는 소셜커머스 를 통해 Tsushima izuhara 승선티켓을 6장을 공동으로 구매합니다.
지난 5월 초에 아내와 처제들이 히다카츠를 다녀온뒤 뭔가 허전했던지 이즈하라행를 요청 하게 됩니다.
하지만 둘째는 화와이 일정(6/7~7/6)때문에 빠지게 되고 대신 내가 가게 되는 행운(?)을 가지게 된건가요
그렇게 Tsushima izuhara를 가게 되었습니다.
대마도...한국에서는 대마도라 부르죠
하지만 일본에서는 Tsushima라고 부른답니다.
Tsushima, 대마도
동경 129도 북위 34도, 그리고 부산에서 49.5km,후쿠오카에서 138km 거리의 대마도, 일본에서는 Tsushima라고 부르는 섬
한반도와 가까운 지역으로 섬 전체가 쓰시마시(市)에 속한다고 되어 있네요.
제주도의 2배인 대마도
6개의 도시(まち [町])인데요
이즈하라[嚴原町], 미쯔시마[美津島町], 도요타마[豊玉町], 미네[峰町], 가미아가타[上縣町], 가미쯔시마[上對馬町])로 되어 있으며 이즈하라에 쓰시마시청이 있습니다.
이러한 본섬이외 107개의 섬이 있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섬을 상 대마도와 하 대마도를 구분하는데요 두섬은 떨어져 있지만 다리로 연결 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로부터 한국과 일본 사이의 중계지로서 대외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었는데요,
고려 말부터 조공을 바치고 쌀·콩 등을 답례로 받는 관계에 있었지만, 왜구가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출몰하면서 조선시대에 들어와 회유책·귀화정책 등을 쓰다가 세종 때에는 원정 을 한적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쓰시마도주(島主) 소[宗]의 간청으로 조선이 삼포(부산포·염포·제포)를 개항하자, 쓰시마는 에도[江戶]시대 말기까지 대(對)조선무역을 독점했다고 전해져 오는데요.
임진왜란 때에는 일본 수군의 중요한 근거지가 되기도 했죠.
그리고 이즈하라는 13세기 중엽 이래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에 이르기까지 쓰시마를 지배해온 소씨[宗氏] 일족의 거성(居城)이 있던 곳으로 성터와 그 시주사 등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 대마도(對馬島·쓰시마)가 한국 땅이라는 주장이 제기됐었죠.
대마도 전문 연구가인 황백현(65·발해투어 대표·사진) 박사는 대마도의 옛 도주(島主)인 종씨(宗氏)가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 송씨(宋氏)라는 문헌이 발견됐다”며 이같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더더욱 중요한것은 동래부지의 대마도 항목에는 대마도는 옛적 계림(鷄林·신라)에 예속돼 있었으나 어느 때 왜인이 점거했는지는 알 수 없다. (중략) 세상에 전하기를 도주 종씨(島主 宗氏)는 원래 우리나라 송씨로, 대마도에 들어가서 성을 종씨로 바꾸고 대대로 도주가 됐다’고 기록돼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같은 기록으로 미뤄 대마도주는 일본인 종씨가 아니라 한국인 송씨이며 초대 대마도주의 묘역도 대마도가 아닌 한국에 있다는 사실이죠
◎ 울산 출발(05:30)
2012년 6월 4일 05시 30분 울산을 출발합니다.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구서IC에서 도시고속도로를 따라 부산 국제여객터미널까지는 1시간채 거리질 않네요
새벽이라 그만큼 차가 많이 없다는 결론입니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준비해온 김치말이등으로 아침식사를 하기로 합니다.
식사하는 사이 대마도로 가려는지 후쿠오카로 가려는지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로 들어 오고 있고 해서 우리도 이번 여행의 코비투어의 담당자의 어제 온 문자는 많은 인원으로 인해 당초07시에서06시 40분까지 오라는 연락이어서 식사후 곧바로 출국장소인 2층으로 올라섭니다.
여권을 취합해서 승선권을 받고 그리고 일본 입국카드를 적고 그리고 못다한 환전도 하고...
해서 출국장으로 들어 서는데....
세관신고소에 어디서 많이 본듯한 얼굴....
부산 산사의 조은산님입니다.
