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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초시의 상경
박 태 원
아직 오월이건만, 이 근방에는 벌써 모기가 심하다.
“철썩!”
하고, 윤초시가 제 넓적다리를 때린 것이 자리에 누운 뒤로 이번이 네 번째다.
그는 자리 위에 몸을 비스듬히 일으키어 앉으며, 남폿불에다 손바닥을 갖다 대어 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애꿎은 다리만 부질없이 후려갈긴 모양이다. 손바닥을 아무리 상고하여 보아도 마땅히 눈에 띄어야 할, 으끄러진 모기의 시체와 같은 것은 아무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찝, 찝.”
입맛을 다시고, 그는 다시 목침을 고쳐 베고, 자리에 누워, 모기에게 물린 다리를 부욱부욱 긁었다.
윤초시가 다시 머리맡에 놓았던 『전등신화(剪燈新話)』를 집어 들었을 때,
“에 헴.”
하고, 미닫이 밖에 헛기침 소리가 한 번 들리더니, 다음에,
“주무십니까?”
하고, 묻는 소리는 이 집의 둘째아들 경수가 분명하다.
“경순가? 아직 안 자네.”
윤초시는 곧 자리에서 일어앉아, 미닫이를 드윽 열었다.
“아, 누워 계시군요.”
경수는 잠깐 망설거리며, 그렇게 한마디 하였으나, 다음에 방으로 들어와 미닫이를 도로 닫았다.
안채 대청에 걸린 시계가 열점을 친다. 그 소리가 끝나기를 기다리어,
“저어, 좀 여쭐 말씀이 있어서요.”
하고, 경수는 볕 까닭 없이 방 안을 한번 둘러보고, 다음에 은근한 말소리로 한마디 하였다.
“무슨 말?”
하고, 윤초시는 자리를 한옆으로 밀고, 몸을 단정히 고쳐 앉으며,
“참, 어르신네께선, 저녁에 무얼 좀 잡수셨나?”
콧잔등이에 겉쳐 놓은 돋보기안경 너머로 경수의 얼굴을 빠안히 바라보며, 문득 생각난 듯이 물었다.
“그저 미음 두어 숟가락 뜨셨을까말까…… 병환도 병환이려니와, 제일에 잡숫지를 못하시니 그게 똑 걱정입니다.”
경수는 아직 나이 삼십이 채 못 되었건만, 늘 마음에 근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듯, 눈살을 찌푸리니, 미간에가 바로 뚜렷하게 내천자가 드러난다.
“온, 그래서야 쓰나. 그래도 억지로라도 무얼 좀 잡수셔야지.”
윤초시는 팔을 늘이어 윗목에서 장죽을 찾아 들며, 다시 한번 혀를 찼다.
“게다, 또 제 아주멈이 늘 성치 않죠. 그저 사람 사는 게 굶주리고 헐벗더라도, 집안에 우환이 없는 게 제일인데…….”
“아아무렴, 그야 다시 이를 말인가? 그저 몸부터 성하고 볼 일이지.”
“헌데, 그것도 따져 보면 집안에 근심이 있으니, 우선 가친께서만 하시더라도 그렇게 감기 끝에 몸져 누우셔 가지고 식음을 전폐하시는 게거든요.”
경수는 잠깐 윤초시의 얼굴을 빠안히 바라본 뒤에,
“원인을 따지자면, 도시, 제 형이 집을 나간 그 까닭이란 말씀예요."
“아, 그야…….”
하고, 윤초시는 황망히 입에 물었던 장죽을 빼어 들며,
“다시 이를 말인가? 모두 다 그 때문이지. 홍수가 어르신네 다음으로, 자네 댁에선, 아, 어른이 아닌가? 주장 스는 사람이 아닌가 말이야? 그런 터에 집을 버리고 서울로 올러가 이내 소식이 끊졌으니, 그게 글쎄 말이 되느냐 말이야? 자네 어르신네나, 자네 형수씨나, 모두 안 앓을 병들을 앓으시는 게지, 홍수만 집에 있다면 이런 일이 왜 생기겠느냐 말이야. 그저 홍수가 어디 있는지 찾아내 가지고, 덜미잡이를 하여서라도 끌어오는밖에는 달리 아무 수가 없다니까 그래…….”
윤초시가 자기도 모르게 홍분이 되어, 한바탕 늘어놓는 말을, 경수는 눈 하나 깜작 않고 듣고 있다가,
“그래 말씀예요. 제가 이렇게 야심해서 사랑에 나온 것도, 모두 거기 관해서 말씀을 들어 보려고…….”
“무슨 말?”
“다름이 아니라, 선생님께서 좀 수고를 해주셔야만 되겠습니다.”
“수고를 하다니?”
“지금 말씀마따나, 막말로, 덜미잡이를 해서라도 제 형을 집으로 좀 데리고 와주십사고…….”
“아, 그야, 있는 데만 알면야, 잘 타일러서 못 데리고 올 게 없겠지만, 우선 어디 있는지, 있는 데부터 알아야 할 게 아닌가?”
“있는 덴 알았답니다.”
“알았다? 그래, 어디람?”
“역시 서울 올라가 있답니다그려.”
“서울 어디야?”
“저어, 관철동이라던가 하는 데 있다는데…….”
하고, 경수는 호주머니에서 꾸깃꾸깃 구긴 엽서 한 장을 꺼내서 윤초시 앞에 내어놓으며,
“이백오십칠번지라나요? 저번에 갑득이가 나려왔을 때, 당부를 했었습죠. 호옥 서울서 제 형을 만나는 일이 있거든, 지금 어디 사나? 무얼 하고 지내나? 소상하게 기별을 좀 해달라구요.”
“갑득이라니? 구장네 아들?”
“예에, 갑득이가 서울 가서 고등학교 댕기지 않습니까? 그래, 당부를 했더니 어떻게 용하게 만난 모양입니다그려.”
“…….”
윤초시는 남포 심지를 돋우고 엽서를 읽는 데 골몰이어서 아무 대답이 없다.
“그 엽설 보시면 아시겠지만, 뜻밖에도, 제 형이 서울서 웬 여자를 하나 얻어 가지고 살림을 하고 있답니다그려. 그래 갑득이가 아무리 집안 얘기를 하고, 가친께서 병환이 위중하시단 말을 하여도, 도무지 집으로 나려올 생각을 안 하는 모양이더라니, 그래,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경수는 말을 끊고, 윤초시가 엽서를 다 읽고 나기를 기다린다. 그는 마음의 걱정이 너무 컸으므로, 방금 모기 한 마리가 자기 목덜미에가 자리를 잡고 앉아, 그 기다란 주둥이를 살 속에 박고, 한참 맛있게 피를 빨아먹고 있는 것도 깨닫지 못하였다.
