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수리 사업도 ‘복지서비스’보다 ‘관계와 소통’이어야 합니다.
집수리는 지역사회보호사업(재가복지사업) 안에서 수시로 요구되는 일입니다. 사회복지사가 살피는 이웃들의 주거환경의 문제는 세 가지 정도의 이유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손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 두 번째는 건강상의 이유, 마지막은 기술이나 전문지식이 없어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입니다. 또한 이러한 어려움이 두 가지 이상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입니다. 그런데 큰 비용이나 인력을 필요하는 몇몇의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어려움이란 도배지나 장판교체, 형광등교체, 전기스위치 설치, 계단 등에 안전손잡이 설치 등으로 한 동네에 사는 손재주 있는 사람의 관심과 나눔만 있으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집수리 사업, 이웃을 만나는 구실
어려운 이웃들의 집수리를 처음에는 제가 직접 하기도 했고 비용으로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수요를 모두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인력과 예산, 모든 것이 부족했습니다. 마침, 우연한 기회에 인근의 대형할인매장 봉사팀과 만나게 되었고 그 팀에 제안하여 집수리를 매월 정기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2년 정도를 그 팀과 함께 활동하였는데, 사업비용과 인력 모두를 그 모임이 맡아주었습니다. 지역 안에서 이러한 활동이 이루어지니 따로 집수리와 관련하여 사업비를 주는 재단에 응모할 필요도 없었고, 인력도 대형할인매장에서 시설관리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직접 공구와 재료를 들고 나와 수리해주니 많은 가정의 어려움을 척척 해낼 수 있었습니다.
이후, 할인매장의 사정으로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동네 아저씨들 몇 분과 함께 ‘도우기’라는 집수리 모임을 구성하여 본격적으로 이웃들의 집수리를 진행하였습니다. ‘도우기’는 이웃의 어려움을 바로 옆에 사는 이웃이 살피는 공생공락의 마을을 꿈꾸며 시작한 모임으로 동네 시장 안에 설비가게를 운영하시는 분, 페인트 기술자, 용접 기술자, 은행에 다니시는 분, 마트에서 배달하시는 분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분들이 참여하여 시작하였습니다. 한 동네에 사는 분들이 가까운 이웃을 살피니 일에도 정성이 들어가고 집수리 후 근처를 지나면 다시 들어가 살피기도 하였고 시장골목에서 어르신을 우연히 만나면 인사하기도 하였습니다.
“..낯익은 이웃들이 지나가면 떡을 손에 쥐어주었다. 처음엔 좀 어색해 하고 그 다음엔 미안해 하다가 이제는 동네 이웃들이 오히려 먹을거리를 들고 국수집을 찾아온다 (민들레국수집, 서영남, 131쪽)”
또한 이미 지역사회 안에서 집수리 사업을 하고 계신 단체나 모임에 부탁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따로 모임을 꾸릴 필요 없이 평소 이런 분들을 잘 알아두었다 부탁드리면서 가급적 지역사회에 계신 분들의 역할을 세우고자 했습니다. 재향군인회의 경우 다양한 직업을 가진 동네 분들이 함께하는 모임이기에 회장님과의 친분을 통해 집수리업체를 운영하시는 분을 소개받았고 그 분에게 부탁하기도 했고, 감자탕교회로 유명한 광염교회 집수리 팀도 이미 지역 안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계셨던 터라 교회와 가까이에 있는 가정이나 큰 집수리를 필요로 하는 경우에는 의뢰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지역자활센터에서 독립하여 집수리 업체를 꾸린 분들이 첫 마음을 잊지 않겠다며 열 집 수리를 하면 한 집 정도는 무료로 수리해주시겠다는 약속도 하셨습니다. 복지관의 도움을 받았던 분이 다른 것은 도움 받아도 손재주로 나눌 수 있다며 전구교체, 문고리나 창틀 수리 등을 맡아주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놓치지 말아야 하는 어르신의 자주성
도움의 방식이 어떠하든 집수리를 진행함에 있어 당사자(어르신)의 자주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였는데, 벽지와 장판을 고를 때 어르신을 모시고 직접 지물포를 방문해 원하시는 색상, 재질을 선택하시게 하였습니다. 공사 당일에도 짧은 시간일지라도 시작 전에 참석한 모두가 잠시 둘러앉아 차와 과일 등을 먹으며 어르신께 서로 소개하고 오늘의 일정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공사 중에 작은 물건이라도 옮기거나 버리게 되면 반드시 어르신과 상의하였고 그렇게 어르신이 전체 일을 지도하실 수 있는 자리에 계실 수 있게 했습니다. 도우기 모임으로 도울 때에도 되도록 아버님들이 먼저 어떻게 집수리하기를 원하는지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주선하였습니다. 될 수 있으면 어르신께서 직접 자신이 원하는 수리내용을 말씀하실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자기 집에 대한 주인으로서의 마땅한 요구는 자칫 나눔의 감사로 쉽게 덮어버릴 수 있는 자존심과 염치를 살리고 지켜내기 위한 것이기에 사회사업가는 의도적으로 이를 고민하였습니다.