세관에 있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이곳에 계신줄은 몰랐네요
이러 저러한 이야기와 함께 안부를 전하고 출국 신고를 하고 들어 섭니다.
한켠에 면세점이 있고....
그리고 배타는곳과 함께 그안쪽에는 롯데 인터넷 백화점 면세품을 찾는곳이 있어 미리 준비한 물품을 찾은후 배를 타러 들어 갑니다.
◎ 부산 국제여객터미널 출발(08:00)
KOBEE 3호 2층 25번줄이 우리들의 좌석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타고 난뒤 곧장 KOBEE 3호는 부산을 08시 조금 못되어 출발합니다.
125톤으로 221명의 여객정원이지만 2층에는 좌석의 여유가 있네요
그리고 시속 83km이라 하는군요
또 부양을 해서 달리는데 잔잔한 바닷가에서는 그리 심하게 로링이 없는게 장점입니다.
빠른속도로 달리기에 가끔은 고래와 충돌한다며 안젠벨트를 메어 달라는 방송을 자주 하는걸로 봐서 그런일이 이따금 일어 나는가 봅니다.
그렇게 부산을 벗어나 달리길 1시간여 오른쪽으로 대마도의 모습이 창가 넘으로 다가 옵니다.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서 보는 부산 시내 모습
대마도 출국 수속...
KOBEE 3호 2층 객실 모습
221명 탑승정원이라지만 지라가 많이 남아 뒷저리는 거의 비어 있는 상태.....
오륙도의 모습
◎ Tsushima izuhara 터미널(09:50)
그리고 그섬따라 달리길 50여분...1시간 50분만에 대마도 이즈하라 항에 도착을 합니다.
지난번 히타카츠에서 모두 내리고 난다음 내렸더니 입국신고가 늦어 졌다면 이번에는 모두 빨리 KOBEE호의 출입문에서 줄을 서는 모습....이래서 경험이 필요 한가 봅니다.
비록 200여명 채못되는 인파이지만 느릿느릿하게 만사가 깔끔하게 하는 일본인들의 습관인지라 입국 신고 그리 빠른 편인 아닙니다.
무엇때문인지 모르지만 한사람의 여권 착오로 계속 늦어지지만 다른줄로 합류 해주지도 않고 지볼일만 보는 출입국 관리자....
이게 일본의 모습입니다.
다시 두줄이 임의로 한줄로 모아지고..그리고 지문 찍고 얼굴 사진 찍고....
밖으로 나옵니다.
등명대.....일본의 옛등대
이즈하라 항을 나와 시내로 들어 가고 있는중......다리 건너지말고 오른쪽 주유소쪽으로
이즈하라 이정표앞에서.........
내천따라 끝까지 가면....
도로와 합류되는데 오른쪽에 서일본 은행이...
그리고 건너편에 팔번궁신사가....자리하고 있습니다.
◎ 도리고에치과병원.아리아케야마(有明山) 들머리(10:27)
일행들이 모두 나오길 기다리며 출구쪽에 있는 일본의 옛등대....
등명대(燈明台)라는 그등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이즈하라 시내로 들어섭니다.
왼쪽 교량을 넘어 가는 길 을 버리고 주유소쪽으로 올라서는데....좌측편의 건물에 그려진 벽화가 시야에 들어 옵니다.
조선 통신사 대마역지 청래 200주년 기념벽화
대마도는 한국과 가깝다는 지리적인 이유로 조선통신사의 흔적을 많이 찾을 수 있는데요.
조선통신사는 에도로 가기 직전에 대마도에서 머물면서 영주로부터 접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대마도 번주(영주)가 수행을 하며 에도까지 왕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재 남아있는 이즈하라의 국도는 조선통신사를 맞기 위해 정비했던 것이라고 하는군요
또 이즈하라 시내 중심을 흐르는 내천을 따라 올라 가는 길 좌우측 난간대에도 조선통신사 행렬도와 함께 곳곳에 붙어 있는 표지판...
그리고 자위대원을 모집한다는 간판도 보이고....
그렇게 내천따라 가는 갈림길에서 아내와 처제들은 티아라 쪽으로 보내고 나중에 14시까지 티아라에서 만나자며 혼자서 내천따라 올라섭니다.
그리고 길이 왼쪽으로 돌면서 본 도로와 협쳐지는 도로...
오른쪽에는 서일본 은행건물이..
