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길
그리스도인들을 가장 근심하게 하는 문제는 바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구하는가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서 행하는 모든 일이 다 공허하고 헛된 수고이며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님을 안다. 우리는 큰 일을 하기보다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 아무리 크고 좋으며 유익이 많은 일들이라 해도 그 일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이 아닐 수 있다. 선한 것은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만일 우리가 행한 일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있다면 주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우리의 마음은 결코 즐겁지 않을 것이다. 비록 우리가 온 종일 분주하게 열심을 낸다 하더라도 그러한 수고는 영적 세계에서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 또한 당신은 그 일의 결과로써 하나님의 칭찬과 상급을 얻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생명과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간구해야 한다. 우리는 무감각하게, 느슨하게, 어리석게 일해서는 안 된다. 많은 경우 성경을 읽거나 기도를 하거나 복음을 전할 때조차도 우리는 주님의 뜻을 구하는 것을 잊어버린다. 또 어떤 경우에는 사람과 오랫동안 말씀을 교통하고 나서야 자신이 거기서 아무런 목적 없이 말씀을 교통했다는 것과,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한 일들은 하나님 앞에서 중요하지도 않으며 아무 가치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알아야 할 아주 큰 문제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한 첫 단계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견을 떨쳐버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을 우리에게 지시해 주실 때 우리의 의견은 항상 방해가 된다. 당신에게 의견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을 당신에게 지시하시더라도 당신은 그것을 듣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할 것이다. 설사 깨닫는다 하더라도 당신은 그렇게 행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체험에 의하면, 내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할 때는 대부분 나 자신의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때 나의 뜻은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다. 만일 내가 자신의 뜻을 제하지 않는다면 주님의 뜻을 구하는 데 있어서 항상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일단 자아의 뜻이 제해지면 얼마 안되어서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나타내실 것이다.
자아의 뜻이 틀림없이 제해져야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우리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하다. 때로 우리는 겉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이기적인 뜻과 의견과 자기를 기쁘게 하려는 다른 목적을 가진다. 때로 우리가 무릎 꿇고 기도할 때에도 입으로는 "주여, 당신의 뜻을 내게 보이소서. 당신의 뜻을 행하기 원합니다" 라고 하지만 실제로 마음속에는 원치도 않으며 찬성하지도 않는다. 때로는 우리가 입으로 "아버지여,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 원합니다. 오로지 단순히 당신의 뜻을 구합니다"라고 기도했기 때문에 입술에 동정을 표하듯 마지 못해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는 자기의 뜻을 구하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이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지 못한다. 이것은 가식적으로 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참되게 얻지 못한다.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라는 약속은 성실하지 않은 자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참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없다. 우리가 자기를 위로하면서 "나는 이미 하나님의 뜻을 얻었다"라고 말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 자신의 생각 속의 산물일 뿐이며 하나님의 뜻인 양 조작한 것에 불과할 것이다!
만일 우리의 마음에 사모하는 것이 있고 먼저 정한 뜻이 있다면 주님의 뜻을 구하는 것은 다 헛된 일이다. 자기 뜻 - 마음속에 두고 있는 것 - 을 가지고 한 모든 기도는 다 공허한 것이다. 설령 매일 기도하고 간구한다 하더라도 소용없다. 그러므로 매번 주님의 뜻을 구할 때마다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자아의 뜻이 없는지, 자신이 선호하는 것과 사모하는 것은 없는지 주 안에서 스스로 살펴보아야 한다. 더럽혀지지 않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효력이 없다.
당신 앞에 두 갈래 길이 놓였는데, 하나는 당신이 가고 싶어 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가고 싶지 않은 길이다. 만일 주님이 당신에게 가고 싶지 않은 길을 가라고 하신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당신은 스스로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 만일 당신이 가고 싶지 않은 길을 꺼린다면 당신이 주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떤 갈림길에 있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치우치지 않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어떤 길도 사랑하지 않고 어떤 길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당신 앞에 놓여진 길에 대해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잡힌 마음을 갖는 것이다. 그럴 때만이 주님께서 당신에게 어떤 길을 지시하시든 그 길을 갈 수 있다. 마음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다면 당신은 쉽게 그분의 뜻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쪽으로 치우침과 불순종은 주님의 뜻을 아는 데 아주 큰 장애이다.
