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산 정상에서(2012.9.19일 12시 20분졍)
어제(2012.9.19. 수요일)는 유명산을 다녀왔습니다.
有明山은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과 양평군 옥천면 경계에 있는 높이 862m의산으로
양평군 옥천면에 있는 용문산(1,157m)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내려온 능선 끝에 솟아 있으며 주위에는 어비산(829m)· 대부산(743m)· 소구니산(660m)·중미산(834m) 이 있습니다.
청량리 역 버스환승센터에서 8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위하여 일찍 집을 나서 몇 차례를 갈아타고 7시20분쯤 청량리역5번 출구를
나왔습니다.
모두들 늦을세라 너무 일찍 도착해 주위를 살피다 8시5분쯤 유명산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8005번 좌석버스는 청량리역에서 유명산 산행시점까지 가는 버스로 아침8시에 있고 오후 에야 있는 버스로 요금은 유명산까지 2.000원
이었습니다.
9시 20분쯤 도착 계곡 쪽으로 산행 길을 잡고 풍부한 수량의 맑은 계곡물 소리로 귀를 맑히며 정상을 향했습니다.
울창한 숲 사이로 흘러내리는 계곡이 너무 시원하고 풍광도 좋았습니다.
요즘 잦은 비로 산행길섶에는 이런저런 버섯들이 돋아있었으며 바위나 나무에는 이끼가 무성했습니다.
12시 20분쯤 정상에 올랐습니다.
짙은 안개로 주위가 잘 보이지 않아 정상에선 기분이 좀 그랬습니다.
정상주로 막걸리 2병을 비우며 김밥과 빵으로 요기도 했습니다.
안개로 조망을 할 수 없어 오래 머물기가 그랬습니다.
행글라이더 활공장이 있는 양평 쪽 배너미고개 쪽으로 하산길을 잡았습니다.
하산길이 임도를 따라 내리는 길로 구불구불 얼마를 가야 될지 가늠이 되지 않아 무작정 걷던 중 고마운 차량을 만나
쉽게 마을까지 내렸습니다.
차량(트럭)이 없으면 2시간은 족히 걸어야 내릴 수 있는 거리로 차를 태워준 젊은이의 고마움이 지금까지 가시지 않습니다.
시골이라 버스가 자주 없어 콜택시를 불러 아신역까지와 모듬순대 안주로 막걸리 세병을 비우고 상봉행 전철에 올랐습니다.
하산 주와 콜 택시비를 내주신 현송님께 감사드리며 다음 주 산행 지를 정하지 못하고 헤어졌습니다.
산행에 동행을 해 주신 송재님과 현송님께 감사드리며 다음 주 수요산행은 어디를 갈까요?
산행 중 담아온 사진을 담은 순서 대로 소개 합니다.
청량리역 버스환승센터
청량리역 광장에 세워진 철로만든 나무
8005번 버스노선표
유명산 등산입구 공원에서 담았습니다. 거북이 모습 같습 니다.
계곡
오전 9시36분에 계곡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멀리 처다 보이는 산을 당겨 잡았습니다.
용소입니다.
구부러진 나무가 보기 좋습니다.
길가에 누어사는 나무
바로 위 산을 담고있는 송재님 입니다.
나무에 돋은 버섯.
불끈불끈 힘이솓는 느낌이 듭니다.
나무와 이끼
나무와 이끼
나무와 이끼
나무와 이끼
나무와 이끼
나무와 이끼
폭포와 沼
폭포와 沼
보기만 해도 시원합니다.
정상이 바로 위 입니다.
마음이 행복해지는 법
제 욕망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꾸 남과 비교하게 되고, 마음도 우울해집니다.
‘나는 불행하다’는 이 마음을 없애는 방법은 무엇인지요?
욕심이 많아서 불행하다 느끼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과 같이 크게 되려고 하는 것만이 욕심이 아닙니다.
욕심은 모순되는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하는 거예요.
