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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7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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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 소천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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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봉화 춘양면과 소천면의 경계를 이룬 각화산(1,177m)은 참으로 오지인 경북 봉화군의 산이다. 각화산은 경북 봉화군 춘양면과 소천면 사이에 왕두산(1,044.3m)과 나란히 솟아있다. 백두대간이 경상북도와 강원도의 경계를 이루며, 태백산에서 구룡산 방향으로 용틀임하듯 뻗어나가다 수다산에서 갈라져 내려온 한 줄기에 위치한다
춘양목이라 불리우는 재질 좋은 이 지방의 소나무를 군목으로 삼은 이 고장 사람들은 곧 자란 춘양목을 닮은 곧 높은 기개를 자랑한다. 태백산에서 문수봉쪽으로 가면서 오르게 되는 첫번째 봉우리가 부쇠봉이다. 이 봉우리에서 백두대간이 갈린다. 백두대간을 따라 남서방향으로 흐르다가 서향하면 백두대간이고, 그대로 남쪽으로 빠진 산줄기는각화산-왕두산-형제봉 등 능선을 뻗어내리다가 법전리에서 끝나는데 이 능선은 춘양면과 소천면의 경계를 이룬다. 이 능선이 끝나는 곳에 춘양 3거리가 있고 여기에서 봉화 - 울진행 36번도로가 동서로 뻗어 있는가 하면 북으로는 춘양면을 거쳐 도래기재를 넘어 영월군으로 연결된 998번 도로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이 회랑에는 철도 영동선이 지나기도 하는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동서축 가운데서도 중요한 축으로 동서교통의 요지라고 해야 할만한 곳이다. 각화산은 이 삼거리에서 북으로 998번 도로와 운곡천을 따라 8.4킬로미터쯤 들어가면 나오는 석현리에서 올라간다. 산세는 중후하고 모난 데가 없는 육산의 풍모를 보인다. 운곡천 바닥의 해발높이는 400미터 정도이다. 각화산 동쪽 계곡의 물은 건너편 청옥산 계곡물과 합쳐져 현동천을 이룬다. 그리고 서쪽 계곡물은 신선봉 계곡의 물과 어울려 운곡천으로 흘러든다. 천미터급 산들이 즐비한 각화산 일대의 이 지역은 계곡이 깊고, 수량이 풍부해서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그래서 여름철에는 계곡의 아름다움과 삼림욕을 즐기려는 피서인파로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 각화산 산행 들머리는 춘양면 소재지에서 운곡천을 끼고 나 있는 998번 지방도를 따라 7km 북쪽에 위치한 석현리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석현리에서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2km 정도 올라가면 각화사라는 오래된 절이 나온다. 이 절은 신라 문무왕 16년, 서기 676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태백산사고의 수호사찰이다. 절 뒤편의 소박한 싸리문을 나서면 바로 등산로가 두 갈래로 나있다. 여기서 왼쪽 계곡길은 각화산 정상으로 곧장 이어지고, 오른쪽은 왕두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다. 오른쪽 길을 택해 30여분 올라가면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자리잡은 암자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각화사의 금봉암인데 지금은 동암이라고 불리워진다. 동암 앞에는 샘이 있으며, 등산로는 이곳에서 다시 두 갈래로 나뉘어진다. 오른쪽은 바로 왕두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며, 왼쪽은 왕두산에서 각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올라서는 길이다. 오른쪽 등산로를 따라 사면을 20여분 오르면 헬기장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전망이 확 트여 남동쪽으로 형제봉과 화장산이 보인다. 주릉에 올라서기 전, 길은 자시 희미해지다가 갈참나무 숲이 우거진 곳으로 이어져 바로 왕두산 정상에 도달한다. 왕두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능선길을 따라 20여분 가면 비교적 평탄한 곳에 무덤이 하나 나온다. 여기가 바로 동암에서 왼쪽 길을 택하면 올라서게 되는 지점이다. 여기서부터 등산로는 완만한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갈참나무 사이로 난 능선길을 따라 낙엽을 헤치며 약 30분쯤 걷다보면 나즈막하나 약간 가파른 봉우리 하나를 넘게된다. 이곳은 각화산 정상 바로 아래로, 등산로는 두 갈래로 갈라진다. 곧장 올라가면 정상에 닿고, 밑으로 가면 계곡을 지나 각화사 뒤편 싸리문으로 이어진다. 태백산 사고지(史庫址)는 밑으로 난 길을 따라 10여분 내려간 7부능선의 구릉지에 있다. 