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해바라기] 05
$#1. 병원 의국 (아침)
사복차림의 하경이 의국으로 들어온다.
하경의 출근.
가방을 자신의 책상 위에 놓고 언뜻 간이 침대를 바라보는 하경.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뒤돌아 잠든 누군가의 모습.
하경, 까운을 갈아입고 다시 침상 쪽으로 살짝 다가가 얼굴을 내밀어 보면 준서
가 몸을 뒤척이는 모습.
빼꼼히 열려진 현우의 개인 연구실 문틈을 살펴보는 하경.
아무도 없다.
준서E 의국 첨 봐? 왜 자꾸 기웃거려?
하경 혼자 잤어?
준서 너, 여자 찾니? 여기가 여관방이냐?
하경, 굳은 얼굴로 의국 문을 나선다.
준서 (하경의 뒤에 대고) 왜?
하경 (짜증스레) 뭐?
하경이 나가면 준서가 부시시 일어나 담배를 피워 문다.
잠시 후, 현우가 세수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면 들어온다.
준서 일어났냐? 숨막혀 죽는 줄 알았다, 너 땜에
현우 왜?
준서 빨랑 장가 가, 임마.
안고 잘 사람이 없어서 나냐?
현우 내가 미쳤냐, 임마.
준서 뽀뽀만 안 했지. 얼마나 진했는데 너.
현우 이 짜식이... (수건을 던진다)
준서 이 짜식이...
현우와 준서 서로 뒤엉켜서 천진한 장난을 하고 있을 때 의국 문을 들어서며
남준이 급히 하경을 찾는다.
현우, 준서 장난을 멈춘다.
남준 니네 사귀냐?
벙찐 현우와 준서.
남준 최하경 왔어?
현우 아니요.
준서 왔어, 금방 나갔는데요?
남준 알았어, (나가며) 아무리 좋아도 병원 내에서 자제해, 이놈들
아. (장난스레 웃으며 나간다)
준서, 현우 마주보다
준서 허니.
현우, 웃으면 베개를 던진다.
$#2. 병원 전경
앰블런스가 들어온다.
$#3. 중환자실
이동 침상에 실려오는 상구.
재봉과 간호사, 간호보조사들이 상구의 이동침상을 급히 중환자실로 침상 옆으
로 밀어 놓는다.
링겔을 걸고, 상구의 식도 쪽에 연결된 관들을 침상 위에 건다.
머리에 붕대를 감은 창백한 상구의 얼굴.
무슨 말인가 중얼댄다.
현우가 다가와 동공을 검사한다.
현우 붕댄 뭐야?
재봉 Local(타 병원으로부터의 이송) 환잡니다.
현우 (재봉에게) CT 줘봐.
재봉이 현우에게 필름을 넘겨주자
현우, 필름을 받아 살펴보고 있다.
계속 중얼대는 상구.
현우 (상구의 입술에 귀를 들이대며 큰소리로) 네? 윤상구씨 크게
말해봐요.
상구 (눈을 감은 채 중얼댄다) 내버려 둬.
상구 처 여보, 이제 큰 병원으로 왔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현우 (고개를 들어 상구 처를 본다) 보호자세요?
상구 처 네, 병원이 얼마나 후진지 수술을 잘못 해놔서..
현우 수술엔 이상 없습니다.
상구 (중얼댄다) 내버려 둬.
현우 (다시 큰소리로) 윤상구씨 정신 차려봐요. (상구의 뺨을 가볍
게 두드린다)
상구 (가물대며 상구 처에게) 가. (그리곤 의식을 잃는다)
현우 (다시 큰소리로) 윤상구씨. (허벅지를 꼬집어 본다)
반응 없는 상구의 겨드랑이를 다시 한번 꼬집어보곤 재봉에게 약품지시를 한다.
현우 보호자분, 수술이 문제가 아닌 것 아시죠?
상구 처 선생님, 그래도 다시 한번만 봐주세요. 꼭 정신이 들 것 같은
데 계속 저러니 답답해서 그러죠... 잠깐이라도 제 정신이 나는
걸 봐야 안 되겠어요? (간절한 눈빛)
현우 ...NCU 자리 있지?
재봉 네, 선생님.
현우 입원 수속해. 나, 수술 끝나는 대로 들를 거다.
현우, 나가려다 상구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바라본다.
$#4. 과장실
남준 하경이 니가 특실 환자 좀 맡아라. 병원장 VIP다.
하경 이번엔 어떤 요양환잔데요? 재벌입니까, 연예인입니까?
남준 환자면 환자지 요양환자가 뭐냐? 잘 나가는 연예인이었고 지
금은 재벌 집 며느리란다.
하경 (웃으며) 퍼펙트하게 맞췄네. 누군데요?
남준 무슨 은미라고 그러드라.
하경 성은미요? 모르세요? 유명해요. 결혼한지 얼마 안됐을 걸요?
남준 뭐야? 연기하는 사람이야?
하경 네. 근데 며칠이나 노닥거려 줘야 됩니까?
남준 (노려본다) 임마, 너 또 배알이 꼬이냐?
하경 (한심한 듯) 특실 환자들, 체질에 안 맞아요, 과장님.
남준 환자가 니 체질에 맞춰야 된다면 니가 의사냐, 오히려 환자지.
수면 장앤가 부다, 그 환자.
니가 가서 살펴봐.
하경 오전 외래 있거든요, 저. 그거 마치구요.
남준 안 가려고 기를 쓰누만. 잠깐 들르는데 몇 분이나 걸린다고?
하경 (짜증스레) 어쨋든 가기만 하면 되잖아요. (나가려다) 애들한테
일단 증상체크부터 시키죠, 뭐. 그리고 나서...
남준 (버럭 소리친다) 애들 시키지 마. 니가 해, 직접.
하경 괜히 화를 내고 그러시냐? 알았어요, 과장님. 근데요. 어쨋든
외래는 마치구요. 아침부터 재수없으면 진료 못 봐요.
나가는 하경이 등뒤에
남준 아무도 모르게 해.
하경이 나가려다 남준을 바라본다.
$#5. 수술실 식당
수술복 차림의 인찬과 상희가 밥을 먹고 있다.
상희 선배님. 계란찜 안 드세요?
인찬 응, 에? 내가 왜 선배냐, 박 선생님이 선배지.
상희 둘이 있을 땐 말 놓으세요. 대학 선배잖아요, 권 선생님.
인찬 그래도 그렇게 부르지 마요. 어색해요.
상희 그거 왜 안드세요?
인찬 알러지 있어요, 계란.
상희 복숭아 알러지도 있잖아요.
인찬 모르는 게 없네.
상희 관심있거든요, 권선생님한테...
인찬 (사리가 걸린 듯 컥컥대다가 물을 마신다) 아우, 김치가 맵다.
상희 선생님, 한수연 CPR 하셨다면서요?
