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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음력 4월 13일 임진왜란 고립무원의 동래읍성이 무참히 무너지며 성안에 있던 민관군 3천 명이 두려움없이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지만 왜군에 의해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2시간 만에 모두 순절한다. 고립무원의 땅이었던 부산 동래읍성은 그렇게 함락되었고....
이후 100여년의 세월이 흘러 조선 19대 숙종 때 부산을 왜구로부터 지키고자 낙동강 하구를 비롯한 동래구 일대가 잘 보이는 곳에
한양 도성과 비슷한 규모의 국내 최대의 둘레 18km의 산성을 만들어 전란 때 적과 대치하고자 동, 서, 남, 북문과 4대 망루를 비롯한 12곳에 망대(望臺)를 세워 바다로부터 조선의 입구(入口)를 지키고자 했다
금정산성 안에는 신라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국청사가 있고 금정산 동쪽에도 의상께서 창건하신 범어사가 있는데 범어사는 영남을 대표하는 3대 사찰이다
국청사와 범어사 중에서 어떤 절이 더 먼저 창건했는지 모르겠으나 현재 규모로 본다면 범어사가 더 크다
하지만 금정산성을 관리하던 국청사(100칸 규모) 역시 당대에는 무술의 고수셨던 승병장이 거주하며 전략적인 기지로서 역할을 하던 곳이었고 북문 앞 넓은 터에는 범어사,국청사,해월사 스님들께서 각종 무술을 연마하거나 훈련하던 곳이다
아침해가 뜨고 동대구에서 기차로 부산 화명역에 내려 서문까지 몸도 풀 겸 뛰거나 걷는데
전날 새벽에 비가 왔는지 도로는 축축하고 등에서 땀이 날 무렵 남문 3,8km 지점과 서문 250m을 알리는 이정표에 도착
이쯤에서 옷갈아 입고 금정산까지 6km가 조금 넘는 거리인데 부지런히 움직이면 1시간이면 도착할 것 같다.
서문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대천천이 흐르는 계곡에 세워진 성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만들었으며
4대 성문중 유일하게 물이 빠져나가는 곳에 위치하며 아담한 아치형 다리가 곁에 있다
부산 금정산성은 길이가 18km,내부면적 8,2제곱km로서 태조 때 쌓은 한양도성과 길이가 비슷한데
규모로 본다면 한양 도성에 훨씬 못 미치나 조선의 입구를 지키기에 충분한 성이다
즉,왕실에서도 임란때 순절했던 3천 백성을 생각해 조선의 입구를 지키라며 서울 도성에 버금가는 크기로 백성들이 감당할수 있는 크기의 성을 쌓게한듯 하다
서문
해월문(海月門) 바다의 달이란 문
금정구 산성마을을 품에 안고 있으며
안내판에는 왜구의 침략에 대비해 숙종 32년에 방어 사찰인 해월사에서 관리했는다고 적었다
숙종 때 쌓은 성(城)중에서 대표적인 한양의 북한산성, 김포 문수산성이 있는데
북한산성은 노적봉 아래 중흥사 절에서 관리했으며 금정산성은 국청사(산성을 지키는 승병장이 거주)에서 관리한 것으로 보인다
안경 다리인 아치형 다리를 건너서
성벽길은 고당봉으로 이어지니 이정표 보고 따라가면 고당봉이 쉽게 나오겠다
서너 시간 후에 내려올 우람한 파리봉이 보이고
춘향이는 어데 가고
그네만 덩그러니 놓여 있고
조그만 암자 같은데 성벽이 허물어져 있던곳에 수리 중이시고
전날 새벽에 비가 조금 내렸는지 등산로가 축축하다
흩어져 있던 돌을 한곳에 모아 하나의 생명을 불어넣어 마치 용이 길게 누운 듯 한 모습인데
성벽이라 부르기 보다 어느 동네의 시골 담장 같은 분위기다.
성을 쌓을 때는 대부분 부역(賦役)이기에 농번기와 장마철,더운 날, 추운 날 피해 가며 일을 시켜주시니
이 얼마나 성은이 망극하고 고마운 일인가?
멀리 한양 도성을 쌓을 때 연인원 50만 명, 공사기간 3년, 비 오고 눈 오고 춥고 덥고, 바쁜 농번기 제하고 단 98일 만에 완공시켰으니 세상 어디에도 없는 빨리 빨리 쌓은 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무너지면 누군가 책임져야 하기에 공사 실명제로 무너지는 일이 있으면 잡아다가 얼반 죽이는 연구도 하셨고,물론 노역하는 백성들에게 쌀 한톨 주지 않으셨다
이곳 금정산성도 그와 유사한 방법으로 성을 쌓았을 것 같은데 한양 도성과 다르게 금정산성의 모두 고만 고만한 돌을 주워 쌓았다.
