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31. 열두번째 주.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
신앙고백
찬송 50 큰 영화로신 주
기도 이원준 장로,하경숙 권사,조용림 권사,염성섭 장로,
성경말씀 베드로전서4:1~6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모은 것과 뿌린 것
찬송 138 만 왕의 왕 내 주께서
광고 시립 전환을 위해 기도(하나님께 감사), 새가족 유귀례 권사(87)
봄 정기노회-4월8일~9일, 부활주일예배(4월21일, 직원총회)
찬송 144 예수 나를 위하여
축도 아프니까 그만 하세요. 주님도 아프고, 나도 아프잖아요.
우리 선교비젼센타, 우리 요양원 시작할 당시에
함께 했던 한만욱 목사님이 계십니다.
저와 함께 동역을 하다가 대장암 수술을 받고 완치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폐로 전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깊은 산골로 요양차 들어갔습니다.
엊그제 제가 다녀왔습니다.
얼마나 멀던지
산꼭대기에서 생활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 곳에는 암 환자들이 30여명이 암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한 목사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지나가는 저 사람은 체장암 환자입니다.
또 멀찍이 걸어가는 젊은 여인을 보고는 저 분은 33세인데
유방암 환자입니다.
그리고 가면서 사가지고 간 두터운 겨울 조끼, 양말을 드리고
돌아 왔습니다.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슬프고 그렇습니다.
여러분들도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1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2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3절,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4절,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5절,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 하리라
6절,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 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살게 하려 함이니라.
은행에 근무하는 딸 같은 직원이 있습니다.
요즘 많이 힘들어하기에
격려차 선물을 보내면서 이런 시를 함께 보냈습니다.
어머니가 주신 반찬에는 어머니의
몸 아닌 것이 없다
입맛 없을 때 먹으라고 주신 젓갈
매운 고추 송송 썰어 먹으려다 보니
이런,
어머니의 속을 절인 것 아닌가 / 젓갈, 이대흠
우리가 살다보면 젓갈처럼 속 절인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제가 우리 선생님들께 이런 농을 던지곤 합니다.
밥 먹고 살기 참 힘들다.
목사인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목회하기 참 힘이 듭니다.
엊그제는 우리 이재열 어르신, 진인섭 어르신
그리고 우리 백춘자 권사님, 조용림 권사님
그리고 우리 박종희 선생님, 정희정 선생님, 조현실 권사님 등과 함께
봉동까지 가서 황금 코다리를 먹었습니다.
얼마나 맛이게들 드시는지 제 배가 불렀습니다.
감사합니다.
돌아오는 제 차 안에서
우리 조 권사님께서 걱정을 하십니다.
목사님 많이 피곤하시지요?
그래서 네! 많이 피곤합니다.
그렇지만 제 몸이 피곤할지라도
우리 권사님들이 행복하면 저도 행복합니다.
그리고 어제 토요일 아침에 늦잠을 잤습니다.
자다 깨다 하면서
우리 한 목사님 살려 주시라고 기도드렸더니
늦잠을 잔 것입니다.
그랬더니 요양원에서 불이 난 것입니다.
우리 백 권사님께서 목사님 안 오신다고 전화를~
고맙습니다.
이렇게 목사님을 사랑해 주시니 눈물이 납니다.
요즘 제 마음이 아프고 슬프기만 합니다.
그래서 위로받고 싶어서 서점에서 책 네 권을 샀습니다.
그 중에 두 건은 시집입니다.
그래서 아침에 요양원에 오면 시를 읽습니다.
장판에 손톱으로
꾹 눌러놓은 자국 같은 게
마음이라면
거기 들어가 눕고 싶었다
요를 덮고
한 사흘만
조용히 앓다가
밥물이 알맞나
손등으로 물금을 재러
일어나서 부엌으로
신미나 시인이 쓴 이마라는 시입니다.
지금 제 심정이 이렇습니다.
요를 덮고 한 사흘만 조용히 앓다가
우리 권사님들이 너무나 보고 싶을 때
일어나고 싶은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합니다.
정말 사랑합니다.
아프지 말고
끙끙 앓지도 말고
그리고 외롭다고 울지도 말고
건강하게
감사하게
살지요.
1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2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3절,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한 때 베드로 사도가
이렇게 방탕하게 살아 봤는지 궁금합니다.
아마 그랬었다면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멀찍이 뒤따라가면서
난 저 사람을 모른다오!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나서
너무나 괴로웠던 것입니다.
아마 그 때 베드로가 방탕했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그리고 이 쓰라린 고통을 통하여 깨달은 말씀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스도 수난의 마음을 갑옷처럼 입어라.
과연 예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깊이 생각해 봤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있습니다.
묵묵하다.
이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분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묵묵하다. 국어사전을 열어 봤습니다.
입을 다문 채 말없이 잠잠하다.
예수님께서는 평생을 이렇게 사신 분입니다.
정말 저도 닮고 싶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그냥 묵묵히 사는 겁니다.
목사인 제가 가장 후회스럽다고 생각 들 때가 있습니다.
말을 참 많이 했을 때입니다.
그렇게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길을 올라가시는
예수님은 아무 생각도 없고 밸도 없었겠습니까?
그렇지만 사명이었기에
묵묵히 가시밭길을 걸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 때 예수님의 심정이 얼마나 참혹했겠습니까?
형제들까지
베드로까지 예수님을 버리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사람이,
우리가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피를 토하듯 하고 있는
베드로 사도가 뼈아픈 통회를 하고
깨달은 말씀입니다.
1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2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3절,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그렇지만 고기도 먹어본 놈이 맛을 안다고
나쁜 짓만 한 놈들이 또 사고를 치기도 합니다.
목사인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의 관성의 법칙이 있습니다.
하던 짓들을
어찌 하루 아침에 멈춰지겠습니까?
음란, 정욕과 술취함, 방탕, 연락 그리고 우상숭배
내가 최고이고
내 아들이 제일이고
우리 교회만 교회이고
그리고 내 말만 옳은 것이지요.
그래서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스캔들입니다.
요즘 여당, 야당 국회의원들이 잘 쓰는 용어가 있습니다.
내로남불이라.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에 허물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말씀의 주인공인 베드로 사도역시
허물투성이였습니다.
목사인 저 역시도
허물이 얼마나 많은지?
많이 부끄럽습니다.
그런데도 과거 죄의 관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결단을 내렸습니다.
1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2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3절,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4절,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5절,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 하리라
6절,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 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살게 하려 함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을 마친 뒤에 남는 것은
우리가 모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뿌린 것들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