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40여년 근무한 직장(청주덕성유치원)에서 퇴임인사를 했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8월 하순부터 원아들이 등원을 했다.
아이들에게 이임인사를 하지 않고 말없이 마무리 하고 싶었다. 주로 인사발령은 겨울· 여름방학 말미에 있기에 아이들이 나오지 않아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갑자기 원장이 바뀌면 원아들이 궁금할 것 같으니 이임 인사를 간단하게라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직원의 권유를 받았다.
여름방학 과제물 시상식을 마친 후 유희실은 나의 퇴임 소식에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유아들에게 설명하기 어려웠지만 나름대로 이해를 시켰다. 헤어짐에 대한 감정은 어른과 아이들이 똑같았다. 가장 어린 반도 말없이 앉아 있었다. 원생 대표가 나와 읽는 편지는 내 눈을 젖게 했다. 억지로 눈물을 참아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130명의 유아들이 보는 앞에서 어른인 나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런 내게 아기천사들은 각반에서 고사리 손으로 쓰고 그린 그림편지와 천사들의 얼굴이 담긴 꽃편지를 하나씩 안겨줬다. 그 선물을 받아들고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아기들을 포옹해 주었다.
조용하던 유희실에 아기들의 눈을 비비는 모습이 보였다. 큰반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여기저기서 흐느낌이 들렸다. 아기들과 길게는 3년 함께 지내서 정도 많이 들고 아기였던 천사들이 이제 의젓한 유치원생이 된 것이다. 나도 4년 반의 긴 세월을 한결같이 한곳에 있었기에 끈끈한 정이 더 많이 든 것 같았다.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으며 아기들을 한명씩 품에 안아주었다. 그 헤어짐이 끝난 후 내 집무실에 와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다. 보라반 아이들이 담임교사와 함께 여러 명이 몰려왔다. 그리고 내 주위에 빙 둘러서서 옷자락을 붙들고 계속 울었다, 담임교사도 울고, 나도 울고 아이들도 부둥켜안고 울었다. 담임은 아이들의 울음이 그치지않아 나있는 곳으로 데리고 왔단다.사람은 반드시 만나면 헤어진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를 거스를 수는 없는 것 같다.
퇴임시 근무한 유치원이 부임시에는 원사 언덕 아래에 슬래트집 두 채와 허물어져 가는 초가집 한 채가 있었다.
근무하는 동안 집들을 하나하나 철거한후 말끔하게 정리되어 주차장과 놀이터가 있는 유치원으로 바뀌었다. 청주에서 가장 열악한 환경이라 사람들은 기피했지만 숲이 있는 그곳이 좋아 오랫동안 머물 수 있었다.근무하는 동안 내 집처럼 편안했고 그곳에서 생활하는 유아들이 친손자 손녀처럼 사랑스러웠다.
가을을 기다리는 감나무, 교문 옆에 청초하게 피어있는 코스모스, 아기천사들과 꿈을 키우던 봄까치 언덕, 봄이면 노란 봄을 가득 담아준 개나리 물결, 봄바람에 떠밀려 내리던 꽃비, 모두 내 마음에 한곳에 자리 잡고 이제 그만 헤어짐의 인사를 나누라 한다. 마지막 이별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여러 마음이 들었다. 눈물이 나면 어떻게 하지.
며칠 전부터 그것이 마음에 가득해서 하루하루 지나가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그날이 오니 감당하기 힘든 서글픔이 밀려와 많은 사람들이 이별을 하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눈물과 아쉬움을 마음에 가득 담고 긴 시간 드나들던 곳을 떠나왔다.
유치원의 둥지를 떠났지만 가정과는 새로운 만남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아기들의 빈자리엔 구피의 정겨운 모습과 석곡, 들꽃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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