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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구비전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예예
성 경 : 마 6:9-13절
제 목 : 주기도문은 신약시대의 기도가 아니다
일 시 : 2024. 2. 4.
마 6:9-13/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오늘말씀은 지난 주에 전했던 새 언약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주어지는 말씀이지 여러분을 힘들게 하거나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서 주어지는 말씀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죄와 죽음과 저주에서 구원하시려고 계획하신 구속사역이 완성된 것은 요19:30/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는 말씀과 함께 예수님께서 무덤에 장사지낸 바 되셨다가 3일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이 보좌 우편에 앉으신 후에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습니다. 바로 이 때 신약교회(예루살렘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승천을 중심으로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나누게 됩니다. 비록 신약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라도 하더라도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가르친 말씀이라고 하더라도 구속사역이 완전되기 전에 주어진 것들은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에게 주신 말씀들이며, 새 언약의 백성인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주기도문은 신약시대의 성도들에게 주신 기도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구약의 율법시대와 신약의 복음시대를 확실하게 구분짓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1. 우리가 지금까지 예배시간이나 개인적으로 드려 왔던 주기도문은 주님의 기도가 아니라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눅11:1/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제자 중 한 사람이 제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께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을 때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그러면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라는 말씀은 이런 방법으로 기도하라는 것이지 주문처럼 외우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이렇게 란 후토라고 하는데 이 길로, 이 방법을 따라, 처럼, 이런 방법으로, 그렇게(같은 방법으로)라는 뜻으로 이런 방법으로 즉 기도의 형식과, 방법과, 틀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기도의 방법론을 가르쳐 주신 것이지 기도문을 주문처럼 외우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기도의 모델로 주신 것이지 그대로 암송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기도에 대해서 가르치실 때 우리가 알고 있는 주기도문만을 주신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의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강청하는 기도, 과부의 기도,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기도,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등등 너무나 다양한 방법으로 기도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은 주문처럼 외우라고 주신 기도문이 아니라 기도의 표준과 모델로 주셨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다양한 기도들이 있는데 어떤 종류의 기도를 하든지 주기도문의 표준과 모델로 기도하라고 주신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강청하는 기도를 하든지, 부르짖는 기도를 하든지,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에 나오는 과부의 기도처럼 기도하든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를 하든지, 어떤 종류와 어떤 문제로 기도하든지 항상 기도할 때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모델로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시기 전에 바로 앞에서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셨고, 또한 바리새인들처럼 외식하는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시기에 앞서서 이방인들이 주문을 외우듯이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외우는 (예/남묘호랑객교)처럼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주기도문은 주문처럼 외우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이런 방법과 순서를 따라서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문을 주문처럼 반복해서 외우는 기도는 이교도들이 하는 기도입니다. 절에 가면 중들이 반복해서 주문을 외우고, 성당에 가면 묵주기도라고 해서 주문을 외우듯이 반복해서 기도합니다. 그런 주문을 외우듯이 하는 기도는 성경적인 기도가 아닙니다. 종교에서 만들어 낸 기도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예수님을 믿으면 가장 먼저 주기도문을 외워야 한다. 주기도문을 100번 암송하면 병이 낫고 귀신이 떠나간다는 식으로 주기도문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주기도문을 외운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지만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근본의도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방종교와 이교도들은 그들의 신을 감동시켜야 하니까 주문을 반복해서 암송하고 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2.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시고, 우리의 필요를 다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주기도문 바로 앞에서 마6:7-8/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방인의 기도는 주문을 반복해서 외우는 중언부언하는 기도인데 그것을 본받지 말라고 하시면서 우리가 믿는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은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만약 주문처럼 외우라고 주신 기도문이라면 마태복음 6장과 누가복음 11장에 나오는 기도문이 똑같아야 하는데 서로 다릅니다. 그러니까 주문처럼 외우라고 주신 기도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 기도는 새 언약의 백성들이 드리는 기도가 아닙니다. 즉 예수님의 구속사역이 완성되기 전에 주어진 기도입니다. 즉 신약이 시작되기 전의 기도이며, 새 언약의 축복이 시작되기 전의 기도입니다. 신약성경에 기록되었다고 하더라도 아직 예수님의 구속사역이 완성되어 새 언약의 축복이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실 그 때 제자들은 새 언약 안에서 거듭나지 않은 유대인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3. 구약의 유대인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와 신약시대의 성도들의 기도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신약시대의 기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14:13-14/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고 했습니다.