“으으음…….”
윤초시는 엽서를 다 읽고 나서 입을 한일자로 꼭 다물고 웅얼거렸다.
“용수가, 위인이 원래 그렇게 녹록지가 않은데…… 더구나 제 어르신네께서 병환이 위중하시단 말을 듣고도 안연히 앉아서 돌아올 마음이 도무지 없다니…… 온, 세상에 이럴 데가 있나?”
“그러게 말씀입니다. 아무러기로서니 가친께서 병석에 계시다는데, 대체 그럴 데가 있습니까? 제 생각에는, 제 형이 아무리 타락을 하였다 하더라도 본심이 그렇게 약해졌을 것은 아니겠고…… 아무래도, 같이 있다는 그 여자 꾐수에 빠져서 그런다고밖엔…….”
“흥, 같이 있는 여자 꼬임수에?”
“예에, 카페 같은 데 있는 여자라니 아, 오죽하겠습니까?”
“그, 참, 카페라니, 그게 뭔가?”
“카페라고, 술 파는 집이랍니다.”
“술 파는 집이라? 그럼 그게 갈보가 아닌가?”
“그런 거나 진배없겠습죠.”
“허어, 이런 변이 있나? 점잖은 집안에 이런 괴변이 어디 있나? 그래 흥수가 갈보를 데리고 산다니…….”
“온, 참, 어이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계집들이란 으레 파닥지나 반반하고, 남자를 혹하게 하는 수단이 조옴 능하겠습니까? 거기 빠져가지고 전연 집 생각을 안 하는 모양이니, 글쎄, 이 노릇을 어쩝니까? 그저 아양이나 떨고, 요사스럽게 구변이나 놀리고 그러는 통에, 그만 혹해서…….”
“아아무렴, 그런 계집치고, 어디 마음 착한 게 있기 쉰가? 그래, 성현께서도, 교언영색이 선의인이라(巧言令色鮮矣仁) 하시지 않았나? 어어, 그런 계집한테 반해 가지고 부모처자를 전연 잊고, 집안을 돌보지 않는다니 그, 참, 고이한 일이로구먼.”
윤초시가 한숨 섞어 말하는 것을, 경수는 이윽히 듣고 있다가,
“그래, 선생님께 말씀입니다마는, 아무래도 이대로 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라 어떻게 선생님께서 좀 나스셔서…….”
“날더러 서울 가서 홍수를 데리고 오라는 그 말이로구먼?”
“예에, 혼자 곰곰이 생각을 하여 보았습니다마는, 역시 선생님께서 이 소임을 맡아 주셔야지, 다른 이는 도무지 감당해 낼 사람이 없습니다그려. 저도 그러셨지만, 제 형은, 특히, 선생님께서 글공부뿐이 아니라, 아주 어렸을 때부터 겉러 내다시피 하신 터이요, 그래, 제 형도 선생님 말씀이라면 결코 소홀히 알지는 않을 게라…….”
“아, 그야…….”
윤초시는 고개를 끄떡이었으나, 평생에 가본 일이 없는 서울에를, 늙은 몸이 이제 올라가서, 대체, 그 넓은 장안에 어느 구석에가 홍수를 찾아내고, 또 설사 용하게 찾아낸다더라도, 자기가 같이 내려가자면, 예에 그럽죠, 하고, 고분고분하게 따라 나설지…… 그러한 것을 생각하여 보니 얼른 마음이 내키지를 않았다.
그러나 경수가,
“그저, 젊은 제가 못 하고, 선생님을 폐스러우시게 하여 드리는 게, 이게 예가 아닌 줄은 압니다마는, 그걸 무릅쓰고 말씀드리는 게니, 괴로우셔도 수골 좀 해주셔야겠습니다. 떠나신다면 제가 곧 갑득이한테로 전보를 쳐서, 남대문 정거장까지 나오도록 할 게니까, 갑득이하고 함께 관철동이라는 데를 찾아가셨으면…….”
하고, 그렇게 말하였을 때, 윤초시는 갑자기 기운이 나서,
“성현께서도, 견의불위 무용야(見義不爲無勇也)라 하셨으니, 내, 어찌, 고만 수고를 아끼겠나? 그런데 이 말씀을 어르신네께 여쭈었나?”
“무슨 말씀을요?”
“아, 홍수 있는 데를 알았습니다고…….”
“아, 그 말씀을 지금 여쭈어 무얼 합니까? 가뜩이나 병환이 위중하신데 제 형이 그처럼 서울서 다른 계집을 얻어서 살림을 한다고 아셔만 보십쇼…….”
“그도 그렇구먼.”
“그러니 선생님께서 올라가셔서 무사히 데리고 나려오시게나 되면, 그때나 말씀을 드리더라도, 아직은 모르고 계시도록 하는 게…….”
“그도 그러이. 그럼, 자네 형수씨께도?”
“예에, 아무한테도 말을 안 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께서도 그쯤 아시고, 내일 아침 일찍이, 아무에게도 별말씀 마시고 떠나 주십쇼. 그야, 정거장까진 제가 모시고 나가겠습니다마는…….”
경수가 자기 방으로 돌아갈 때, 대청 시계는 자정을 보한다. 경수 발소리에, 뜰 아래 잠들었던 거위가 몇 마디 소리를 지른다. 개울 건너에서 닭이 한 차례 울었다.
윤초시는 남폿불 아래 단정히 앉아서, 혼자 얼마 동안을 생각에 잠겼다…….
윤초시가 경성역에 내린 것은 그로서 사홀째 되는 날 저녁이었다.
차에서 내리는 길로, 그는 사람들에게 휩싸여,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당연히 마중을 나왔어야 할 구장의 아들 갑득이를 찾았으나, 사람들이 모두 구름다리 위로 사라지고, 플랫폼에 몇 명의 역부만이 남을 때까지도, 갑득이의 모양은 그곳에 보이지 않았다.
“허어, 이런 고이한 일이 있노…….”
윤초시는 갑자기 당황하였다. 그러나 집에서 떠나올 때, 경수가 분명히 전보를 쳐놓은 터에, 마중을 아니 나올 까닭이 없는 일이어서, ‘옳지, 그럼, 예까지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기다리는지 모르겠구먼…….’
그렇게 생각하니까, 어째 꼭 그럴 법싶어서, 윤초시는 자기도 부리나케 구름다리를 올라, 개찰구로 나가 보았던 것이나, 갑득이는 그곳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허어, 이런 고이한 일이 있노……?”