인찬 (놀란다) 어? 내가? 한 선생, 무슨 일 있어요? 쓰러졌어요, 어
디서?
상희 아니, 옛날에 걔 임상 돌 때...
인찬 아, 그 때요. 그건 장현우 선생님이 했어요. 수술실에서...
상희 (화색이 돈다) 그래요? 걘 선생님이 한 줄 알아요. 난 걔가 선
생님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그런 거 아니더라구요. 왜, 그냥
은인 취급하는 거 그런 거 있잖아요.
인찬 (당혹스런 얼굴로 밥을 먹는다. 그러다 문득) 한수연 선생이
그렇게 얘기해요?
상희 네, 한시름 놨어요. (당찬 표정으로 인찬을 보며 웃는다)
$#6. 수술실 입구 중환자 운반 복도
수연, 수술복을 입은 상도를 쫄래쫄래 쫓아가며
상도 에이씨. 나, 너 무서워 죽겠어. 트랜스퍼 전문이냐, 너?
수연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아서요, 선생님.
상도 1년차. 넌 심상치 않으면 무조건 신경외과로 달려오냐? 애ㅗ
우린 심상치 않은 환자만 받아야 되는데?
수연 (웃는다) NS가 원래 그런 과잖아요.
상도 얘도 만만찮은 싸가지구만.
굳은 표정의 인찬, 마스크를 올리며 수술실 쪽으로 가려는데 수연과 상도를 본
다.
상도 (인찬 보곤) 권인찬. (수연에게) 저기 니꺼 온다. (인찬에게)
야, 얘 트랜스퍼 어쩌구 한다. 니가 알아서 해결해라, 응?
상도, 마스크를 올리며 수술실로 들어가고 수연이 인찬을 보며 웃는다.
인찬, 수연과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피한다.
이때, 마스크를 쓴 현우가 수술실 안 저만치서 보인다.
수연, 현우에게 목례.
그러다 문득, 위아래 끈을 교차로 묶어 십자형의 모습을 하고 있는 현우의 마스
크가 눈이 들어온다.
수연, 불현 듯 굳은 표정.
$#7. 플래쉬 컷 - 수연의 회상
스러진 수연의 눈에 어른대는 현우의 마스크.
십자로 묶여진 마스크 끈 마스크 위로 보이는 현우의 눈이 이제사 선명히 드러
난다.
$#8. 수술실 중환자 운반 복도
마스크를 벗으며 수연 앞으로 다가오는 현우.
수연, 인찬, 현우를 바라본다.
현우 한수연 선생.
수연 (놀라며) 네?
현우 손수건에서 향수냄새가 나.
수연 손수건이요?
현우 그래, 내 손수건.
수연 아, 그거요...
현우 다음부턴 괜한 짓 하지마 난 그런 냄새 싫어해.
저만치 걸어가는 현우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수연.
그러다 인찬을 본다.
수연 (어색하게 웃으며) 다음에 또 그럴 일이 뭐가 있다고, 나 참.
인찬 한 선생님. 급한 거 아니면 나중에 컨설트 하실래요? 저도 수
술방 들어가야 하거든요.
수연 네, 선생님. 의국으로 사진 갖고 갈게요.
인찬, 마스크를 쓰며 수술방으로 향한다.
인찬의 마스크 끈은 평행하게 묶여진다.
수연, 인찬의 뒷모습을 보다가 현우가 사라진 복도 끝을 계속 바라본다.
$#9. 1층 로비 외래 앞
현우가 수술복 차림 그대로 외래 진료실 쪽으로 걸어간다.
이때, 하경이 진료실에서 나오다가 현우와 마주친다.
하경, 아무 말 없이 외면하고 현우를 스쳐 지나간다.
현우 최하경. 너, 어제...
하경 (고개를 돌리며) 장현우 선생님... 우리 이제부터 함부로 이름
부르는 건 삼갑시다. 여긴 병원이지 동창회 사무실이 아니잖아
요?
현우 ...
하경 곧 익숙해지겠지요.
하경, 뒤돌아간다.
현우, 하경을 바라보다 씁쓸한 표정으로 진료실로 들어간다.
$#10. 수술실 밖
전화 받는 곳.
수술복 차림의 상도가 전화를 받는다.
상도 니가 알아서 해, 좀... 이 싸가지.
넌 도대체 그럼 하는 일이 뭐냐?
머리통 바꿔서 여는 거 하고, 도망가는 거 빼고 나면 니 스스
로 알아서 하는 일이 뭐냐. 응?
$#11. 응급실
재봉이 전화를 하고 있고 재봉 뒤로 건달1이 난동을 피우고 있다.
건달1이 머리에 피묻은 붕대를 하고 있고 건달2가 건달1을 말리고 있다.
간호사들 겁에 질려 주변에서 물러나 있다.
재봉 그게요... (수화기를 난동파 쪽으로 들어올린다)
건달1 안 비켜? 씨.
건달 머리 꼬먀야 된다잖아, 새꺄. 좀... 말 좀 들어라, 새꺄.
건달1 의사새끼들 돈 벌어 먹을라 그러는 거야, 새꺄.
그 새끼들 말 안 믿어. 비켜, 그냥 가.
재봉 (수화기를 들이대더니) 무서워, 형. 얼른 와요. 보고 싶어.
$#12. 수술실 밖
상도 (전화를 끊으며 모자를 집어던진다) 어떤 싸가지 새끼들이.
의사 새끼?
$#13. 수술실
준서가 수술을 하고 있고
인찬이 어시스트를 하고 있다.
이때, 상도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상도 (말투가 건달 같다) 샌님. ER가서 일 좀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준서 왜?
상도 싸가지들, 손 봐 줄 일이 생겼습니다.
준서 그래라. 니가 몸 좀 푼다는데 무슨 수로 말리냐?
상도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샌님.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나간다)
준서 (웃으며) 넌 쟤가 의사로 보이냐? 짜식. (문득 인찬을 본다)
너, 똥 씹었냐?
인찬 네?
준서 여자한테 바람맞았구만. 그 얼굴인데?
인찬 (웃으며) 그렇게 보이세요, 선생님?
준서 나 그거 전문가야. 당해봐서 알거든.
인찬 ...
준서 누구냐고 묻고 싶겠지. 장현우 선생과 관련이 있다. 누군지 알
만하지? (그리곤 개구진 미소를 짓다가 인찬의 굳은 표정을
본다) 이놈, 진짜 심각한가 보네.
인찬, 아무 말이 없다.
$#14. 특실
하경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미모의 여자 환자가 은미가 잠을 자듯 눈을 감고 누워있다.
하경, 주위를 대충 둘러보다가 나가려할 때.
은미 (건방진 어조로) 간호원, 나 물 좀 줘요.
하경,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냉장고로 가서 생수통을 꺼내 물컵에 따른다.
