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덕 산문집 p191-192
‘헬리콥터 머니’에 유혹되지 말라
젊은이들에게 세태에 뒤떨어진 훈계로 내 자신을 자박(自轉)하거나 과한 노력을 주문해서 ‘꼰대'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비노니 전도가 창창한 젊은이들은 아집(我執)과 소아(小我)에 사로잡혀 어벙되거나, 가치중립이라는 미명 아래 회색빛 기회주의자가 되거나, 불평불만에만 가득 차 반항아적 포기주의로 일탈해서는 안된다. 또한 좋은 게 좋은 게 아님도 알아야 한다. 옳은 게 좋은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허황된 꿈도 날려버릴 줄 알아야 한다. 양계장에서 독수리가 나올 수 없고, 가지나무에 감자가 달릴 수 없고, 모래밭에서 수은 찾기가 될 리가 없다.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Garbage in, Garbage out)”는 서양의 격언이나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는 한국의 격언도 유념할 일이다.
젊은이들이여, 여러분들에게서 진정한 자율과 질서의 조화를 보고 싶다. 질서의식은 공동체의 번영과 화합의 바로미터이고 건강한 시민의 내면화된 양식의 표현이다. 우리 5천만이 좁은 땅에서 불편없이 살아가게 가로와 세로가 반듯하게 짜여진 사회를 만드는데 앞장설 수 없는가. 또한 기성인들과 달리 염치사상을 가지고 수치를 모르는 자를 가장 수 치스럽게 생각하는 사회 즉 '분수를 아는 사회', '자기 위치를 확인하는 사회'를 만드는데 선봉에 설 수는 없는가.
미국영화 〈하이눈〉에서 명배우 케리쿠퍼가 말 했듯이 어깨가 벌어졌다고 다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어깨가 인왕산바위처럼 떡 벌어졌다고 어른은 아니다. 복지라는 미명하에 살포되는 돈풀기의 ‘헬리콥터 머니(helicopter money)’가 결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앞을 내다 보면서 자립 자조의 정신을 길러야 한다.
공부는 불황을 타지 않는 법, 가슴이 감동하고 뇌가 기뻐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 “청산 속에 묻힌 옥도 갈아야 광채나고, 낙낙장송 큰 나무도 깎아야 큰 동량된다”는 <학도가(學徒歌)>를 들어보거나 불러본 적은 없는가. 냉철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으로, 이지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와 불타는 열정으로, 어려움을 극복해가면서 앞으로 앞으로 전진해 가는 정정당당한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 언제까지 똑똑한체 하면서도 존재감도 주체성도 없이 인기영합주의와 선전선동에 쉽사리 놀아만 날 것인가.
* 애국 소년 (종교예화2, 최형락신부저, p206)
어느날 한스 소년이 이웃 마을에 심부름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는 서해안 강둑 위를 휘파람을 불며 걸어오다가 물이 졸졸졸 흐르는 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 네델란드는 땅이 해면 보다 낮기 때문에 사람들은 둑을 대단히 소중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비록 10세 전후인 소년이더라도 물이 샌다는 것이 매우 중대한 일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소년은 아래로 내려가 살펴 보았다. 역시 생각한 대로 둑에는 자그마한 구멍이 나서 물이 새고 있었다. 소년은 주위를 살펴 보았으나 아무도 도와 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소년은 얼떨결에 웃옷을 벗어 그 구멍을 틀어 막았다. 그러나 점점 구멍은 커질 뿐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자기의 손에다 웃옷을 말아 다시 구멍을 막았다. 어느정도 효과는 있었으나 아무도 도와 줄 사람이 없어서 한스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 시간이 지나도 지나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날은 저물고 배도 고파와 소년은 그냥 두고 집으로 돌아 갈까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그냥 두고 간다면 네델란드는 어떻게 되겠는가? 소년은 추워서 오들오들 떨면서 계속 도와 달라고 소리를 쳤지만 아무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결국 소년은 기절하고 말았다.
다음날 이른 아침 마을 사람들은 수문 근처에서 한 소년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사람들은 놀라 그 소년을 일으켰다. 그러나 뚫어진 구멍을 막고 있었기에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한참 후에야 소년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그리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마을 사람들은 한스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며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참으로 수고했다. 너의 용기 그리고 인내가 네델란드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구나!”
*일치된 인간애 (종교예화2, 최형락신부저, p206)
적군에게 쫓기던 유격대원들이 폭이 좁은 강물에 가로막혀버렸다. 그냥 건너기에는 물살이 너무 세차고, 갑자기 잡고 건널 무슨 줄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그들은 난처한 얼굴로 서로 쳐다만 보고 있을 뿐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때 유격대장은 강가에 있는 나무 줄기를 한 손으로 움켜잡고 한 손은 자기 부하들에게 잡게 하고는 ‘결코 내 손목을 놓고 떠나지 말라!’고 명령하였다. 이들은 서로 손을 마주잡고 인간애의 밧줄을 만들어 결국 건너편 나무를 붙잡았다. 그러자 인간애의 밧줄을 타고 수십명의 유격대원들이 강을 건너 무사히 생명을 구할 수가 있었다.
“누구든지 내 손목을 놓지않으면 나도 당신들의 손목을 놓지 않을테니 살아날 수 있을 것이지만, 스스로 손을 놓는 자는 세찬 강물에 휩쓸려 그 생명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조차 알길이 없을 것이다!” 여기서 세찬 강물은 이 세상의 악의 세력을 뜻함이고, 적군에게 쫓기는 것은 우리가 인생살이의 시간에 쫓김을 비유한 것이다.
* 생활성서 소금항아리 20220615 고마움을 기억하는 태도
좀처럼 만나기 힘든 ‘한적한 스타벅스 1호점’에 들어가서 커피를 주문했다.
“Hi.” 메뉴판을 보다가 너무나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는 직원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주 고운 얼굴을 한 할머니가 서 계셨다. 근데 그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전에도 이 할머니가 나를 친절히 맞이했던 기억이 났다. 평소처럼 “플랫 화이트 두 잔이요.”라고 주문해도 될 것을 굳이 뒤에 한 문장을 더 붙이기로 했다. “플랫화이트 두 잔이요. 근데 저 당신을 몇 년전에도 본 거 같아요.” 그런데 할머니의 반응이 감동이었다. 할머니는 두 손을 모아 자신의 가슴에 얹으며 “맞아요. 아마, 제가 맞을 거예요. 계속 여기서 일했거든요. 기억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의 진심 가득한 반응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코로나 이전에는 매년 시애틀을 찾았는데, 코로나 때문에 작년엔 올 수가 없었어요.”라고 말을 이어갔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시 시애틀을 찾아줘서 고마워요”단지 내가 고객이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한 거라고 하더라도, 과연 그렇게 진심을 담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할머니의 친절함과 고마움을 표현하는 태도에 감동한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주문만 하고 나왔다면 이런 추억도 없었겠구나. 그냥 흘러가듯 건넨 한 마디가 할머니와 내게 감동을 선물했구나. 내년에 또 시애틀을 찾는다면, 다음엔 꼭 스타벅스 1호점을 다시 들러.… 이렇게 안부 인사를 건네야겠다. “저 또 왔어요. 잘 지내셨죠?”
강주원 계획하지 않아도 서두르지 않아도 비로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