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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국의 고기요리를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한국의 경우 고기를 식육하기 시작한 것은 한국 민족의 형성 초기에 해당하는 수렵채집 경제시대이며, 이때는 원시적 방법으로 쉽게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 조개류였습니다. 그래서 현재 그들의 생활유적지인 김해·웅기(雄基) ·북청(北靑) 등지에서 조개더미[貝塚]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바닷가에서 조개류를 잡아 식용으로 하였을 뿐 아니라 산간임야에서는 사슴·멧돼지·토끼 같은 야수류(野獸類)를 잡아 식용으로 하였습니다. 김해 조개무덤에서는 조개껍데기와 함께 많은 짐승의 뼈가 발견되었고, 이와 함께 수렵용구로 짐작할 수 있는 돌로 만든 창과 돌로 만든 도끼 등도 발굴되었습니다. 그 중 뼈를 감정한 결과 대부분이 사슴 ·멧돼지 ·소 ·말 등의 뼈였습니다. 최남선(崔南善)이 저술한 《고사통(故事通)》에 의하면, 중국 한(漢)나라 때 한국 북서쪽의 유목민족과 북동쪽의 부여족으로부터 고기찜과 고기구이가 전래되어 잔칫상에 올랐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당(唐)나라 문헌에도 같은 내용의 사실이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한국에서는 일찍부터 고기 요리법이 발달되어 요리 방법도 다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농경사회에 대한 기록을 보면, 상고시대부터 식용하던 사슴과 멧돼지와 함께 이미 원시 농경시대에 가축으로 소와 말을 길렀으며, 신라의 귀족계급은 섬에 목장을 소유하였고, 고구려는 매년 봄과 가을에 국왕의 참석하에 경렵대회(競獵大會)를 하였다고 한 것으로 보아 야수조류와 소 ·닭 등이 식용에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불교가 전례됨에 따라 다른 여러 가지 면에서는 많은 발전을 보였으나 육식에 있어서는 한때 퇴보한 감이 있습니다.《고려사(高麗史)》 <지 권39, 형법 2(志卷三九刑法二)>에는 충숙왕(忠肅王) 12년 금령(禁令)을 내려 “이제부터는 닭 ·돼지 ·오리를 길러 제상에 놓거나, 소와 말을 도살하는 자는 과죄한다”고 하였고, 여러 왕들이 육식을 금하는 영을 내렸습니다.《고려도경(高麗圖經)》에도 부처님을 숭상하기 때문에 도살을 꺼려하고, 국왕이나 상신(相臣)이 아니면 양과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사신이 올 때면 미리 비축해 두었다가 쓴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풍조는 고려가 숭불사상(崇佛思想)을 국가의 근본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대를 조금 지나 중국 원나라의 기록을 보면, 고려의 고기요리를 칭찬하고, 당시 중국의 고기요리는 고려인이 담당하고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고기요리가 왕공(王公)귀족 간에만 허용되고 일반 서민층에서는 매우 귀한 식품이어서 그 요리법도 널리 보급되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되어 있는 수조육류 및 가공품을 보면 돼지 ·담비[貊] ·토끼 ·사슴 ·노루 ·거위 ·소 ·꿩 ·염소 ·오리고기 등과 이들 고기의 포, 해(젓갈) 등이 있다. 《세종실록(世宗實錄)》의 ‘찬실도설(饌實圖說)’에 녹해(鹿醢)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사슴 고기로 담근 것을 말하고 따라서 다른 고기로도 젓을 담가 오래 보존할 수 있게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음식지미방(飮食知味方)》을 보면 생포(生脯) 간수하는 법, 별미 쇠고기 삶는 법, 양숙(羘熟) ·양숙편[羘熟餠] ·영계찜 그리고 웅장(熊掌) ·야제육(野猪肉) ·가제육(家猪肉) ·개장[犬湯] ·개장꽂이누루미 ·개장국누루미 ·개장찜, 누른개 삶는 법, 개장 고는 법, 수증계(水蒸鷄), 고기 말리는 법, 고기를 말리고 오래 두는 법, 닭 굽는 법, 양 볶는 법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으로 보아 조선시대에는 식용 고기의 종류가 많았고 조리법도 다양한 것을 알 수 있으며 조선 후기로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한국에서는 고기요리가 점차 발달하고 일반화되어 소나 돼지는 버리는 부분이 없이 모든 부위를 적절하게 조리하여 먹어 왔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우리나라의 고기요리를 소개하겠습니다
사진 : Google
갈비구이
갈비구이 또는 갈비는 쇠갈비나 돼지갈비를 구워 만든 한국의 요리이다 ‘갈비뼈’는 ‘갈비’와 ‘뼈’의 합성어이다. ‘갈비’의 옛 형태는 ‘가리’이고 ‘뼈’의 옛 형태는 ‘ᄲᅧ’이다. 그래서 17세기 문헌에 ‘가리ᄲᅧ’로 나타나며, ‘ㅽ’이 ‘ㅃ’으로 표기되면서 ‘가리뼈’로 나타난다. 현대국어에서 ‘갈비’와 ‘갈비뼈’는 그 의미가 다르다. ‘갈비’는 “소나 돼지, 닭 따위의 가슴통을 이루는 좌우 열두 개의 굽은 뼈와 살을 식용으로 이르는 말”이며, ‘갈비뼈’는 “늑골(肋骨)을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17세기의 ‘가리’가 현대국어의 ‘갈비’와 동일한 의미인지 ‘갈비뼈’의 의미를 갖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18세기에 ‘륵(肋)’을 ‘가리’라고 한 것을 보면 ‘갈비뼈’의 의미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갈비’는 19세기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데 <국한회어>에 “갈비 脅幹肉<1895국한회,8>”라고 되어 있고, <춘향전>에 “갈비 한 ᄃᆡ 먹고지거 <18XX춘향철종下,36b>”라고 한 것을 보면 현대국어의 ‘갈비’와 동일한 의미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협(脇)’을 ‘갈비’라고 한 것으로 보아 ‘갈비뼈’를 ‘갈비’라고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현대국어의 ‘갈빗대’에 해당하는 단어로 19세기에 ‘가리대’가 나온다. <한영자전>에 “肋 (갈비대-*륵) ->가리대”라고 되어 있다. ‘갈빗대’가 갈비뼈 하나하나의 뼈대를 이르는 말이라는 것과 관련을 지어보면 ‘가리대’의 ‘가리’도 ‘갈비뼈’와 같은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1938년에 간행된 <조선어사전>에서는 ‘갈비’를 ‘갈빗대’의 준말로 설명하고 있고, ‘가리’는 ‘갈비’와 동의어로 처리하고 있다. 결국 ‘가리’는 현대국어의 ‘갈비뼈’를 의미하고 있었고 ‘갈비’는 식용으로 먹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는데, ‘가리’가 소멸되면서 식용으로 먹는 ‘갈비’와 구별하기 위하여 ‘갈비뼈’라는 합성어를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인다.