은미, 눈을 뜨며 일어나 앉는다.그러다 문득 하경을 올려다 보며.
은미 어머, 의사 선생님이네. 미안해요.
하경 (쌀쌀맞게) 간호사가 따르는 물이나 의사가 따르는 물이나 물
맛은 같을 겁니다. 그리고 상태로 봐선 직접 움직여도 될 것
같군요.
은미 (픽 웃으며) 기분 나빴나 봐. 산부인과에서 나오셨어요?
하경 (의아한 듯)
은미 제 시부모님이 뭐라고 부탁을 했는지 모르지만, 애는 낳을 거
예요. 누가 뭐라든... 얘 그 집안 애니까...
$#15. 상구의 입원실 앞 복도
순덕이 현우의 뒤를 따르고 있다.
순덕 아키네틱 뮤티즘(Akinetic mutism 운동불능성 무언증 - 침묵
과 부동자세이나 의식은 명료함이 특징인 상태. 눈은 물체를
따르나 정신활동이 있는지는 확실치 않음) 상탠데요.
현우 깨날 환자 아니던데... 보호자 정성이 통했나보네.
$#16. 상구의 입원실 안
현우가 들어서면 상구가 상체를 일으킨 채 앉았고 상구 처와 상구 처남이 양옆
에 서있다.
상구, 서류를 무릎 위에 두고 볼펜을 든 채 현우를 바라본다.
현우 (보호자들을 향해 쏘아붙인다) 기껏 눈 뜬 분한테 무슨 볼일이
그렇게 많습니까? (눈길을 돌려) 윤상구씨, 여기가 어디죠?
상구 (눈만 껌벅댄다)
현우 (상구의 동공을 확인하고 순덕에게) mg. (약품이름)
순덕 네. (문밖으로 뛰어간다)
처남 (현우에게) 처리해야 될 일이 많습니다.
선생님. 이렇게 의식이 말짱한 적이 없었거든요. 그러니 이 참
에 정리해야 될...
상구 처 (현우의 눈치를 보며) 얘, 다음에 이렇게 정신 차렸으니까 괜
찮아지실 거야. 나가자, 응?
처남 누나, 그때도 그랬잖아. 또 언제 의식이...
현우, 어느새 문을 열고 섰다.
현우 문 열렸습니다.
순덕이 주사용기를 가지고 들어오고 상구 처와 처남이 문 앞으로 간다.
현우 (순덕에게) 송선생. 이 환자 면회시간 제한해요. 하루, 오전 30
분간... 면회객들이 무리 주는지 철저히 주시하고...
현우를 마땅찮게 쏘아보는 상구처남.
무안한 듯 상구 처남의 옆구리를 찌르며 나가는 상구 처.
문을 닫는 현우, 상구에게로 와서 주사기를 든다.
순덕 재산 정리하는 거죠, 저 사람들? 참, 사람 좋게 생긴 여자가
웃기는 여자네요, 아주.
현우 억지로라도 살아줘야 되는 환자였구만.
상구 그래요.
현우, 순덕, 상구를 놀란 눈으로 바라본다.
현우 윤상구씨? 이름이 뭐라구요?
상구 (웃으며) 윤상구지.
현우 여기가 어디죠?
상구 (둘러보며) 병원이네요.
순덕 (놀라운 듯) 선생님.
상구 놀랄 것 없소, 간호사 선생. 이러다 또 금방 넘어가니까... 나,
담배나 한 대 핍시다.
순덕 (인상을 쓰며) 담배라니요? 큰일 날 분이네...
현우, 순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느새 상구 앞에 담배를 내민다.
순덕, 현우를 바라보다 주사용기를 챙긴다.
순덕 선생님도 큰일나려고...
현우 문 좀 닫고 나가줘요.
순덕, 용기를 들고 나가며 문을 닫는다.
닫히는 문으로 들리는 라이터 불 켜는 소리.
그리고 상구의 음성.
$#17. 응급실
양아치처럼 갖은 폼을 잡고 응급실 후문으로 들어서는 상도.
응급실 현관 입구.
건달1이 나가려하고 건달2가 말린다.
건달1 내가 잠깐 기절 좀 했다고 한심하게 여기다 갖다놓냐, 새꺄.
건달2 이 새끼, 가, 난 몰라, 새꺄.
상도, 건달1의 어깨를 부여잡는다.
건달1 어? 이거 뭐야?
상도 (손에 힘을 잔뜩 주며) 일루 와보세요, 아저씨.
건달1 (손을 뿌리치며) 어딜 만져. 이 사람도 의사야?
재봉 (멀찌감치 서서) 저보다 훨씬 높으신 분이에요.
건달1 (잠시 상도를 보고는) 지들이 높아 봤자지. 놔, 이거. 죽기밖에
더해?
상도 그냥 죽어주면 다행이지.
건달1 뭐?
상도 갑시다. (형광판 앞으로 가 서더니) 얼른 와봐요, 좀.
(심각한 표정으로 필름을 바라보다 담배를 꺼내문다)
재봉 선생님, 여기 금연인데요.
상도 알어, 불 안 붙였잖아. (담배를 물어 필터만 질근질근 씹으며
건달들에게) 이 뇌라는 건 말입니다. 모든 신경들의 집합쳅니
다, 네?
팔, 다리, 그 외 모든 신경들을 관리하는 오야봉이라 그 말이
요, 에?
이 머리통이 조직관리를 못하면 수족들, 다시 말해서 머리의
똘마니들이 제 구실을 못한다.
손 발에 마비가 와서 이러구 있어야 돼, 이렇게...
(손발을 늘어뜨리고 입을 헤 벌린다)
건달1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상도 내가 댁한테 뭐하러 상관도 없는 얘길 하겠수? 바빠 죽겠는
데... (재봉에게) 필름 봐. 아묘트로픽 래터랄 스클레로시스
(amyo tropical lateral sclerosis) 같지?
재봉 ...?
건달1 에이 씨, 우리말로 해.
상도 우리말로 근 위축성 측삭 경화증.
발병 후 3년 안에 뭔 일 나는... 그래도 뭔 소린지 모를거요.
척수의 전각세포와 대뇌피질의 운동세포에 영향을 주는 퇴행
성질환.
건달1 ...(멍한 표정)
상도 그래도 모르지? 수족이 점점 마비되는데... (한숨 푹 쉬더니 건
달2에게) 좀, 들 무식해 보이는 분. 보호자쇼?
건달2 아... 예.
상도 나랑 대화 좀 합시다.
건달2, 상도를 따라간다.
저쪽에서 상도가 뭐라 설명하고 건달2가 굽신대며 얘기를 듣는다.
재봉, 건달1 멀쭝히 서있다.
건달1 뭔데 저렇게 겁을 주는 거야. 에유 씨, 되지게 궁금하네. (재봉
에게) 그 뭐냐? 근위축이 뭐... 그게 병이요?
