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기의 중심을 무엇으로 보는가, 관점의 변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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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업감연기 - 나의 여러 행위
- 그런데 기절했다 깨어나도 연속성 유지? 저장장소 있을 것! → 뢰야연기 등장
<2>뢰야연기 - 나의 마음 (뢰야)
- 다른 종교나 철학처럼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지나?" 설명하고 싶고
'마음이 만들어낸다(일체유심조)'라고 하고 싶은데,
어떻게 개인 마음이 전체를 만드나? → 진여연기 등장
<3>진여연기 - 마음 (진여)
여러 마음의 근원은 하나 = 진여 (근본이 되는 마음, 깨달은 마음)
'내 마음'에서 '내'자를 빼버린 비개인적 개념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마음 (나중에 '불성')
업감연기 - 여러 돈의 지출
뢰야연기 - 그 돈이 있는 곳, 통장
진여연기 - 그 통장들이 있는, 은행
- 그런데 어떻게 진식(眞識,진여)에서 망식(妄識,아뢰야식)이 시작되나?
무명이 진여로부터 나왔나? 둘은 다른 것인가?
- "무명의 힘에 의해서 연기가 이루어진다면, '무명연기설' 아닌가?" 비판 제기
마치 "엄마와 아빠에 의해서 자식이 태어났다면서 왜 한쪽 이름만 대느냐?"
이것은 진식과 망식을 전혀 다른 것으로 보는 이분법에서 오는 문제 → 법계연기 등장
<4>화엄의 법계연기 - ('인연'이라기보다는) "본성(진여식)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관점
그래서 연기설이라 하지 않고 성기설(性起說)이라 함 (이원론에서 탈피)
본성 속에 망식이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
(아마 여기에 파도가 곧 바다라는 비유가 등장하는 거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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뢰야연기 - "1/n(세계인구수)"의 영향 (주관만 설명, 객관 세계 설명 불가)
진여연기 - "모든 1/n의 합" (100% 마음이 만든다고.. 객관을 설명 가능)
법계연기 - 그런데 그 진여식(100%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각자(n)
그래서 촛점이 다시 "중생 각자"로 돌아옴
업감연기 - 중생의 행위
뢰야연기 - 중생의 마음(뢰야)
진여연기 - 그 마음의 근본(진여)
법계연기 - 그 근본(진여,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개별중생
따라서 이 세상을 만든 것은 중생 개개인 자체이다
중중무진연기: 무수한 존재의 행위가 끝없이 중첩되어 이 세상을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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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분법에서 벗어나다
진여연기까지는.. 무명에 의존하지 않으면 우리 경험이 바뀌지 않는다는 개념
진(眞)과 망(妄) 이분법적 관점, 그래서 '무명연기설'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법계연기는..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현상은
이미 진리 자체가 드러나 있는 것이라는 관점 (부처의 눈으로 바라보이는 세상)
* 수행의 관점도 바뀌다
진여연기까지는.. 행위를 바꾸어야, 망식을 청정케 해야, 진여로 돌아가야 한다는 관점이었지만
법계연기에서는.. 중생이라는 착각만 안 하면 이미 성불한 부처라는 관점 (이러한 믿음으로 전환)
따라서 "행위를 바꾸어야 한다"에서 "부처의 눈으로 보기 위해 노력(수행)해야 한다"로 변화
중생의 수행은 곧 부처의 수행 (부처답지 않은 것을 버리고 + 만물을 부처로 섬기는 노력)
※ 탄허스님 가르침은 연기가 아니라 성기(性起)이다. 연기 이전에
본질적으로, 세계는 법성(法性)의 세계이다. <문광스님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