윤초시는 눈곱 낀 눈을 연방 꿈벅거리며 또 한번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고이한 일’일 뿐이 아니다. 난생 처음 서울이란 곳을 올라온 그로서, 더구나 갑득이만 만나면 그만이라고 애당초에 하늘같이 믿던 마음이 있어 놓은 터이라, 이것은 참말 딱하기 한없는 사실이었다.
그는 얼마를 멀거니 역 앞 넓은 뜰에가 서 있다가, 언제까지 그러고만 있을 수 없는 것을 깨닫고, 그곳에 서 있는 지게꾼을 보고 물었다.
“저어, 서대문을 어디로 가오?”
지게꾼은, 조그만 보따리와 낡은 박쥐우산밖에는 짐이라 할 짐을 가지고 있지 않은 시골 노인을 한번 훑어보고서, 다음에 턱으로 저편을 가리키며,
“저리루 가보슈.”
한마디 하고는 돌아선다.
손기·락으로 가리켜 주어도 시원치 않을 것을, 되는 대로 턱을 한번 치켜 보였을 뿐이니, 그것으로는 대체 어디라 향방을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으나, 윤초시는 문득 저편에 보이는 성문이, 그것이 바로 ‘서대문’인가 보다고, 혼자 마음속에 작정을 하여 버리고, 그는 손수건으로 허리를 질끈 동인 박쥐우산을 질질 끌며 전찻길을 향하여 나섰다.
그러나 그가 ‘서대문’으로만 알고 있는 ‘남대문’을 향하여 전찻길을 횡단하려 하였을 때, 바로 그의 앞을 질러 자동차가 홱 가솔린 냄새를 풍기고 지나며, 운전수가 창 너머로 그를 향하여,
“빠가!”
하고, 소리쳤다. 질겁을 하여 뒤로 물러서려니까, 이번에는 그의 등뒤를 간신히 피하여 자전거가 지나며, 손주뻘밖에 안 되는 녀석이 사뭇 또,
“빠가!”
한다.
한문 한가지밖에 배운 것이라고 없는 윤초시였으나, 그래도 ‘빠가’라는 것이 욕설인 것쯤은 알고 있는 터이라,
“아, 이…….”
‘……놈아. 너는 애비도 없고, 할애비도 없느냐?’
하고, 준절히 꾸짖으려 들려니까, 저편에서 교통순사가 맹렬하게 손짓을 하며,
“빠가! 빠가!”
하고 발까지 동동 구른다.
대체 어찌하여야 좋을지를 모르는 채 어리둥절하여 전찻길 위를 갈팡질팡하였을 때, 등뒤에서,
“영감님, 자아, 얼른 건너가세요.”
하고, 젊은 여자 목소리가 들리며, 고운 손길이 그의 보따리 든 팔을 가볍게 잡는다.
하라는 대로 따라서 함께 전찻길을 건너며, 고개를 돌려 보니, 머리를 쌍둥 자른 것은 마음에 좀 못마땅하였으나, 얼굴만은 화안하고 복성스럽게 생긴 여자가, 그 마음씨도 생긴 모양 닮아서 고운 듯싶어,
“영감님, 서울에 첨 올라오셨구먼요?”
묻는 목소리도 고맙게 어여쁘다.
“예에, 아, 마중 나온단 사람이 안 나와서…….”
“그래 지금 어딜 가시는 길이세요?”
“어딘…… 갑득이 쥔집으루 가지.”
“그럼, 갑득이 쥔집은 아시나 보군요?”
“아, 알긴 내가 어떻게 알아? 이번 길이 이게 초행이라니까…….”
“그런데 무턱대구 어디루 이렇게 가시는 거예요?”
“어디로 가긴…… 그저 통호순 아니까, 물어 가며 찾잔 말이지. 하여튼 서대문 안이라니까…….”
“서대문이라면서 이리루 가시면 으떡 해요?”
“아, 저게 서대문이라며?”
“호, 호, 호…… 저건 남대문이랍니다. 어디 서대문이 남아 있나요?"
“그래도 저게 서대문이라던데…….”
“누가 잘못 아르켜 드렸구먼요…… 그래, 서대문이라니 동네 이름은 뭐예요?”
“저어…….”
하고, 윤초시는 보따리와 박쥐우산을 안전지대 위에 내려놓고, 두루마기 자락을 보기 좋게 펼치고, 조끼 주머니에서 끈으로 찬찬 감은 헝겊 지갑을 꺼내어 그 속에서 꼬깃꼬깃 접은 종이쪽을 찾아내었다.
“저어, 경성부 서대문정 이정목 삼십사번지, 김소사―라, 그랬구먼.”
“김소사요? 아깐 갑득이라시더뇨?”
“글쎄 갑득이 쥔집이 김소사 집이란 말이지.”
“네에…… 저어 서대문정 이정목이요?”
“응, 이정목 삼십사번지.”
“그럼, 그게 어디쯤이 되나?”
여자가 잠깐 고개를 기웃거리고 있을 때,
“숙자야, 지금 나가는 길야?”
하고, 울긋불긋한 양복을 입은 젊은 여자가 그의 옆으로 와서 서며, 한마디 하고, 다음에 호기심 가득한 눈을 들어 윤초시를 훑어본다.
“응, 지금 나왔어. 오늘두 동행이 됐구먼.”
“그래, 오늘은 좀 어때?”
“뭬?”
“뭔? 가레씨노 뵤키(그 사람의 병) 말이지.”
“으응…… 그저 한모양이야.”
“아이, 그래 으째애?”
“그 병이 어디 그리 쉽게 낫나?”
숙자가 수심 가득히 말하였을 때, 마침 전차가 왔다.
“자아, 타지 않아?”
양복 입은 여자가 말하는 대로, 숙자가 따라서 전차에 오르려는 것을 보고, 이제까지 멀거니 그들의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윤초시가 새삼스러이 당황하여,
“아, 여보, 색시, 갑득이 쥔집을 그래…….”
“아이 참, 내 정신 좀 봐아. 영감님 생각을 깜박 잊었지요. 참, 으떡 허나……?”
여자는 잠깐 고개를 또 갸웃하다가 마침 저편―아까 ‘서대문’인 줄만 알았던 ‘남대문’ 편에서 전차가 오는 것을 보더니,
“영감님, 좋은 수가 있습니다. 저어기 오는 차를 타시고요, 서대문에 가서 내려 달라고 그러세요. 그래 내리시면 그 앞에 파출소가 있을 게니까요. 게 가서 순사한테 번지수를 대시고 물어 보세요…… 영감님, 저어 전찻값이 있으시죠?”
“전찻값은 웬? 내려갈 때 노비밖엔 없는데…….”
“아, 오 전이 없으세요?”
“오 전? 오 전이야 있지만…….”
