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건설현장에 장마철점검을 동행한 적이 있다. 현장에 들어서니 낙하물방지망이 가지런히 처 있고 근로자들은 안전모를 모두 쓰고 있었다. 흐뭇한 마음으로, 자신 있어 하는 소장, 안전관리자와 함께 현장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설수록 소장의 고개는 숙여지고 내 마음은 실망으로 수그러지는 것이었다.
낙하물방지망은 추락하는 사람은커녕 벽돌하나 제대로 받아낼 수 없을 것 같이 약해 보였고, 바닥 개구부의 덮개는 건드리면 금방 뒤집힐 것 같았다. 그 뿐 아니다. 그날은 바람이 몹시 불었는데, 해체한 거푸집 판넬이 10층 높이의 비계 위에 그냥 놓여 있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이 현장은 점검에 대비한 것이지, 근로자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안전시설을 설치한 것이 아니다. 진정 안전을 생각했다면 모기장 같은 형식적인 낙하물방지망은 안치더라도 날아갈 것 같은 강풍속에 거푸집 판넬을 아슬아슬하게 방치하진 않을 것이다.
안전에 있어서도 자율이 효율적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안전을 그냥 기업의 자율에 맡길 수 있을까? 우리 산업현장의 사망만인율은 일본의 7배, 독일의 25배이며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싱가폴의 3배이다. ‘안전에 있어서는 시장이 실패한다’는 이론적인 근거를 대지 않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안전규제를 일방적으로 완화하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는 데에 우리의 딜레마가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 어느 주에서 레이저탐지기 허용에 대한 찬반논란이 있었다. 레이저탐지기는 전방에서 경찰이 속도측정기를 사용하고 있음을 미리 알려주는 장비이다. 대당 200불 정도 하는데 속도위반 딱지를 두 번만 안 떼이면 본전이 된다니 할만한 투자가 아닌가.
인간은 이익을 좇기 마련이다. 더구나 이윤창출을 목표로 하는 기업은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근로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는 산업안전의 주된 의무는 이러한 기업의 사업주에게 부여되어 있다.
그러면 안전규정을 위반하여 산업재해를 일으킨 사업주에 대한 우리의 벌은 어떠한가? 규정상으로는 최고 5년의 징역 또는 5,000만원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으나, 사망사고를 일으킨 경우에도 몇 백만원의 벌금형이 고작이다. 이 정도는 웬만한 현장의 안전난간 설치비용도 안 된다. 상황이 이런데 어느 기업이 법을 지키려 하겠는가?
이렇듯 이익이 되는 쪽을 택하려는 -법을 지키기보다- 사업주와 이를 방치할 수 없는 정부사이에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예방점검 등 사전규제에 의존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앞의 예에서 본 것처럼 효율적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행정력도 턱없이 모자란다. 산업안전감독관 숫자만 봐도 우리는 200여명, 일본은 3,300명, 독일은 3,400명 정도이다.
우리나라 굴지의 두 기업이 괌에서 공사 중 안전조치 위반으로 미국 OSHA(산업안전보건청)로부터 공사비와 맞먹는 몇 십억 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은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마디로 법을 지키는 것이 이익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꼭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안전난간 설치를 안한 것이 적발되면 그 설치비용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과태료로 환수해야 한다. 그래야 법을 지키는 자가 억울해 하지 않는다.
안전관리에 있어서도 자율은 책임 위에서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