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우신문警友新聞》 편집국장이 필자에게 가장 먼저 보내준 <경우신문>인터넷판입니다.(필자 주)
경우신문 오피니언
입력 2026-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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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월을 복원하는 것은 역사를 복원하는 일입니다. 국가적인 행사가 됐든, 개인적인 가족사가 됐든, 글로 기록하는 방식과 영상으로 잡아두는 방식이 있습니다. 모든 기록 방식의 기초는 글로 남기는 일입니다. 순간 순간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순간을 글로, 영상으로 잡아 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KBS 방송 출연하면서 새삼 깨달았습니다.(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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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에세이】
전직 경찰관 ‘2002 월드컵 추억’ 복원의 의미
― KBS1 ‘6시 내 고향’에 출연, 생생한 체험담 회고 -
윤승원 수필가.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경우회홍보지도위원
깜짝 놀랄 만한 방송 출연 요청을 받았다. 오랜 세월 교양 프로그램으로 국민적 사랑을 받아온 KBS1TV ‘6시 내 고향’.
오는 6월 열리는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특별 기획한 ‘2002년 월드컵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설렘’을 동반하는 반가운 인터뷰 제의였다. 참 묘한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아내가 말했다.
◆ ‘방송 출연’은 말로 ‘수필’을 쓰는 일
“현역에서 은퇴한 지 오래된 백발노인이 그런 방송에는 뭐하러 나가느냐?”고 했다. “조용히 글이나 쓰는 사람이 요란한 방송에 나간다는 것은 걸맞지 않은 일”이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제작진의 전화를 받고 보니, 그렇게 단박에 거절할 사안이 아니었다.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다. 아내가 말했다. “머리 염색이나 하고 가세요. 전국에서 수많은 시청자가 보는 전통 있는 교양 프로그램 아닌가요?”
백발이 순식간에 검은 머리가 됐다. 거울을 보면서 내가 말했다. “10년은 젊어진 것 같네. 나이가 들수록 젊게 가꿀 필요가 있어. 머리 염색도 하고, 옷도 말끔하게 입고 말이야. 그래야 활력이 생기는 것이지. 노인네의 변신은 무죄야.”
인터뷰하러 가면서 혼잣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지금 방송 출연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한 편의 수필을 말로 쓰러 가는 거야.” 그렇다. 수필작가가 방송에 출연하는 일은 ‘말로 수필을 쓰는 일’이다. 노트북에 쓰는 수필이 아니라 마이크를 통해 쓰는 수필.
◆ 또 하나의 ‘창작 활동영역 확장’
하지만 부담스러운 일이다. 아내가 머리 염색은 해주었지만, 70대 노인의 주름은 어찌할 것이며, 느릿한 충청도 토박이 사투리는 어찌할 것인가? 매일 소통하는 친숙한 원로 문인이 격려 말씀을 주셨다.
“윤 선생, 방송은 부담이 아니라 또 하나의 창작 활동영역의 확장입니다.” 또 하나의 창작 활동영역 확장? 원로 문인다운 그럴듯한 말씀이 큰 위로가 됐다.
방송 제작진과 약속한 대로 월드컵 대전경기장에서 만났다. 24년 만이다. 감개무량했다. ‘축구와의 인연’이라고 하면 나 역시 각별하다. 우선 유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충청남도 청양군 장평초등학교. 시골 초등학교 시절에 축구선수로 뛰었다. 같은 군내 운곡초등학교에서 열린 원정 시합에도 나갔다. 축구를 유난히 좋아했던 어린이.
세월이 흘러 월드컵 경기장에 나갔다. 그라운드의 선수가 아니라 관중석 안전 질서 요원이다. 정보과 사복 근무자였지만 넥타이를 풀고 ‘노란 조끼’를 입었다.
대학생 자원봉사자와 함께 근무했다. 신분과 세대 차이를 뛰어넘어 우리는 한마음이 되어 일했다. 경기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축구경기장의 지붕은 둥글다. 하늘에서 보면 마치 ‘도가니’와 같다.
◆ ‘열광의 도가니’ 대전월드컵경기장 근무자의 긴장감
도가니란 단단한 흙으로 우묵하게 만든 것을 뜻하지만 흥분이나 감격으로 들끓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흥분의 도가니’라는 말이 그래서 생겼다.
대전월드컵 경기장 관중 수용인원은 4만여 명이다. 16강에서 8강으로 올라간 대한민국은 흥분과 감격으로 펄펄 끓는 도가니였다. 경기장 안팎에서 울려 퍼지는 “필승 코리아”. “대한민국 짝짝짝” 함성은 대한민국과 이탈리아전에서 최고조를 이뤘다.
대한민국이 2:1로 승리를 거두자 ‘흥분의 도가니’는 더욱 펄펄 끓었다. 현장 안전요원으로서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대전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렸던 이탈리아와의 16강전은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극적인 경기 중 하나로 꼽힌다.
이 경기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골을 기록한 태극전사는 설기현과 안정한 선수다. 안정환 선수가 전반전 페널티킥 실축을 만회하기 위해 보여준 집념과 마지막 골든골 장면은 지금까지도 회자하는 명장면이다.