“그럼, 어서 전찰 타세요.”
“찻값이 오 전이야? 그럼 그리 멀지 않은가 본데…… 걸어서도 실컨 갈걸…….”
“아아니 걸어서 어딜 찾어가시겠다구…… 자아, 어서 보따리 들구 이리 옴쇼, 영감님.”
앞장을 서서 건너편 안전지대로 윤초시를 끌고 가서,
“저어, 이 영감님을요, 서대문 이정목에서 꼭 좀 내려 드리세요.”
차장에게 당부를 하고,
“내리시면 거기 파출소가 있을 게니 삼십사번지 김소사 집을 아르켜 달라세요.”
다시 한번 일러 주는 말에, 윤초시는 좀더 그 색시에게 물어 볼 것이 있는 듯이 느꼈으나, 차장은,
“어서 타슈, 어서 타.”
불문곡직하고 그의 팔을 찹아 차 위로 끌어올리고, 아주 문까지 탁 닫아 버렸다.
윤초시는 가까스로 서대문정 이정목 삼십사번지, 김소사의 집을 찾았으나 갑득이는 없었다. 주인한테 아침에 전보 오지 않았더냐고 물으니까, 왔다고 한다. 알고 보니, 갑득이는 오늘 학교에서 원족(遠足)으로 어디 문 밖에를 나가, 아마 밤중에나 돌아오리라는 것이었다.
‘그러게 그렇지. 아무러기로 갑득이가 전보를 봤으면야 정거장에 안 나올 까닭이 있나……?’
윤초시는 혼자 고개를 끄떡거리고, 갑득이 방에 들어앉아 기다리기로 하였다.
주인 여편네는 ‘밤중’이라고 하였지만, 갑득이는 그리 늦지 않게 여덟 점 반에 돌아왔다.
“아이구, 이, 웬 일이십니까? 어떻게 이렇게 찾아오셨에요?”
갑득이는 분주히 그러한 말을 한 다음에, 윤초시가 아직 저녁을 안 먹었다 알자, 마악 주인 여편네가 내어 오려는 밥상을 그만두라 하고,
“과히 곤하시지 않으시면 곧 나가시까요?”
하고 벌써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흥수한테 가보게?”
“흥수요? 흥수에겐 내일 아침에 가보시죠. 밤중에 찾아가는 것도 무엇하니…… 오늘은 진고개 구경이나 하시고, 밖에서 저녁이나 같이 잡수시고…….”
그래, 두 사람은 김소사 집을 나서 전찻길로 나갔던 것이나, 정작 그 이튼날 아침, 그들이 조반을 치르고 마악 하숙을 나서려는데, 난데없이 웬 여자 하나가 갑득이를 찾아왔다.
하고 젊은 색시가 총각을 이렇게 찾아오노……?’
하고 윤초시기· 해괴하게 생각하려니까,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끼리 잠깐 무엇이라 소곤거리고 나서, 어떻게 이야기가 되었는지, 갑득이는, 윤초시를 돌아보고,
“자아, 그럼 같이 가시죠.”
하고, 세 사람이 함께 종로로 향하였다.
“그, 웬 색신가?”
윤초시가 가만히 물어 보니까, 갑득이는, 그가 자기 친구의 누이라는 것과, 오늘 급한 볼일이 있는데, 역시 자기가 같이 가서 보아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을 한다.
“하여튼, 흥수 하숙까지 모셔다는 드릴 테니 거기 계시다가 저녁때 제게로 다시 오십쇼그려. 저도 저녁 안으로 돌아가 있을 테니요.”
그리고 그는 종각 뒤 골목을 들어가, 바른편으로 서너째 작은 골목 안을 가리키고,
“바로 저 막다른 집입니다. 그럼 이따가 제게로 다시 오십쇼.”
한마디를 남기고는, 윤초시가 채 무어라 대답할 사이도 없이, 그는 젊은 색시와 함께 저편 담뱃가게 모퉁이를 돌아 나가 버렸다.
“온, 이거 어떡하라고, 날 혼자 버려두고…….”
윤초시는 마음에 불안과 불만이 가득하였으나,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에는 달리 어쩌는 수 없고, 또 흥수만 붙들면 나중에 갑득이 사관까지야 안 바래다주랴― 스스로 마음을 든든히 먹고, 그는 그 골목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갔다.
그러나 일은 참 맹랑하였다. 그 집 건넌방에 들어 있는 사나이의 말을 들어 보면, 흥수란 사람은, 분명, 이 집 아랫방에 들어 있었으나, 지금으로부터 꼭 한 달 전에 남대문 밖, ‘아파트’라나 하는 곳으로 이사를 가고 없다는 것이다.
윤초시는 갑자기 눈앞이 캄캄하여지는 듯싶은 것을 깨달으며, 한합을 멀거니 그곳에가 서 있었다. 그래도 그는 다시 그 사나이에게 그 ‘아파트’라나 하는 집이 경성역 앞에 있다는 것을 배워 가지고, 혼자 용기를 내어 그 집을 나왔다.
흥수를 찾아보는 것이 하루쯤 늦더라도 그냥 갑득이 사관으로 돌아가 있다가, 갑득이더러 내일이라도 앞장을 서라고 하여 찾아 나설까, 하고도 생각하였다. 서대문정 김소사 집은 지금 혼자라도 어떻게 찾아갈 수 있을 듯싶었다.
그러나 모든 일을 제가 나서서 하여 주어야만 마땅할 갑득이녀석이, 젊은 색시의 급한 볼일이란 대체 무엇인지 그편에만 매어달려, 모저럼 중대한 사명을 띠고 올라온 자기를 이처럼 푸대접하는 것을 다시 생각하여 보았을 때,
‘아니꼬운 놈, 너 없어도, 내, 혼자서 흥술 찾아보고야 말 테다…….’
그렇게 홧김에,
‘무어 남대문 정거장 앞이라니, 게까지만 물어 가서, 게서 또 알아보면 못 찾일 리 있겠냐……?’
그래, 혼자 나서기가 불찰이었다.
윤초시는 네거리에 이를 때마다, 지나는 사람을 붙잡고 묻고 다시 묻고 하여, 어제 저녁에 차에서 내린 경성역 앞까지는 용하게 찾아나갔으나, 그 다음이 이를테면 큰 걱정이었다.
‘아파트’라니까, 윤초시는 지레짐작으로, 그것이 무슨 집이름이거니 하여 누구에게든 그렇게만 물으면 남대문 밖에선 다 알려니― 하였던 것이, 정작 알아보니, 그것은 어림도 없는 수작이어서,
“아파트라니, 무슨 아파트를 찾으시게요?”