그리고 도로 건너편에는 하치만구 신사즉 팔번궁 신사가 자리하고 있네요.....
잠시 하치만구 신사의 전경을 카메라에 담고는 하치만구 신사의 왼쪽 주차장옆 골목길로 들어 섭니다.
골목안쪽에 나가무라의 간판과 도리고에치과병원도 있는 골목길...
마치 주차장 관리인이 있어 아리아케야마 가는길이 어느쪽이냐 물으니 하던일도 스톱하고 나와 가르켜 줍니다.
저안쪽에 들어 가면 간판이 있을거라면서....
일반적으로 인터넷에 많이 올라와 있는 들머리는 조선 통신사비가 있는곳으로 이곳은 또다른 쪽입니다.
잠시 골목길로 들어 서는데 ...
막다른 골목길에서 오른쪽 이정표를 따라서....
계단길은 민가로 드러 가는길임....
오른쪽 으로...
빨간 시그널 모이시죠..
조거 따라 고고....
여기서 잠깐......
왼쪽 넓은길로 가도 되지만 돌아 올라오는길임...
해서 오른쪽 계단길 보이시죠
빨간 시그널도 보이고...
저 계단길 따라가면 물탱크 가 있는데 돌아올라서면 들머리임....
◎ 有明山案內板 1(표고558m)등산입구 0m /산정2850m/표고 55m(10:34)
有明山 淸水山城跡 등산입구라는 팻말이 서있네요
그리고 그길따라 올라서는데 바람한점없는 날씨...무척 덥습니다.
계단길에 민가가 들여다 보이는 골목길...
그렇게 골목길따라 올라서는길은 인터넷에 많이 올라와 있는 들머리의 조선 통신사비쪽에서 올라오는길과 합류 하는 길입니다.
마치 누군가가 빨간 리본을 해놓아서 쉽게 찾을수 있는 길...
有明山案內板 1(표고558m)등산입구 0m /산정2850m/표고 55m의 팻말이 서있는 들머리에 올라섭니다.
약 3km가 못되는 거리....
잠시 등산복으로 갈아 입고는 출발합니다.
有明山 가는길...
왼쪽 이정표따라 가도 되고
또 성터로 올라 왼쪽으로 올라서면 청수산 거쳐 有明山 가는길입니다.
성터에서 본 이즈하라 항및 시내모습입니다.
오른쪽에 금석성의 모습도...
그리고 덕혜옹주결혼 봉축 기념비도 보이고....
성터
◎ 淸水山/210m(10:50)
이어지는 사면길....
계단길입니다.
300m마다 서있는 간판...
有明山案內板 2(표고558m)/등산입구 300m,산정2550m/표고 120m를 지나자 아리아케 산의 방향이 왼쪽으로 되어 있고 비지타,센타 방향으로 올라섭니다.
성터에 올라온셈입니다.안부에서 전망대로 나가 봅니다.
하지만 그리 조망을 할수 없네요
다시 전망대를 둘러서 다시 나오는길...NO10 기준점도 보이고..
그리고 안부를 지나 有明山 방향으로 가려다 곧장 올라가보기로 합니다.
성터로 올라서는길...
잠시후 전망대에 올라서는데요 이즈하라시내와 항구가 보이는 조망...
이주 이쁜 항구 입니다.
그리고 올라서는길에 안내판도 있습니다.
여기는 국가가 지정한 사적이라는군요 마음대로 돌을 던지거나 옮기는것을 금한다는 안내문...그리고 식불도 자르거나 채집하는것을 금한다는 내용입니다.
다시 성벽 중간으로 난길따라 올라서는데 높은 습도와 더위에 땀은 비오듯 쏟아지고....
그런데 뭔가 움지이는 감에 놀라고개를 드어 보니 아마도 2m채 되지 않은 뱀...
굷기는 그다지 않은데 길이가 국내에서 보던 뱀과는 다른 뱀이네요
어휴....
다시 성벽를 올라서는데 청수산이라 적혀 있습니다.
낡은 나무 간판에는 청수산이라 쓰여 있지만 지워져 알아 보기 힘든 글, 그옆에 210m라고 적흰 청수산....그옆에는 광주 모산악회에서 시그널을 달아 놓았네요
이즈하라 항구를 카메라에 담고는 다시 내려섭니다.
청수산 삼거리
삼나무...