수구문(水口門)
세상 모든건 위로 올라갈때 아래로 내려가는 물(水)위에 정갈하게 수구문이 놓여있다
성(城)은 크게는 도성, 읍성, 산성 3종류가 있는데
도성(都城)은 한나라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곳이기에 나라 전체가 지켜야 하는 중요한 곳이며 규모가 크고 나라 전체에 한 곳뿐
읍성(邑城) 지방의 관리가 민간인을 지키기 위해서 쌓은 성으로 16세기 무렵에 전국팔도 360주에 160곳 정도 있었지만 조선후기로 갈수록 차츰 줄어 107개 그리고 일제 강점기 때 도로 만든다는 구실로 철거되거나 대부분 훼손
산성(山城) 산봉우리와 계곡을 중심으로 만들며 전국에 2천300곳 정도 있겠다
수구문은 어느 장인께서 정과 망치로 모난 부분을 깨고 쪼아 단정하게 쌓아 놓았는데 저정도면 감독하던 나리께서도 막걸리 한단지 정도 내려 주셨을듯하다
수구문위에서 본 파리봉 방향
성벽길인데 아래에도 길은 있으나 수량이 많으면 성벽으로 올라오다 보니 본의 아니게 성벽 위에 서있고
장골봉으로 찾아가는 길은 잠시 오르막길이 이어지는데 서쪽 망루까지 금방 올라갈 수 있다.
장골봉의 장골대 서쪽을 지키는 망루
복원한 건지 오래된 모습 그대로인지 확인이 되지 않지만
이끼가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서 근래에 고만고만한 돌을 다듬어 생명을 불어넣은 듯
장골대(497M)
서쪽 망루터
이곳부터 금정산까지 거의 평지 수준으로 길은 이어진다.
북구 금곡동에서 올라오는 문으로 별다른 해석이 없는 듯 그저 입 벌린 돌문이 반긴다.
돌문을 빠져 나가면 북구 금곡동의 조성 협진 아파트로 내려가는 길이라 되어 있다
커다란 바위 위의 소나무
물 이라고는 한방울도 없을 것 같은 곳에 바위를 터삼아 집을 짓고 살아가는 소나무
바위틈 갈라진곳에 이슬이나 빗방울을 저장해 놓고 늘 꺼내 마시는 지능형 소나무로 보인다.
산 철쭉이 피어있는데 오늘 이 길을 지나는 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듯
누군가 손으로 어루만지면 집까지 따라가겠다며 길가에 예쁜게 피었다.
이 또한 끝이 없어라
대한민국은 걷기 좋은 땅
많이 걷고 필요한 곳으로 가기 좋은 곳간 같은 존재의 땅
고당봉 인근에서 본 낙동강과 상계봉과 백양산 방향이며
낙동강 물은 멀리 태백에서부터 굽이돌아 흘러 왔는데
계란으로는 바위를 깨지 못하지만 물방울로는 바위를 뚫을 수 있으니
멀리 흘러간 낙동강물을 소환해 짜깁기 해보면 모두가 걸어 본 땅일 것 같다
고당봉에 도착하니 시간은 서문에서 1시간 10분 정도 지났고
돌이나 바위가 성(城)이 되고 싶은 산 그 정점에 고담봉이 서있다
올해가 가지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면 좋겠고
멀리서 보면 정상부근으로 화강암이 마치 백옥 같은 곳이다.
아버지를 닮아 강한힘이 느껴지는 산들
어머니를 닮아 한없이 부드러운 하천들
멀리 영남 알프스 방향으로 거침없는 조망이 아주 시원스러운데
산은 결코 사람에게 어서 오라 구걸하지 않을 것 같다
성안은 과연 집처럼 편안했을까
금정산의 명물이 있다면 금샘과 저곳 바위위의 소나무가 아닐까
어느 날 씨앗이 모진 바람에 날아와 바위에 자리를 터를 잡았고
가꿀 필요도 없이 스스로 자연과 경쟁에서 살아남았다
가끔 밤마다 선녀가 내려와 금정산 금샘의 물을 떠서 소나무에 뿌린다는 이야기와 아무도 오지 않은 칠흑같은밤에 낙동강 물로 뿌리를 적신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둘다 믿거나 말거나 한이야기다
금정산성 북문
동, 서, 남문과 비교해서 작은 규모의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범어사. 해월사, 국청사 스님들의 승병 훈련장으로 쓰이던 곳이기에 경쟁력은 높은 곳이다.