주기도문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신약시대의 기도가 아닌 구약시대의 유대인인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4. 이제 주기도문을 통해서 모법적인 기도의 원리, 성경적인 기도의 원리를 살펴보겠습니다.
9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했습니다.
9절에서 배울 수 있는 내용이 두 가지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했습니다.
1)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께 기도를 드립니다.
기도의 대상이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무섭고 두려운 신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고 가까이에 계신 친밀하신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아버지가 우리의 기도의 대상이라는 말씀입니다.
2) 두 번째는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감사와 찬양으로 아버지께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시100:4/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이방인들은 두려움과 부족함 속에서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구걸하는 식으로 기도하지만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자요, 부요한 자로서, 즉 이미 모든 복을 받은 자로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과 나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하는 기도가 이방인들의 기도이며, 종교적인 기도라고 한다면 반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초점을 맞추고 찬양하면서 나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아서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선하신 하나님을 몰라서, 또는 믿음이 없어서 받지 못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주시기 싫어서 못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두려움과 부족함에 근거해서 구걸하듯이 나아가는 기도는 종교적인 기도입니다. 반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근거해서 담대함으로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자가 아니라 사랑의 아버지이심을 믿고 감사하며 찬양함으로 기도를 시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10절을 읽겠습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했습니다.
1) 먼저 나라가 임하시오며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신약의 기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 달라는 기도는 잘못된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마28:18절에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했으며, 그래서 너희는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의 권세를 가지고 세상으로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약시대는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에 이미 임했습니다. 예수님이 곧 천국이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바로 그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칠 당시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왕국이 아직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마귀의 머리를 깨뜨리고 지옥에 가셔서 마귀의 권세와 능력을 완전히 박탈하여 빼앗아 버리고 마귀에게 빼앗긴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왕권)을 가지고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귀에게서 빼앗은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고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주기도문을 가르치던 그 때는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죽지 않았고 어두움이 여전히 세상을 다스리고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마귀는 세상의 신이요 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구속이 완성되면 세상의 신이 심판을 받기 때문에 더 이상 나와는 상관이 없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고, 마귀의 왕국이 무너진 상태입니다.
골2:13-15절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골2:13-15/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마귀의 머리를 깨뜨리시고 마귀의 권세를 빼앗아서 그의 권세를 무력화시키시고 마귀의 정체를 만천하에 들어내서 구경거리로 삼으셨습니다. 마귀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심령 안에 들어왔습니다. 고전3:16/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고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 달라는 기도는 구약시대의 기도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인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안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와 통치가 임해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들어와 계신 예수님께서 내 마음을 다스리고 있고, 우리 가정과 교회를 다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2) 10절에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기도도 신약의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질병이 없습니다. 병에 걸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에는 가난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가난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이미 이 모든 복을 부어 주셨습니다. 이제는 그것이 나의 삶에 나타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기도는 맞지 않습니다.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이 나타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실 그 당시의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고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가 주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나타나도록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했다면 신약시대는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도록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고 선포하게 되면 질병과 가난은 떠나고 부요와 건강이 임하게 됩니다. 질병과 통증은 사라져라고 선포하고 명령하면 떠나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임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부요과 건강과 형통이)이 땅에 나타나도록 명령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에게 직접 말하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가 주어졌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명령하면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몸과 삶과 이 땅에 나타나게 됩니다. 너무나 중요한 원리입니다.
11절을 읽겠습니다. 마6:11/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고 했습니다.
이것도 새 언약의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루 하루 그 날에 필요한 것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의 영안에 모든 필요가 채워졌기 때문에 필요를 의식하지 않고 공급을 의식합니다. 필요는 하나님이 알고 계시기 때문에 필요를 채워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신에 공급을 의식해야 합니다. 신약의 기도는 필요가 채워졌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필요를 채워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구약시대의 기도입니다. 우리는 필요가 이미 채워졌음을 선포하면 됩니다. 일요할 약식을 주장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빌4:19/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며, 시34:10/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우리에게는 충분한 공급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공급되어 있다는 것을 믿고 믿음으로 손을 뻗어 취하기만 하면 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나는 나의 치유를 받습니다. 나의 나의 부요를 받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합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 감사합니다. 모든 좋은 것들이 나의 삶에 오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아버지께서 이미 공급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또한 아버지께서 좋은 것을 주시지 않은 것이 한 번도 없으셨습니다. 나는 그것들을 예수 이름으로 이미 받았습니다라고 선포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필요를 채워 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를 공급하셨다고 선포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부족함을 채우시는 정도가 아니라 날마다 차고 넘치도록 공급해 주십니다.