하고, 사람들은 으레 되묻고,
“그냥 아파트라고만 하시면 어딘 줄 압니까?”
그리고는 저 갈 데로들 가버리었다.
얻던 학생은,
"번지는 아시나요?”
하고, 그것만 안다면 바로 자기가 나서서 찾아 줄 듯이 하였으나, 윤초시는 ‘아파트’라면 그만인 줄 알아, 애초에 그러한 것은 배워 두지를 안 하였던 것이다.
“허어, 이런 고이한 일이 있노……?”
윤초시는 어제 저녁때나 한가지로, 바로 똑같은 경성역 앞에서 몇번이고 중얼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왕 관철동에 주인을 정하였거든 그대로 눌러 있는 것이 아니라, 경망되게 또 ‘아파트’니 무어니 하는 데로 떠나간 흥수에게 윤초시는 은근히 화가 났다. 물론 흥수뿐이 아니다. 한 달이나 전에 떠나고 없는 집을 바로 흥수 들어 있는 곳이라고 편지로 알리고, 일껏 찾아 올라온 자기를,
“저어기 저 막다른 집이유…….”
하고 들이밀고는, 웬 까닭도 모를 계집애년하고 어디론지 빠져 버린 갑득이놈이 정작 좀더 괘씸하였다.
“허어, 이런 고이한 일이 있노……?”
윤초시는 또 한번 중얼거렸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러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갑득이하고 함께 그의 사관을 나온 것은 아침 열졈 반인가 그밖에 안 되었을 때인데, 어느 틈엔가 석점이 훨씬 넘었다, 초행길에, 더구나, 통호수를 모르고 찾는 터이니 이것은 도무지 될 노릇이 아니다.
‘이럴 것이 아니라 다시 갑득이에게로 가서, 갑득이보고 단단히 말을 한 다음에 오늘 안 되면 내일이라도, 갑득이를 앞세고 다시 나서야만 할밖에…….’
윤초시는 자기 단독 흥수 있는 곳을 찾을 것을 단념하였으나, 그러고 보니 갑득이 사처로 돌아가는 것이 또한 문제였다.
어제 그 색시가 아르켜 주던 대로, 전차를 또 타고 서대문서 내려, 주재소 순사에게 이정목 삼십사번지 김소사 집을 물으면 되리라고―― 그만한 꾀는 윤초시에게도 있었으나, 지금 이 넓은 마당에가 서서 가만히 보려니까 전차가 한 군데로만 다니지 않고, 제멋대로들 이리로도 가고, 저리로도 가고 또 딴길로 새기도 하고…… 잠깐 보고만 있어도 정신이 얼떨떨하다.
‘내가 어디서 어느 쪽으로 가는 차를 탔었노……?’
윤초시는 콧잔등이에 맺힌 땀방울을 씻지도 않고, 혼자 또 궁리를 하다가,
“뉘게든 또 물어 볼밖에…… 재입태묘하사 매사를 문하신대, 혹이 왈 숙위추인지자를 지례호오, 입태묘하여 매사를 문이온여, 재― 문지하시고 왈 시 ―예야니라(子入太廟, 每事問, 或曰, 孰謂聚人之子知禮乎, 入太廟, 每事問, 了問之曰, 是禮也)…… 그저 아는 것도 물어서 해야지.”
그래 옆에 지나는 한 젊은 여인을 보고,
“저어, 서대문 이정목을 가려면 어느 차를 탔으면…….”
하고 물으려니까, 채 말을 맺기도 전에,
“아, 영감님, 갑득이 집을 여태 못 찾으셨어요?”
하고 되묻는 것을 보니, 일이 참말 공교롭기도 하여, 바보 그것은 어젯 저녁 자기를 전차를 태워 보내던 그 갸륵한 색시이었던 것이다.
“아, 이거…….”
하고 윤초시는 하 반가운 통에, 하마터면 색시 손을 덥썩 잡을 뻔하였다.
“아, 영감님, 그래, 웬일이세요?”
“아, 집을 찾으러 나왔다가 이번엔 또 갑득이 집을 잃어버려서…….”
“영감님은 매일 집만 찾으러 댕기시는군요. 그래, 오늘 찾으신다는 집은 찾으셨어요?”
“웬걸……? 다 못 해 그냥 갑득이한테나 도루 가려는데, 이번엔 아침에 나온 그 집을 또 그만 잊어버려서…….”
“아아니, 오늘 찾으신단 집은 뉘 집 이게요? 통호순 아시겠죠?”
"글쎄 그걸 모르는구려. 그냥 정거장 앞 아파트라나 뭐라나 하는데 있다고 그러는데, 그걸 도무지 알 수가 있에야지.”
“아파트요? 무슨 아파튼지두 모르세요?”
“그것도 모르지.”
“그럼, 성씨는 누군데요?”
“저어 흥수라고…… 고흥수라고…….”
“네에? 고흥수요?”
뜻밖에도 색시의 눈이 신기하게 똥그래지며,
“영감님, 영감님은 고흥수하고 어떻게 되시나요?”
“응, 흥수로 말하면 어렸을 때부터 내가 글을 가르친 사람이지, 글을 가르친…… 헌데 색신, 호옥 고흥수를 아우?”
윤초시는 ‘고흥수’라는 이름을 듣고 그처럼 놀라는 젊은 여인의 모양이 이상하게 생각되어, 허허실수로 그렇게 묻기는 하였으나, 색시가 다시 눈을 신기하게 깜박거리며,
“저어, 그럼, 호옥 윤초시 영감님이 아니신가요?”
하고, 알은체를 하는 데는 그만 어리등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어떻게 나를…….”
하고, 윤초시는 한참 만에 의아스러이 되물었으나, 색시는 그 말에는 아무 대답을 않고, 앞장을 서서 결어가며,
“영감님, 그럼 저만 따라오세요.”
한다.
어인 영문을 모르면서도, 하여튼, 인제는 염려 없이 흥수를 찾아보게 되는 듯싶은 것이 마음에 고마워, 부리나케 색시 뒤를 따라가러니까, 아까 윤초시가 일껏 그곳까지 찾아가서 그 앞을 빙빙 돌면서도 종시 몰랐던 삼층집으로 썩 들어간다.
‘오오라, 삼층집을 가지고 아파트라고들 그러는 게로구먼. 온, 그걸 누가 알았나……?’
윤초시는 색시를 따라 그 안으로 들어가며, 혼자 고개를 끄떡이었다.
그러나 그 색시의 뒤를 쫓아 층계를 올라, 이층 구석진 방 앞까지 갔을 때,
“잠깐만 게서 기대리세요.”
