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 08 22 제361차 한민교/글로벌 월례회 참석자 (20명)
金珉廷 金三生 金貞我 柳垈成 文貞玉 文泰光 朴二順 方龍雲 裵寅漢 王門相 尹盛昱 李貞愛 李宗來 河光範 洪秉枓. 矢野德山(大分県中津市耶馬溪烏帽子屋) 외4명(국가도시공원관계자)
● 耶馬溪(やばけい, 야바케이) 라는 지명은 원래부터 있던 이름이 아니라, 에도시대의 유학자·한학자 頼山陽(라이 산요, 1780~1832) 가 붙인 이름입니다.
* 이름의 유래는 당시 이 일대는 「山国谷(やまくにだに, 야마쿠니다니)」, 즉 '야마쿠니의 골짜기’라고 불렸습니다. 라이 산요는 문정 원년(1818년) 규슈를 여행하다가 지금의 오이타현 나카쓰시 일대인 야마쿠니다니를 찾아왔습니다. 기암괴석과 험준한 봉우리, 계곡의 절경을 보고 크게 감탄하여 이를 중국풍의 한자로 아름답게 표현했습니다.
그가 읊은 유명한 구절이 바로「耶馬溪山天下無」やばけいざん てんかになし입니다. 뜻은 대략 “야바케이의 산과 계곡 같은 절경은 천하에 다시 없다”, 즉“천하제일의 경치다”라는 극찬입니다. 여기서 기존 지명「山国谷」의 ‘やま(야마)’에 「耶馬」라는 한자를 붙이고, 골짜기라는 뜻의 「渓」를 더하여「耶馬渓」라는 이름이 생겼습니다. 이후 이 명칭이 널리 퍼졌습니다. 한자로 보면 재미있습니다
山国谷(やまくにだに)→ ‘야마쿠니의 골짜기’ 耶馬渓(やばけい)→ ‘야바의 계곡’이라는 중국풍의 우아한 명칭, 즉 「耶馬」라는 말 자체에 특별한 고유한 지명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やま(야마)’를 한학자다운 중국풍 한자로 꾸민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좋습니다.
참고로 이 이름을 남긴 라이 산요는 이후《耶馬渓図巻記》를 만들고 그림과 한시로 이곳의 경치를 널리 소개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야바케이가 전국적인 명승지로 알려지는 데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山国谷 → 라이 산요가 절경에 감탄 → 「耶馬溪山天下無」라고 읊음 → 「耶馬渓」라는 이름이 정착한 것입니다. (* 야바케이의 야노씨 집 숙박시설의 이름이 '烏帽子屋'인데 집 뒷산에 烏帽子를 닮은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 烏帽子(えぼし, えぼうし) 는 일본의 전통적인 남성용 관모(冠帽)입니다. 특히 고대부터 중세 일본의 귀족·무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신분 표시였습니다.
1. 이름의 유래
烏帽子는 글자 그대로 보면 烏(까마귀) + 帽子(모자)입니다. 烏(からす): 까마귀. 帽子(ぼうし): 모자
왜 '까마귀 모자'라고 했는지는 검은색과 관련이 있습니다. 본래 검은색으로 칠하거나 염색한 모자였기 때문에 까마귀의 검은색에 빗대어 붙은 이름으로 이해됩니다. 일본에서는 헤이안 시대부터 성인 남성의 머리에 쓰는 관모로 정착했습니다.
2. 무엇에 사용했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성인 남성임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남자가 성인이 되는 元服(げんぷく) 의례를 치를 때 머리에 관모를 씌웠는데, 무사나 일반 무사계층에서는 烏帽子를 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역사소설에서. 烏帽子を着ける
라고 하면 단순히 "모자를 쓴다"가 아니라 성인이 되어 정식 사회 구성원이 된다는 의미까지 담길 수 있습니다.
3. 신분에 따라 모양도 달랐습니다. 처음에는 비교적 부드러운 형태였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여러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立烏帽子(たてえぼし): 위쪽으로 길게 세워진 형태
折烏帽子(おりえぼし): 위쪽을 접어 눕힌 형태
侍烏帽子(さむらいえぼし): 무사들이 사용한 형태
風折烏帽子(かざおりえぼし): 위쪽을 바람에 날린 듯 접은 형태. 특히 折烏帽子는 중세 무사들의 모습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AI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