“선택․관계․소통이 없는 생존, 이는 인격적․사회적 죽음이나 다름없습니다 (복지요결2008, 한덕연, 252쪽)”
집수리, 이웃사이 자연스러운 살림살이
집수리 사업도 가급적 지역사회에서, 지역사회로써, 지역주민의 삶이 되는 방식을 우선합니다. 사업비를 응모하여 얻어 베푸는 것도 경우에 따라서 필요하기는 하지만 지역사회를 배제한 채 진행하는 사업은 어려운 이웃을 대상화시키기 쉽고 그나마 남아있던 이웃의 관심마저 복지관이 다 가져가 버릴 수 있습니다. 지역주민의 삶이 된다는 것 또한 도움을 주는 분에게는 내 기술 조금 나누는 자연스러운 일상이며, 도움 받는 분에게도 이웃의 관심으로 어려운 점 해결하고 감사한 마음 품어 보답할 기회 기다리는 더불어 사는 살림살이일 뿐인 것입니다.
2008.7.15
첫댓글 선생님의 집수리 사업에 대한 실천 내용 잘 읽었습니다. 2월부터 팀 업무 분장이 새롭게 변경 되어 주거환경개선 사업을 담당하게 되었고, 지난 주에 첫 진행을 했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복지관에 매달 활동하시는 봉사팀은 한미파슨스라는 기업입니다. 벌써 2년째 진행하고 있는데, 한미파슨스도 홈플러스처럼 봉사팀을 직접 모집하고, 활동에 필요한 각종 재료들을 가지고 오십니다. 사회복지사가 하는 일은 주거개선이 필요한 가정을 소개만 해주면 되는 정도였습니다.
사업을 인수받고 미리 도배를 하게 될 가정을 찾아뵙고 어르신께 몇가지 여쭙기도 하고 부탁도 드렸습니다. 도배 활동하시는 분들은 보통 9시 30분쯤에 오시는데 시간은 괜찮으시겠는지, 그 분들이 오시면 가급적 어르신께 폐 끼치지 않으시려고 점심도 직접 알아서 사드시고, 간식이나 음료수들도 직접 사들고 오신다고 합니다. 점심 식사는 어르신의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울 것이니, 도배하기 전에 잠깐 앉아서 차라도 마시면서 인사나누시면 어떻겠습니까?(기존에 도배를 하셨던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봉사자들이 밥도 싫다, 차도 싫다, 간식도 싫다 하셔서 무척 미안했고, 염치 없더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차 한잔 하시면서 인사도 하고, 얘기 나누시는 부분에 대해 무척 긍정적이셨습니다. 그렇게 부탁드리고 활동 당일 날, 봉사팀 총괄하시는분에게 이러한 부분에 대해 말씀을 드렸는데, 그렇게까지 안해도 된다하시며, 오히려 어르신들에게 부담을 줄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2년 동안 점심, 간식, 차도 필요없고, 집 안에 있으시면 오히려 불편하실테니 동네 나갔다 오시라고 말씀도 하시는데, 어르신을 생각하는 그 마음은 알겠으나 배려가 조금 과 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처음이라 더 이상 부탁 드리지는 않았으나, 이제 시작이니 조급해 하지 않고 조금씩 제 생각을 말씀드려 볼 생각입니다.
선생님의 집수리 사업이 제가 담당하는 주거환경개선 사업 진행에 매우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세진 선생님~
모든 일에 앞서 한 자리에 모여 차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전에 공사규모 파악하기 위해 방문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더욱 좋겠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당일에 오실 수 밖에 없다 하더라도 일 시작전에 모여 이야기 나누면서 서로 소개하고 할머니께 집에 대한 역사, 취향 등을 자연스럽게 말씀하하실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집 주인이 자신의 집을 고칠 때에 주인행세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그 역할을 세워드려야 합니다. 이처럼 누군가의 도움으로 자신의 집을 고칠 때에는 더욱 의도적으로 그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사회사업가의 역할이겠습니다.
차와 다과를 준비하게 하는 것이 할머니께 부담드리는 것 같아 불편하다고 하시면 할머니와 상의하여 차와 다과를 복지관에서 준비하면 되지않을까요? / 제 경우도 정수현 선생님과 같은 이유로 다들 싫다고 하신 경우도 있었지만, 종종 할머니께서 삶아주신 감자, 음료수, 계란, 사탕, 쌀과자.. 잘 받아먹고 어떤 때에는 점심도 같이 시켜먹고 그랬습니다. 커피도 끓여달라 부탁하기도 했지요. 일이 다 끝나고 마지막으로 시계, 달력, 거울 걸기 위해 못 밖을 때에는 멀리 계신 할머니도 모시고와서 높여라, 낮춰라, 지시하게끔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