하고, 그가 들어간 방문 기둥에 붙어 있는 ‘고흥수’의 명함을 보고는,
윤초시는 그만 얼떨떨하여 몇 번인가 고개를 기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아니, 대체, 이 색시가 누구기에 이렇게 흥수 방에를 인사도 없이 드나드노……?’
아무래도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눈만 꿈벅거리고 있으려니까, 얼마 안 있어 다시 방문이 열리며,
“오래 기다리셨죠? 누추한 곳입니다마는 좀 들어오셔요.”
하고, 색시가 말한다.
‘오오, 그럼, 이 색시가 바로 흥수의·…‥.’
하고, 윤초시는 그제야 그러한 것에 생각이 돌며, 하여튼 안으로 들어서려니까, 저편 창 앞에 대낮에 자리를 깔고 드러누워 있다가 상반신을 일으키고 앉아,
“아아, 선생님께서 이거 웬일이십니까?”
하고,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은, 역시, 틀림없는 흥수였다.
“아, 자네 좀 보러 왔지.”
윤초시는 색시가 권하는 방석 위에가 앉아서,
“아아니, 자네, 그래, 어디가 몸이나 불편한가?”
하고 물었다. 오랫동안 이발을 게을리하여 어지러운 머리털이며, 수염이며, 또 양볼이 쪽 빠진 창백한 얼굴이, 누가 보기에도 오랜 동안 병상에 들어 있는 사람이 분명하였다.
“네에, 그 무어, 대단친 않습니다만…….”
하고, 흥수는 생각난 듯이,
“그래, 인제 올라오셨어요?”
한마디 묻고, 그는 색시더러 적삼을 달래서 샤쓰 위에다 겹쳐 입는다. 이 더운 날, 홍수는 볕 잘 드는 방 속에서 한기를 느끼는 모양이다.
“응, 어젯저녁에…….”
“엊저녁이요? 그래, 사관은 어디다 정하셨나요?”
“응, 갑득이 쥔집에…….”
“그래, 혼자 나오셨어요? 으떻게 용하게 찾으셨구먼요.”
“용하게 찾은 게 다아 뭔가? 여길 찾느라고 참말 죽을 고생 했다네.”
“아, 왜, 오늘 일요일이고 허니, 갑득이두 놀 텐데 데리구 나오시지 않으시 구…….”
“아, 나오기야 함께 나왔지. 헌데 관철동 말이야. 자네 먼점 들어 있던 주인집. 게까지 끌고 가서는, 나 혼자 내버려두고 저는 웬 색시하고 어디 볼일이 있다고 가버리네그려.”
“온, 저런…… 저이가 이 집으루 옮겨 온 지가 벌써 한 달이 되는 걸요.”
“글쎄 말일세. 그래 그 집 사람한테 물어 보니, 무어 정거장 앞 아파트라나 하는 곳으로 떠났다지? 예에라, 가보면 찾겠지……하고 이 앞까지 와선, 아, 혼자서 서너 시간을 착실히 헤매 돌았네그려.”
흥수는 기계적으로 저편 책상 위에 놓인 시계를 돌아보고,
“온, 그럼, 여태 점심두 뭇 잡수셨구먼요.”
그리고 곧 색시 편으로 고개를 돌려,
“여보, 얼른 좀 나가서 무어 요기하실 것 좀 적당허게…… 저어 선생님께서 약줄 질기시니…….”
색시가,
“녜에.”
하고, 핸드백을 들고 마악 방문을 나서려 할 때, 흥수는 다시,
“참, 담배두 좀 사오구.”
그리고는 윤초시에게로 고개를 돌려,
“집 안에 담배 하나 없습니다그려. 제가 안 먹은 지가 그게 벌써 석 달이 넘으니까요.”
“아아니, 그럼, 그 동안 담배를 끊었던가? 그, 참, 좋은 일일세.”
그러나 흥수는 호젓하게 웃고,
“웬걸, 끊구 싶어 끊었나요? 제 병에 담배가 기하는 게 돼놔서…….”
“아아니, 그럼 자네가 벌써 여러 달째 이렇게 자리에 몸져 누웠었네그려? 대체 병은 무슨 병이기에?”
윤초시가 새삼스러이 뇰라는 얼굴로 묻는 것에, 홍수는 다시 한번 외롭게 웃고,
“폐가 성하지가 못허답니다.”
“아아니, 무어? 폐가?”
“녜에.”
“아, 자네가 원래 몸이 허약하진 않았는데, 그, 웬일인가?”
“모르겠습니다. 의사는 제가 불규칙한 생활을 허기 때문에, 그래, 몸을 버렸다구 그럽니다마는…… 하여튼 제가 회사를 그만둔 지가 꼭 두 달이 됐으니까요.”
“온, 저런 변이 있나?”
“그래, 제 수입이라군, 도무지 딱 끊져 버리구, 약값은커녕, 하루 세 끼 밥 꿇여 먹기두 어려울 지경이라, 그래, 숙자가 다시 카페루 나가게 됐습니다마는…….”
하고, 흥수는 윤초시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저이들이 이럭허구 사는 걸 선생님께선 으떻게 생각하실지 모릅니다마는, 숙잔, 참말 무던헌 여잡니다. 참말 그런 여잔 다시 없죠.”
“…….”
윤초시는 잠깐 어찌 대답할 바를 모르는 채 멍멍히 앉아 있었다.
어젯저녁 전찻길에서 처음 길을 배웠을 때부터, 윤초시는 그 숙자라는 색시에게 은근히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금 흥수가 그를 가리켜 무던한 여자라고 말하는 것에, 그저 무조건하고, 동의를 표하고도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가 띠고 온 사명과는 서로 배치되는 의견이다. 윤초시는 좀 난처하였다.
윤초시가 아무 말이 없으니까 흥수도 입을 다물고 잠시 잠잠하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고개를 들고,
“참, 선생님, 저를 보시러 이처럼 올라오셨다니,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윤초시는 잠깐 망설거리다가,
“응, 자네 어르신네께서 편찮으셔서…….”
하고, 우선 한마디를 한 다음에 그의 기색을 살폈다.
“…….”
흥수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기운 없이 고개를 숙이더니, 조금 있다 한숨이라도 토하는 듯싶은 것이 윤초시에게 느껴졌다.
“자네 내상도 근래 몸이 불편하신 모양이고…….”
“…….”
“나로서 그런 말 하기는 처지가 거북하이마는, 집안에 우환이 있으면 그게 다아 어려운 노릇이 아니겠나? 무어 그것이 자네 까닭일 턱은 없는 게지만, 그래도 어르신네께서 자네를 꽉 믿고 계시던 터에, 자네가 서울로 올라와 딴살림을 시작하였으니, 그것이 근심이 아니 되실 까닭 없는 게고…‥.”
