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에는 부탁받은 특강을 하고 뒤풀이, 금요일에는 러시아 음악 강좌후 잠시 뒤풀이를 하고서 토요일 새벽 3시 40분에 일어나 진안고원길을 걸으러 출발합니다...
부전역에서 울산의 이산정조님을 태우고 어둠이 아직 걷히지 않은 고속도로를 달리며 부산에 관한 근대사 이야기를 하며 가는데, 헉...! 진주에 다가가니 비가 옵니다...
지리산권역 내내 비를 밪으며 가다가 함양에 이르니 비는 그칩니다...하지만 오늘은 비예보가 되어 있어서 안심할 수가 없는 날씨...
소양으로 내려와 화심순두부에서 여느 때처럼 아침을 먹고 진안읍에 들러 햇반을 사서 덥혀 보온통에 넣은 다음 상전면사무소 앞 체련공원 주차장에 도착하니 전주의 동생이 벌써 와있네요...
차를 두고서 한 대로 함께 동향면사무소로 갑니다...그리고 차를 대고 레인자켓과 배낭커버 등을 챙긴 다음 13구간을 시작합니다...
오늘의 시작점입니다...총 16.4km를 걷게 됩니다...
동향중학교 쪽으로 향해 가는데, 산들마다 짙은 구름들이 걸려있어서 비걱정을 하게 만드네요...
날씨는 그렇게 춥지 않고 딱 좋습니다...
언덕배기를 따라 구불구불 마을길을 돌아 빠져나온다음 큰 길을 건너 작은 굴다리를 통과하니 바로 옆에 널찍한 구량천이 붙습니다...
아직은 온 산야에도 물가에도 겨울이 짙은 자락을 걷지않고 있는 모습이지만, 그래도 나무에는 새로운 생명의 움이 싹이 되어 달리기 시작합니다...
멀리 성주봉은 아예 짙은 비구름속에 잠겨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촉촉하게 젖은 비포장 둑방길을 걸으니 기분이 좋네요...
그렇게 걷다보니 물길과 헤어지고 비로소 산으로 들어가는 마을을 만나게 됩니다...하향마을입니다...
입구에는 300년이 넘은 노거수와 함께 돌미륵뎅이가 놓여져 이곳의 신앙을 말없이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마을 중간 골목길을 들어서자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이어집니다...
어느 정도 올라서니 하향마을과 조금 너른 종자뜰과 구량천이 아스라이 멀어집니다...
어느 순간 길은 우측으로 난 등산로로 이어집니다...
낙엽이 수북이 깔린 호젓한 길입니다...중간중간 코코매트도 깔려있습니다...
그렇게 살짝 치고 오르다보니 등산로 갈림길 5거리에 도달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좌측으로 난 등로를 따라 천반산쪽으로 가게 됩니다...
나무 사이로 천반산이 조망됩니다...
선조때 전주 출신 정여립은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는데, 그를 가르친 서인 출신의 이이 등을 좋게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미움을 사서 결국 벼슬에서 물러나 금구로 내려오게 됩니다...
그는 중이나 서천들과 어울려 친하게 지내며 평등의 세상을 꿈꾸면서 이곳 천반산에 거처를 마련하고 군사훈련을 하는 등 작당모의를 하다가 고발을 당하여 반역죄로 쫓기게 됩니다...
결국 죽도에 숨어들었다가 자살로 생을 하직하게 되고 그와 파당을 진 동인들은 송강 정 철을 수장으로 하는 서인들쪽의 조사반들에 의해 잡혀 고문을 당하고 투옥되고 죽음을 맞이하면서 전라지역의 동인들이 씨가 말랐다고 할 정도로 심한 고초를 겪게 됩니다...이것이 임진왜란 3년전에 일어난 기축옥사입니다...
그의 진정한 이상향과 철학은 무엇이었을까...? 생각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등로를 나아갑니다...
등로 중간에 이런 돌탑이 있어서 무사산행과 안녕을 기원하며 돌 하나를 얹어봅니다...
중간에 만난 이끼계곡...
등산로지만 사람들이 잘 찾지않아 원시비경을 보여주듯 이끼가 꽉 끼여 있습니다...
이끼계곡을 지나자 등산로는 경사도가 급해지면서 땀을 나게 만듭니다...
마침내 고개턱이 보이기 시작하지만, 저 부분에서 바로 치고 오르는 것이 아니라 우로 갔다 다시 좌로 꺾어져 올라가야만 합니다...
희미하게 길이 우측으로 보일겁니다...
드디어 마지막으로 고개에 올라섭니다...여기는 먹재입니다...
동생이 서 있는 방향으로 능선을 타서 700m만 올라가면 천반산입니다...
시간 여유도 좀 있어서 가보고는 싶지만 날씨가 어찌될지 몰라 이번에는 포기하고 맙니다...
정여립을 만날 기회가 그리 흔하진 않을텐데...
조금 빡시게 내려서는 계단을 따라 진행합니다...
경사는 이 사진처럼 제법 세게 내려갑니다...
