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왕산(仁王山) 산행
초여름 날씨 치고는 무척 무더웠던 날(5/16), 교직에서 은퇴한 대학교 과 동기들과 함께 한양도성(漢陽都城)길 4코스인 인왕산(仁王山)에 올랐다. 인왕산은 서울시 종로구와 서대문구의 경계에 있는 높이 338m의 나지막한 산이다. 산 전체에 화강암 암반이 노출되어 있으며, 북악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어 조선시대부터 명산으로 알려져 왔다. 북악산을 진산으로 하는 서울의 성곽이 능선을 따라 동쪽으로는 자하문~명륜동~동대문으로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인왕산~사직동~홍제동까지 이어진다.
인왕산은 태조가 한양에 수도를 정한 이후 서울의 서쪽에 있는 산이라고 해서 서산으로 불렀으나 광해군 때에 인왕사(仁王寺)라는 절이 있어 인왕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조선조 후기의 화가인 정선과 강희언의 산수화, 그리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仁王山(인왕산)이라 쓴 것이 확인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임금 왕(王)자에 날 일(日)자를 덧붙여 왕성할 왕(旺)자로 고쳤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본래의 이름을 되찾아 다시 仁王山(인왕산)이라 표기하고 있으니 산의 이름에서도 우리민족의 자존심이 느껴진다.
풍수지리적으로 보면 경복궁이 있는 북악산을 중심으로 동쪽에 있는 낙산이 좌청룡을 이루고 서쪽에 있는 인왕산이 우백호의 형상을 이룬다. 그래서일까 예전에는 인왕산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했다고 전한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태종 5년에 호랑이가 경복궁 뒤뜰에 들이닥쳤다는 기록이 있고, 연산군 11년에는 종묘에 나타났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도성의 민가에도 자주 출몰하여 인명 피해가 적잖았다고 하니 ‘인왕산 호랑이’라는 말은 본시 호랑이의 용맹스러움을 얘기한 것이 아니라 호환이 두려워 생긴 말로 여겨진다.
인왕산 남서쪽 산자락에는 조선시대 때 조정에서 남산의 산신인 목멱대왕에게 제사를 지내던 국사당(國師堂)이 있다. 국사당은 아담한 맞배집으로 무신도(巫神圖)를 보관하고 있으며, 본래 지금의 남산 팔각정 자리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남산에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인왕산으로 옮겨 지었다. 그리고 국사당 뒤에는 기묘한 형상의 바위가 우뚝 서있으니 바로 선바위다. 이 바위는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상이라는 얘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뒤에서 바라보면 마치 스님 둘이 참선을 하는 듯이 보여 ‘선(禪)바위’라 불리기 시작했다.
선바위에서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잘 이루어졌다고 하여 선바위는 일찍부터 무속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전국적으로 보이는 암석숭배의 일종으로서 이곳에서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낳게 된다는 속설 때문에 여인네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선바위는 기자석(祈子石)으로도 불린다. 특히 일제강점기 때 남산에 있던 국사당을 선바위 옆으로 옮긴 뒤부터 이곳은 무속신앙과 더욱 밀착되었으며, 지금도 국사당과 선바위 주위에는 무속의 신당이 많이 생겨 연일 꽹과리 울리는 소리와 함께 강신굿, 치병굿, 재수굿같은 굿판이 벌어지곤 한다.
아침 10시에 인왕산과 북악산 사이에 있는 창의문에서 길을 잡아 윤동주문학관 뒤쪽에서 시작되는 도성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도성길은 산마루를 따라 축성한 성곽을 따라 오르기 때문에 앞만 보고 걸으면 꽤나 단조롭게 느껴진다. 그러나 멀리 북한산과 서울시가를 조망하며 걸으면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그리고 기차바위를 거쳐 범바위를 지나 산의 정상에 오르면 북악산과 인왕산에 길게 이어진 한양도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왕산 정상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선바위를 거쳐 독립문까지 내려오는데 3시간 30분이 소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