막창
막창 또는 막창구이는 소의 네 번째 위인 주름위를 구운 한국 음식이다. 홍창이라고도 부른다. 소의 첫 번째 위를 구운 것은 양곱창으로, 작은창자를 구운 것은 곱창으로, 큰창자를 구운 것은 대창으로 부르고, 소의 심장을 구운것을 염통이라고한다. 구이 형태는 막창구이 또는 소막창구이로 부른다. 돼지로 구성된 것은 돼지막창으로 부르며, 그에 따른 구이 형태의 음식은 돼지막창구이로 부른다.
막창의 손질 및 보관
1. 겉부분에 더러운 기름을 제거하고 잔털 부위를 오려서 버린다.
2. 항문 부위가 보이면 항문을 가위로 잘라 조그마한 잔털까지 가위로 다 오려 버린다.
3. 막창의 뒤집힌 부분의 오염 부위와 막창 안의 큰 덩어리 기름만을 제거한다.
4. 뒤집힌 상태에서 막창을 밀가루 한 주먹과 굵은 소금을 넣고 주무른다.
5. 5~10분 버무린 막창을 찬물로 두 번 정도 헹군 뒤 다시 원상태로 뒤집어 넣는다.
곱창
곱창은 소나 돼지의 작은창자로 만든 요리이다. 주로 포장마차나 곱창 전문 음식점에서 요리되며, 곱창볶음, 곱창전골 등의 음식이 있다. 곱창은 1소접시(100그램)에 141킬로칼로리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 철과 비타민을 함유하고 있으며 특유의 식감이 좋아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음식이다.
갈비찜
갈비찜은 갈비에 양념과 간을 하여 국물을 붓고 쪄서 만든 찜류의 음식이다. 과거엔 갈비라고 하면 일반적인 늑골을 의미했으며, 식용으로 사용하는 소의 늑골을 따로 분류하여 '가리'라고 불렀다. 이에 따라 소의 늑골로 만든 갈비찜을 가리찜이라고도 하였으나 1989년 한글 맞춤법이 수정됨에 따라 가리는 비표준어가 되었으며, 갈비라는 용어로 통일되었다. 갈비찜은 일반적으로 소와 돼지의 갈비로 만든다. 돼지의 갈비로 만든 갈비찜은 돼지갈비찜이라고 한다.갈비찜의 재료로 선호하는 것은 송아지의 갈비인데 왜냐하면 송아지의 갈비가 더 부드럽고 맛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갈비는 소의 다른 어떤 부위보다 비싸며, 따라서 갈비찜은 고가의 음식에 속한다. 갈비는 매우 지방이 많은 조직이므로 조리할 때 지방을 적절하게 제거해주어야 한다. 조리하기 전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갈비를 물에 한두시간 담가 핏물을 빼는 일이다.
