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당혹스럽스럽습니다.
한나라는 갸오 한무제 때 한 번 북방 오환족을 치고...그 동쪽 낙랑등 사군을 건설했다가...
역시나 선비족과 고구려에 얼마 안가 빼앗겼단 역사가 있는데...
땅 빼앗끼고 독이 바짝 올랐을 서북방의 선비족과 동북방의 고구려 경계도 벅찻을 한무제가...
머나 먼 한바도 춘천엔 뭐하러 주력군인 팽오의 군대를 보냈으며...
왔다면 고구려 내지 깊숙히 들어와 통과를 했어야 했는데 그런 정황은 없고...
만일 그런 역사를 맞는 걸로 인정하고 억지 대입했다 해도...
선비족이 ...팽오가 이끈 주력군이 황도를 빈 한나라를 고대로 뒀을리가 만무라 하겠습니다.
고로 다 멍멍이소리고...
한무제의 팽오가 낙랑으로 예상돼는...예맥을 친 자리는...아래의 기록대로 등달현이자 배달현인...
신라의 란산(蘭山)이 있는...현 감숙성 란주(蘭州)정도로 봐야 할 겁니다.
춘천(春川)의 옛 지명이 하서량(河西良)이라네여...
한자는 다르지만...역시 북방족의 영토니 그 음가도 적용했을 터이니...
하서주랑(河西走廊)이니...하서회랑(河西回廊)이니는...이 하서량의 다른 표기이며...
어쩜, 근대 짱께족(쭝가리족)과 왜노족들의 한자 손장난질의 산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서량(河西良)의 량(良)도 뜬금없는데...하수 서쪽의 착함...?..지명으론 말이 않 돼니...
고지도들 대로...량주(凉州)의 원어가 하서량(河西凉)이요...현재의 감숙성을 말한다 봄이 어떨지 싶습니다.
낙랑,낙양과도 관계가 깊겠고요...
한반도 춘천 소양강 서쪽을...하서(河西)라 했을 리 만무하고여...
정말 재미있는 건 ...정작 이것입니다.
그 한무제의 장수 팽오(彭吳)여...
고조선 단군의 장수로도 활약합니다.
어느 쪽으로 팽오가 배신했다거나 포로가 됐단 말이 없는데...?
그래서 근대조선 사가들도 이는 억측일 것이라 의심하는 문구들이 잇는데...
저는 어쩜... 맞다고 생각합니다.
선비족과 조선(동선비)는...알타이 천지를 태백산 신단수로 친 황웅(훙=훈루=흉로)의 단군(텡그리)족속이고...
전한(前漢)은...서안(시안)의 남산이자... 화산의 서남쪽에 있는
태백산 천지를 신단수로 친 한웅(漢(桓)熊)족의 족 당군(皇帝)족속이라...
당대에는 북방 환웅족과는 적이지만...
본류는모두 환인님의 환국에 근간을 둔 광의적 개념의 동족였다고 전 봅니다.
냉정히 보자면...파나류(파미르)의 북쪽인 알타이의 단군족(텡그리족,훙족)보단...
동쪽인 황제족이...환국의 지리개념적 적통일수도 있다 보이고여...
그 중심점은...태백산맥의 남쪽인 현 한중(漢中)지역이며...
최대로 흥했을 땐 감숙성과 황하 그리고 신장성을 아주 잠시 지배했다 보입니다.
어쨋든지 대륙조선...아니 대륙 환웅족들은...경우에 따라선 한무제도 광의적 개념의 단군으로 취급했을 수 있다 봅니다.
역사가 말한 청나라의 한족과 한팔기군 등은...
현재의 중원이 아닌...어쩜 황하 서북단 감숙과 신장성 사람들을 이름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재미있는 건...
하서량은...가섭원 부여의 자리라네요...?
밑의 경세유표 집필당시는...
이미 하서량인 감숙성 하서주랑 이자 강원도를 청나라에 빼앗겼을 수 있는 근대조선 말기 싯점이니...