내려가는 거리도 짧고 정상도 거의 다왔으니 사고지에 한번 들러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태백산사고지는 91년 2월에야 사적 348호로 지정됐다. 한양의 춘추관 및 강화도, 묘향산, 오대산의 사고(史庫)와 더불어 조선 후기 5대 사고 중의 하나로 1606년 지어져 왜정시대인 1913년까지 300여년간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역사적인 장소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은 당시 조선총독부에 의해 경성제대로 올겨졌고, 건물은 해방 이후 원인 모를 불로 완전히 타버렸다. 사고지는 일부분이 산사태로 묻히고 잡목이 우거져 주춧돌만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사고지 옆에는 오래된 샘이 하나 있다. 내려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도 되지만 사고지 뒤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능선으로 올라설 수 있다. 30여분을 가면 헬기장이 나온다.그리고 5분 정도 오르면 아름드리 갈참나무가 들어선 원시림 지대 다음에 헬기장이 또 하나 나타나는데 이곳이 바로 해발 1,176.7m인 각화산 정상이다. 정상은 헬기장을 만들면서 주위의 나무를 모두 베어냈기 때문에 조망이 좋다. 서쪽으로는 구룡산,북쪽으로는 백산 천제단과 문수봉이 손에 잡힐 듯 하며,백두대간이 굽이굽이 파도치듯 아른거린다. 동쪽으로는 멀리 낙동정맥의 산들이 꿈틀거리며 다가와 가장 깊은 산중에 서 있음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하산로는 서릉을 따라 10여분 가다가 남쪽 방향의 긴 능선을 택한다. 약 30분쯤 내려오면 무덤 2기가 아래 위로 있고 넓직한 공터가 나타난다. 이 주변은 봉화군 군목(郡木)으로 정해진 춘양목이 빽빽히 들어서 있다. 적송이라고도 하는 이 춘양목은 키가 크며, 곧고 단단해서 목재로 더없이 적합한 수종이다. 조선 말기,대원군이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대량으로 베어서 쓰기도 했는데 그후, 무분별한 벌채로 숫자가 많이 줄어 든 나무이기도 하다. 여기서 약 20분쯤 더 내려오면 무덤 한 기가 있고, 등산로는 능선길과 계곡길로 나누어진다. 능선길을 계속타면 공세동으로 내려갈 수 있다. 밑의 계곡길을 따를 경우 5분 정도 내려가면 요사채가 나오고 여기서 다시 10분쯤 내려가면 각화사 뒤편 산신각에 이른다.
이곳은 태백산 자락이면서도 꽤 터가 넓은 지역으로 춘양면은 운곡천 유역 전부를 면경계로 하고 있다. 골짜기 하나에 큰 면 한 개가 들어서 있는 셈이다. 풍수에서 말하는 양백(兩白)지간이란 바로 이곳을 말하는 것이라는 심증을 지도를 보면 굳힐 수 있다. 이곳에 사고를 두게 된 배경은 10승지지라는 풍수적 사고에 바탕한 바도 있을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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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5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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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창으로 등산지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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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코스를 택하든 산행은 하루 안에 끝낼 수 있다. 등산로는 전체적으로 뚜렷하게 잘 나있는 편이다. 각화사를 산행 들머리로 하여 태백산 사고지를 거쳐 각화산 정상을 다녀오는 코스를 취한다면 2시간30분 정도 걸린다. 그러나 시간이 충분하다면 각화사에서 왕두산을 거쳐 능선길을 따라 각화산 정상까지 돌아오는 5시간짜리 코스를 권한다. ○ 각화사 입구 - 동쪽지능선 - 암자- 북서쪽 주능선- 정상- 정남향지능선- 각화사 (약 4시간) ○ 석현리 - 각화사 - 뒷능선 - 정상 - 남동릉 - 금봉암 - 계곡 - 각화사 ○석현리~각화사~각화산~태백산 사고지~왕두산~동암~각화사~석현리<5시간 소요> ○석현리~각화사~태백산 사고지~각화산~영일 정씨묘~각화사~석현리<3시간 소요> ○석현리~각화사~동암(금봉암)~왕두산~태백산 사고지~각화사~석현리<3시간30분 소요> ○석현리~948.3m봉~각화산~태백산 사고지~왕두산~각화사~석현리<6시간 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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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산행기 동해안을 따라 북에서 남진하던 백두대간 등줄기가 태백산(부쇠봉)에서 서남쪽 내륙 깊숙이 방향을 틀면서 깃대배기봉, 신선봉, 구룡산으로 이어진다.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도계를 그으며 ‘태백산 구간’이라 할 수 있는, 이 대간 줄기에서 남쪽으로 뻗어나온 지능선 상에 위치한 각화산은 육산의 풍모를 갖추고 있다.