수육
고기를 삶은 것을 말한다. 보통 돼지고기 삼겹살 or 목살을 삶는다. 소수육은 비싸기 때문에 잘 안 삶는다. 해봤자 곰국. 하여튼 수육의 어원은 숙육(熟肉)이다. 흔히 김장이 끝난 후 대량으로 조리해서 다같이 먹는 일종의 행사음식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제사 때나 김장 때 주로 먹는다. 경상도에서 주로 해 먹는 음식으로 고기를 물에 삶기만 하는 간단한 음식이라 유래는 인류 역사와 같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연료가 절약되며 국물을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어 고기가 귀한 옛날에는 이게 일반적인 조리법이었다. 영양학적으로 좋은 성분이 국물로 다 빠지는 것이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고기를 끓는 물에서 익혀도 단백질은 대부분 남는다. 그리고 지방과 나트륨 등이 물로 빠져나간다. 고기의 기름맛은 적어지지만 담백한 맛이 일품이라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삶기만 하면 되는 조리법 덕분에 어지간한 고기는 모두 수육으로 즐길 수 있다. 쇠고기도 양지머리 같은 부위를 수육으로 삶아먹기도 하며, 쇠고기보다 저렴한 돼지고기 또한 많이 소비된다. 돼지고기 수육은 적당히 비계가 있고 기름기가 있어서 맛이 부드럽다. 다만 닭이나 오리는 백숙이라는 이름으로 국물과 합쳐서 부르는 경향이 있고, 개고기는 호불호도 갈리거니와 특유의 냄새가 심해서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조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찾는 사람들이나 전문점에서 먹는다. 흔히 보쌈을 수육과 동의어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육은 보쌈(보쌈김치의 준말)과 곁들여 먹는 여러 재료의 하나일 뿐이다. 또한 요즘 보쌈을 파는 가게에서 부드러운 맛을 강조하기 때문에 수육=삼겹살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신선한 돼지고기는 어느 정도 지방이 있는 부위라면 어느 부위나 수육으로 이용할 수 있다. 지방이 아예 없는 등심이나 안심은 삶으면 퍽퍽해진다. 삼겹살 수육은 주로 남쪽 지방에서 주로 찾고, 서울 쪽에서는 지방이 적은 목살 수육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자본력이 막강한 프랜차이즈가 아닌 일반 보쌈집들 중에서는 삼겹살 수육을 제공하다가 서울 손님들의 성화로 목살 수육으로 선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중국 요리 중에는 유저육이라고 하는 돼지고기와 비계, 돼지기름을 뭉쳐서 절이는 방식의 요리가 존재한다. 또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콩피라는 조리 방식이 존재하는데, 100도 이하의 기름으로 고기와 과일 따위를 오랜 시간 익히는 조리법이다. 수육과 비슷해 보이지만 맛은 전혀 다르다. 비계를 데워 기름만 추출해 식히면 젤리처럼 굳는데, 몇 달을 놔둬도 상하지 않는다.
대패삼겹살
칼집삼겹살 (벌집삼겹살)
삼겹살
삼겹살 또는 삼겹살구이는 돼지의 갈비 부위에 붙어 있는 살 또는 삼겹살을 구운 음식을 뜻한다.한국에서는 원래 소고기에 비해 돼지고기는 선호도가 낮았다. 그러다 1970년대에 들어 정부가 소고기값 안정 대책으로 돼지고기 소비 육성책을 적극 펼치기 시작하였고,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돼지보쌈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같은 시기 냉장고가 대중화되면서 가정에서도 고기 보관이 손쉬워졌고, 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돼지고기를 사와 보관하는 경우가 늘었다. 1980년대부터 돼지고기의 갈빗살 특정 부위를 '삼겹살'로 칭하게 된 이후, 1994년에는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제어 '삼겹살'이 등재될 정도로 널리 쓰이는 단어가 되었다. 1996년에는 대패로 얇게 썬 모양 같아서 붙여진 대패삼겹살이 등장하였으며, 1998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회식 메뉴가 소고기 등심, 갈비에서 돼지 삼겹살로 이동하면서 하나의 대중문화로 자리잡았다. 2010년대 들어서부터는 보통의 삼겹살에 칼집을 넣은 '칼집 삼겹살'로 발전하였다. 식당이나 대형마트에서 팔던 기존의 삼겹살은 두께가 두꺼우면 속까지 익는데 필요한 시간이 오래 걸리며, 빠른 조리를 위해 얇은 두께로 유지해도 식감이나 육즙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생긴다. 때문에 두께를 두배로 늘리고 고깃결을 따라 조금씩 칼집을 넣어, 두께는 두꺼워도 열을 접하는 면적은 늘려 속까지 잘 익게 만들었다. 고깃집을 중심으로 펴저나간 칼집삼겹살이 인기를 끌면서 최근 대형마트에서도 칼집삼겹살을 판매하는 경우도 생겼다. 일례로 2016년부터 칼집삼겹살을 시판한 이마트에서는 전체 삼겹살 매출의 25%에 달했다. 삼겹살에는 비타민B1과 단백질, 아연, 엽산, 인, 철분, 칼륨 등이 함유되어 있다. 또한 비계를 이루는 지방의 비율이 다른 부위에 비해 크다. 때문에 황교익 칼럼니스트는 "삼겹살의 맛은 거의 지방에 기대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지방이 타면서 내는 고소한 풍미와 그 지방이 전달하는 야들한 촉감을 즐긴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방의 과잉 섭취로 비만 위험이 커서 항상 논란의 위치에 있는 요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육류 섭취량이 과도한 나라의 사람들처럼 삼겹살을 비롯한 돼지고기 섭취를 비만과 연결시켜 걱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비만은 특정 음식이 아닌 전체적으로 섭취하는 총지방의 함량을 걱정해야 하는 문제라는 주장도 있다. 황사와 미세먼지를 이겨내는 음식으로 인식되기도 하며, 봄이나 야외 활동이 많은 계절이 되면 삼겹살의 수요가 크게 증가한다. 과거 강원도 태백과 영월의 탄광에서는 하루 일과를 끝낸 광부들이 목에 걸린 먼지의 배출을 돕는다는 속설로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고도 전해진다. 이에 대해 한국식품연구원은 2007년 돼지고기가 카드뮴과 납 등 중금속이 신체에 쌓이는 것을 일정 부분 막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한편 2017년 3월,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은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상추, 양파, 마늘 등과 같이 먹으면 발암성 물질 발현을 60% 억제한다고 발표했다. 고기를 구울 때 만들어지는 발암물질인 벤조[a]피렌의 체내 독성화를 줄인다는 결과였다.