◎ 有明山案內板 7(표고558m)/등산입구 1800m,산정1050m/표고 340m(11:16)
잠시후 왼쪽 사면길로 올라오는 길과 합류하는 삼거리에 내려섭니다.
資料館,八幡宮1.0km,有明山2.1km,城跡의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
나중에 하산할적에 이쪽으로 가야겠다며 다시 발걸음을 이어 갑니다.
有明山案內板 4(표고558m)/등산입구 900m,산정1950m/표고 190m의 이정표를 지나면서 잠시나마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그리고 중앙으로 오를것 같은 길은 어느듯 사면길로 바뀌고 삼나무가 있는 산길을 이어가네요
간벌을 해놓아서인지 그나마 시원하게 보이는 삼나무 밭....
간벌을 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하는 생각이 먼저 들어 옵니다.
그렇게 길은 有明山案內板 5(표고558m)/등산입구 1200m,산정1650m/표고 220m를 지나면서 먼지도 나고 가파르기 시작한 길....
有明山案內板 6(표고558m)/등산입구 1500m,산정1350m/표고 290m의 표지판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합니다.
줄줄 흐르는 땀....
닦아도 닦아도 계속 흐르는 땀...
더운 날씨임에 틀림없습니다.
바닷바람이라도 조금 불었으면하는 마음이지만 바람은 커녕 .....
다시 출발합니다.
가파른 오르막길....
잠시지만 능선에 올라서는데요
有明山1.0km,成相山,資料館,八幡宮3.0km라는 이정표가 서있습니다.
成相山쪽은 가지 못한다는 표기와 함께....
잠시지만 이저지는 능선길...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오지만 有明山案內板 7(표고558m)/등산입구 1800m,산정1050m/표고 340m의 이정표를 지나면서 완만한능선길....
간혹 이런 기분좋은길도.....
마지막 이정표...
정상까지 150M 남았다는 이정표....
최고로 반가운 이정표
정상 가는길...
◎ 아리아케야마/有明山/558m/万松院,八幡宮,久田道 資料館까지 3.0km,上見坂8.0km(11:40~12:05))
잠시후 오르막길은 시작되고 有明山案內板 8(표고558m)/등산입구 2100m,산정750m/표고 420의 이정표를 지나면서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
땀은 두 눈썹에서 떨어지기 일쑤고....
아무도 없는 산길에 까마귀는 청승스럽게 울고 있고....
잠시후 有明山0.6km,久田道2.0km,万松院,資料館,八幡宮의 이정표를 지나 올라서는길...
그렇게 올라서는 능선길은 길도 좋을뿐만 아니라 넓습니다.
임도로 쓸만큼 넓은길...
낚엽이 깔린길....
완만하게 올라서는길에 이정표가 시야에 들어 옵니다.
有明山案內板 9(표고558m)/등산입구 2400m,산정450m/표고 490m의 이정표입니다.
그리고 조금위쪽에 378이라는 삼각점도 돌무더기속에 박혀 있고....그렇게 올라서는길은 돌무더기가 있는 무명봉...
잠시 내려섰다 올라서는길은 넓은 임도같이 생긴 길....
이윽고 갈자자의 가파른 오르막길 이어집니다.
그리고 얼마후 有明山案內板 10(표고558m)/등산입구 2700m,산정150m/표고 540m의 이정표를 지나고 나무도 없는 민둥산 정상을 보며 올라서는길은 有明山입니다.
558m인 아리아케야마즉 有明山............
이정표에는 万松院,八幡宮,久田道 資料館까지 3.0km,上見坂8.0km라는 이정목에 558.2m 有明山頂이라는 글자를 써놓앗군요
잠시 정상 주변을 둘러 봅니다.
습지가 있었다는 자료에 이어 확인을 해보지만 가물어서인지 매말라 버렸군요
그리고 정상목 주변세 앉습니다.
음료수도 한잔 하고 그리고 간식도 먹고....
땀도 식히고...
그렇게 20분 넘게 쉬다 내려섭니다.
◎ 有明山案內板 1(표고558m)등산입구 0m /산정2850m/표고 55m(12:48)
기다리고 있을 아내와 처제들과 지인들....
올라오던길가 역방향이라 나중에 청수산 올라가는 삼거리에서 사면길로 이어 가면 되는길이니까 쉬이 내려설수 있네요..