재봉 병이죠. 그게요, 점점 수족이 마비될 뿐만 아니라...
건달2 (놀라 달려와) 야... 너... 큰일났다.
건달1 (걱정스러운 표정) 왜 그래 새꺄. 뭐? 뭔데...
건달2 그러니까 수족이 마비되는데... (건달1을 잡고 고개를 숙인다)
건달2, 건달1과 속닥이고 상도가 멀찍이서 담배를 질근질근 씹고 있다.
건달1 (상도에게 달려와 침을 꿀꺽 삼키고는) 안돼요, 선생님. 가망이
없나요, 선생님?
상도 일단 출혈부터 막구요. 진정한 검사를 더 해봅시다. 침대에 얌
전히 누워있어요.
건달1 (슬픈 듯 풀이 죽어) 네, 선생님.
건달1이 침상으로 가서 눕더니 앓기 시작한다.
응급식 스테이션 앞에서 상도가 기록을 적고 있다.
재봉 뭐라고 하신 거예요, 선생님?
상도 사실대로 얘기해줬어, 이 필름 그대로...
간호사 (필름을 내민다) 선생님. 저 환자 CT 나왔는데요.
상도 줘봐. (필름보고는) ...뭐 외상 외엔 별다른 이상 없네. 상처나
꼬매주고 퇴원시켜.
재봉 (형광판 필름을 보며) 이건?
상도 몰라, 꽂혀 있더라. (간호사에게) 이거 어느 과 필름이야?
재봉, 멍한 표정으로 서있다.
$#18. 특실
하경이 서있고, 산부인과 남자의사가 은미의 증상을 묻고 있다.
은미 내 애 떼라 그래요? 김회장님이?
남의사 (실소한다) 건강상태를 묻는데 그런 말을 하십니까? 내가 의사
지 무슨 백정입니까?
은미 건강해요. 나가주세요.
하경, 한심한 듯 나가려 하면.
은미 (명령조다) 선생님은 거기 계세요.
하경, 기막힌 표정으로 은미를 바라보면.
은미 (남의사에게) 선생님은 가시고 (하경에게) 선생님은 계세요.
남의사 (실소하고 나가면서 하경을 본다) 무슨 팔잡니까, 우리가...
남의사, 나간다.
은미 선생님은 여자니까 내 편이죠?
하경 편이요?
은미 나, 아이 낳을 거예요. 내 앤데 시댁 식구들 맘대로 애를 떼라
마라 그래도 되나요?
하경 성은미씨. 난 산부인과 의사 아닙니다. 수면장애가 있다 시기
에 신경외과에서 진료해보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사진엔 별 이상이 없으니까 저한테 더 이상 진료 받을 일은
없겠네요.
하경이 나가려 하면
이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청년.
놀라는 은미.
청녀 은미야.
은미 (소리친다) 뭐야? 저 사람 끌어내. 악.
청년 야 너, 그럴 수가 있어? 나한테?
은미 정신병자야, 저 사람. 얼른.
청년이 은미에게 다가서려 하면 하경이 청년을 제지한다.
청년 비켜. 나, 쟤랑 볼 일 있어.
하경 면회 사절이란 팻말 보셨을텐데요.
청년 비켜, 당신. 쟤, 내 여자야.
하경, 은미를 바라보고
은미, 다가오는 청년을 보며 얼굴이 하얗게 질려 바들바들 떤다.
하경, 청년의 옷을 있는 힘껏 잡고 문밖으로 밀어낸다.
$#19. 특실 밖, 복도
하경, 문을 막아서며.
하경 (어금니를 물며) 내 환자야, 건드리면 가만 안둬.
청년 (웃는다) 나참, 일 시끄러워지면 당신이 책임져야 돼.
나, 쟤랑 잠깐 대화만 좀 하면 돼. 쥐뿔도 모르면 가. 떠들어
봐야 김 회장만 손해니까...(유연하게 병실 안으로 들어가려 한
다)
하경 (손을 벌린다) 누가 손해를 보던 내 관심 밖이야. 난 이 문에
붙어 서서 한 발짝도 안 움직여.
청년 (은밀하게) 쟤 애, 내 애야.
니들이 내 애 떼려고 작당을 하는 거 다 알아.
친부 승인도 없이... 승질 같으면 병원 비리까지 다 폭로해버릴
거야. 알았으면 군말 말고 비켜.
하경 (단호하게) 날 죽여. 그러면 들어갈 수 있어.
청년 에이, 씨.
청년, 하경을 끌어내며 들어가려 하자
하경, 청년의 팔에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청년, 하경을 거칠게 바닥으로 밀어낸다.
바닥으로 넘어지는 하경.
잽싸게 손잡이를 잡는 청년의 얼굴 위로 날아오는 주먹.
넘어진 청년의 목덜미를 내리누르고 주먹을 쳐드는 현우의 분노 어린 모습.
하경, 현우를 바라본다.
현우 (하경은 보지도 않고 청년의 목덜미를 누른 채) 괜찮냐, 최하
경?
$#20. 응급실 병상
재봉이 커튼을 친 채 봉합세트를 들고 건달1의 머리를 꿰매고 있다.
건달1 (불쌍한 표정으로) 저 불구 됩니까, 선생님?
재봉 예?
건달1 (손으로 가랑이 사이 가리키며) 여기요, 여기 병신 된다면서?
나, 그럼 못 살아요. 내가 거두는 냄비들이 날 뭘로 보겠어?
재봉 냄비 장사하세요?
건달1 (성을 버럭 낸다) 씨, 기집애들. (애원조로) 난 도저히 그렇겐
못 살아. 어떻게 그냥 그렇게 살아? 내가 왜 사는데...
재봉 (근엄하게) 걱정 마십시오. 그래서 의사가 있는 거 아닙니까?
건달1 (화색이 돈다) 고칠 수 있어요?
재봉 이렇게까지 치료를 하는데 안 나으면 제 손에 장을 지집니다.
낫습니다. 그런 치료, 제 전문입니다.
건달1 (감격적으로) 고맙습니다, 선생님.
재봉 단
건달1 네?
재봉 무슨 업종에 종사하는 분인지 잘 모르지만 몸을 함부로 쓰진
마세요. 몸에 충격이 오면 재발 할 수도 있습니다.
건달1 (눈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당신, 나 놀리는 거 아니지?
(갑자기 고개를 든다) 아야.
재봉 (바늘을 들며 큰소리를 친다) 거 보세요, 몸 함부로 쓰지 말랬
잖아.
$#21. 과장실
현우와 하경이 앉아있고, 남준이 둘을 노려보고 있다.
남준 이게 병원이냐? 주먹이 날라다니는데? 것도 의사의 주먹이...
현우 죄송합니다, 과장님.
하경 과장님, 장 선생 잘못 아닙니다, 저 때문에...
남준 너한테 안 물었어. 장현우, 최하경 보호자야?