가섭원 하서량은 예맥의 땅이니...강원도 강릉 연연하는 말은 말이 않됀다 했을 수 있다 봅니다.
청나라에 밀렸을 당시의 대륙조선 강원도는 사천성 인근 민산(泯山)였기 때문입니다.
원래 강원...즉 양자강의 발원점이 더 먼 북방 청해성였던 걸...
조선말기 학자님은 몰랐던 걸 겁니다.
....................................................................................................................................................
중간생략...
이하생략...
.............................................................................................................
경진년 삼월 이십사일에 백씨를 모시고 순아의 납채(納采) 행사를 영솔하여, 작은 배를 타고 산수를 거슬러 올라가 춘천으로 향하였다. 그런데 지난해 충주를 갈 적에는 오언시를 지어 기행을 하되 전기의 강행시 일백 절구 가운데 칠십오 수만을 본받아 짓고 말았으므로, 이번에는 칠언시 이십오 수를 지어 그 부족분을 채우고, 또 잡체시 몇 수를 지어 함께 한 권을 만들었다. 산수(汕水)와 습수(濕水) 두 물이 용진(龍津)의 서쪽에서 모이는데, 산(汕)이란 산곡(山谷)의 물을 뜻하고, 습(濕)이란 원습(原濕)의 물을 뜻한다. 그러므로 북쪽 가닥을 산수라 하고, 남쪽 가닥을 습수라 한다.
지난해에는 황효수가에 있던 사람이 / 去歲黃驍水上人
금년 봄에는 다시 녹효수가에 왔나니
황효는 여주(驪州)이고 녹효는 홍천(洪川)이다. 그래서 남쪽을 황효수라 하고 북쪽을 녹효수라 한다. / 綠驍水上又今春
일생 동안 호묘에 일엽편주의 소원은 / 一生湖泖扁舟願
남은 생애를 몽땅 일민이 되는 거로세
예원진(倪元鎭)이 일찍이 일엽편주를 타고 호묘의 사이를 왕래했었다. / 全把餘齡作逸民
육십 나이 늙은이가 칠십 세 형을 따라라 / 六十翁隨七十兄
작은 배로 강 거슬러 오르기 용이하구려 / 瓜皮容易溯江行
해마다 이 즐거움을 어찌 적다고 하랴 / 年年此樂寧云少
다만
못둑에 풀이 또 돋아났기 때문일세중씨(仲氏)를 생각해서 한 말이다. / 只是池塘草又生
우수산의 앞에는 우수주가 있는데 / 牛首山前牛首州
팽오가 낸 옛길에 강물이 흘러내리네 / 彭吳故道水滺滺
아,
이정의 수경주가 부족한 곳이 많으니 / 李
水註嗟多觖
돌아가서는 응당 한 책을 보충해야겠구려 / 歸日應須補一
오염으로 촉마를 무역하자니 어찌하랴 / 無那吳鹽換蜀麻
장삿배가 도시 태항산 수레의 모양이로세 / 賈船都是太行車
작은 고기잡이배들은 북보다 가볍기에 / 漁家艓子輕於杼
세차게 흐르는 여울과 깊은 물을 겁내지 않네 / 不怕飛湍與滾沙
사라담 가에 물새가 노니는 바위는 / 䤬鑼潭上鷿鷈巖
연한 녹색 짙은 홍색이 물 속에 잠겼어라 / 軟綠深紅水底涵
그 옛날 달밤에 피리 불던 곳 찾아가 보니 / 思就月中吹笛處
제비집이 예전대로 띳집 암자에 붙어 있네 / 鷰巢依樣著茅菴
그 옛날 동양부마가 노닐던 정자에는 / 東陽駙馬蕉時亭
구유와 마판 늘어 있고 청초만 뜰에 가득 / 皁櫪森抽綠滿庭
이제는
천만 점의 복숭아꽃이 없으니 / 不有桃花千萬點
끝내 쏘가리의 이름을 저버렸구려 / 終然辜負鱖魚名
고랑 나루[皐浪渡]가에 동양위(東陽尉) 신공 익성(申公翊聖)의 수정(水亭) 유지(遺址)가 있다.
