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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구비전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예예
성 경 : 사 42:1-9절
제 목 :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2
일 시 : 2024. 10. 9.
이사야 42:1-9/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2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7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8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9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알리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에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교회 다니는 사람이나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불신자들이 상당히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교회 다니는 사람정도로만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것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단정해 버립니다. 물론 진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당연히 정기적으로 또는 매일 교회에 출석합니다. 그러나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것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단정하는 것은 어느 정도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철저하게 안식일을 지키고 3대절기와 5대절기를 지킬 뿐 아니라 율법준수에 철저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셨을 때 그들은 예수님이 주시는 참된 복음과 구원에 대해서 사사건건 반대하고 예수님을 핍박했습니다. 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두 번 행하셨던 성전을 청결하게 하는 사건을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고 돈 바꾸는 사람들을 향하여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마21:12-14/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14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마21:15/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보다 과거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키는 일에 더욱더 철저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예수님께 일곱 번이나 화 있을진저 라고 책망받고 버림받았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들이 율법을 지킨 것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외식 때문이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외형적인 모습은 모두 갖추었지만 하나님의 성품을 닮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유대인인데 속으로는 강도였으며, 마귀의 자식들이었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닮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었지만 속으로는 마귀의 성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결정적으로 버림받은 이유였습니다.
오늘날 교회 다니는 사람을 그리스도인 또는 성도라고 생각하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 중에 그리고 직분을 받은 자들 중에 전혀 예수님을 닮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교회를 다닐 뿐이고 또한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직분을 받았을 뿐이지 진정한 의미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자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지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요14:12/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고 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라는 말씀은 엄청 강조해서 하신 말씀이며, 너무나 중요한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하늘과 땅으로 맹세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말씀입니까? 그 뒤에 나오는 두 가지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1) 첫 번째는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라는 말씀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넓게는 공생애 사역을 그대로 재현하는 삶을 의미하며, 요약하면 예수님의 삼대사역을 그대로 재현하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마4:23-25/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25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처럼 산다는 것은 예수님의 삼대사역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①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②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③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라는 이 세 가지의 일을 행하는 사람이 곧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2)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아가되 예수님의 삼대사역을 행해야 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보다 큰 일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셨기 때문입니다. 육체를 가진 예수님은 더 이상 세상에 머물러 있지 않으시고 하늘로 올라 가셨습니다. 대신에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아들 예수님께서 세상에 육체로 계실 때에도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으로 사셨던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도 육체적인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야 된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의 과제는 예수님처럼 살아가되 예수님의 성품을 닮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과 그보다 더 큰 일을 행할 수 있는 성령의 능력을 동시에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사역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첫 번째는 성령의 9가지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전12:7-11/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9가지 은사는 모두가 성령의 능력을 받을 때 그리고 성령의 능력을 받은 사람들에게 나타나고 주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간절히 사모하고 기도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이 세상 어떤 것보다 더욱더 간절히 사모할 때 성령의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2) 두 번째는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갈5:22-23/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의 9가지 열매는 곧 아버지와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예수님의 중요한 성품 두 가지는 겸손과 온유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더 넓게 보면 9가지 성품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초자연적인 은사인 성령의 9가지 은사를 받고 또한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이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예수님의 성품과 능력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닮아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처럼 사는 삶입니다. 교회를 다니고 목사가 되고 장로 권사 집사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성령의 능력으로 살면서 삼대사역을 행하는 삶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B.C.745-695년까지 50년간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즉 웃시야 왕이 죽던 해부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700년 전의 인물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700년 전에 이 땅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예언을 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많은 예언들 중에서 이 땅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대한 핵심적인 예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소개하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크게 두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1) 첫 번째는 예수님의 성품에 대해서 예언했습니다. 2) 두 번째는 예수님의 능력과 하실 일에 대해서 예언했습니다.
1.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소개합니다.
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특징 짓는 세 단어가 소개되었습니다.
① 내가 붙드는 나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붙드는 이란 타마크 라고 하는데 기본어근 떠받치다, 함축적으로는 단단히 지키다, 상징적으로 돕다, 바싹 따르다, -쳐들다, 유지하다, 보유하다 라는 뜻입니다. 붙드는 자란 하나님께서 단단히 지키시고 돕는 자라는 뜻입니다. 아무도 손댈 수 없도록 철저하게 지키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종이라고 했습니다. 종이란 에베드 라고 하는데 하인, 노예의 신분, 노예, 종이라는 뜻입니다.
②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라고 했습니다. 기뻐하다란 라짜라고 하는데 기본어근 ~을 기쁘게 여기다, -받아들이다, 애정을 품다, 기뻐하다, 호의를 가지다, 좋아하다 라는 뜻입니다. 기뻐하다란 기쁘게 여기고 좋아하다 라는 뜻이며, 어떤 흠이나 단점도 없기에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100% 만족한다는 뜻입니다.