그렇게 빠른 걸음으로 내려서는데...
채 50분이 걸리지 않았군요
대마역사민속자료관
월요일이라 문을 닫았군요
◎ 朝鮮國通信使之碑(12:53)
좁은 골목 계단길을 빠져 나와 올라왔던길은 오른쪽에 두고 조금 넗은 마을길 따라 내려서는데...
대마역사민속자료관이군요
월요일이라 휴관인 대마역사민속자료관...
이곳 자료관은 대마도에서 가장 큰 박물관으로 고고학적 발굴유산, 문화재, 민속자료, 종가 문서 등을 보관하고 있다는군요.
1978년 12월에 개관하였으며, 2층으로 되어 있는데요.
1층이 상설전시실이고, 2층이 특별전시실이라고 합니다.
그옆 조선통신사비주변에는 한무리들의 한국사람들이 그늘에서 앉아 설명을 듣고 있는데요 당일 관광오신분들이네요
1607-1811년 12회에 걸처 일본을 방문한조선통신사를 기리기위한 비로 한일양국이 참여하여 건립한비라고 하는군요
임진왜란 이후 약 200년간 (1607~1811) 12회에 걸쳐 일본을 방문한 사절단- 조선통신사-의 방문으로이루어진 활발했던 교류와 우호적인 관계를 21세기 한일 우호의 지향점으로 삼고자 비를 세웠다는데요
매년 8월에 열리는 축제 (쓰시마 아리랑 まつり)에는 조선 통신사 행렬이 재현되고 있다고 하는군요
이비는 1992년 2월 세웠고 최세화 박사가 글씨를 썼다는군요
그리고 그 옆에는 에도시대의 조선통신사라는 오석이 있으며, 통신사의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네요
다시 내려섭니다.
고려문.......오른쪽...입니다
게스트인 사람들은 행인 1.2.3.45.6.7.8.9........이므로 보지 않아도
◎ 宗伯爵家李王家御結婚奉祝記念碑(12:57)
내려서는길 왼쪽에 고려문이라는 이정표 입니다.
고려문은 제21대 대맏도주가 조선통신사를 성대히 접대할때 이문을 통과하여 맞이하기위하여 만든문이리고 하는데요 조선통신사 맞이문이라고도 합니다.
이즈하라의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고려문인데요 소실되여 소화때 옮겨서 만든 영은문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다시 길으 성벽따라 내려서는길입니다.
인터넷에 많이 올라와 있는 그림...아리아케 산에 가는 이정표역활을 하는 이곳.....
잠시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는 오른쪽으로 올라섭니다.
왼쪽에 쓰시마 시청을 두고 올라서는길....
유치원인데요
유치원생의 사진을 찍지 말라는 이야기는 무슨뜻인가요
다시 이어지는길은 오른쪽의 성문을 보고 발걸음을 멈춥니다.
(金石城)입니다.
금성성(카네이시죠)의 노문이죠,
이는 대마도 도주가 기거하였던 성인데요. 지금은 파손된것을 복원하였으며 노문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노문위 건물에는 현재 아무런시설도 없다고 합니다.
역대 대마도주들의 거처였던 곳인데요 당시 조선통신사의 접대가 이루어졌던 곳이라는 설이구요 성벽이 평평하며 전쟁을 위한 성이 아닌 적들의 동태를 살피기위한 망루, 전망대 역할을 하던 곳.
성 뒤편에는 아리아케산이 있으며 산의 왼쪽부터 혼마루, 니노마루, 산노마루가 위치했구요. 성내에는 일본정원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통신사의 접대(일본의 차나 일본문화를 알림)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정원내의 돌은 京都에서 직접 공수해온 것들이었으며 당시의 것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산노마루 앞에서 흰 체육관 시설은 10년 후 철거될 예정이라합니다.
그리고 그안쪽으로 들어 서는데요 덕혜옹주결혼봉축기념비가 있는 성터 입니다.
宗伯爵家李王家御結婚奉祝記念碑라고 새긴 비석....
그냥 그런 공터에 조성된 공원 그안쪽에 덕혜옹주결혼봉축기념비가 서 있습니다.
덕혜옹주는요 1912년 5월 25일 조선 제26대 왕(황제) 회갑을 맞은 고종(高宗)과 궁녀인 복녕당(福寧堂) 양귀인(梁貴人) 사이에서 태어납니다.