현우 ...
남준 허구한 날 싸움질 할 땐 언제고 같은 패거리가 됐냐?
하경 과장님. 병원 측에서 문책을 한다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남준 무슨 책임 질건대? 차라리, 최하경을 책임지는 게 낫겠다.
하경 (씨니컬하다) 과장님, 뭡니까? 신경외과 전문의가 임신한 연예
인한테 뭘하라는 겁니까? 내가 왜 그런 일에 관련이 돼야 합
니까?
남준 병원장님이 특별히 부탁하셨다.
하경 뭘, 특별히요. 원래는 애 떼려 왔는데 소문 날까봐 신경외과
전문의 붙이는 거요?
남준 ...(가만히 바라본다) 그래.
하경 ...
현우 ...
하경 (허탈한 듯) 시끄러워지면 안 되겠어요.
남준 그래.
현우 ...제가 가서 어떻게 해보겠습니다.
하경 장 선생은 빠져.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남준 그래라, 알아서들 해라.
남준, 침울한 모습으로 나간다.
$#22. 과장실 복도
하경과 현우가 과장실에서 나온다.
어색한 둘의 모습.
하경이 먼저 걸어간다.
현우 최하경, 내가 해결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하경 (뒤돌아 서며) 장현우 선생, 끼어들지마, 내 일에...
현우 (소리친다) 니 몸에 어떤 자식이 함부로 손대는 걸 그냥 보고
만 있니, 그럼?
하경 (멍하니 바라본다)...그래, 보고만 있어. 설령 내 목에 누가 송
곳을 들이밀더라도... 제발...
현우, 입을 굳게 닫으며 성난 뒷모습을 보이며 멀어져간다.
고개를 숙이는 하경.
하경 (혼잣말로) 이젠 벗어날 거다, 너한테서.
$#23. 엘리베이터 앞
성난 얼굴로 걸어가 엘리베이터 앞에서는 현우.
한 동안 멍하니 엘리베이터를 바라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의사들이 나온다.
생각에 잠겨 있다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불현듯 정신이 들어 엘리베이터 버튼을 급히 눌러보지만 문은 열리지 않는다.
그대로 난간에 서있다가 비상계단 입구로 걸어간다.
$#24. 복도
병원장실로 가는 길고 넓은 복도.
터벅터벅 걷고 있는 하경.
가는 걸음이 무겁다.
병원장실 문앞에 이르는 하경.
한숨을 쉬곤 손잡이를 잡는다.
$#25. 비상계단
수연이 사진 봉투를 들고 부지런히 계단을 오른다.
이때, 계단을 통통 튀어 내려오는 고무공.
수연, 의아한 듯 튀어 내려오는 공에 몸을 피한다.
공에 이어 들리는 빠른 발자국 소리.
그러다 계단을 구르는 누군가의 모습에 눈이 똥그래지는 수연.
수연의 몸으로 덮쳐지는 어린 소녀.
수연, 반사적으로 아이를 감싸 안으며 한 두 계단을 같이 구른다.
아이의 울음소리.
계단 위로는 봉투 속 사진들이 흩어져 내린다.
수연 아, 아퍼. (아이를 안으며) 아프지? (계속 울음을 터뜨리는 아
이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아프겠지, 언니도 이렇게 아픈데...
(우는 아이를 달래려는 듯 후레쉬를 아이의 눈으로 가져다 댄
다) 어디 보자. 동공상탠 이상 없고... (아이 신기한 듯 후레쉬
를 바라본다) 어디 (청진기를 아이의 가슴에 들이댄다. 울음이
잦아든다) 심박도 이상 없고... 너 꾀병이지?
아이 아퍼.
수연 어디?
아이 발.
이때, 비상계단 위쪽에서 현우가 얼핏 수연의 모습을 훔쳐본다.
수연 (다리를 만져보면 아이가 운다) 조심을 해야지. 그렇게 덜렁대
면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래? 이거 갖고 놀아. 울지
말고... (후레쉬를 쥐어주며 아이를 안으려 한다)
현우, 못 본 척 비상구를 연다.
수연E 선생님.
현우, 다시 수연을 바라보면 어느새 수연의 눈길이 현우를 향해있다.
수연 좀 도와주세요.
현우, 가만히 수연을 바라보다 아이에게 다가가 아이를 안으려 하면
수연 아니오. 얜 제가 데려갈게요. 바쁘시잖아요. 저것 좀.
바닥에 널린 필름을 가리키며
수연 (아이를 안고 비상계단 문을 연다) 저것 좀 저희 의국에 가져
다주세요, 선생님.
비상구 문만 열면 저희 의국인 거 아시죠? 고맙습니다, 선생
님.
그대로 사라지는 수연.
현우, 엉거주춤 서 있다가 어색하게 필름을 줍기 시작한다.
그러다 재미난 듯 웃음 짓는다.
현우 (비실비실 웃으며) 하, 나참.
$#26. 병원장 방 안
화를 내며 핀잔을 하는 병원장의 모습.
병원장의 모습.
병원장 내 입장을 생각해야잖아.
그거 연예인 출신 모 재벌 며느리가 불륜으로 임신까지 했다.
그것도 결혼한지 한달만에... 그렇게 떠들어 댈까봐 나한테 신
신당부를 했다고, 김 회장이.
믿을만한 사람, 나밖에 없으니까 일부러 우리 병원 잡은 거고..
근데 딴 사람도 아니고 의사들 땜에 소문나게 생겼으니...
알잖아, 김 회장이 우리 병원 후원하는 거... 후원금 중단되면
어떡할래? (소리친다) 어떡할 거냐고?
이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하경.
놀란 듯 바라본다.
남준 (고개를 숙인 채) 죄송합니다, 병원장님.
하경 과장님.
남준 (문득 하경을 본다) 넌 여기 왜 와?
병원장 뭐야? 저 선생이야?
남준 아닙니다, 저 선생은... (하경에게) 나가.
하경 과장님.
남준 임마, 알어. (병원장에게) 수술 스케줄 때문에 그럽니다. (하경
에게) 니가 알아서 잡어. 나가.
하경, 가만히 바라보다 문을 닫고 나간다.
병원장 그 놈 입 못 막으면 그 두 의사도 우리 병원 끝일 줄 알어.
남준 두 의사가 끝이면 저도 끝입니다.
병원장 협박 해?
남준 협박이 됐으면 좋지요, 병원장님.
제가 알아서 할 테니 두 의사는 병원장님 뇌리에서 완전히 지
워주세요.
병원장 어떻게 할 건데?
남준 모르죠, 나도. 어떡할지는... 찬찬히 생각해 봐야죠.
남준, 일어선다.
나가다 말고 병원장에게
남준 병원장님. 우리가 의사 맞습니까?
병원장 뜬금없이 뭔 소리야? 의사말고 부업하는 거 있어?