수종산 아래 흰 꽃이 어지러이 날리어라 / 水鍾山下白紛紛
천 그루 배나무 꽃이 일자의 구름 같구려 / 千樹梨花一字雲
왕융이 오얏씨 뚫던 일을 말하지 마소 / 休說王戎鑽李核
죽림칠현의 명칭에 남은 향기가 있다오 / 竹林名號有餘芬
수곡의 아늑한 보금자리 한 초정에는 / 壽谷幽棲一草亭
정려의 다섯 홍살문이 번쩍번쩍 빛나는데 / 煌煌綽楔五紅櫺
산집의 송별하는 풍치가 후하기도 해라 / 山家送別風情厚
수양버들 그늘 속으로 술병을 가지고 오네 / 垂柳陰中帶酒甁
충렬공(忠烈公) 권순장(權順長)이 강화도에서 순절할 적에 자녀들도 따라 죽어 이곳에 정문(旌門)이 세워졌는데, 충렬공의 손자인 희(曦)가 술을 가지고 와서 송별하였다.
청평 마을은 강을 마주하여 위치했는데 / 淸平村色對江開
짧은 버들 갠 모래의 언덕을 안고 돌아라 / 短柳晴沙抱岸廻
곧바로 물의 근원 끊어진 곳에 당도하니 / 直到水窮源斷處
청산이 갑자기 배 한 척을 뱉어 내오네 / 靑山忽吐一船來
곧장 북으로 우수를 관통, 또 그 북동쪽엔 / 直北穿牛又北東
어지러운 산 속에 맑은 강물이 십 리인데 / 澄泓十里亂山中
방옹의 입협서 가운데 경치와 비교해 보니 / 放翁入峽書中景
한 굽이만 약간 다르고 두 굽이는 똑같네 / 一曲差殊二曲同
협구는 재갈을 푼 듯 동으로 떡 벌어졌고 / 峽口東呀似解箝
붉은 봉우리 뾰족뾰족 구름 위에 솟았는데 / 紫岑芒角入雲尖
영원이라 십 리에 복숭아꽃 흐르는 물은 / 靈源十里流花水
넉넉히 연기 물결을 한 자는 더 보태겠네 / 賸到煙波一尺添
바로 미원(迷源)의 동구(洞口)이다.
송의 마을 북쪽은 암석들이 험준해라 / 松漪村北石崔崔
천연의 금성철벽에 물굽이를 등지었네 / 天作金城背水隈
산봉에만 보루를 쌓기에 타당하리오 / 可但蒜峯宜築堡
태호와 간악이 다 진귀한 곳이라오 / 太湖艮嶽儘詼瓌
유서애(柳西厓)가 이르기를 “백성의 보루로 삼을 곳은 산봉만한 데가 없다.”고 했었다.
오장의 나무빛이 문득 곱게 펼쳐져라 / 鄔莊樹色忽姸敷
쇠잔한 산수가 별격으로 우회하였네 / 賸水殘山別格紆
문장 짓는 데 자연 법칙 닮은 걸 알려거든 / 要識文章肖天法
험한 곳에서 편평하게 펴는 걸 이루어야지 / 須從險處作平鋪
우측으로 홍천을 지나 입천에 이르러 / 右過洪川次笠川
유가만 아래서 잠깐 배를 멈추었는데 / 柳家灣下乍停船
석양 아래 한 조각 외로운 놀 그림자가 / 夕陽一片孤霞影
먼 봉우리 산불 연기를 비스듬히 끌어들이네 / 斜曳遙峯熂爐煙
발가벗은 몸 간들간들 머리엔 관을 쓰고서 / 身赤條條首戴冠
물 속에 그물 쳐 놓고 강 난간에 앉았어라 / 水中撈網坐江干
산골 마을 유자들이 모두가 이러한데 / 峽村儒者渾如此
그래도 호걸인 체 팔탄이라 자호하도다 / 猶自豪雄號八灘
백사장 햇빛 돌물결에 번쩍번쩍 빛나는데 / 沙日晶晶石閃鱗
메추리떼 높이 날고 들에는 사람 많아라 / 鷃堆高翥野多人
꽃은 고총을 에워싸서 붉은빛이 원만하고 / 花圍古塚紅無缺
풀은 막 불탄 데서 나와 푸른빛이 고르잖네 / 草出新燒綠未勻
한 조각 하늘이 골짝 어귀로부터 열리어라 / 一蓋天從峽口開
가릉의 산천 풍기가 또한 아름답구려 / 嘉陵風氣亦佳哉
석지산 빛은 하 멀리 구불구불 푸르른데 / 石芝山色逶迤綠
때때로 풍악 울리며 군수가 오는구나 / 絲竹時時郡守來
여기가 바로 가평군(加平郡) 앞이다.