춘양목 솔향 감미로운 길 산행 들머리인 석현리(88번 국지도)에서 각화사까지는 1.5km로, 입구에는 안내판이 길손을 맞는다. 너무나 조용한, 그래서 평화롭게까지 느껴지는 산골 마을. 산자락을 터전 삼아 드문드문 자리한 산촌의 민가는 눈에 띄지만 인적이라고는 느낄 수 없다. 계곡을 끼고 펼쳐지는 사과밭이 장관이다. 포장도로를 따라 40여 분. 각화사 절집이 보이는 지점 오른편 숲속에는 경북 유형문화재 제189호인 ‘각화사 귀부(龜趺)’가 있다. 귀부에 본디 얹혔던 비신(碑身)은 고려 초기의 통진대사비(通眞大師碑)로 전해진다. 그러나 본래의 비신은 간 곳 없고, 대신 거기에 각화사기적비를 세우고 비석머리도 새로 만들어 얹었다. 귀부의 모서리가 약간 파손됐으나 대체로 원형이 잘 보존된 고려 초기의 걸작으로 주목된다. 특이한 것은 몸체의 육각형 귀갑문(龜甲紋) 속에 돋을새김한 ‘왕(王)’ 자와 ‘만(卍)’ 자의 조각솜씨다.
발길을 돌려 각화사로 들어선다. 높다란 석축 한가운데의 제법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서면 바로 범종각이다. 여느 절집과는 달리 일주문도 찾아볼 수 없지만, 범종각 추녀 끝에 ‘태백산각화사(太白山覺華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현판이 범종각 건물에 걸린 것도 보기 드문 일이지만, 각화사와 실록을 보관했던 사고(史庫) 등에 태백산이 붙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바로 이 지역이 태백산을 모태로 삼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여겨진다. 범종각은 건물 뒤편에서 바라보면 ‘월영루(月影樓)’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각화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6)에 원효대사가 지금의 춘양면 서동리에 있던 남화사(華寺)를 폐하고, 여기로 옮기면서 ‘남화사를 생각한다’는 뜻으로 각화사(覺華寺)라 했단다. 고려 숙종 6년(1100년)에는 무애국사 계응이 중창했다. 한창 번성하던 때에는 수도승이 800명에 이르는 조선 3대 사찰의 하나로, 태백산 사고의 관리 임무를 이 절에서 맡았었다. 조선시대에는 별다른 재난이 없었으나 1907년 일제에 대항한 의병 전투로 일본군에 의해 월영루만 남고 모두 타버렸다. 지금의 당우는 1910년 이후의 불사로 건립된 것들이다. 절 입구 범종각 오른편의 석탑은 모습이 매우 왜소해서 신라 말이나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절집을 둘러보고 해우소 옆으로 난 등산로로 나선다. 제법 가파른 경사의 산길은 춘양목에서 뿜어나오는 솔향으로 코끝이 간지럽다. 고을 이름을 딴 춘양목은 봉화군이 군목(郡木)으로 지정했다. 금강송 또는 적송으로도 불리는 춘양목은 흠이 없으며 목질이 단단하고 곧은 것이 특징이다. 조선 말 대원군의 주도로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목재로 사용될 만큼 재질이 우수하다. 그러나 남벌로 인해 그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가파른 비탈길을 20여 분 오르면 무덤 1기가 있는 능선에 이른다. 울창한 숲에 싸인 제법 널찍한 공터가 있어 땀을 식히며 숨을 고르기에 알맞은 곳이다. 다시 5분 정도 오르면 김해 김씨와 영일 정씨의 합장묘를 만나는데, 이 일대는 춘양목이 숲을 이루고 있다. 계속해서 경사는 약간 수그러들지만 오르막으로 이어지다가 능선에 서면 갈림길이 나타난다. 정상은 왼편으로 5분 거리에 있는데, 특별한 표석이나 특징 없이 잡목 숲에 가린 헬기장이다. 녹음이 짙은 계절의 탓도 있겠지만 주변 조망은 그렇게 좋은 편이 못된다.