남준 있죠. 특실 위안부.
남준이 나간다.
$#27. 복도
터덜터덜 걸어가는 남준.
어느 새 남준의 옆을 따라걷는 하경.
남준 왜, 임마?
하경 ...
남준 ...실망스럽냐, NS과장이란 작자가?
하경 과장님.
남준 억지로 일을 시킨 내가 잘못이지. 야, 하경아.
하경 네.
남준 실은 특실 내가 맡아야 되는 거였어. 근데, 죽어도 가기 싫더
라. 너한테 떠넘긴 거야, 임마. 잔머리 굴리다 낭패 봤다. 넌
빠져라. 특실은 이제 내가 맡을테니까, 각본대로...
하경 싫어요. 전 철학이 있는 의사잖아요. 한번 맡은 일은 끝장을
본다.
남준 끝? 너 어디까지 가고 싶은데?
하경 가봐야 알죠.
남준 너, 내가 불쌍해 뵈냐?
하경 불쌍하죠, 나나 장현우 데리고 매일 팔자 드럽게 풀리셨잖아
요...
남준 알긴 아냐? 가, 임마.
어느새 남준이 과장실 앞에 선다.
남준이 과장실로 들어가려 하면 하경이 따라 들어가려 한다.
남준 왜 들어와, 여긴?
하경 안마해드릴려구요.
남준 가지가지로 논다.
$#28. 신경내과 의국
현우가 필름봉투를 들고 들어와 선다.
아무도 없다.
이리저리 책상을 찾다가 꽃이 꽂혀진 천사컵을 바라본다.
천사가슴에 붙은 한수연이란 이름표.
그 위 벽쪽에 붙은 수연의 신환 히스토리.
거기엔 환자의 성격이나 취미까지 정성스레 메모되어 있다.
이때, 의국으로 들어오는 상희.
상희.
현우, 놀란 듯 상희를 바라본다.
상희 (긴장하며) 선생님, 왠일로? 저희 과에 무슨 문제라도...
현우, 엉거주춤 사진 봉투를 상희에게 내민다.
상희, 얼결에 봉투를 받으면
현우, 괜시리 인상을 쓰며 나간다.
$#29. 복도
현우가 걸어가면 멀리서 수연이 보곤 달려온다.
수연 선생님.
현우 (퉁명스레) 사진, 치프 선생줬어.
수연 고맙습니다, 선생님. 허구헌날, 사람들한테 도움이나 받고... 선
생님, 별 일을 다 하셨죠?
현우 (역시나 퉁명) 그럴만 할 땐 도움을 받는 게 옳은 일이다.
현우, 그대로 가버린다.
수연 (웃으며 큰 소리로) 고맙습니다, 선생님. 저 심부름 시킬 일 있
으면 부르세요.
수연을 뒤로 하곤 남 모르게 웃음 짓는 현우.
$#30. 의국
재봉이 소파에 쓰러져 잠을 자고 있다.
울리는 삐삐.
재봉 (침을 닦으며 삐삐를 본다) 어디서 찾는 거야...
(부시시 전화를 한다) 여보세요. 신경외과 허재봉... (눈을 번쩍
뜬다) 날 왜 찾어? 나, 무지 바뻐. 없다 그래. 응? 바꾸지 마...
(혼잣말로) 끊어버릴까?... 아니오,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순영
씨. 저요, 지금 응급처치 중이라... 에? 작별인사? (기쁨에 몸서
리를 친다) 그럼요, 순영씨. 제가 누굽니까? (원맨쇼) 야, 인턴.
니가 알아서 응급처치 해. 나, 중요한 분 만나러 갔다 올게.
(순영에게) 당장 갈게요, 순영씨. 나, 너무 기뻐요.
재봉, 전화 끊고 좋아서 미치겠다.
재봉 세상에... 세상에... 너무 좋아, 너무 좋아.
재봉, 허둥거리며 방을 나선다.
$#31. 폐쇄병동 앞
병동 문이 덜컹하고 열리고 순영이 문을 나선다.
환자복을 벗은 사복 차림 재봉이 허둥대며 올라온다.
재봉 (순영을 보자마자 와락 포옹을 하곤 물러서며) 증말 잘됐다,
순영씨. 다신 오지마, 이런데. 응? 그럼 안녕.
순영 자기야. 내가 그렇게 좋으니? 핑계김에 포옹까지 하고...
재봉 그럼. 나간다니 섭섭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데서 썩을 사람이
아니지 자긴...
그리고 혹시 재발되더라도 이 병원은 오지마.
여기 정신과 애들 내가 알잖아. 죄 맛간 것들이야, 알았지?
딴 병원 가기다.
순영 그래도 자기 보단 나아. (가발을 벗으려 한다) 이렇겐 안 만들
었잖아, 걔들은...
재봉 에이, 재발을 왜 해? 안 올 거야, 그지?
그럼 마지막으로 악수나 하고 헤어지자.
(순영의 손을 잡고 흔들곤 손을 빼려 하나 순영의 손아귀에
붙들려 있다)
순영 (재봉의 손을 계속 잡은 채) 그냥 가게? 그럼 나, 삐질걸?
재봉 그럼? 아, 포옹 한판 더 해줄까?
순영 그래. 거기다가 맥주 한잔만 하자.
재봉 나, 근무중이야.
순영 나, 삐질라 그런다. 가발 벗어?
재봉 (손목시계를 보며) 에이. 마지막인데.... 내가 뭘 못해. 가자.
(순영의 팔짱을 낀다) 무지무지 좋다, 응.
$#32. 의국
인찬이 옷을 갈아입는다.
이때 들어오는 수연.
둘, 화들짝 놀라 수연이 돌아선다.
인찬 (부랴부랴 옷을 입곤) 됐어요, 수연씨.
수연 (돌아서며) 미안해요, 선새님. 노크도 안 하고...
인찬 괜찮아요. (수연이 들고 선 필름보며) 컨설태 환자 땜에요?
수연 아, 네. 이거.
인찬 (필름을 들어보며) 출혈은 없네. Angio 안했죠?
수연 네.
인찬 알았어요, 수연씨.
수연 이젠 치프 선생님말고 선생님한테 직접 와야겠어요. 고맙습니
다.
수연이 인사를 하고 가려 할 때
인찬 저, 수연씨.
수연 네?
인찬 박 선생님한테 얘길 들었는데요. 뭔가 오해가 있었던 거...
수연 아, 선생님. 저도 얘기 들었어요. 박선생님한테...
전 선생님한테 CPR받은 줄 알았어요.
누구한테 받으면 어때요, 뭐?
오해였지만 그 때문에 선생님하고 친해졌잖아요.
인찬 그러네요.
수연 어쨋든 여러모로 고마워요, 선생님. (나가려다 말고) 근데요,
선생님.
인찬 네.