곳곳마다 물 속에 들어가 사금을 일어라 / 淘金處處浪淘沙
밤에는 김허의 술 파는 집에 정박했는데 / 夜泊金墟賣酒家
사랑스러워라 이 문 앞의 짙푸른 물에 / 愛此門前紺綠水
어선이 버들가에 그림처럼 비껴 있는 것이 / 漁船如畫柳邊斜
꽃다운 물가 잔풀 뿌리에 물이 잠기어라 / 芳洲細草水沈根
남이 장군 자라던 마을이 아직도 있는데 / 生長南怡尙有村
언덕 위에 쓸쓸히 섰는 천 그루 밤나무가 / 岸上寂寥千樹栗
지금은 다시 이씨 집의 전원이 되었구려 / 如今還作李家園
남이섬 아래 위치해 있는 방아골을
방언에 의하면 섬[島嶼]을 섬(苫)이라 하는데,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에 나타나 있다. / 南怡苫下方阿兀
한문으로 번역하여 구곡이라 하는데 / 譯以文之臼谷云
아, 온조왕이 이곳에서 회군을 하였어라 / 溫祚回軍噫此地
큰눈이 하늘 가득 성대히 내렸었겠지 / 一天大雪想紛紛
《백제사(百濟史)》에 이르기를 “온조왕 18년 11월에 왕이 낙랑의 우두산성(牛頭山城)을 습격하려고 구곡(臼谷)까지 왔다가 큰눈이 내리자 이에 돌아갔다.” 하였다.
끊어진 골짝이 멀리
각리장과 통하였는데 / 絶峽遙開榷利場
고려의 옛 호칭으로 아직도 염창이라 하네 / 高麗舊號尙鹽倉
그 누가 알았으랴
유안의 상평염법이 / 誰知劉晏常平法
동파로 하여금 고기 맛을 잊게 하였을 줄을 / 解使東坡肉味忘
《고려사(高麗史)》식화지(食貨志) 염세조(鹽稅條)에 “오직 서민들은 포(布)를 바쳐서 관염(官鹽)을 무역하기 때문에 제도(諸道)에서 모두 소금의 이익을 독차지했다.” 하였는데, 춘천에 염창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검은 돌이 바둑처럼 펼쳐진 정족탄에서 / 䃜石棋鋪鼎足灘
북만한 작은 배가 푸른 물결 뚫고 나가라 / 一梭穿出綠漪瀾
황효의 어부와 가다가 서로 만나서는 / 黃驍漁子行相遇
또 물고기 사 가지고 저녁 반찬 만들었네 / 又買銀鱗付夕餐
난산의 한 면은 아직도 개척 안 된 곳이라 / 蘭山一面尙天荒
높은 허공에 잔도가 십 리나 건너질렀네 / 閣道飛空十里長
작라의 동쪽으로 거듭 머리 돌리니 / 鵲瀨東頭重回首
경기 지역의 산빛은 이미 아득하구려 / 京畿山色已迷茫
《여지승람(輿地勝覽)》에 이르기를 “난산은 본디 고구려(高句麗)의 배달현(背達縣)인데,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이 난산으로 고치어 우두주(牛頭州)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하였다. ○ 지금 상고하건대, 춘추의 남쪽 20리 문암(門巖) 밖에 등달협(燈達峽)이라는 곳이 있는데, 방언(方言)에 배(背=등)를 ‘등’이라 하는 것이고 보면 배달이 곧 등달인 것이다. 그렇다면 난산의 옛 현(縣)은 의당 지금 삼악(三嶽)의 남쪽에 있었을 것이다. 한 겹의 산 지나가니 또 한 겹의 산인데 / 一重山過一重山
수류만과 와류만이 서로 연하였어라 / 垂柳灣連臥柳灣