당신 앞에 놓여진 길에 대해서 당신의 마음의 선호가 없다는 것이 수동적인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마땅히 자기의 판단력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할 것인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마음의 선호가 없다는 것은 '원함'과 '원치않음'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전에는 당신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뜻을 세우고 하나님의 뜻인 줄 알 때에는 즉시 그것을 행한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뜻은 앞에 놓인 길에 대해 '원한다' '원치 않는다'의 선택이 없다. 즉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자기 뜻을 행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을 택하고 자기 뜻을 거절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뜻과 어떤 선택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우리의 뜻과 선택은 하나님의 뜻과 선택을 위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어떤 원함도 없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어떤 원함이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원함이 곧 우리의 원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첫 단계는 바로 우리 앞에 놓은 길(어떤 길이 주님의 뜻인 줄 모름)에 대해 어떤 선호를 갖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뜻이 이와 같이 주님의 뜻에 항복되기를! 우리가 주님의 뜻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이점에서 실패하기 때문일 것이다. 주님은 기꺼이 주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그분의 뜻을 보이신다. 기꺼이 주님의 뜻을 행하려 하지 않는 사람이 주님의 뜻을 추구하는 것은 거짓된 것이다. 거짓되게 추구하는 자에게 주님의 뜻이 발견될리 없다. 그러므로 마음이 어딘가에 기울어진 사람은 주님의 뜻을 구하고 있다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먼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원함을 깨끗이 처리한 다음 그분의 뜻을 알려고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앞에서 말한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방면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조건을 이행할 때 하나님은 대체 어떤 방법으로 그분의 뜻을 나타내시는가? 답변은 성경과 성경의 환경을 통해서이다. 성경과 성경과 환경의 안배, 이 세가지가 일치되었을 때 우리는 곧 하나님의 뜻인지 판단할 수 있다.
우리는 날마다 모든 일에 마땅히 이렇게 주님의 뜻을 구하여야 한다. 평소 많은 작은 일들은 자기 뜻대로 행하고 큰일이 임할 때만 주님의 뜻을 구한다면 그때 주님은 마치 당신과 멀리 있는 것 같을 것이다. 이것도 주님의 뜻인 것 같고 저것도 주님의 뜻인 것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크고 작은 모든 일에서 주님의 뜻윽 구해야 한다. 평상시에 주님의 뜻을 구하는 습관을 길러 둔다면 특별한 일이 일어날 때에도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아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주님의 뜻을 아는데 익숙해야 하고 주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이 어떤 일이 발생해도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행할 수 있다.
어떤 때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그분의 뜻을 알려 주지 않으신다. 아버지 하나님은 영원히 틀리지 않으신다. 그분은 그분의 뜻을 조금 늦게 계시해 주시는 것이 우리에게 더 유익하다고 보실 때에는 좀 늦게 그분의 뜻을 계시해 주신다. 이때에 우리는 모르면 행하지 않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우리의 위험은 움직이기를 좋아하는 데 있다. 주님의 뜻을 알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시작하려고 한다. 주님은 우리가 그분의 뜻을 안 후에 행동하기를 원하신다. 즉 그분은 우리가 그분을 기다라고 그분과 천천히 전진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환경에 쫓겨서 서둘러 일하기를 좋아한다. 결국 그러한 일은 대부분 주님의 뜻에 어긋나게 된다. 내가 확신하건데 성급하게 이루어진 일은 십중팔구 주님의 뜻에 일치되지 않는다. 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우리는 그분께서 어떤 일을 성급히 처리하시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그분을 본받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주님의 뜻을 분명히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결코 함부로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주님의 뜻을 발견한 후에 행동을 취해야 한다. 주님과 동행하는 것은 더딘 것이 아니다. 무릎 꿇고 주님과 함께 전진하는 것이 가장 빠른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셔서 우리가 그분 앞에서 잠잠히 그분의 뜻을 기다리고 구할 수 있기 바란다. 그분 앞에 나아가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조급했음을 자백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오늘 이후로는 우리 자신을 내려놓고 자아를 멀리하고 단순히 주님의 뜻을 구할 수 있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