산행 내내 휴지 한 조각 보지 못해 잡목 사이로 보이는 북쪽은 백두대간 주능선이 동에서 서쪽으로 꿈틀거리며 이어지고, 동쪽에는 낙동정맥의 산들이 어깨를 맞대고 굽이친다. 정상에서 되돌아나와 갈림길을 지나 동남릉으로 방향을 잡으면 헬기장이 또 하나 나타난다. 삼각점이 있는 동봉으로, 정상보다 오히려 조망이 좋다. 서쪽에는 이 지역을 감싸고 있는 문수봉, 옥돌봉, 선달산이 솟아 있고, 같은 줄기의 능선에 붙어 있는 왕두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온다. 왕두산을 바라보고 길을 잡으면 유난히 가파른 급경사 길이다. 그러나 짧은 거리로 10여분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편으로 5분 정도 내려가면 태백산 사고지에 닿는다. 철제 울타리가 쳐진 사고지는 주춧돌만 찾아볼 수 있을 뿐 허물어진 채 방치되어 있다. 그러나 당시 식수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샘터의 물맛은 산뜻하고 시원하다. 샘터 옆 바위에는 누구의 성명인지 새겨진 각자가 선명해 얼굴을 마주하는 듯하다. 봉화 지역은 전란을 피할 수 있는 10승지 중 하나로, 풍수상 이곳은 ‘삼재가 들지 않는 곳’이란다.
태백산 사고는 한양의 춘추관, 강화도, 묘향산, 오대산 사고와 함께 조선 후기 5대 사고 중 외사고(外史庫)의 하나로, 선조 39년(1606년)에 설치돼 일제시대인 1913년까지 300여 년간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곳이다. 일제가 주권을 침탈한 이후 이곳에 보관돼 있던 실록은 규장각 도서와 함께 조선총독부로 옮겨졌다가 다시 경성제국대학으로 옮겼다. 이후 빈 건물로 30여 년간 방치되었다가 해방 전후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완전히 무너졌다고 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 뒤 산사태 등으로 터마저 알아볼 수 없었던 것을 1988년 겨우 터만 발굴하고, 1991년 2월 사적 제348호로 지정했다. 태백산 사고본의 실록은 부산의 정부기록보존소에 보관돼 있으며, 영인본으로 간행된 것은 이 태백산 사고본이다. 과연 말 그대로 풍수상 ‘삼재불입지지’의 은덕으로 실록을 지킬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현재 사고 복원추진위원회가 결성돼 복원을 위한 운동이 활발하다니 다행스럽다. 여기서 각화사로 바로 내려가는 길도 있으나 다시 내려왔던 능선으로 오른다. 참나무가 우거진 능선길은 낙엽이 쌓여 푹신하다. 산행 내내 휴지조각 하나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깨끗해서 좋다. 사고지 갈림길에서 20분쯤이면 평탄한 곳에 무덤이 나오고, 다시 갈림길을 만나는데, 오른편은 동암으로 빠지는 길이다. 능선 따라 계속 직진해 10분이면 왕두산이다. 산정에는 춘양 태백산악회에서 표지목을 세워 놓았다. 시야도 툭 트여 형제봉, 화장산을 비롯해 지나온 각화산과 능선 등 주변 조망도 좋다.