등달협 앞에서 서둘러 배에 닻을 올리니 / 燈達峽前催挂席
양쪽 절벽 푸르고 험준함 서로 마주하였네 / 兩厓相拍碧孱顔
이 길이 대체로 관통이라 이름할 만하여라 / 此行大抵可名穿
연구멍 같은 산하가 돈처럼 꿰어졌구려 / 藕孔山河貫似錢
이십오 현 거문고에 줄마다 한 곡씩 올려 / 二十五絃絃一曲
뱃노래를 새로이 예주편에 이어야겠네 / 櫂歌新續蕊州篇
두보(杜甫)의 시에 “즉시 파협으로부터 무탄을 관통하였네[卽從巴峽穿巫炭]” 하였다. 예주는 지금의 충주(忠州)이다.
첫댓글 한무제가 강원도 춘천에... 제목만보고 계속 웃고있네요 새삼스럽게 왜이리 웃긴지 이히히히히 아고 배야 평소 궐한님 글스타일의 이미지 때문인거같아요 죄송합니다 잘보았습니다
위의 여러 詩중 아래서 세번재 詩에 京畿란 말이 나오는데 이 단어는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말인지 궁금합니다.
끼어들어 죄송합니다.
경기란 말은 동양에서는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문구입니다만, 사실 황제국일 경우에만 사용가능했던 말입니다.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위수지역을 경기라 합니다. 우리나라 경기도와 같은 경우입니다.
당나라시대의 관내도와 같습니다.
답변 감사합니다.제가 중국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다가 우연히 京畿란 단어를 보게 되었읍니다. 고향 사람 만난듯 반가워서 질문 드려 본 것 입니다.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경기란...통상 황경이나 왕경 경성등의 수도를 감싼 500리 지역이란 말이 있는데...
조선의 상대적 서역인 중국에 그 경기란 용어가 흔하게 있었다곤 생각돼지 않습니다.
경기란 대개 조선의 황도 주변을 이름일지 싶고...기자(키타이?)의 기주(冀州)지역을 이르다가...후대엔 서안이나 낙양 주위를 이른게 아닐까란 생각입니다.
분명한건...경기 서쪽에 황해도...그 서족에 평안도라했으니...현재의 한반도는 절대 아닌데...
재미있는건 중세 양이들의 지도에는 한반도 경기도가 경기(킹기)...서울이 킹키토라 나온단 겁니다.
이건 제 순수한 예상입니다.
과거 어느싯점부턴여...대륙조선...즉 배달국조선이나 이성계 조선의 중심관 무관하게...기자조선의 자리이고...
후대 서안과 낙양의 주인들였던 자들이...한반도로 밀려들었고...그들이 대륙에서 쓰던 지명&국명을 한반도에서도 그대로 적용시키다가...구한말기에 중원에서 밀려들어온 대륙조선(차니아)인들과 섞인게 아닐까란 생각을 해 봅니다,
한마디로 한반도는 대륙조선의 축소판였었지 안을까란 생각이지...누가 일부로 경복궁 만들고 남대문 만들고 한게 아닌 것이며...
구한말에 그 간판만 대륙것으로 대한제국 친일파들이 봐꿔 리모델링했다 보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