족발
족발(문화어: 발족찜)은 간장과 향신료를 곁들인 돼지 발을 익혀서 기름을 빼고 조린 한국 요리이다. 보통 편을 내어 편육으로 먹는다. 돼지는 앞발이 뒷발보다 더 크므로 앞발은 대자로 팔고 뒷발은 소자로 판매한다. 간장, 마늘, 생강, 대파, 양파, 설탕, 후추, 소주 등 다양한 재료들을 넣는데, 그 외에 넣는 독특한 재료들과 조리 순서에 따라서 냄새도 덜 나고 더 맛깔 나는 족발을 만들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새우젓을 곁들여 먹기도 한다. 허영만 화백의 《식객》에 의하면, 북한 함경도 실향민들이 족발의 영양가가 풍부하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브라질 전통음식인 브라질식 페이조아다를 족발을 써서 한국의 족발과 비슷하게 만들기도 하며, 독일의 슈바인스학세도 족발과 대동소이한 요리이다.한국에서는 족발거리가 형성된 곳이 있는데, 장충동의 족발거리와 공덕동 공덕시장의 족발골목이 유명하다. 또한 한국에서는 어린 돼지의 족을 썰지 않고 통으로 '미니족'이라는 이름을 붙여 시판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불족발도 선보이고 있다.
봉계 불고기
서울 불고기
바싹 불고기
사리원 불고기
언양 불고기
광양 불고기
돼지 불고기
불고기
불고기(영어: Bulgogi)는 쇠고기를 양념에 재우고 야채를 넣고 불에 구워먹는 한국의 전통 고기요리이다. 돼지고기로 만든 것은 따로 돼지 불고기라고 한다. 구이에는 결합 조직이 적고 지방이 조금씩 산재해 있는 고기가 맛이 있고 연하기 때문에 안심이나 등심 등의 부위가 가장 많이 사용된다.불고기는 고구려 사람들이 먹던 맥적이라는 음식에서 유래한다는 의견이 있다. 200여년 전의 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에 서울 지역에서 화로에 숯불을 피워 놓고 번철에다 조미한 쇠고기를 구우면서 화롯가에 둘러앉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산림경제에는 궁중식 불고기인 너비아니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우육을 썰어서 편을 만들고 이것을 칼등으로 두들겨 연하게 한 것을 대나무 꼬챙이에 꿰어서 간장으로 조미해서 충분히 스며들면 숯불에 구워서 먹는 음식으로 기술되어 있다. 19세기에 철사가 도입되어 석쇠를 이용하여 숯불 구이가 탄생하였다. 일본에서는 막부 이전까지도 불교 문화가 일반 백성 식문화에도 영향을 미쳐 네발이 달린 동물은 더럽다고 생각하여 육식을 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육식문화가 널리 퍼진 것은 메이지 이후 이다. 육식을 하지 않던 일본에 너비아니가 1945년 전에 'とんちゃん焼き(통찬구이)'라는 음식으로 전해졌다. 이후 재일 교포들 일본에서 식당을 하면서 야키니쿠를 팔기 시작하였다. 기존 양념에 재워먹던 광양식 불고기의 양념이 일본에서 상업화하여 '타레'(垂れ)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어 가정에서도 불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불고기 양념이 달라졌다는 것인지 아니면 불고기 양념을 병으로 파는 상술을 말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조선시대 풍속도 8첩 병풍 중 하나인 김홍도의 <설후야연> (雪後夜宴)에서는 양반이 집안에서 불고기를 먹는 모습이 나온다. 중세시대 한국 역사서 동국세시기에는 불고기 산적이 난로회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서울 풍속에 화로에 숯불을 피워놓고 석쇠를 올려놓은 다음 쇠고기를 기름, 간장, 계란, 파, 마늘, 후춧가루 등으로 양념하여 구우면서 화롯가에 앉아 먹는데 이것을 난로회라고 한다." 화로에 석쇠를 올려놓아 바비큐 방식으로 고기를 구웠으며 간장과 마늘로 양념을 했다고 한다. 오늘날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지나치게 얇고 쭈글쭈글한 불고기와는 달리 원조인 불고기 산적은 0.5cm 정도의 두께고 쭈글쭈글하지 않고 육즙에 잠겨있지도 않다. 불고기라는 명칭은 과거 불에 구워 먹는 고기라는 뜻으로 생겨났다가, 점차 양념한 고기를 익히는 의미로 바뀌었으며, 양념하지 않고 소금간만 하고 굽는 고기는 소금 구이라고 칭하고 있다. 여기서 양념한 고기는 특별히 정해진 바가 없으며 어떠한 양념을 어떠한 고기 (주로 육류)에 발라 구워내는 음식을 모두 불고기로 표현하고 있다. 