금정산 동쪽에서 가장 높은 봉으로 원효봉이다
김유신의 전설을 깃든 화랑들의 훈련했다는 곳이기도 한데
전국 어딜 가나 원효가 있으면 꼭 의상이 그 곁에 있기 마련이다
가야 할 상계봉 방향으로 날씨가 가을날씨라 아주 시원하다
바로 앞은 의상봉으로 가기 전에 먼저 4 망루를 지난다
4 망루
누가오나 안오나 이마에 손을 대고 망보던 곳이다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을 때 높은 곳으로 올라야 하고
길을 잃었을 때 내가 어딨는지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
어둠 속에서 길을 찾고자 할 때 고개를 들어 별을 보는데 밤하늘 별을 보고 길을 찾는 짐승은 단 두 종류
인간과 쇠똥구리뿐이니 야간에 별을 보고 길 찾기 하실 분들은 그렇게 해 보시고
단, 쇠똥구리는 기어갈 시간이 없을 때 작은 날개를 펴는데 반해 인간은 걸어갈 시간이 없을 때 뛰어가야
가을은 가을처럼
가야 할 상계와 파리방향
금정산성 3 망루를 찾아가며
금정산성 3 망루
바위암반 경사면에 지어진 건물로 측면 한 칸 정면 두 칸의 건물인데 조망이 아주 좋고
다만 갈대밭 등로에서 잠시 벗어나 있어 두 눈 크게 뜨고 찾으러 가야 한다
3 망루에서 본 금정구 방향이며 중간쯤에 보이는 저수지는 환동 저수지로 부산을 대표하는 수영강이 흐르는 곳에 있다
부산을 대표하는 수영강은 낙동정맥과 용천지맥 분기봉인 원득봉에서 발원하는데
원득봉은 낙동강, 회야강, 수영강이 분리되는 삼강봉(三江峰)인곳이다.
좌측으로 흐르면 동해바다 진하 해수욕장으로 가는 회야강이 되고, 우측으로 흐르면 양산천이 되어 낙동강으로 흘러가
남해로 흘러들고 가운데 정면으로 흐르면 법기저수지 -회동저수지를 지나 부산시민들의 사랑받는(?) 수영강이다
성벽길옆의 제단바위가 보이고
어느 여인네가 천지신명께 백일 기도를 올려 소원을 풀었다는 곳이건만 지금은 찾는이가 없을 정도다
금정산성 동문 금정산 정상에서 50분? 정도 거리에 있으며
북문에 비해서 규모가 크고 아름답다
동문은 온천천이 흐르는 금정구가 인근에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만들었고
동문과 서문이 가까이 있기에 함께 축조했는데 크기도 비슷하고 마치 쌍둥이 같은 느낌이 든다.
이곳에서 아는 분을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어느 부잣집 담장인양 서있는 산성고개 위의 성벽길
지나며 느낀 점은 성벽 높이가 낮아 과연 백성들을 지킬 수 있는가 하는 의문점은 들었는데
왜구가 올라온다면 무거운 돌을 들고 마빡을 향해 던지면...이길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대륙봉에서
잠시 따가운 햇살아래 간식으로 아침 겸 점심 해결하고
구절초
생과사를 가르는 순간에
계곡으로 흩어져 있던 돌을 하나 하나 쌓아 올렸던 위대한 유산인 산성
가족을 지키고자 했던 절박했던 마음
살고자 했던 절실했던 마음
그리고 그모든 가능성을 걸었던 털긋 같은 희망은
산정으로 부터 솟아있고
금정산성 2망루
인증 담고
금정산성 남문과 망미봉 방향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일제 때 유실되었다가 이후에 본원 한 건물로
인근에 동래구의 동래읍성이 있으며 다른 곳에 비해 성문 안밖으로 주변이 넓다
남문
남문에서 지긋한 나무 테크 계단을 올라 망미봉을 지나 상계봉으로 향한다.
망미봉에서 본 상계봉
산 아래 만덕동인 듯
잠시 오르막길을 오르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상계봉에 잠시 다녀온다
상계봉 암릉을 지나며
봉황의 벼슬인가? 닭 백숙인가?
거칠것 같은 암릉을 조심해서 지나면
상계봉에서
서문에서 14,6KM ? 지점 3시간 10분
노닥거리다가 10분 더 걸려 도착
다시 돌아나가며
상계봉에서 본 가야 할 곳과 멀리 지나온 금정산
금정산이 마치 목욕재계하고 달빛아래 정안수 한 사발 떠놓고
천지신명 산천초목 신께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비는 것처럼 보이는데
허구헌날 자신을 밟고 다니는 등산객 때문에 도저히 못살겠다며 천지신명께서 기구한 사정을 비는데 들어 주실지
삼거리
서문까지 30분 정도 가면 끝날 듯
남쪽 제1 망루터
태풍 매미 때 파손된 누각은 아직도...