“…….”
“그래, 근래는 거의 식음까지 전폐하시다시피 하시니, 아모래도 큰 일이라, 자네 계씨 말도 그런데, 하여튼 자네가 집으로 다시 돌아와, 집안사를 주관하지는 못 하더라도 관계찮으니, 한번 아버님이나 뵈옵고, 얼마간 노여움이라도 풀어 드려야 도리가 아니겠냐고…….”
“모두들 뭐라구 그래요?”
흥수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물었다.
“제가 서울 와서 이러고 사는 걸 퍽으나 비난들 허죠?”
“비난이야…….”
하고, 윤초시는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한마디 하였으나, 다시 자기가 띠고 온 사명을 생각하고, 설사 흥수에게는 좀 섭섭하게 들릴지 모르더라도, 어떻든 할 말은 다 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라고 고쳐 생각하고,
“바른 대로 말하자면, 자세한 사정을 모르니까, 모다들 좋게는 말을 않지.”
“어떻게들 말을 해요? 상관 없으니 들으신 대루 솔직허게 좀 일러주세요.”
“무어 솔직하게 일러 주고 여부가 없네마는…… 모두들 그러더구만. 자네가 양친시하에, 또 처자를 거느린 몸으로 집을 버리고 서울로 올라가 첩 얻어 딴살림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라고…….”
“…….”
“자네가 원래 그럴 사람이 아니라, 이는 필연코 여자 꼬임에 빠진 까닭일 게라고…….”
“후유 ―”
하고, 흥수는 풀이 죽어 한숨을 쉬었으나, 윤초시의 나중 말에 그는 다시 고개를 들고,
“제 소행에 대한 여러분의 꾸지람은 저로서 한마디 변명헐 여지 없이 달게 받겠습니다. 허지만 숙자를 고약헌 여자같이 말씀허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꼬이긴 누가 꼬여요? 꼬였다면 오히려 제가 숙잘 꼬였다구나 헐까요?”
“아, 글쎄, 그건 시골서들 모르고 하는…….”
“숙자가 나쁜 여자라구 가상헌다면 제가 대체 뭘 바라구 저 같은 남잘 꼬였겠습니까? 제가 대체 재산이 있습니까? 지위나 권세가 있습니까?”
“…….”
“처자 있는 몸으로서 다른 여자에게 정을 줬다는 것이, 죄라면 제 죄지 그 정을 받았다구 해서 숙자가 부당허게 비난을 받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참말 무던헌 여자죠. 여염집 규수가 아니라, 카페 같은 곳에 여급으루 있는 여자래서, 죄없이 남의 욕두 받게 되나 봅니다마는, 양갓집 여자면 어느 여자가 숙자만 허겠습니까? 제가 폐병쟁이루 회사두 못 댕기구 이렇게 밤낮 누워 있는데, 얼굴 한번 찡그리는 일 없이, 참말 지성껏 간홀 해주죠. 저도 인물루나 뭣으루나 남만 뭇헌 터가 아니니, 이해타산을 허구 뎀빈다면, 대체 뭘 바라구 제 옆에가 붙어 있을 겝니까? 호옥 회살 그만두기 전이라면 또 모르죠. 회사두 쫏겨나구, 몸은 또 이 모양으루 언제 성헌 사람이 될지두 알 수 없는 일. 더구나 시굴엔 어엿헌 처자가 있으니, 진정으루 제가 절 생각해 주는 게 아니고는, 그야말루 무슨 천작으루 제게 붙어 있겠습니까?”
“…….”
“그저 하루만 제게 계셔 보시면, 선생님께서두 단박에 믿어 주실 줄 압니다마는, 참말이지 숙자가 절 위해 주는 맘이 끔찍허죠. 저기 놓인 저 약이 모두 숙자가 제 병 고쳐 주려구 구해 온 게랍니다. 그뿐인가요? 숙잔 뉘게서 해주 구세요양원으로 가서 치료 받는 게 그중 좋단 말을 듣구, 돈을 주선해서 저를 그리 보내려구까지 했답니다. 점에서 삼백 원이나 빚을 얻어 가지구…… 허지만, 전, 극력 반댈 했죠. 삼백 원씩이나 빚을 얻어 그걸 언제 어떻게 갚습니까? 그래서래두 병이나 난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 그것두 믿을 수 없는 일이구, 공연히 숙자 고생만 더 시키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뿐이 아니죠. 요양원이 얼마나 좋은 덴지 모릅니다마는 전, 숙자 옆을 떠나선 못 살 것 같애요. 조석으루 저를 받들어 주는 마음, 제 맘이 행여 어둘까 봐서, 어떤 괴로움을 당허더래두 언제구 명랑헌 표정으루 대하여 주는 그 얼굴…….”
흥수는 차차 흥분된 어조로 말하다가 어느 틈엔가 두 눈에 어린 눈물을 스스로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윤초시도 깨닫지 못하고, 침 한 덩이를 꿀떡 삼켰다.
“절 데리러 선생님께서 올러오신 줄은 저두 압니다만, 선생님이 모든 사정을 모르셨으면 모르지, 이제 이만큼 숙자란 여잘 아신 이상에는, 설마 저더러 숙자와 갈러서라군 안 허시겠죠?”
“…….”
“숙잔 그냥 제가 좋아서 데리구 사는 단순헌 계집이 아닙니다. 은인이죠. 큰 은인이죠. 은인이면 이만저만헌 은인입니까?”
“…….”
윤초시는 얼마 동안 말을 못 하다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자네 말은 잘 알았네, 잘 알았어…… 내가 무턱대고 자네더러 색시와 갈라서라거나, 집으로 돌아가자거나 할 경개가 못 된다는 것도 알았네. 허지만 어떻든 자네 일로 하여서 집안이 그야말로 난가가 된 것을 또 어쩌면 좋단 말인가? 자식 된 도리로 어버이께 근심을 끼치고, 병환이 중하신 줄 알고도 돌아가질 않는대서야 되나? 가서 뵈어야지. 뵙는 게 도리지. 허지만 자네한텐, 또 자네 형편이 거북하고…… 참말 난처한 얘길세, 난처한 얘기야.”
그래, 두 사람이 서로 외면을 하고 얼마 동안 무거운 침묵이 방 안에 가득하였을 때, 숙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디, 이 근처에 드릴 만헌 음식이 있어야죠? 양식이나 화식은 더구나 입에 안 맞으실 게구…… 그래, 청요리를 시켰는데요.”
“…….”
흥수는 복잡한 감정을 감추려고 숙자에게서 외면을 한 채 그냥 두어 번 고개를 끄떡이었다.
“선생님, 담배 태우시죠.”