수연 참 이상한 건요. 장현우 선생님인 줄 몰랐잖아요, 저. 근데요.
이상한 건 그 선생님을 처음 볼 때부터 낯설지가 않았어요. 이
상하게요...
나, 그 선생님 되게 싫었거든요. 근데도 이상하게 싫지 않은
거 같고... 아마 직감적으로 그 선생님인 거 알았나봐요.
어머, 나 왜 이러구 있나? 저 갈게요, 선생님.
인찬 수연씨.
수연 (가려다) 저 바빠요, 선생님.
인찬 직감적으로 내가 수연씨 좋아하는 건 알아요?
당황스런 수연의 모습.
고개를 돌리는 인찬의 모습.
$#33. 스탭 의국
전화를 하고 있는 준서의 모습.
준서 ...아니요, 아직
변호사E 시간이 없습니다, 선생님. 그렇게 마냥 한가하진 않아요. 도와
줄 의사 친구 한 분 없습니까?
낭패네. 하긴 의사양반들 워낙 제 몸들 사리니까...
하여간 기다리겠습니다. 빨리 연락 주세요.
준서 예...
준서가 채 대답도 하기 전에 끊어지는 상대편의 전화.
준서, 수화기를 내린다.
담배를 피워무는 준서.
하경E 질식을 하겠네. 담배 좀 작작 펴.
언제 들어왔는지 하경이 문 앞에 섰다.
하경 니 얼굴에 고뇌의 흔적이 있다.
준서 (픽 웃으며) 잔소리꾼 나타나셨네.
하경 니 와이프가 또 너 잡아먹을라 그러니?
준서 너야 말로 내 마누라 흉 좀 보지마라.
하경 집에 들어가. 그럼 안 그러잖아, 내가.
준서 아휴 됐어. 집안일까지 신경쓰지 말자. 스컬에 쥐난다.
하경 ...야... 현우한텐 얘기해봤어?
준서 됐다니까.
하경 답답하네, 증말. 얘기해.
왜 못해, 친군데.
너, 왜 걔 앞에선 그렇게 쪼그라드냐?
준서 (소리를 빽 지른다) 아이씨, 고만 좀 해.
준서가 일어서서 상의를 걸치고 나간다.
하경 야, 너 어디 가?
준서 어딜 가든. (돌아보며) 최하경. 니가 생각하듯이 내가 현우한테
무슨 콤플렉스나 그런 거 느끼는 거 아니다. 내가 현우를 대하
기가 힘든 건 다 너와 연관돼서야, 알아?
너 땜에... 무슨 일이든 현우와 관계되면 니가 걸려.
현우랑 있을 땐 중간에 니가 끼여있는 거 같고, 너와 있을 땐
그 사이에 현우가 끼여있는 거 같고...
(목소리가 잦아든다) 그래.
준서, 나간다.
하경, 이내 눈을 내리깐다.
$#34. 호프 앞
병원 건물이 보이는 호프
순영이 맥주집에서 나온다.
재봉이 지갑을 집어넣으며 밖으로 나온다.
재봉 아주 뽕을 뽑는구만. 맥주 한컵 먹으면서 통닭 한 마리에 골뱅
이 거기다 국수사리까지 추가로 시켜먹냐?
영 자기도 거기 갖혀 살아봐. 안 먹던 거 보는 순간 눈알이 뒤집
히지.
재봉 알았어요. 마지막인데, 뭐. 나, 이제 들어가 봐야 되니까 이젠
정말로 안녕.
순영 안녕, 자기.
재봉, 바삐 걸어간다.
비실비실 웃으며 걷다가 뒤를 돌아보면 순영이 없다.
재봉, 의아한 듯 거리를 살피다 다시 걸어가면 어느새 순영이 재봉 옆에서 걷는
다.
웃어보이는 순영
재봉 어? 차비 없어요?
순영 걸어가면 돼.
재봉 집이 어딘대?
순영 저기...(병원 건물 가리킨다)
재봉 (혼잣말로) 아직도 얘가 제 정신이 아니야. (소리친다) 퇴원했
잖아.
순영 폐쇄병동에서 퇴원했다 이거지. 이젠 일반 병동으로 옮겼어.
자기야, 앞으론 더 자주 보겠다, 응. (재봉 어깨에 팔을 두르
며) 자기도 신나지?
재보, 울상이 된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심호흡을 한다.
그러다 순영의 어깨를 붙들고 울음을 터뜨린다.
$#35. 스탭 의국
인찬이 현우에게 건네주는 필름.
인찬, 형광판을 켜면.
현우 됐어. (슬쩍 사진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출혈은 없으니까
Angio 찍어서 가지고 와라.
인찬 선생님, 제대로 보지도 않으시고...
현우 아까 봤어.
인찬 지금 가지고 온 컨설트 환자 사진을 아까 보셨다니요.
현우 (냉소한다) 그런 거 다 너한테 보고해야 되냐? 신경내과 환자,
사진 아니야? 한수연이 들고 다니던 거.
인찬 ...
현우 (물끄러미 서있는 인찬을 바라본다) 뭐해? 안가?
인찬 (계속 현우를 바라보며) 선생님.
현우 왜?
인찬 선생님. 한 선생님, 순수한 사람입니다.
현우 ...
인찬 혹시라도 선생님 때문에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합니다.
인찬이 필름을 챙겨 나간다.
현우 (한숨을 쉰다) 긴장의 연속이구만.
이때, 전화벨
$#36. 상구의 입원실 안
상구가 구토증세를 보인다.
순덕이 상구를 간호한다.
이때, 급히 들어오는 현우.
현우 (상구를 물끄러미 보다가) 진통제 드릴까요?
상구 (힘없이) 선생님, 까놓고 얘기 합시다. 나, 몇시간 살면 끝날
인생 아니오?
현우 담배 태시고 싶으십니까?
상구 그건 이미 했잖아요.
현우 뭐가 하고 싶으세요?
상구 고마워요. 우리 술 한잔 합시다.
순덕 윤상구씨. (현우 보며) 선생님, 그건 안돼요. 더 이상 못 봐 드
려요.
$#37. 간호사 스테이션
상도가 검은 비닐 봉지를 들고 간호사 스테이션을 기웃댄다.
간호사 하나가 상도를 보며
간호사 뭐요, 선생님.
상도 아니요. 언니는 언니 일 봐. (휴게실 쪽으로 고개를 내민다. 은
주가 손거울을 보며 미모를 감상하고 있다) 언니.
은주 (문득 고개를 돌리며) 어머, 선생님. 또 제가 뭐 잘못했나요?
상도 아니야. 저기... 아니, 내가 글로 갈게.
간호사들 몰래 휴게실로 간다.
상도 왜 이렇게 말랐냐. 순덕 아줌마가 못 살게 굴지.
은주 원래 그렇잖아요, 아줌마들. 잔소리가 심해서 그렇지 뭐, 대충
은 괜찮은 편이에요. 그리고 어린 내가 참아야죠.