어머니가 측실이었기 때문에 옹주(翁主)라고 호칭을 받게 되죠
그리고 양씨는 덕혜옹주를 낳고 복녕당이라는 당호를 하사받는데요.
그런데 고종에게는 모두 4명의 딸이 있었지만 모두 1살이 채되지 못해 사망하였기 때문에 덕혜옹주는 고종의 고명딸로, 세심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죠.
그리고 1916년 즉조당(卽祚堂)에 유치원을 개설하였고 덕혜옹주는 이곳을 다니기도 합니다.
하지만 덕혜옹주는 서녀(庶女)였다는 이유로 일본총독부에 의해 왕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여섯 살 때인 1917년 정식으로 황적에 입적하는 불운이 따르기도 합니다.
1919년 고종은 일제에게 딸을 빼앗기기 싫어 황실의 시종 김황진의 조카 김장한(金章漢)과 약혼을 시도하였지만 실패하였고 김황진은 덕수궁 출입을 금지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해 1월 21일 고종은 갑자기 승하하였는데요.
덕혜옹주는 그때 고관의 자재 일부가 다니던 학교에 다녔는데요 이무렵에 덕혜(德惠)라는 호를 내려받습니다.
그리고 1925년 3월 황족은 일본에서 교육시켜야 한다는 일제의 요구에 의해 강제로 일본으로 건너 갑니다.
하지만 일본으로 건너간 덕혜옹주는 학우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다고 전해지는데요.
1926년 순종이 위독하자 오빠 이은과 함께 귀국하였다가 4월 25일 순종이 사망하자 국장에 참석하지 못하고 다시 일본으로 떠납니다.
당시 일제는 덕혜옹주가 국장에 참석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1929년 5월 30일 생모인 양귀인이 유방암으로 영면하였으며 덕혜옹주는 귀국하였지만 보지도 못하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 갑니다.
그리고 1931년 5월 쓰시마섬[對馬島] 도주의 후예인 소 다케유키[宗武志]와 정략 결혼, 다음해인 1932년 8월 14일 딸 정혜(正惠:일본명 마사에)를 낳습니다.
그러나 결혼 후 덕혜옹주의 병세가 더욱 악화되었으며 남편과 주변사람들의 간호에도 병세가 호전되지 않자 1946년 마츠자와 도립 정신병원에 입원하는등 1955년 다케유키와 결혼생활을 더이상 유지하기 어렵게 되자 이혼하게 됩니다.
어머니의 성을 따라 양덕혜(梁德惠)로 일본호적을 만들었으며 그이후 약 15년 동안 마츠자와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죠
하지만 외동딸이었던 정혜가 1956년에 결혼하지만 실패, 3개월 뒤 유서를 남기고 일본 남알프스 산악지대에서 실종되는등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에 덕혜옹주를 고향으로 데려 오려 하지만 이마져도 순탄하지 않죠.
당시 이승만의 정치적 입지에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여 귀국이 거부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1962년 1월 26일 귀국하였지만 귀국 20년 만인 1982년이 되어서야 호적이 만들어졌고, 결국 실어증과 지병으로 고생하다 1989년 4월 21일 낙선재에서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납니다.
[출처] 덕혜옹주 [德惠翁主 ] | 네이버 백과사전
조선의 왕가의 삶이라기에 너무 비참한 인생...
덕혜옹주의 결혼봉축기념비 그마져도 다케유키와 이혼하면서 일본인들들이 기념비마져 뽑아 버린것을 2001년도 기념비를 복원하였다는 후문입니다.
다시 금석성을 나와 반쇼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금석성 정원....
입장료가 300원임...
해서 안들어가고 카메라로 그림만 훔쳐 나옴....
가급적 일본에서 안보태주기로 약속한 사이.....ㅎㅎ
금석성...
들어 갈때 카메라에 담았는데 행인1.2가 있어서 패스.....
나올때 다시 카메라로....
요새 필림없는 카메라 참 좋네예
◎ 万松院(13:07~13:20)
입장료가 300엔인 반쇼인..........