단, 고기에 통뼈가 붙어있거나 하는 경우는 갈비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보통 '불고기'라고 하면 간장 양념을 쇠고기에 재운 소불고기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으며, 이외에 고추 양념을 쓴 돼지불고기가 있고, 이 외에 오리고기, 닭고기가 주로 쓰이고 최근에는 해산물을 이용한 불고기도 나오고 있다쇠고기는 등심이나 안심 고기로 선택하여 고기 결의 반대 방향으로 얇게 썬 후 가로 세로로 잔 칼질을 하여 섬유를 끊어 부드럽게 한다. 그리고 배즙이나 청주·설탕 등에 버무려서 30분 정도 잠시 놓아 둔다. 이렇게 하면 효소작용이 활발해져서 고기가 연해진다. 이제 양조간장에 다진 파·다진 마늘·깨소금·생강즙·후추가루 등을 넣어 불고기 양념장을 만들어 놓는다. 양념장에 배즙으로 재웠던 고기를 넣고 잘 주물러 약 30분 간 쟁여둔다(30분 이상 경과되면 맛이 없어진다). 양념 재우기를 끝낸 후 참기름을 넣어 버무린다. 참기름을 처음부터 치면 양념의 맛이 배어들지 못할 뿐만 아니라 효소 작용이 억제되어 고기가 질겨지므로 마지막에 넣도록 한다. 이후 먹을 때 중불에서 천천히 굽는다. 고기의 단백질인 미오신(myosin)과 미오겐(myogen)은 40°C 전후에서 응고하는데, 이러한 단백질의 응고점 전후가 가장 맛이 좋기 때문이다. 불고기판을 먼저 불에 올려놓고 육수를 부은 다음 고기를 고루 펴놓고 익기 시작하면 1번만 뒤집어서 익힌 후 먹도록 한다. 석쇠로 구울 때는 먼저 석쇠를 불에 얹어서 달군 다음에 고기를 펴놓고 센 불에서 겉만 재빨리 익힌 후 중 불에서 속까지 익혀낸다. 염통·콩팥·간 등도 같은 방법으로 구워낼 수 있다. 전통적 요리법으로 만든 불고기 중에는 고기를 재빨리 식힌 뒤에 다시 익혀내는 방법이 있는데 이 방법은 과거에 쓰여왔던 고체 연료로는 화력 조절이 힘들어서 겉을 태우지 않고 속까지 골고루 익힐 수 있는 방법이다. 고려시대의 설야적은 꼬치에 꿰어 양념해 석쇠에 구운 고기를 찬물에 담갔다가 꺼내서 다시 굽는 과정을 3번 한 뒤 양념을 발라 구워 먹었다고 하고, '설상가리'라고 하여 구운 갈비를 눈 내리는 바깥에 던져서 급속히 식힌 후 먹는 것도 있었다. 고급 음식점에서 신선로와 함께 내놓는 궁중 불고기에는 날달걀물을 담가서 먹는 방법이 있다.
우리나라의 지역을 대표하는 불고기
서울 불고기 : 가운데는 볼록하며 구멍이 뚫려 있어 직화가 가능하고 가장자리는 오목하여 물을 담을 수 있는 불고기 전용 용기에 구워먹는다. 얇은 양은 용기가 불에 타기 쉬워 발화점을 낮추기 위해 가장자리에 물을 넣는데, 위에 올려진 고기로부터 흘러내린 육즙이 이 물에 합쳐져 또 하나의 별미로 인기를 얻어 영업점에서는 풍미를 더하기 위해 맹물대신 별도로 준비한 육수를 붓기도 한다. 이 용기의 기원은 정확지 않으나 조선시대의 전립투(벙거짓골)와 그 방식이 유사하며 1960년대의 서울 시민의 생활을 묘사한 사진 자료에도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으로 추정된다. 이와 유사한 모양의 용기를 일본에서는 징기스칸이라는 음식의 용기로 쓰는데 우리 나라의 불고기 용기와 다른 점은, 우리 나라의 용기는 얇은 양은 소재이고 가운데 볼록한 부위에 구멍이 있어 불고기라는 이름에 걸맞은 직화 특유의 훈제 풍미를 살릴 수 있는데 반해 일본의 징기스칸 용기는 구멍이 없는 무쇠철판으로 간접가열방식이라는 점이 다르다. 일본에서는 이 용기의 기원에 대해 몽골군이 철모를 뒤집어 양고기를 구운데서 기원했다는 전설이 있으나 이는 속설일 뿐 사실이 아니라는 게 현재의 정설이다. 실제로는 몽골에는 저런 방식의 용기가 없다고 한다. 일본이 양고기 구이를 먹기 시작한 것은 1910년대 만주 침략 이후 시작됐으며 이 용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훨씬 뒤로 우리 나라와 유사한 시기인 2차 세계 대전 이후라고 한다. 그러므로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밝혀진 바 없다.
봉계불고기: 언양 인근의 봉계지역 불고기로 언양 불고기와 유사하게 숯불로 구워내며 대신 양념을 최대한 적게 해서 고기 맛을 더 강조한다. 언양과 봉계에서는 해마다 번갈아가면서 불고기 축제가 열리고 있다.
언양 불고기: 언양불고기는 울산 언양읍의 향토 음식으로 이 지역 특산물인 쇠고기를 얇게 썬 후 양념하여 석쇠에 구워 만든 불고기다. 언양은 일제 강점기부터 도축장과 푸줏간이었는데, 1960년대 이후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모여들었던 근로자들이 이곳의 고기 맛을 보고 이때부터 입 소문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광양 불고기 : 고기를 얇게 저민 후 양념을 바로 묻힌 뒤 숯불 위에 석쇠를 얹고 그 위에 고기를 얹어서 볶듯이 뒤집어서 굽는다.
사리원 불고기 : 배즙과 다진 마늘로 양념한 고기를 구운 후 간장 육수에 담갔다가 과일 소스에 담가 먹는다.
바싹 불고기 : 1960년대 서울 용산역 부근에서 등장한 불고기로 소고기의 치맛살 부위를 얇게 저며 갖은 양념을 한 후 이틀정도 숙성 후 석쇠 사이에 고기를 넓게 펴서 육즙이 빠지지 않도록 직화에 바싹 구워낸다.
