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 · 돌 따위를 갈고 깎는 것과 같이 학문 · 덕행을 닦음’을
‘절차탁마(切磋琢磨)’라고 한다는 것이 사전의 풀이입니다.
이 말은 본래 시경(詩經)에 나오는 말로
‘如切如磋如琢如磨(여절여차여탁여마: 자른 듯, 다듬은 듯, 쫀 듯, 간 듯)를 줄인 것으로
‘무엇인가를 정성이 담긴 솜씨로 잘 다듬어 흠잡을 데가 없는 것’을 이르는데
대학(大學)에서도 인용되었고,
이후 여러 글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오늘날은 ‘오랜 세월에 걸쳐 깎고 다듬어 경지에 이른 것’을 뜻하는 말로 종종 쓰입니다.
이 말은 또, 도올 김용옥 선생이 쓴 책의 제목으로
‘절차탁마대기만성’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기는 했는데
그리 오래 된 것도 아닌데, 내용은 하나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사람의 한 삶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 사람이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또한 무엇을 말하는지를
간략하게 보여주는 훌륭한 화두이기도 한 이 말은
어떤 재료를 그 자리에서 가지고 와서
다듬고 쪼아내고 갈아서 마침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는 것처럼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도 그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통과 즐거움, 그리고 보람이 한 데 어우러지는 이 지난(至難)한 작업을 포기했을 때
그를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런데 그런 절차탁마의 과정 없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에 천착할 때
인간미를 찾을 수 없게 되는 삭막 · 황량한 삶이 될 수밖에 없음,
그렇기 때문에 그런 갖가지 조건을 갖춘 사람들이
본리 인간이 지향해야 할 일은 아예 놓쳐버리고
그것들을 과시하는 것으로 삶의 재미를 삼는 천박한 모습들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라는 것도
이 낱말로부터 유추해서 살펴볼 수 있는 계기도 된다는 것,
갯가의 자갈들을 볼 때
깨지고 깎이고 쓸린 다음에 생긴 모양의 아름다움이 거기 있다는 사실,
단단한 것들이 그렇게 부드러움을 갖추기까지의 과정이 어떠했는지를
거기서 누구라도 볼 수 있는데
오늘 아름다움의 뒤에 무엇이 있었는지도
이 낱말로부터 헤아릴 수 있음,
아픔을 담지 않은 것에 무슨 아름다움이 있겠는가,
그렇게 깎이고 쓸리는 아픔을 기쁨으로 승화시키지 못한 것에
또한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를 다시 살피며
내 굳이 아름다워지고 싶지는 않지만
아픔이라 하더라도 두 손 모으고 수용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새롭게 하게 하는
좋은 스승을 만났다는 즐거움으로 오늘 하루를 시작합니다.
날마다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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