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구기동, 북한산 승가사,
사모바위, 1.21바위를 다녀와서!
구기동 [Gugi-dong, 舊基洞]
동쪽으로는 평창동(平倉洞), 남쪽으로는 홍지동(弘智洞)·
부암동(付岩洞), 서쪽으로는 서대문구 홍제동(弘濟洞)과
접해 있다. 조선시대 영조 때까지 한성부 북부 의통방(義通坊)
경리청계(經理廳契)에, 1867년(고종 4)에는 상평방(常平坊)
경리청계(經理廳契)에 속하였으며, 1894년 갑오개혁 당시
행정구역 개편 때는 구기동, 응암동(鷹岩洞),
옥정평(玉亭坪)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경성부 은평면(恩平面) 구기동·
응암동·옥정평은 경기도 고양군(高陽郡) 은평면(恩平面) 구기리
가 되었다가 1949년 8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 편입되면서
서대문구 은평출장소 관할이 되었다. 1950년 구기리는 구기동
으로 변경되었으며, 1965년 5월 서대문구 구기동이 되었다가
1975년 10월 구(區) 관할 변경으로 종로구 구기동이 되었다.
법정동인 구기동은 행정동인 평창동(平倉洞) 관할하에 있다.
너비 25~30m, 길이 4,900m의 진흥로가 지나며, 가는굴,
먹정굴, 문수동, 매박골, 독박골, 구텃골 등의 자연마을이 있었다.
가는굴은 가늘고 긴 골짜기가, 매박골은 매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는 데 명칭이 연유한다.
사찰로는 문수사, 승가사 등이 있다. 문수사는 고려시대 1109년
(예종 4)에 탄연(坦然)이 창건하였으며 1451년(문종 1)에 연창
공주가 중건하였는데, 6·25전쟁 당시 소실되었다가 1957년에 중건
되었다. 승가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로 756년(경덕왕 15)
에 계태(季台)가 창건하였으며 조선 초기의 승려 함허(涵虛)가 수도
한 곳으로 유명하다. 문화재로는 북한산 구기리 마애석가여래좌상
(보물 215), 승가사 석조승가대사상(보물 1000),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유지(사적 228) 등이 있다.
출처:(두산백과)
▼구기동 마애석가여래좌상승가사 뒤 108계단을 오르면
만나는 거대한 마애불로 근엄하고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북한산진흥왕순수비
본래의 구기동 북한산 비봉 터엔 표지석을 세웠답니다.
승가사(僧伽寺)
서울특별시 종로구 구기동북한산에 있는 절.
내용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이다. 756년
(경덕왕 15)에 수태(秀台)가 창건하여 당나라 고종 때 장안 천복사
(薦福寺)에서 대중을 교화하면서 생불(生佛)로 지칭되었던 승가
(僧伽)를 사모하는 뜻에서 승가사라 하였다. 그 뒤 1024년(현종 15)
에 지광(智光)과 성언(成彦)이 중창하였고, 1090년(선종 7)에는
구산사(龜山寺)의 주지였던 영현(領賢)이 중수하였으며, 1099년
(숙종 4)에는 대각국사(大覺國師)의천(義天)이 왕과 왕비를 모시고
참배하면서 불상을 개금(改金)하고 불당을 중수하였다.
1422년(세종 4)에 왕이 7종을 통합하여 선교양종(禪敎兩宗)을 통합
할 때는 선종에 속하였으며, 그 뒤 여러 차례의 중건·중수를 거쳐 고종
때 민비와 엄상궁의 시주를 얻어 일신, 중건하였다. 1941년에 도공
(道空)이 다시 중수하였으나, 6·25전쟁 당시 소실되었으며, 1957년
에 비구니 도명(道明)이 중창하여 대웅전과 영산전(靈山殿)·약사전
(藥師殿) 등의 당우를 갖추었다. 그 뒤를 이어 비구니 상륜(相侖)이
불사(佛事)를 계속하여 현재는 산신각(山神閣)·향로각(香爐閣)·
동정각(動靜閣)·범종각(梵鐘閣)·대방(大房)·요사채 등의 당우들이
좁고 가파른 지형을 이용하여 알맞게 배열되어 있다. 비록 규모는
작으나 창건 이후 여러 왕들이 행차하여 기도하였고, 조선 초기의
고승 함허(涵虛)가 수도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조선 후기에는 성월
(城月)이 이절에서 배출되어 팔도도승통(八道都僧統)의 직책을 맡아
쇠잔하던 불교를 크게 진작하는 등 불교사상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사찰이다. 또한 예로부터 기도처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절의 유물로는 보물 제1000호로 지정된 석조승가대사상이 있으며,
서북방 100m 지점에는 보물 제215호로 지정된 거대한 마애석가
여래좌상이 부각되어 있다. 이 마애불과 약사전에 모신 약사여래의 영험,
그리고 약수의 효험 등은 이 절을 기도처로서 유명하게 만들었다. 절의
뒤편 비봉에는 진흥왕순수비(眞興王巡狩碑)가 있었는데 국립중앙박물관
으로 옮겨졌고, 그 자리에는 유지비(遺址碑)가 세워져 있다.
참고문헌
『한국사찰전서』(권상로 편,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문화유적총람』(문화재관리국, 1977)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북한산 사모바위(北漢山紗帽巖)
[Bukhansan Samobawi]
승가사(僧伽寺) 뒷편 높이 약 540m에 위치해 있다. 바위의 모습이
조선시대 관리들이 머리에 쓰던 사모(紗帽)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1968년 1·21사태 당시 김신조 일행이 바위 아래 숨어 있었다고
해서 김신조바위라고도 불린다.
서울의 부르스 / 권윤경 노래
명동을 갈까 강남을 갈까 발길이 떨어지질 않아
빗속을 혼자 혼자 거닐며 추억에 젖어 드네
포장마차 한 구석에 나홀로 않아 술잔을 기울이며
오늘도 우네 오늘도 울어 서울의 부르스여
2.
이리로 갈까 저리로 갈까 마음이 내키질 않아
빗속을 혼자 혼자 거닐며 눈물에 젖어 보네
스텐드에 아가씨와 단둘이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오늘도 우네 오늘도 울어 서울의 부르스여
3.
울어야 하나 웃어야 하나 차라리 잊어버릴 걸
내 마음 내 꿈 어쩔줄 몰라 빗속을 헤메이네
헝크러진 머리처럼 지친 내 가슴 술잔에 고인 눈물
그대는 몰라 그대는 몰라 서울의 부르스여
2019-02-25 작성자 청해명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