공부는 하기 싫은데 좋은 대학은 가고 싶은 것이나
결혼도 하고 싶고 존경받는 스님이나 신부가 되고 싶은 것도 다 욕심입니다.
한꺼번에 두 가지를 동시에 움켜쥐려는 것은 실현 불가능합니다.
욕심이라는 것은 인연과의 원리에 맞지 않아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것처럼 지은 것이 있어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자기는 상대방을 실컷 비난하면서, 상대방은 자기를 칭찬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인연과 법칙에는 맞지가 않지요.
내 욕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그만큼 노력이 안 쌓였다는 것이니
노력하면 되지 괴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산꼭대기까지 가기로 목표를 정했는데 중간밖에 못 올랐다면
계속 올라가야지 거기서 괴로워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과 같아요.
괴로워한다고 저절로 올라가지는 건 아니지요.
정상까지 올라간 사람은 힘들고 괴롭더라도 어쨌든 올라 간 사람입니다.
자기는 힘들다고 괴로워하며 꼭대기까지 올라가지 않으면서
남이 꼭대기까지 올라간 것을 부러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내가 건강이 나쁘면 나쁜 만큼, 걸음걸이가 늦으면 늦은 만큼
다른 사람이 한 시간 만에 갔으면 나는 두 시간 만에 가면 되는 겁니다.
괴로워하면 자기 인생만 낭비됩니다.
어리석고 몰라서 괴로워하는 것이지 이치를 알면 괴롭지 않습니다.
이 이치를 알면서도 괴로운 것은 그 순간 욕심에 사로잡혀서 안 보이는 거예요.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보세요.
같이 등산을 갔는데 다른 사람은 정상까지 갔고,
나는 중간쯤 왔다면 그게 왜 괴로운 일입니까?
어떤 면에서는 기뻐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내려 갈 건데 정상까지 무엇 때문에 다리 아프게 올라갑니까?
다시 내려올 걸 생각하면 나는 금방 내려갈 건데
그 사람은 앞으로 한참 후에 내려와야 하니 내가 더 유리하잖아요.
부처님을 생각해보세요. 부처님은 왕위를 버렸습니다.
어차피 버릴 거라면 부처님보다 우리가 훨씬 쉽게 잘할 수 있습니다.
나한테 왕위가 주어지면 그것을 버리기가 얼마나 아깝겠어요.
그런데 우리는 왕위가 없으니 아까울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습니다.
또 어차피 결혼했다 이혼할 거라면 안 한 게 얼마나 좋아요.
괴로울 일이 훨씬 적잖아요.
방향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다른 겁니다.
예를 들면 담배 피우는 것을 배우는데 기침하고 물 마셔가면서
열흘 만에 배웠는데 다른 사람은 나보다 훨씬 쉽게 배웠다고 합시다.
계속 담배를 피우면 담배를 잘 피우는 사람에게 열등의식을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끊는다면 내가 더 유리합니다.
더 나아가 어차피 끊을 담배라면 처음부터 안 피운 사람이 훨씬 더 유리하고요.
안 좋은 것은 안 하는 게 좋습니다.
여자들 중에 남녀평등을 주장하면서
‘남자가 바람피우니까 여자도 바람피울 자유가 있다’,
‘남자가 담배 피우면 여자도 피운다’는 사람이 있는데
이건 같이 죽자는 얘기지 평등이 아닙니다.
이러한 행동은 가치관이 없는 짓입니다.
여성의 해방은 남자처럼 되는 게 아닙니다.
왜 남자가 기준입니까?
자기 스스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게 여성 해방이고 진정한 남녀평등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욕심 없이 살면 남과 비교할 일도 없고 불행할 일도 없습니다.
가지려는 마음을 놓으시고 지금 이대로 편안하게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꾸준히 노력하세요.
남보다 잘하려는 생각 없이 내가 좋아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꼭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하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후회가 없습니다. / 법륜스님
우리 일행은 이렇게 인증샷을 했습니다.
정상주도 마셨습니다. 건배.
안개가 거치며 시야가 점점 넓어저 갑니다.