상도 언니, 떡볶기 좋아해?
은주 그럼요. 그러고보니 냄새가 나네.
상도 (비닐 봉지를 펼치면 떡볶기다) 먹어.
은주 어머, 어머. 맛있겠다. (한점을 먹으며) 선생님.
상도 응?
은주 근데 순대는 없어요?
상도 그 얼굴에 순대도 먹어?
은주 난 내장 종류는 다 뒤집어져요. 순대도 사오지.
근데, 이걸 왜 나 혼자 몰래 먹지? (큰소리로) 언니들, 떡볶기
먹어.
상도 쟤들은 뚱뚱해서 이런 거 먹으면 안돼...
간호사1 그러니까 그 만큼 보충을 해줘야지.
간호사2 야, 누구 코에 붙이냐, 요걸.
은주 (상도에게) 선생님, 다음엔 좀 많이 사오세요. 모자라긴 하다.
이때, 휴게실로 들어서는 순덕.
순덕 뭐야, 스테이션 안 지키고 뭣들 해? (상도 보며) 선생님은 또
무슨 시비를 걸러 오셨어?
은주 선생님 이거 사오셨어요.
순덕 얼씨구.
상도 아, 나. 인찬이 어딨지? (큰소리로) 권인찬.
상도가 나가면
순덕 NS 선생들은 애나 어른이나 싸이코야...
야, 맛있니?
은주 네.
순덕 (끼여든다) 젓가락 좀 줘봐. (한점을 먹으며) 순대 없어?
은주 (먹다말고) 선생님.
순덕 왜?
은주 제 동물적인 감각에 의하면요.
순덕 뭐?
은주 저 선생님, 나 좋아하나 봐요.
순덕 만일 그렇다면 니 팔자도 오지게 사나운 거다.
$#38. 상구의 병실
상구와 현우가 소파에 앉아 술 한잔을 들고 있다.
상구, 살짝 술을 들이키다 인상을 쓴다.
그리곤 잔을 탁자에 내려놓는다.
현우 못 드시겠죠?
그럴 줄 알았습니다. 드시고 싶어도 넘어가질 않습니다. 그 상
태론...
상구 나, 원래 술 못해요.
현우 (웃는다) 술맛도 모르는 분이 이게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까?
상구 하고 싶었지. 남들 다 하는 거. 난 못 해본 게 많거든요. 구두
쇠 노릇 하느라... 돈 아까와 술 안 배웠어요.
현우 술맛이 어떻습니까.
상구 쓰지. 내 인생 말년이 바로 이 맛이네. 장 선생이라 그랬나요?
현우 네.
상구 사람들은 죽어 가는 나한테 바라는 게 많아요. 재산이 좀 있거
든. 장 선생은 뭘 바라나요 나한테.
현우 선생님한테 뭘 바라겠습니까, 제가.
상구 생각해보면 있을 거요. 뭐요?
현우 ...선생님, 몸이요.
상구 ...(현우를 가만히 바라본다) 몸이면... 장기?
현우 (술을 들이킨다) 네.
상구 (씁쓸히 웃는다) 다 제 나름의 욕심이 있지. 우리 마누라가 나
한테 바라는 건 재산이고 장 선생이 나한테 바라는 건 몸이
고... 의도야 천지 차이지.
헌데 그건 다 자기 처지에서 갖는 욕심 아니오?
다를 바가 없지 않겠어요?
장 선생, 우리 집사람 말이오. 그런 식으로 대하지 말아줘요.
냉냉하두만, 아까 보니까.
내 구두쇠 짓 할 때 그 사람은 어떻게 살았겠소?
그러니 내가 죽는 마당에 원하는 바가 없겠소?
어떤 사람들은 죽는 마당에 좋은 일 한다고 전 재산을 기부하
기도 하고 그럴거요. 하지만 난 몽땅 우리 마누라 줄 거요. 원
하는 대로...
현우 ...
상구 내가 얼마나 고약했는지 모를 겁니다.
집사람 나 때문에 살기가 여간 고된 게 아니었을 거요. 저이가
나타나고 나서야 그걸 알게 됐지요.
현우 누구 말입니까?
상구 저이 말이요. 저승사자.
상구와 현우, 아무 말도 없이 빈 술잔을 만지작 댄다.
$#39. 의국
불꺼진 의국.
현우가 힘없이 의국 안으로 들어선다.
불을 켜는 현우.
책상 한켠에 하경이 앉아있다.
하경, 고개를 들어 현우를 바라본다.
현우, 본 척도 않고 옷을 갈아입는다.
하경 현우야, 나 너 기다렸어.
현우 (슬쩍 돌아본다)
하경 부탁 하나만 하자.
현우 ...
하경 (다짜고짜) 너, 준서 참고인 좀 해줘라.
현우, 망연히 하경을 바라보다 그냥 나가려 한다.
하경 ...준서, 니 친구잖아. 왜 그렇게 모른 척 하니, 준서 문제?
현우 (하경 앞에 다가와 선다) 최 선생, 그건 준서 문제야.
준서가 해결해야 될 준서 문제.
진단에서부터 수술, 치료까지 모두 하준서 몫이었어.
그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고 없었을 수도 있다.
헌데 난 거기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그건 준서 자신만이 아는 문제고 그래서 준서 스스로 끝까지
해결해 나가길 바랄 뿐이다. 이상이다.
현우, 의국 문 앞에 선다.
하경 ...너, 말이다... 왜 준서를 그렇게 무시하니?
현우 (가만히 바라보다) 너, 말이다. 준서 엄마냐? 아예 준서 장래까
지 책임진다고 나설 판이다, 너.
하경 못 할 것도 없지.
그렇구나, 준서와 나의 장래.
생각해봐야겠다.
현우, 책상 위에 주먹을 내리친다.
깨지는 유리판.
똥그랗게 눈을 뜨는 하경
현우의 주먹에 흐르는 핏줄기.
현우 (조용히) 책임을 지든 말든 나한테 보고할 거 없다.
현우가 나간다.
하경, 망연히 현우를 바라보다 책상 위에 조용히 엎드린다.
굳은 듯 엎어져 있는 하경.
$#40. 로비
현우,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면 수연이 현우를 본다.
현우의 손에 흐르는 피를 보며 놀란다.
현우에게 달려가는 수연.
수연 선생님.
현우, 흘깃 보곤 본척 만척 가려는데 수연이 바삐 달려와 현우의 손을 덥석 잡
는다.
화난 얼굴로 손을 뿌리치는 현우.
수연 선생님. 저, 의사잖아요. 상처를 치료해주는...
(현우를 바라본다)
현우, 수연의 강단어린 모습을 바라보다 손을 내준다.
수연, 현우의 손을 잡으며 웃는다.
마주보는 둘의 모습.
포즈.
제 5 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