숙자는 윤초시 앞에 담배를 내놓으며 말하였다.
“예에.”
윤초시도 외면을 한 채 대답하였다. 요리는 조금 뒤에 운반되었으나, 두 사람은 모두 아무 식욕도 느끼지 않았다. 그래도 흥수는 주인답게 윤초시에게 권하였다.
“선생님, 한잔 드십쇼. 퍽 시장허실 텐데요.”
“뭐얼…… 시장치 않으이.”
숙자가 따라 주는 술을 윤초시가 거북하게 받았을 때, 갑자기 흥수가 말하였다.
“나두 한잔 줘.”
숙자는 눈을 뚱그렇게 뜨고 말하였다.
“약준, 왜 갑자기, 잡수려구 그러세요?”
윤초시도 말하였다.
“자넨 몸 생각을 해서라도 술 같은 것은 삼가야 않겠나?”
그러나 홍수는 고집하였다.
“아니에요, 몇 잔쯤 상관없겠죠.”
숙자는 그러는 흥수의 옆얼굴을 이윽히 바라보다가,
“그러시지 말아요. 몸에 해로워요.”
그리고 잠깐 망설거리다가 말하였다.
“아주 선생님두 계신 앞에서 제가 한 말씀 허겠는데, 무슨 말이든 역정 안 내시겠어요?”
“…….”
“이건, 저의 평생 소원입니다마는, 이번에 모처럼 선생님도 이렇게 올러오시구 하였으니, 아주 이 기회에 댁으루 내려가시는 게 어떠시겠어요?”
“…….”
“옳지 않은 일인 줄은 알았습니다마는, 제가 밖에서, 두 분 허시는 말씀을 모조리 들었습니다. 그래, 여러 가지루 생각하여 보았습니다마는, 역시 댁으루 돌아가시는 게 제일 좋다구 믿어져요.”
“…….”
“전, 첨에, 당신께서만 저를 돌봐 주신다면, 설사 다른 이들이 뭐라구 저를 욕허구 비난허든, 상관없다구 생각하였었죠. 우리만 깊이 서루 이해허구 애정이 두터우면 그만이 아니냐구, 그렇게요. 허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어요― 자기의 행복을 위하여 남을 불행헌 구뎅이에 떨어뜨리는 것이 결코 옳지 않은 일이라구요. 옳지 않은 일일 뿐 아니라, 그렇게 얻는 건, 결코 참말 행복일 수 없다구요. 그것두 남이 아니구, 바루 양친 부모님께 그처럼 근심을 끼치구 부인과 애기까지 불행허게 하여 드리다니…… 그리구 그걸, 여태까지 그리 죄스럽게두 생각을 허지 못했다니, 제가 다아 배운 게 없는 탓입니다.”
“…….”
“아까 말씀에, 절, 은인이라구까지 과분힌 말씀을 하셨습니다마는, 절, 참말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면, 제발이지, 절, 고약헌 년이 되지 않게시리 선생님 모시구 댁으루 내려가 주세요. 그리구 부모님 병환도 나시게 하여 드리구, 부인 마음도 편안허게 하여 드리세요. 저 하나 때문에 왼집안이 그처럼 불안하셔서야 어찌헙니까? 당신을 떠나 보내는 것이 저의 앞길에 광명을 빼앗기는 거나 다름이 없지만, 그래두 오히려 그편이, 제겐, 떳떳하죠. 당신 부모님께, 부인께, 또 어린아이들에게, 이 이상 몹쓸년이란 소릴 듣지 않는다는 것만 생각해도 마음이 얼마나 편안한지 모르겠습니다.”
“…….”
“제가 이 뒤에 설사 불행허다 허드래두 그건 어쩌는 수 없는 일이죠. 저 하나의 불행으루 왼집안이 평화로우시구, 행복되신다면…… 당신의 부모님께서나 부인께선, 댁의 행복을 위허시어 저의 불행을 요구허실 권리가 있으시죠. 허지만 그 권리가 제겐 없으니까요. 제가 당신을 모시구 있어서 행복이라 허드래두, 그건 참말 행복이 못 되죠. 설사 행복이라 부를 수 있다드래두 의롭지 못헌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제발 부모님께 이 이상 근심을 더 끼쳐 드리지 마시구, 댁으루 돌아가십쇼. 그리구 고요헌 시골, 맑은 공기 속에서, 어서어서 병환을 고치세요.”
숙자는 용하게 거기까지 말을 이어서 하였으나, 복받쳐 오르는 울음을 이내 더 참을 길 없어, 그는, 그대로 그 자리에 엎더져 소리를 내어 느껴 울었다…….
마침내, 흥수가 윤초시를 따라 서울을 떠나는 날, 경성역두에는 숙자 혼자 배웅을 나왔다. 갑득이는 이날도 무슨 긴한 볼일이 있다 해서 어디를 가고 안 나왔다.
윤초시는 기운이 없었다. 흥수를 자기 손에다 돌려주고, 여엉영 그와 헤어지려는 숙자를 눈앞에 두고, 마음에 애달픔이 하나 가득하였다.
자기가 서울에 나다남으로 하여 숙자에게 크나큰 불행을 준 것 같아서 견딜 수 없었다.
‘내가 왜 이런 소임을 맡아 가지구 서울까지 올라왔누……?’
하고, 새삼스러이 그러한 것까지 뉘우쳐졌다.
떠나는 흥수나, 보내는 숙자나, 마음에 슬픔이 어찌 없겠느냐? 하지만 그들보다도 정작 마음이 슬프고, 괴롭고, 또 죄스럽기까지 한 것은 윤초시 영감이었다.
숙자는 흥수의 마음을 다시 어둡게 하지 않기 위하여, 얼굴에 웃음조차 지어 가지고 그를 바랜다. 그러나 그 웃음은 땅을 치고 통곡하는 것보다도 보는 이들 마음에 애처로웠다.
윤초시는 그에게 한마디 위로하는 말을 주고 싶었으나, 적당한 말이 쉽사리 생각되지 않았다. 혼자 초조하였을 때, 플랫폼에 벨이 한차례 울리고, 기적 소리가 들린 다음에, 덜컥 하고 차체가 움직이었다.
그 순간, 윤초시의 머릿속에 「논어」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그는 그대로 황망히 창 밖으로 고개를 불쑥 내밀고, 거의 울음 섞인 목소리로 숙자를 향하여 소리쳤다.
“색시, 잘 있수. 덕불고라 필유인이라(德不孤 必有隣)고, 성인께서도 말씀하셨지. 마음이 그처럼 착하고 좋은 일이 왜 없겠수? 색시, 부디 잘 있수.”
(『박태원단편집』, 학예사,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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