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김새록
검은 꽃무늬 양산 속을 걷다 외
김새록
가슴이 없는 태양은 세상을 휘어잡는다
된 더위를 쏟아붓는다 하늘을 누비고 땅을
짓밟으며 퍼져나간 위력에 지렁이가
항복을 하고 길 위에 대자로 누워 있는 거리로
검은 꽃무늬 양산이 걸어간다
양산 속에서 여자는 알몸의 태양을 즐기며
하얗게 핀 꽃무늬로 변신한 채 무차별적으로
칼끝을 휘두르는 뙤약볕을 품는다
너는,
잉카제국의 염전 밭을 지나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으매 내일은
푸른 나락이 황금들녘으로 해탈할 것이고
사과 빛이 더욱 붉어질
너의 절정을 적시는 여자는,
사랑이 짙어가는 배롱나무 곁에서
익어가는 태양의 열매를 그리며
날개를 펼쳐 든
검고 하얀 꽃무늬 양산 속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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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로 하는 달 2
강둑은 홀로
춤과 격렬한 꽹과리로 무너지고
잠을 유보한 채
강물과 남몰래 밀어를 떠올렸다
서러움에 몸을 떠는
마을의 불빛도 흐려지고
한금씩 빛을 채웠다
낮은 지붕마다
쓸쓸한 잔해들이 흩날렸다
섧게 눈이 뜨거워진
흐느끼는 숲을 적셨다
지상은 서린 독기로
어쩔 수 없는 안개를 피우고
이슥한 뜰을 벗겼다
내가 창백한 얼굴에 지쳐
수평선 가장자리로 돌아들면
분노를 억누르는 나무들이
강가에 도열한다
수면에 비친
그림자를 집어 올렸다
깊은 물 속에 잠들어 있는
구비치는 은빛 다랑어를 좇아
오랜 여정의 뒷덜미에
곤한 어깨를 내려놓았다
막다른 길은
커다란 파도가 물구나무 서 있고
나는 어느새 돌아가는 길목에 서 있었다
김새록
전남 담양출생으로 2017년 《계간문예》에 시 등단하고 2004년 《수필과비평》 신인상을 받았다. ‘문학도시’, ‘부산시인’ 편집위원이며 영호남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빛, sns를 전송하다』가 있으며 수필집 『달빛, 꽃물에 들다』, 『변신의 유혹』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