한참을 내려서니 임도랑 만나 편안하게 진행하게 됩니다...
멀리 마을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임도를 따라 발걸음을 서두릅니다...
날씨가 급격하게 어두워오기 때문입니다...
이제 가막리로 내려섰습니다...
가막유원지로 나가는 길 중간에 높은 동산이 있고 성황나무와 우측으로는 큰 바위들이 있습니다...
나무나 바위의 모습을 보니 영험한 곳인 듯...
멀리 하가막 마을이 보입니다...다리르 건너 우측으로 가면 가막유원지로 가는 길이 이어집니다...
다리 위에서 이 멋진 암릉의 사진을 찍고 있는데, 갑자기 들판 저쪽으로부터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점차 가까워집니다...
다행히도 다리 옆으로 모정과 쉼터가 있어서 얼른 뛰어들어가서 비를 피합니다...
우장도 꺼내고 배낭커버도 씌우고...그런데, 소리가 이상해서 보니 우박이 섞여 내립니다...ㅎㄷㄷㄷ
다행히도 잠시 후 그쳐서 길을 걸어갑니다...
일단 점심을 먹기로 예정되어 있던 가막유원지의 정자에 올라서 자리를 펴고 점심을 먹습니다...
이산정조님이 가져온 홍어회와 울산 태화루 막걸리가 끝내줍니다...
김치찌개와 부대찌개를 섞고 햄 듬뿍 라면추가 소주랑 가볍게 한 잔...ㅎㅎ
커피와 딸기를 먹고 정리하려는데 갑자기 바람이 세차게 불더니 다시 우박이 쏟아집니다...정신이 없네요...
정리를 정신없이 하고서 그제사 앞의 가막 유원지를 봅니다...
여름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는데...
유원지길을 따라 걸어가다보니 이렇게 경치좋은 곳들이 있어서 오늘도 텐트를 치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좌측으로 꺾어 대덕산 자락의 고개를 넘기 위해 산으로 들어섭니다...
때로는 물길을 건너기도 하고 때로는물길을 따라 오르기도 하며 산으로 들어섭니다...
멀리 고개마루턱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등로가 시작됩니다...
여기도 막판에 급한 경사의 계단을 따라 헉헉거리며 올라갑니다...
마지막에 힘을 주어 올라서니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때립니다...큰재에 올라섰습니다...
큰재로부터는 이제 상전면으로 완전히 들어서게 됩니다...
완만한 길을 따라 내려오다 급한 계단길을 내려오다가...
산수유가 피어난 마을로 들어서게 됩니다...
드디어 후가막 마을로 들어섭니다...
이제 상전면 체련장까지는 3.3km정도...빨리 가면 1시간의 거리입니다...
마을 입구 버스정류소에 앉아 잠시 쉬며 시간을 보니 좀 이릅니다...
13구간 소요시간이 6시간이라던데, 우리는 아침 9시에 시작하여 점심을 먹고 우박도 피하고 했는데도 아직 3시가 채 되지 않았네요...
여관에 가서 짐풀고 한 잠 늘어지게 자자고 하면서 다시 길을 출발...
그리고 곧 지사마을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저 대덕산 줄기의 산자락에 걸린 구름이 아무래도 심상찮습니다...
일단 지사마을로 들어서서...
예쁘게 피어난 홍매를 바라보며 향에 취하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집니다...애고고...ㅠ
바로 근처 지사마을회관 옆에 정자가 있어서 올라가서 앉습니다...
하지만 이 비는 금방 그칠 것 같지 않네요...
아예 자리를 깔고 누워 잠시 오수를 청해봅니다...
잠시잠깐 자고 일어났는데, 여전히 비는 쏟아지고...조금 더 기다려보는데 살짝 빗줄기가 약해집니다...
우리는 우장을 차려입고 남은 길을 나섭니다...
높은데 위치한 성황나무를 돌아 마을을 빠져나갑니다...
발아래로 오늘의 목적지인 상전면 소재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그런데, 길은 다시 숲속 오솔길로...
다행히도 여기는 갈잎이 푹신하게 깔려 걸어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문화마을을 지나 내려서니 13구간의 종점인 상전면사무소가 옆에 있습니다...
여기서 400m를 더 진행하여 14구간의 상전면 체련장까지 내려갑니다...
비는 다 그치고 우리도 우장을 접어넣습니다...
오늘 하루 날씨는 우리들의 우의를 들었다 놨다가 아니라 벗겼다 입혔다를 계속 반복시켰군요...
체련공원에 도착, 세워둔 차를 회수하여 동향까지 갔다가 진안읍 숙소로 향합니다...
그래도 조금 일찍 도착하였기에 씻고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잠시 잠을 청합니다...
저녁은 빠가사리 매운탕으로...
냉동 빠가만 먹어보다가 오늘은 생빠가를 먹으니 확실히 맛있군요...
이렇게 해서 13구간을 잘 마치고 이제 내일 오전에 14구간만 걸으면 진안고원길도 마무리가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