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그림이 있는 문패 보러오세요
금능리 집집마다 문패가 달라졌다
드넓게 펼쳐진 하얀 백사장과 푸른 바다 위에 그리움이 묻어나는 섬 하나를 품어 안은 마을이 있다. 한 폭의 수채화가 펼쳐지고, 한 편의 시가 절로 나올듯한 이 곳은 제주시청에서 서쪽 일주도로를 따라 35㎞지점 해안가에 위치한 한림읍 금능리 마을이다.
원담과 용천수, 해수욕장, 돌하르방 공원 등 자연경관이 뛰어나 지역주민에게 풍부한 감성을 제공해 주고 시인이 5명이나 배출되어 도서관을 중심으로 해마다 문학콘서트, 길위의 인문학 행사를 개최하는 등 점차로 ‘문학의 마을’로 변모하고 있는 금능리.
<사업을 주관했던 양민숙 관장은 예산이 적어 80개 밖에 시화문패를 만들지 못했지만 올해에 이어 해마다 이 프로그램을 운영해 마을 전체에 시회문패가 다 걸릴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이 마을에 시와 그림이 있는 문패가 눈길을 끌고 있다. “시인의 집일 꺼야” 착각할 만 하다. 하지만 군데군데 이렇게 시화문패가 걸린 집들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어 이 마을에는 시인들이 많이 사는 시인의 마을로 여겨질 정도였다.
내용을 알아보니 집집마다 시화문패가 걸리게 된 것은 금능꿈차롱작은도서관(관장 양민숙)이 지난해 제주문화예술재단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ARTReach’ 사업에 선정되어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사업을 펼쳐 이루어졌다고 한다.
‘ARTReach’사업은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제주지역 환경에 바탕을 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도민들에게 제공함으로써 문화적 소통 능력과 사회성을 함양하고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이해와 창의력을 향상시키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하여 지원하는 사업이다.
금능꿈차롱작은도서관은 사업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우선 마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장과 노인회장, 문화예술프로그램운영을 위해 시인, 화가, 건축사 등 전문가 등을 프로젝트COP로 구성했고, 전문 컨설턴트의 도움과 여러 차례의 회의 끝에 ‘시화문패가 있는 우리집’ 사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시화문패가 있는 우리집’사업은 마을 주민들이 각자의 집의 문패를 시화문패라는 형식으로 제작하여 마을 전체에 시화문패를 다는 것을 최종목표로 우선 예산이 허락하는 80가구에 적용하여 프로젝트를 진행시켰다.
시화문패라는 결과물이 나오기 위해 두 가지의 전문적인 수업을 진행했다. 시 창작 수업과 미술 수업이었다. 시 창작 수업은 성인반과 아동반으로 나누어 진행했다. 성인반의 경우 70세가 넘으신 어르신에서부터 젊은 엄마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가했는데 각자의 풍부한 삶의 경험들이 시 창작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아동반의 경우 아이들이 갖고 있는 동심을 시창작에 직접 대입함으로써 문학에 대한 호기심과 창작의욕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아이들의 맑고 순수한 마음은 그것을 글로 옮기기만 해도 모두 시가 되었다.
시 창작 수업이 끝난 후에는 미술 수업과 함께 문패 제작이 진행되었다. 문패의 재료는 전문가와의 상의 끝에 비바람에도 여러 해를 견딜 수 있으면서도 채색이 가능한 목재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도화지 크기의 80개 방부목을 모두 사포질하고 앞뒤로 세 번에 걸쳐 페인트를 칠하는 작업은 진행했다. 재료 준비를 마친 후 각자 쓴 시에 어울리는 밑그림을 그리고 채색을 했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5개월여 동안 금능리 주민들은 깊은 밤까지 도서관을 밝히며 시창작, 그림그리기, 문패제작을 진행했다. 이러한 과정을 모두 거친 후 드디어 80개의 문패가 완성되었다.
참가자 모두 각자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어 낸 것을 보고 모두가 기뻐했다. 특히 “그것이 자신의 집에 걸릴 것이라는 생각에 저마다의 얼굴에는 밝은 빛이 역력했다”고 양민숙 관장은 회고 했다. 금능꿈차롱작은도서관은 결과물이 각자의 대문에 얼굴이 되기 전 작품발표회도 가졌다. 제작 과정을 영상으로 상영하고, 참가자들의 시 낭송과 참가소감, 공연 등으로 진행되었다.
금능리 주민들은 이 사업을 통해 일상의 체험도 시가 될 수 있다는 문학적 이해와 함께 늦은 밤까지 함께 수업을 하면서 지역주민들 간의 유대관계도 더욱 돈독해 졌다. 또한 도서관을 도서 대출의 기능으로서만 이용하던 마을 주민들이 이번 프로그램 참가를 통해 도서관이 지역문화의 체험장으로 인식하는 계기를 만들어 냈다. 전문적인 문학수업과 미술수업을 통해 주민 개개인의 문화예술적 역량이 강화됨은 물론 마을전체 프로그램을 주민들의 손으로 직접 함으로써 마을에 대한 소속감을 높이는데 일조했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한림중학교 1학년 박민서 군은 “시화문패 프로그램을 통해 역사와 관련된 마을 명소를 탐방하며 마을의 역사를 배울 수 있어 좋았고, 시화문패작업을 통해 엄마의 그림 솜씨도 꽤 좋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며 시화문패를 우리 마을 곳곳 집 대문에 매달면 마을사람들 모두가 행복해질 것같다”며 소감을 밝혔다.
또 미술강사로 참여했던 백금아 씨는 “문패위에는 자신의 마음과 꿈과 사랑이 그려져 있고, 그 문패는 대문마다 걸려 아이들이 자라서 당시 문패를 제작했던 그 열정으로 마을을 사랑할 것이며 자부심도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