하산길에있는 행글라이더 활공 場 입니다.
산 정상까지 이렇게 임도가 나 있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억세가 필 것 같습니다.
배너미고개 쪽으로 내렸습니다.
저 멀리 용문산이 히미하게 보입니다.
맨드라미 꽃이 아주 예뿜니다.
무슨꽃인지 허부 향이 납니다.
요즘 산자락에는 산국이 한창이다.
꽃의 모습도 야생화답지만 그 향기가 가을꽃 중에서는 일품이다.
두어 가지 꺾어다가 햇살이 비껴드는 오후의 창가에 놓아두니 은은한 산국의 향기로 방 안이 한층 그윽하고 고풍스럽다.
철 따라 그 철에 어울리는 꽃이 피어나는 것은 자연이 지니고 있는 신비다.
이 자연의 오묘한 신비 앞에서 아름다움의 뒤뜰을 넘어다 본다.
요즘 세상에서는 다들 돈타령,
경제타령만 하느라고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다.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들이나 관심 갖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는지, 삶의 질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보면
아름다움과 행복이 밀접한 상관관계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제만 있고 삶의 가장 내밀한 영역인 아름다움이 없다면 인간의 삶은 너무 삭막하고 건조하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모른다면 결코 행복에 이를 수 없다.
아름다움이야 말로 살아 있는 기쁨이기 때문이다.
남쪽에 내려가 쉬면서 한 암자의 뜰에 있는 연못에서 나는 아름다움이 뭐라는 걸 새삼스레 인식하게 되었다.
연못이래야 겨우 손박닥만 한 크기. 세로 두어 자, 가로 너댓 자 될까 말까 한 작은 규모이다.
넘치는 샘물에 청죽 靑竹으로 홈대를 만들어 연못으로 끌어들인 구조인데
거기 수련과 창포와 바위와 이끼와 올챙이들이 살고 있었다.
그것도 연못에 가득 차지 않고 3분의 1쯤 남은 빈 자리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 작은 연못은 아름다움의 한 요소인 '여백의 미'를 지니고 있었다.
덜 채워져 좀 모자란 듯한 구석, 그립고 아쉬움이 따르는 그런 운치를 지닌 사랑스런 연못이었다.
홈대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적막한 산중의 분위기를 한층 적막하게 했다.
나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그 연못가에 앉아 저 미륵반가사유상이 지닌 고요와 평안과 잔잔한 미소를 머금곤 했었다.
연못에서 멀지않은 곳에 정정한 노송이 서너 그루 있는데 앞산에 달이 떠 가지에 걸릴 때
연못에 비출 그 황홀한 아름다움은 상상만으로도 족했다.
또 아름다움에는 어디에도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이런 시가 있다.
대 그림자 뜰을 쓸어도
먼지 일지 않고
달이 연못 속에 들어가도
물에는 흔적 없네
바람에 일렁이는 대와 뜰과 달과 연못이 한데 어울리면서도 서로 거리낌이 없는 이런 경지가 아름다움이 지닌 오묘한 조화이다.
뛰어난 장인匠人은 그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그 무엇에도 거리낌이 없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샘물과 같아서 퍼내어도 퍼내어도 다 함이 없이 안에서 솟아난다.
그러나 가꾸지 않으면 솟지 않는다.
어떤 대상에서 아름다움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열린 눈을 보고, 귀로 듣고, 안으로 느낄 수 있으면 된다.
그러나 나 자신이 지닌 아름다움은 가꾸지 않으면 솟아나지 않는다.
나 자신을 어떻게 가꿀 것인가?
이웃과 고락을 함께하면서 즉 이웃과 나누는 일을 통해서 나 자신을 시시로 가꾸어야 한다.
인정의 샘이 넘쳐야 나 자신의 삶이 그만큼 아름다워지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가리켜 시들지 않는 영원한 기쁨이라고 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가을에 아름다움을 만나고 가꾸면서 다들 행복해지기를. / 법정스님
첫댓글 어제 즐거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