마6:12절을 읽겠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고 했습니다.
이것도 새 언약의 기도가 아닙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나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은 신약의 교리와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죄를 용서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제사를 드린 것 때문이며,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죄를 용서를 받은 것이지 나의 행위 때문에 용서받은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자녀의 유업입니다. 주님을 믿고 영접했다면 우리는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를 다 용서받았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께 나의 죄를 용서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들어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죄를 용서하시는 그 마음을 나도 가지고 있어서 기쁨으로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는 것이지, 나의 죄를 용서받으려고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6:13절을 읽겠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라고 했습니다.
마6:13절의 기도도 신약의 기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십자가와 부활이전의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당연히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시험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약1:13/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십니다. 만약에 시험에 들었다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마귀로부터 온 것입니다. 만약 시험에 들었다면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아버지, 내가 시험에 드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닙니다. 나는 이 시험을 거절합니다. 나는 시험을 넉넉히 이결 낼 수 있습니다.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마6:13절을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 기도도 신약의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악에서 구출되었기 때문에 이런 기도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악이란 악한 자, 마귀라는 뜻입니다. 때문에 이것은 다만 마귀로부터 구원하옵소서 라는 기도인데 이미 우리는 마귀의 손에서 구원을 받았고, 이제는 마귀를 발로 짓밟을 수 있는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이제는 마귀가 우리로부터 구원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골1:13/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나라 안에 있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있으며, 마귀는 우리에 대한 법적인 지배력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우리는 막16:17절 말씀처럼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권세와 능력은 사탄의 권세보다 월등하게 뛰어나고 우세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악에서 구원해 달라고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6:13/...(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부분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니까 주기도문은 찬양으로 시작해서 찬양으로 끝낸다는 원리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일명 샌드위치 기도라고 합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가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기도를 하든지 어떤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든지 부족함을 채우려고 구걸하고 떼를 쓰는 그런 기도가 아니라 사랑하는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면 주신다는 그런 믿음으로 기쁨과 감사함으로 찬양하면서 나아가서 기도하고 구하는 것이고, 또한 기도를 마치면서도 넘치도록 부어 주실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찬양으로 기도를 끝내라는 것이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목적입니다.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의 기도가 감사와 찬양으로 시작해서 감사와 찬양으로 끝내는 믿음의 기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아멘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 홀로 앉으십시오.
1. 마6:9-13절을 읽고 이 기도문을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봅시다
♡ 함께 나누십시오.
1.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나누는 중요한 분기점은 무엇입니까?
2.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주기도는 어떤 사람들의 기도와 달라야 합니까?
3. 구약시대의 기도와 신약시대의 기도의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4. 9절하반절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5. 10절의 기도가 왜 신약시대의 기도가 아닙니까?
6. 11-13절의 기도가 신약시대의 기도가 아닌 이유는?
7. 주기도문 시작과 마지막부분을 통해서 샌드위치기도라고 말하는 이유는?
1.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승천하심
2.기도문을 주문처럼 반복해서 외우는 이교도들의 기도와 달라야 합니다
3.신약시대의 기도는 예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4.예수그리스도의 의에 근거해서 담대히 나아가 심판의 하나님이 아닌 사랑의 아버지이심을 믿고 감사하며 찬양함으로 기도를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5.신약시대는 주님의 나라가 이땅에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에 이미 임했기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곧 천국이고 하나님나라인데 이 예수님이 우리안에 들어오셨기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습니다
6.11절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의 영안에 모든 필요가 채워졌기때문에 모든필요가 채워졌다고 선포하는것이지 필요를 채워 달라고 기도하는것은 구약시대의 기도입니다 12절은 나의 행위로 용서받는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속죄제사 곧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 받았고 예수님의 용서하는 마음이 내안에 있어 나도 기쁨으로 다른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13절은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십니다 나는 시험을 거절합니다 그리고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는 우리는 이미 악에서 구출되었기 때문에 마귀를 짓밟고 쫓아내는것입니다
6.찬양으로 시작해서 찬양으로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