설하멱
설하멱은 개성사람들이 예로부터 즐겼던 음식으로, 「해동죽지」에는 ‘설리적(雪裏炙)’으로 소개되어 있다. 눈 오는 겨울밤의 술안주로 좋고 고기가 몹시 연하고 맛이 좋다 하여 ‘설야멱(雪夜覓), 설야멱적(雪夜覓炙)’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는 소갈비나 염통을 기름과 훈채(마늘, 생강)로 조미하여 숯불이나 화로에 구워 먹는 음식으로 굽다가 반쯤 익으면 냉수에 잠깐 담그는 것이 조리비법이다. 이렇게 구우면 겉이 타지 않고 속까지 잘 익는다. 또한, 조선 후기의 시인 조수삼의「추재집-세시기」에는 ‘신라에서는 새해 첫날 왕이 단향회(檀香會)를 열고 불을 피워 떡국과 설야멱을 먹는다’라고 했다. 즉, 왕과 신하 사이의 의리와 신뢰를 확인하는 상징성이 있는 음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기를 불에 굽다 눈밭에 던졌다 다시 구웠더니 맛이 좋더라 하여 이름 붙여진 설하멱(雪下覓)은 간단한 조리법과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음식이다.
맥적
맥적(貊炙)은 돼지고기를 된장 양념에 재운 뒤 구워 만든 전통 요리로, 고구려에서 유래된 음식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대(漢代)의 기록 석명(釋名)이나 위진시대의 문헌인 수신기(搜神記)등에 나타난 기록을 살펴보면 양념을 한 통구이로, 각자의 칼로 저며 먹는다. 북방 유목 민족의 요리로 소개되고 있다. 현대의 맥적은 된장과 마늘에 재웠다가 굽는 돼지고기 구이 요리로 변화하였다
산적
산적(散炙)은 적(炙)의 하나로, 쇠고기와 채소 등을 길쭉길쭉하게 썰어 양념을 한 뒤 꼬챙이에 꿰어 구운 음식이다. 또한 정월 대보름에 먹는 산적은 이를 튼튼하게 한다고 하여 이굳히산적이라 부른다.
너비아니
너비아니(영어: neobiani)는 궁중식 불고기로 알려진 한국 요리이다. 쇠고기를 칼로 다져놓은 것을 양념하여 넓적하게 구워낸 음식이다. 너비아니라는 이름은 고기를 너붓너붓 썰었다고 붙여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불에 구운 고기를 가리키는 서울 방언이 특정 요리의 명칭으로 퍼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서울말 연구'라는 학술지에서는 너비아니와 '너비하니'를 서울 방언 중 하나로 보고 있다. 너비아니에 대한 기록은 "시의전서(是議全書)"가 최초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도 너비아니 또는 쟁인고기로 소개되고 있다. 시의전서가 동남 방언으로 표기한 문장이 눈에 띄게 많은 것으로 보아 시의전서가 편찬된 조선 후기 이후로 경상도 지역에도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궁중요리에서는 정식명칭은 한자로 표기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너비아니라는 이름은 궁중에서가 아닌 민간 등에서 지어질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시의전서가 편찬될 즈음의 조선 후기에 조리법이 민간에 퍼지기 시작하면서 이 때 너비아니라는 이름이 부여된 것으로 보고 있다.너비아니의 시초는 상고시대부터 내려오는 고기 구이 요리인 맥적(貊炙)으로 본다. 이후 고려시대 불교의 영향으로 살생금지와 육식 절제로 소의 도살법과 조리법이 잊혔으나 몽골의 영향으로 고기요리법을 다시 되찾으면서 개성에서 설하멱(雪下覓)이라는 이름의 고기 구이가 생겨났고 훗날 궁중 요리를 중심으로 너비아니의 조리법이 정착하게 된다. 너비아니는 조선 중기까지 궁중에서 먹어왔으나 조선 후기에 조리법이 널리 퍼지면서 돼지고기를 사용하거나, 조리 과정을 줄인 섭산적 등의 여러가지 다양한 조리법이 등장하였다. 일제강점기 이후 조선 왕조의 숙수들이 민간에 녹아들면서 더욱 널리 퍼지게 되었다. 쇠고기는 안심과 등심을 두께 5 mm, 가로세로 5 cm x 6 cm 크기로 잘라낸다. 자를 때는 쇠고기를 결 반대 방향으로 썰어야 한다. 그 후 칼집을 내거나 두드려서 고기를 부드럽게 한다. 그리고 배즙과 설탕을 섞은 액에 고기를 넣어 재워둔 뒤, 다진 파, 다진 마늘, 간장, 설탕, 후추, 깨소금, 배즙을 섞은 양념장에 고기를 넣어 버무린 뒤 약 20분 동안 재워둔다. 그리고 달군 석쇠에 고기를 놓고 한 장씩 가지런히 얹어서 타지 않도록 구워낸다. 많은 양을 한꺼번에 넣고 볶듯이 구우면 맛과 색감이 떨어지게 된다. 다 구워진 고기를 그릇에 담아 잣가루를 뿌리고 상추와 함께 낸다.
영계백숙
영계백숙은 한국 요리이다. 태어난지 얼마 안 된 병아리보다 조금 큰 영계를 사용하여 만드며, 내장을 버리고, 닭털을 뽑아 삶아 만드는 요리이다.