19대 대매도주 소오 요시토시는 임진왜란이후 조선과 국교회복을 위해 조선통신사 초청을 성사시킨 인물로서 20대 도주 소오 요시나리가 아버지 요시토시의 명복을 빌며 1615년 창건한 송음사를 1622년 요시토시 법호를 따라 万松院이라 개칭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소오가의 보리사가 되었으며 일본 3대묘지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万松院의 입구인 문은 모모야 양식으로 본당은 1879년 세워 진곳으로 仁王尊을 수호신으로 모시는 대마 최고의 건물이라합니다.
또 소오(宗)가의 무덤 돌계단을 올라가면 묘석이 줄을 지어 있는데요
上 中 下단으로 나눠져 있는데요
上단은 역대 도주의 정부인 묘지이며
中단은 측실과 아동이며
下단은 일족및 소오가에서 출가한 사람의 묘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가장 큰 묘석은 20대와 21대 도주의 무덤이며 임란때 선봉장이었던 소오 요시토시의 무덤이 작다고 합니다.
하지만 큰일이 있을때마다 요시토시무덤엎에서 회의를 그리고 결정을 했다고 하는데요 이는 조선국과의 평화를 최우선시 하라는 그의 유언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앞에는 삼나무가 한그루 있는데요
천년기념물이라는군요
전란전에는 20여그루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현재에는 3그루만이 남아있는데요
그중 한그루는 물레 5.2m~7m, 그리고 높이 35m~40m로 1600년이전의 것으로 추정 섬전체에서 가장 오래된 삼나무라 합니다.
요기는 입장료 주고 들어 감
너무 구두쇠라 할까봐가 아이고.....
1600년이전에 심은 삼나무 구경하러....ㅎㅎ
300원 가치가 될것 같음으로 해서....
점꽤를 빼서 보고 점꽤가 잘나오지 않으면 이 나무에 메어놓고 ...
무덤올라가는 계단길....
삼나무..
대마도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나무
1600년전에 심어졌다는 삼나무
대마도주의 무덤
이즈하라의 최대 쇼핑몰.....티아라
◎ 八幡宮 神社(14:17)
그렇게 구경후 티아라로 돌아와 합류 합니다.
다들 쇼핑은 끝난 상태...그리고 점심을 먹고 있었는가 봅니다.
지난번 하타카츠에서 만나 도움 받았던 아주머니 덕택으로 수원하게 쇼핑을 마쳤다 설명....
잠시 쉬다 하치만구신사로 가보기로 합니다.
대마도의 주도로인 남북으로 이어주는 382번 지방도를 따라 하치만구 신사로 들어서는데요 이곳에도 입구에는 도리이(鳥居:Torii)가 있습니다.
첫 번째 도리이와 두 번 째 도리이가 있는데요. 오른쪽에 있는 도리이를 통해 계단을 통해 올라서면 하치만구 신사로 오름니다.
하치만구 신사(팔번궁 신사)는 이즈하라 시내에 있는 신사로 대마도의 대표 신사인셈이죠
어부와 병사를 보호하는 하치마신을 모시는 하치만구 신사, 우노도신사, 천신신사. 와카미야 신사 와 함께 있는데요 여러신이 함께 있는 그런 신사인셈이죠
기본적으로 전쟁의 신을 모시는 그런 신사라는것입니다.
신라시대 삼한에 일본이 임나일본부를 만들어 지배케 하였다는 그런 신...
또 임란을 일으킨 고니시 유키나가의 딸을 모신 와카미야 신사..
하치만구 신사는 양력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있는 제례를 준비한다는데요
13일에는 중외천황, 14일에는 응신천황, 15일에는 희대신의 제례가 있기 때문이리고 합니다.
히치만구 신사 가는길
이즈하라 항
◎ Tsushima izuhara 터미널(15:00)
다시 나와 티아라 옆에 있는 모스버그 가게에서 모스버그를 하나씩 사서 애들이나 산랑에게 갔다 주라 하고는 카스마끼 가게로 갑니다.
350년전부터 만들었다고 하는카스마끼....
잔돈을 모아모아서 하나둘씩 사서 베냥에넣고 이즈하라 터미널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리고 곧바로 1층 kobee대합실에서 티켓팅을 하고는 16시 30분 출발하는 배에 올라 18시 20분 부산항에 입항하므로 당일 대마도 산행을 마칩니다.
KOBEE 3호
참고로 내려오면서 카메라에담은 그림인데요
아리아케 가는길이 이쪽길도 있습니다.
저는 이쪽길로 빠져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