③ 내가 택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택하다란 바히르라고 하는데 선택, 선택된(사람, 것), 뽑힌(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뽑아서 선택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 너무나 기뻐하셔서 아무도 손댈 수 없도록 철저하게 지키실 뿐 아니라 하나님이 특별히 뽑아서 선택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을 보내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특별히 성령님을 그 안에 보내셨습니다. 성령님을 받으셨고,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고 했습니다. 이방이란 고-이라고 하는데 이방 나라, 이교도, 이방인 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을 의미합니다. 정의란 미스파트라고 하는데 본래 의미는 법률적으로 선언된 판결, 공식적 선언으로 법 또는 거룩한 율법이라는 뜻입니다. 정의란 하나님의 법으로서 말씀을 의미합니다. 베풀다란 야짜라고 하는데 나가다,이끌어 내다, 양육하다, 나오다, 펼치다 라는 뜻입니다. 베풀다란 나타내거나 펼치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을 받으셔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뜻인 말씀을 베푸시고 나타내셨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들이나 수로보니게 여인같은 이방인들까지도 예수님을 믿고 따랐습니다.
3)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라고 했습니다.
① 먼저 외치지 아니하며 라고 했습니다.
외치다란 짜아크 라고 하는데 기본어근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다, (회집을)선언하다, 불러 모으다, 부르짖다, (함께)모이다, 모여 들다 라는 뜻입니다. 외치다란 듣기에 거슬리는 날카롭고 큰소리로 외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조금만 거슬리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큰 소리로 고함을 치고 화를 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자신을 괴롭히고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식으로 화를 내고 싸우지 않으셨습니다.
②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라고 했습니다.
목소리를 높이다란 나싸 라고 하는데 기본어근 들어 올리다, 초래하다(낳다), 공급하다, 조장하다, 산출하다 라는 뜻으로 화가 났을 때처럼 목소리나 언성을 높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화가 나서 씩씩거리면서 화를 낸 적이 없었습니다.
③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목소리가 길거리에서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말하거나 고함을 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도 부부싸움을 하면 옆집에서도 들을 수가 있고 길을 가는 사람들까지도 들을 수 있도록 요란하게 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과 우리들이 닮아야 할 성품입니다. 예수님은 과격한 성품의 소유자가 아니셨으며, 화를 잘 내고 큰 소리치는 분도 아니셨습니다. 예수님은 온유하셨습니다. 우리의 성품이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4)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며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①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라고 했습니다. 상한 갈대란 바람 때문에 그 연약한 줄기가 상처를 입지만 꺾이거나 뽑히지는 않는 갈대를 의미합니다. 즉 마치 상한 갈대와 같이 연약하고 결점투성이인 인생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은혜로써 강하게 세워 주시는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은 예수님이 체포되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됨을 포기하고 다시 고기를 잡으러 갈릴리 바다로 돌아갔으며, 다른 제자들도 베드로를 따라 어부의 삶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상한 갈대같은 그들은 꺾지 않으셨습니다.
②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며 라고 했습니다.
꺼져 가는이란 케헤 라고 하는데 연약한, 모호한, 약간, 어두운, 어둑어둑한, 차차 어두 침침하게 되다 라는 뜻입니다. 꺼져 간다는 것은 기름이 다 떨어져서 점점 어두워지는 이라는 뜻입니다. 등불이란 심지를 의미합니다. 기름이 없어서 가물가물 꺼져 가는 심지를 의미합니다. 끄지 아니하며란 끄다란 카바라고 하는데 기본어근 꺼지다, 또는(불, 등불, 화를)끄다, 나가다 라는 뜻입니다. 꺼져 가는 등불을 끄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혀 가능성 없는 인간들이라도 너는 가능성이 없어 라고 버리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③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참되게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내거나 베푸신다는 뜻입니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참되게 가르치고 베푸신다는 뜻입니다.
5)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고 했습니다.
①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라고 했습니다. 쇠하다란 카하라고 하는데 기본어근 약하다, 즉(상징적으로)낙담하다, 또는(빛,눈의 경우)흐려지다, 어두워지다, 어두컴컴하다, 약해지다, 희미해지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약해지거나 눈이 흐려지거나 어두워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② 낙담하지 아니하며 라고 했습니다. 낙망하다란 라짜쯔라고 하는데 기본어근 산산조각 나다, 문자적으로나 상징적으로 깨뜨리다, 타박상을 입히다, 낙담시키다, 압박하다, 서로 다투다 라는 뜻입니다. 낙담하거나 그 결과 서로 다투지 아니한다는 뜻입니다. 서로 다투는 이유는 낙담했기 때문입니다.
③ 세상 정의를 세우다란 이 땅에 정의를 가지고 오다라는 뜻입니다. 이 땅에서 불의를 몰아내고 참된 정의를 가지고 오시는 분이십니다.
④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고 했습니다. 섬들이란 작은 섬, 시골이라는 뜻이며, 교훈이란 토-라라고 하는데 법칙, 또는 법령 특히 십계명, 또는 모세 오경, -율법이라는 뜻입니다. 앙망하다란 야할이라고 하는데 기본어근 기다리다, 끈기있는, 소망, - 바라다, 믿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이시기 때문에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율법을 기다리고 소망하고 바란다는 뜻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쳤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가르침을 기다렸으며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쇠하지 아니하고 낙담하지 아니하고 또한 우리가 가르치는 말씀을 사람들이 바라고 기다리며 우리가 가르치는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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