백숙
백숙(白熟)은 한국 요리에서 고기나 생선을 양념 없이 끓이거나 삶는 요리를 뜻한다. 주로 닭고기로 끓이는 닭백숙을 의미할 때가 많으며, 이 경우 삼계탕과 유사하다. 조리법은 닭이나 꿩에 다량의 물을 부어 여러 시간 동안 푹 끓인다. 삼계탕은 인삼과 밤, 대추 등 여러 재료를 넣어 만드는 데 반하여, 닭백숙은 닭고기와 물, 마늘만으로 조리할 수 있어 훨씬 간단하다. 닭고기에는 찹쌀을 채워넣을 수 있다. 조리가 끝나면 소금과 대파를 넣어 간을 맞춘다. 닭백숙은 삼계탕의 경제적이고 간단한 변형으로 볼 수 있으며, 백숙이라는 용어를 종종 삼계탕과 혼용해서 쓰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여름에 먹는 보양음식으로 간주된다
제육볶음
제육 볶음(豬肉-)은 돼지고기를 고추장 양념에 재워 볶은 요리이다. 제육(豬肉)은 돼지고기를 뜻한다.목살이나 삼겹살, 앞다릿살, 뒷다릿살 등의 돼지고기를 한 입 크기로 썰어 준비한다. 양념장은 고추장을 기본으로 간장, 마늘, 양파, 대파, 고춧가루, 참기름, 청양고추, 생강, 후추, 당근, 호박, 부추, 깻잎 등을 기호에 맞게 추가한다. 고기와 양념을 버무려 30분 가량 재워두었다가 재료에서 수분이 배어나오는 정도를 살펴서 불의 세기를 조절하여 볶고, 접시에 담아 낸다. 기호에 따라 참깨를 뿌려내며, 상추나 배추같은 쌈을 곁들여 먹기도 한다. 술 안주로도 많이 먹는다.김치를 더하여 만든 것을 '돼지김치볶음'이라고 한다. 제육볶음을 덮밥의 형태로 밥위에 얹어낼 수 있는데, 이를 '제육덮밥'이라고 한다. 제육덮밥으로 낼 때에는 달걀 프라이를 곁들이기도 한다.
송정 떡갈비
담양 떡갈비
떡갈비
떡갈비는 갈빗살을 다져서 양념한 후 갈비뼈에 얹어 구운 요리로 고기를 다져 떡처럼 모양을 만들어 구워 먹는 음식이다. 궁중에서 왕이 즐겨 먹던 음식이 각 지방에 퍼지면서 각 지방의 특색이 더해져 해당 지역의 특산 음식이 되었다. 삼계탕, 감자탕 등과 함께 외국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한국 요리로 꼽힌다. 전남 지방이 원조인데, 흔히 담양군과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통칭 송정리)이 유명하다. 두 곳이 워낙에 유명하기 때문에 담양이 원조인지 송정이 원조인지 논란이 많다. 하지만 담양과 송정 이외에도 각각의 지역에도 떡갈비가 있으며 그 지역마다 특색이 있기 때문에 어느 곳이 원조인지 판가름하기 힘들다. 궁중에서 전해진 음식이 유배로 내려온 문인들에 의해 각 지역에 맞게 변하였기 때문에 어디가 원조인지 판가름하기는 힘들다고 볼 수 있다. 이 문서에서는 가장 많이 알려진 송정 떡갈비와 담양 떡갈비를 서술한다. 아래 두 곳 이외에도 전라북도 군산시와 경기도 의정부시, 동두천시,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 역시 각 지역 특유의 떡갈비로 알려진 지역이다.
송정 떡갈비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떡갈비는 송정식으로 만든다. 넙적해서 굽기 편하므로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다진 것을 절반씩 섞어서 갖은 양념에 버무린 뒤, 직사각형으로 빚어 석쇠에 얹어 양념을 발라가며 숯불에 구워 만드는 음식이다. 쇠고기와 돼지고기의 맛과 갖은 양념 그리고 숯불의 향이 어우러져 독특한 식감을 느끼게 해주는 요리로 광주 요리의 찐한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해 주는 요리 중 하나다. 광주 특유의 푸짐한 상차림 역시도 특징으로, 떡갈비뿐만 아니라 다양한 반찬이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나온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 일대에서 유래한 음식으로, 만들어진 시기는 해방 전후로 추정된다. 소갈비는 당시에도 비쌌기 때문에, 갈비살을 발라서 돼지고기와 섞어 더 많은 양을 먹을 수 있도록 만드려는 시도 끝에 개발된 것이다. 광산구청과 광주송정역 근처에 가면 지금도 떡갈비 골목이라 하여 떡갈비 전문점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 있다. 이곳의 각 식당마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그리고 양념의 비율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 개성적인 맛을 가지고 있으며, 그 비율은 비법으로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래에서 설명된 담양이나 타지와는 맛 자체가 다르며, 음식점에 있어 맛이 가장 중요한 광주지방 특성상 직접 다져서 만들지 않은 집은 없다고 봐도 된다. 광산구의 명물이 떡갈비다보니 당연히 광산구 공무원들은 회식을 한다 하면 거의 90%는 여기 떡갈비 골목에서 가장 많이 한다고. 심지어는 가끔씩 광주시청 공무원들도 여기 떡갈비 골목에서 회식을 하기도 한다. 공군제1전투비행단과 가까워 군인들이 떡갈비를 저녁으로 먹고 복귀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송정 떡갈비 골목의 식당에서는 떡갈비를 주문할 시 기본적으로 같이 먹을 수 있는 뼈국물이 제공이 되며 추가 메뉴로 비빔밥을 같이 제공하기도 한다. 육회비빔밥도 별미로 제공하는 식당도 많다. 당연히 반찬 역시 상다리 부러지게 나온다. 무한도전 식객 특집에서 박명수가 만든 김치인삼떡갈비가 소고기와 돼지고기의 삼겹살 섞는 것을 보면 과정이 송정 떡갈비와 비슷하다
담양 떡갈비
담양식 떡갈비는 돼지고기를 사용하지 않고 소갈비살만 가지고 만들며, 뼈를 다시 붙여놓는 경우도 있다. 즉, 국어사전에서 통칭하는 떡갈비의 뜻을 고스란히 따르는 음식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외지인들에게는 송정리식 떡갈비보다는 담양식 떡갈비가 더 알려져 있다. 또한 송정리식 떡갈비가 상대적으로 얇고 넓게 부쳐서 부드러운 풍미를 살린다면, 담양식 떡갈비는 두꺼운 정육면체로 부쳐서 갈비의 쫀득한 맛을 살리는 것이 특징이다. 쇠고기만 사용한다는 점과, 주 고객층이 관광객인 점 때문에 지역 주민들과 군인들이 섞여 들어가는 광주 송정리에 비해 2-3배에 이르는 비싼 가격을 자랑한다. 담양은 미리 구워나오는 담양식 돼지갈비도 유명하기 때문에 담양의 떡갈비를 취급하는 식당에는 경우에 따라 돼지갈비도 같이 취급하는 곳도 있다. 여담으로 담양 떡갈비 식당에서는 1인분을 떡갈비 조각 3개를 기준으로 한다. 경우에 따라선 많을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는 분량이다. 일부 식당에서는 아침 시간에는 갈비탕을 판매하는 곳도 있다. 이마트 조리식품 코너에서는 담양의 유명한 집 '덕인관'에서 만든 떡갈비 그대로의 맛을 재현한 떡갈비를 판매하고 있다. 대나무로 만든 대통밥과 함께 담양을 대표하는 음식이며, 여러 지역의 떡갈비 중에서도 가장 언론에도 많이 알려진 음식이다. 1박 2일-담양 편에서 저녁 복불복에 걸린 음식으로 소개되기도 했고 무한도전 식객 특집에서 유재석-정준하-정형돈 팀이 떡갈비 전문점 '신식당'에서 떡갈비 명인에게 제조법을 배우기도 했다.