‘노란 조끼’ 경찰 신분은 경기장 내에서 벌어질지 모르는 불의의 사고나 위해(危害) 요소 차단에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 자원봉사 대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힘든 일을 하면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다 보니 친숙한 사이가 됐다.
◆ 현장 근무 체험담 인터넷에 연재하고 책으로도 펴내
경기장에서 보고 느낀 점을 글로 써서 인터넷에 연재했다. 기자들이 취재하러 왔다. “파김치가 되도록 현장 근무하고도 하루 겪었던 일들을 생생하게 글로 쓰셨네요. 그렇게 매일 연재하려면 고단하지 않으세요?”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이다. 의미 있다고 판단해서 쓰는 글이다. 오늘 내가 겪은 세계적인 중요 행사를 생생하게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수필작가로서의 의무감도 따랐다. 국내외 수많은 독자가 댓글로 응원했다. 수고하는 경찰에 대한 응원 메시지도 이어졌다.
대학생 아들과도 실시간으로 문자를 주고받으며 응원했다. 아들은 경찰관 아버지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경기 관람보다는 안전유지에 신경 써야 하는 아버지 사정을 잘 아는 대학생 아들은 문자메시지를 보내주었다.
“아버지, 우리 한국팀이 한 골을 넣었어요. 신나요.” 경찰관 아버지가 아들로부터 받은 문자는 ‘특급 속보’였다. 같이 근무하는 동료경찰관과 자원봉사자에게도 전파했다.
월드컵의 효과는 남녀노소, 계층 구분 없이 하나로 묶어주는 마력이 있다. 국민 통합의 뜨거운 애국심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경기장 근무자들의 긴장감은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훌리건이 나타났다는 정보도 있었다. 이른바 ‘휴지 폭탄’을 던지는 사태도 벌어질 것을 우려했다. 반입 금지 물품을 철저히 차단했다.
◆ ‘월드컵이 맺어준 특별한 인연’ TV 뉴스로 보도돼
월드컵이 끝나고 방송국 기자가 찾아왔다. 월드컵 대전경기장에 다시 가자고 했다. “월드컵은 끝났지만, 월드컵이 맺어준 인연은 끝나지 않았잖느냐?”라고 했다.
대학생 자원봉사자와 함께 월드컵 경기장에서 인터뷰했다. 이튿날 TV 뉴스에 보도됐다. 취재기자가 녹화 테이프를 보내줬다. 『월드컵이 맺어준 특별한 인연』. 이날 방송된 테이프는 역사의 한 페이지처럼 가보가 됐다.
경찰관 아버지의 ‘월드컵 이야기’는 수필집에도 수록했다. 대학생 큰아들은 아빠의 글을 출판원고로 디스켓에 정리해 주었고, 그림에 소질이 있는 고2 둘째 아들은 삽화를 그려줬다. 3 부자(父子) 수필집 《부자유친(父子有親)》이 이렇게 탄생했다.
4년 만에 한 번씩 월드컵이 개최될 때마다 근무 당시 추억이 되살아났다. 그럴 때마다 현장 근무 당시 녹화 테이프를 돌려보고자 했으나 재생시킬 수가 없었다. 디지털 시대에 비디오테이프는 사장(死藏) 위기에 놓인 것이다.
이런 나의 안타까운 사연을 KBS1TV ‘6시 내 고향’ 제작진이 본 것이다. ‘추억 복원소’라는 이색 코너였다. 올해 6월에 열리는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잊지 못할 ‘월드컵 경기장 체험담’을 다시 회고하게 됐다.
◆ 고생했던 경찰관의 생생한 체험담 ‘복원’의 의미
경찰관 시절 안전요원으로 땀 흘렸던 추억도 되살릴 뿐만 아니라, 가보처럼 보관해온 방송 테이프도 ‘복원’해 준다니 이런 행운과 흥미로운 일이 어디 있는가. 고마운 일이다.
가족에게도 흥미로운 화젯거리가 생겼다. 손자에게도 할아버지가 과거 공직생활을 하면서 어떤 보람 있는 일을 했는지 생생하게 들려줄 기회를 마련해 준 것이다. 단순한 테이프 복원이 아니다.
경찰관 시절의 사명감, 젊은 날의 열정, 가족과 함께한 창작의 시간, 대한민국이 하나로 뭉쳤던 월드컵의 열기, 그리고 지나간 세월 속에 묻혀 있던 전직 경찰의 삶의 가치도 함께 ‘복원’된 것이다.
이 방송은 지난 5월 12일 방송됐다. 묻혀 있던 전직 경찰의 소중한 추억을 ‘복원’해 준 KBS ‘6시 내 고향’ 제작진에게 감사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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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난 세월을 복원하는 것은 역사를 복원하는 일입니다. 국가적인 행사가 됐든, 개인적인 가족사가 됐든, 글로 기록하는 방식과 영상으로 잡아두는 방식이 있습니다. 모든 기록 방식의 기초는 글로 남기는 일입니다. 순간 순간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순간을 글로, 영상으로 잡아 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KBS 방송 출연하면서 새삼 깨달았습니다.(필자 주)
역사학자 정구복 교수님 소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