하산은 참나무숲으로 우거진 남릉을 탄다. 5분이면 헬기장을 만나고, 오른편으로 꺾어지면서 동암(금봉암)에 도착한다. 현재 불사가 한창인 암자를 뒤로 하고 계곡을 따르면 각화사다. 절을 뒤로 하고 석현리에 도착하면 88번 국지도 옆으로 운곡천의 맑은 물이 흐른다. 1,000m 이상의 산들이 즐비한 이 지역은 골이 깊고 수량이 풍부해 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그래서 여름철이면 사람들이 많이 찾는 피서지로 인기 있다. 춘양면 소재지에서 가까운 춘양중·춘양종고에는 보물(제52호)로 지정된 서동리 삼층석탑이 있다. 학교 운동장 귀퉁이에 위치한 석탑 2기를 중심으로 휴식공간을 마련하고 청운원(靑雲園)이란 멋진 이름을 붙였다. 이곳이 폐찰된 남화사터라 전해지지만 석탑을 제외한 그 어디에서도 절터라는 사실을 읽을 수는 없다. 주변에는 한수정과 만산 강용 선생이 지은 고택이 있어 꼭 들러볼 만하다.[글 황계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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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화산은 특징있는 산은 아니지만 워낙 고산준령에 막혀 있어 접근하기 어려운 점 때문에 이곳에 사고지가 설치되고 조선조실록 등을 보관했던 곳이라는 점 등이 각화산과 각화사를 유명하게 한 장본이었다. 사고(史庫)는 조선시대에 실록등 귀중한 문헌을 복사하여 태백산(각화산)사고, 강화도 사고, 무주 적상산사고, 오대산사고등에 각각 분산 안치하여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게 한 것이다. 각화산 산사면에 있던 사고의 전적은 모두 서울로 옮겨져서 보관되었으나 각화산의 사고터에 있던 2채의 건물은 해방이후 불타버리고 지금은 그 유허만 남아있다. 봉화군 춘양면은 우리나라의 수목 중 가장 쓰임새가 많은 재목 춘양목의 발상지이다. 각화산에도 이곳에서 자생한 적송숲이 적지 않다. 각화사는 원효에 의해 창건된 절로 전해지고 있다. 왕두산- 주능선- 각화산 정상- 각화사를 잇는 낙옆이 무름을 덮는 등산로는 지금도 인적이 거의 없는 깊디깊은 심산이다.조선초기부터 여러 지방에 분산 보관해 오던 왕조실록 왕실족보 등의 사고본이 임진왜란으로 거의 소실되자 다시 펴낸 사고본을 좀더 안전한 곳에 재 분산 보관한 오대산, 마니산, 적상산과 더불은 태백산사고지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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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버스로 영주 경유 춘양에 가서 군내버스로 석현리의 각화사 입구 하차. 각화산 등산을 위해서는 일단 춘양면 소재지까지 와야 하는데 서울에서는 중앙선 철도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대구나 부산에서는 열차 혹은 버스편으로 영주나 안동까지 와서 춘양행으로 갈아타야 한다. 춘양에서 석현까지는 10분 정도 걸린다. 한시간 간격으로 버스가 다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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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은 춘양 읍내의 여관에서 가능하며 식당도 여러 곳 있다. 춘양면 소재지에는 태백여관(054-672-3164), 대흥여관(054-672-3168), 동화여관(054-672-3109)이 있다. 동화여관은 춘양 태백산악회 조창래 회장이 운영하고 있어 많은 산행정보를 얻을 수 있다. 각화사 입구에는 박세문씨 민박집(054-672-8799)이 있고, 고택 체험을 하려면 만산고택(054-672-3206)이 있다. 모두 예약해야 하며, 주변에는 식당도 여럿 있다. 문의 봉화군청 새마을관광과 054-679-63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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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산 | |
첫댓글 회원님 각화산왕두산 산행많은 예약 바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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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합니다 10번이나11번좌석 부탁합니다
전화번호 메모좀 부탁합니다
010-5206-0473 김 정범입니다
이번산행 함께 하겠습니다 11번좌석 부탁해요
네 잘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