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다행이다
글 : 조창완
사십 몇 년 전 사춘기 고등학생이던 시절,
아버님은 돌아가시기 몇 달 전에 당신이 먼저 영세를 받으신 후
온 집안 식구들을 천주교에 입교시켰다.
천만다행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는 기도문을 외우면서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개신교 교인이 되지 않고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천주교 신자가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어머님은 집안에 우환이 있으면 뒤뜰 후미진 곳 장독대 근처에
정화수를 떠 놓고 두 손 모아 빌던 분이셨고,
삼신할미며 조왕신이며 온갖 잡신을 모시고 섬기던 우리네 앞 세대의
전형적인 여인이셨는데 아버님의 뜻에 군말 없이 따랐다.
이 또한 천만다행이 아닌가?
아내는 골수 유교 집안에서 태어나 서예가인 아버님과
사대봉사(四代奉祀)를 군말 없이 모시던 어머님 밑에서 성장하였으나
홀로 영세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었으니 천만다행이고,
결혼한 후에는 자식과 이웃을 위하여 신앙생활에
더없는 모범을 보이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천만다행이 없다.
나는 본디 나태하고 유혹에 빠지기 잘 하는 성품으로
신심이 얕고 인간적 약점 투성이인데 한번도 신앙에 대한
후회나 불만은 가져본 적이 없으니 그 점만은 천만다행이다.
이십오년 전 간염으로 심하게 앓아 직장을 쉬고 요양하면서도
온 집안이 오로지 천주교 신앙에만 의지하고 기도와 섭생,
현대의학의 합리적 치유에만 매달려 회복되었으니 천만다행이고,
육년 전 간암 진단을 받고 수술 받으면서 조금도 두렵지 않고
오히려 담담하고 맑은 심정으로 하느님을 대면하였으니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없지 않겠는가.
천만다행 중의 천만다행이다. 그 다음해,
재발된 것 같으니 간동맥색전술을 하자고 하여 수술실에 들어가려다가
진단방사선과 검사실에서 필름상으로는 비슷하게 보이지만
재발된 것은 아니라고 하여 한숨을 쉬며 집으로 돌아갔으니
이게 보통 일인가? 천만다행, 만만다행 아닌가?
보잘 것 없는 글 솜씨로 시인이 되어 타인의 심금을 울리는 작품을
변변히 발표한 것도 없는 터에 가끔씩 과분한 상을 받기도 하였고,
몇 년 전에는 한국가톨릭문학상까지 받았으니
이는 ‘천만다행’이 아니라 ‘천만 송구’라 해야 할 터이고,
새로운 경험과 여행을 즐기는 기질에 어울리게
세계의 많은 곳을 다녀볼 기회가 있었으니 천만다행이고,
번번이 객지에서 큰 사고 없이 무사 귀환한 것도 천만다행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크게 부끄러운 일 저지른 것 없고,
크게 잘난 척 하지도 않으면서 크게 무시당하거나
모욕당한 일 없이 평온한 삶 누리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한 천만다행이 있겠는가?
인간이 용렬하고 통이 좁지만,
내 그릇이 거기까지라는 걸 알고
다른 욕심 내지 않고 살았으니 천만다행이고
간혹 유혹에 빠지더라도 안 보이는 기도의 힘 덕분인지
오래 머물지 않고 불완전한 악을 뿌리쳤으니 천만다행이다.
염치가 조금은 남아 있어 내 삶이 아름다운 것은 알고
고마운 줄도 아니 천만다행이고,
이 아름다움을 ‘은총’이라고 부른다는 것까지 아니 만만다행이다.
‘은총’은 ‘신비’에서 오고
‘신비’는 ‘하느님’께 속한 것도 아니 천만다행이고,
하늘 아래 나 같은 존재가 숨 쉬고 있음이
천만다행이 되도록 배려하신 분이 계시니 아찔하고 또 숨 막히다
-의정부 교구 주보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