육회
육회는 대한민국의 요리에서 회의 일종으로 흔히 채를 친 쇠고기를 익히지 않고, 갖은 양념으로 버무려 먹는 음식이다. 양념하지 않은 것은 육사시미라 불러 구분한다 기름기 없는 쇠고기의 우둔살 부위를 얇게 저며, 결을 끊어 가늘게 채썬다. 간장과 참기름, 깨소금, 설탕, 후춧가루 등에 다진 파와 마늘 등을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준비된 쇠고기에 양념을 부어 고루 무치고, 채를 썬 배를 같이 접시에 담는다. 밥 및 육회와 육포 및 양념으로 재운 것 물을 곁들여 밥과 섞어 먹는 경우가 많다
닭갈비
닭갈비는 한국의 대표적인 볶음 요리로 토막낸 닭고기를 포를 뜨듯이 도톰하게 펴서 고추장, 간장, 마늘, 생강 등으로 만든 양념에 재웠다가 고구마, 당근, 양배추, 양파, 파, 떡 등의 재료와 함께 철판에 볶아 먹거나 숯불에 구워 먹는 요리다 강원도 춘천시 중앙로 2가 18번지에 판자로 지은 조그만 장소에서 돼지고기로 영업을 하던 김영석이 1960년 어느날 돼지고기를 구하기가 어려워 닭 2마리를 사 와서 토막내어 돼지갈비처럼 만들어 보겠다고 하여 연구 끝에 닭을 발라서 양념하여 12시간 재운 뒤 숯불에 구워 '닭불고기'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 닭갈비의 유래다. 1970년대 들어 춘천의 번화가 명동의 뒷골목을 중심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하여 휴가를 나온 군인과 대학생들로부터 값이 저렴하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요리로 각광받았다. 춘천에서 닭갈비가 발달한 배경 중 하나는 춘천지역이 양축업이 성했고 도계장이 많았기 때문이다. 닭갈비는 지금도 그 맛과 양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지만 당시에는 대단히 싸서 70년대 초 닭갈비 1대 값은 100원일 정도였으며, 그래서 별명이 '대학생갈비'와 '서민갈비'였다. 춘천시는 2005년부터 매년 가을 춘천의 닭갈비를 홍보하는 닭갈비축제가 주최하고 있다. 닭갈비 축제는 2008년부터 막국수축제와 통합, 동시 개최되고 있다.
포계
조선시대의 닭고기 요리이며 우리나라의 전통 치킨이다. 조선 초기에 저술된 산가요록이라는 요리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산가요록]은 우리나라의 최초의 조리서이고, 산가에서 생활하고있는데 필요한 여러 기술들 즉, 서민의 삶에 필요한 모든 기술들을 총 망라한 종합 농서로 술, 장, 초, 김치, 재료저장, 곡물음식, 과자, 자반, 식해, 고기음식(탕,찜,구이) 등이 쓰여져있다. 또 일정하지 않았던 액체의 계량단위에 대한 분량이 표시되어있는 책이다. 현대의 간장치킨과 비슷한 음식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그렇지만 옛날에는 기름이 아주 귀했고, 밀가루도 몹시 귀했다. 닭고기 자체는 그나마 평민들도 종종 먹을 수 있었지만 기름과 밀가루를 이용해 닭을 요리해 먹는 것은 평민들에게는 거의 힘들었고, 귀한 손님이 왔을 때 권세 있는 양반가에서나 대접하던 음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첫댓글 오늘은 한국의 고기요리를 소개하겠습니다 해봤습니다 다음시간에는 한국의 회(생선)를 소개 하겠습니다
Ok!! Let's Go 고기파뤼~~~!!!🍖🍖🍖🍗🍗🍗🍗🍖🍖🍖🍖🍖🍗🥩🍗🍗🥩🍗🍗🥩🥩🥓🥓🥓🥓🍖🍖🍗🍗🥩🥩🍗🍗🥓🥓
고기 아주 좋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