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강성삼 라우렌시오 신부님은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 다음으로 사제품을 받으신 분입니다. 한국의 세 번째 사제인 셈입니다. 1896년 서울의 중림동 약현 성당에서 강도영 신부님과 정규하 신부님과 함께 31세의 나이로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병약했습니다. 말레이시아의 ‘페낭 신학교’에서 풍토병을 얻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 그는 부산본당 3대 주임으로 내정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건강 때문에 밀양의 ‘명례’(明禮)에서 사목합니다. 낙동강 강변의 작은 마을이었던 명례(明禮)는 이로써 경상도의 ‘네 번째’ 본당이 됩니다. 1897년의 일입니다. 신부님은 밀양, 창녕, 함안 일대를 사목하시다가 결국 1903년 명례에서 선종하시어 그곳에 묻힙니다. 38세의 안타까운 나이였습니다.
무엇이 그를 이렇듯 낯선 곳으로 ‘와서 살다가’ 죽게 했겠습니까? 하느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의 일생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지금도 명례 공소 앞에는 그때와 변함없이 낙동강이 낮은 모습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복음의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분을 증언하는 일들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선교사들의 ‘용기와 열정’이 계속되고, 새 영세자들은 교회의 맑은 물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동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