자연은 인간의 흔적을 지웠지만 돌담은 어찌하지 못한 듯
파리봉 전망대
파리봉에서 본 화명동과 낙동강 그 뒤로 신어산
멀리 진해의 낙동길이 잘 드러나고
장거리길은 어떻게든 먹고 어떻게든 걸어야 하고
내 몸을 길 바닥에 눕게 만들지라도 걸어야 하는데 그게 살길이다.
눈에 보이는 낙동강이나 산들은 대부분 걸었던 산들인데
누구는 다음에 또 오면 된다지만
두번 걷지 않기에 한번으로 족함을 알아간다.
파리봉
불교 용어로써 일곱 가지 보석 중 수정을 의미하며 거친 암릉과 조망이 아주 좋은 곳이다.
이름이 다소 마음에 들지 않지만... 늘 두 손 모아 싹싹 비는 파리가 생각나는데
사실 파리가 뭔 잘못이 있나 싶은데 그럼에도 늘 잘못했다고 비는 파리
전기 파리채로 지지거나 파리채로 그만 때려 잡았으면
산에도 표정이 있다면 분명 향기가 다를 것이니
작은 소나무가 자라는 바위 위에서 그동안 알게 모르게 삶과 죽음이 무한 반복되어 왔던 것 같다.
오스카 와일드 란 작가가 "세상의 모든 배역은 꽉 찼다. 자기 역할을 해라"라는 말이 생각나는데
바위 위의 소나무에게 딱 어울리는 말인 듯 물 한 방울에 크게 만족하며 거침없이 자리 잡은 소나무가 인상적이다
파리봉에서 내려오면 화명동과 산성 마을로 내려가는 나무 계단 삼거리가 나오는데 우측으로 가야 산성 마을로 가는 길인데
어느 등산객분께 어디로 가면 서문이 나오느냐 하니 왼쪽이란다.
사실 왼쪽이 아니고 우측으로 가야 하는데 잘못 들어서서 왼쪽으로 내려와 진행하다가 우측 계곡으로 들어가는 기도원으로 가서 정상적인 산성길로 간다.
이 녀석이 오늘날 잡았나 곳곳에 철쭉이 피었는데
어지간하면 가는 계절은 지켜만 보고 내년봄에 올라왔으면
산성 고개 도로가에 내려와 짧은 17.9km 길을 마무리하고
이곳에서 숙종 때부터 금정산성을 관리하던 국청사로 찾아간다
금정산 국청사 일주문
호국사찰 국청사는 신라시대 때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셨고
왜적의 침입을 막고자 금정산성을 쌓고 승려로 조직된 군대 승군작대(僧軍作隊)의 승병장이 거주한 총사령부가 있던곳이다
숙종 때 금정산성을 보수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부터 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예전 조선시대 때 국청사는 전체 규모가 100칸 정도 규모로 컸던 모양이다
국청사 대웅전에 들러 3배 하고 나와
성문(城門)은 성안과 밖을 연결해 주는 문으로써 성안에 거주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중요한 곳이다.
전란 때는 서로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사활이 걸린 구멍이며
숨이 붙어 있는 한 지켜야하는 숨구멍이자 적이들어오면 죽음의 구멍이다.
한양 도성에는 8개의 숨구멍 있으니 4개의 큰 문과 4개의 작은 문이 있었지만 전란때는 죽음의 구멍으로 백성을 지키지 못했기에 무용지물이었고
금정산성은 4개의 큰 숨구멍 있으나 다행히 전란이 없어 숨구멍으로 남았다
국청사 연못을 마지막으로 담고
이제 화명역으로 걸어서 나간다.
지나간 트랙

첫댓글 금정산성 18km 한바퀴~
한양도성길 걸었던 게 생각납니다
한양도성은 전체적으로 엄청 높았던 거 같은데
이곳 금정산성은 방장님 말씀대로 사진으로 함께하니
여염집 담장 정도 높이나 되려나 싶은게...
산성의 역할을 재대로 할 수 있었겠나 싶어집니다.
범어사, 국청사, 해월사....
사실 범어사만 이름 들어봤는데...
방장님 덕분에 언젠가 부산을 방문하게 된다면
금정산성의 이 세 절도 관심 갖고 찾아보고 싶게 만들고요.
도성과 읍성 산성... 도 묶어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암릉과 조망 좋은 곳인
파리봉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해보며.
후기 잘 봅니다. 다녀오시느라 욕 보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배역은 꽉 찼다.
자기 역할을 해라!
^^
그렇죠
모든 배역은 꽉 찾기에 자기 자리에서 역할만 잘 하면 될 세상이죠
금정산 구간은 수박겉핧기식으로 끝마치고 다음 갈길로 갈까합니다.
글 감사합니다
아참 해월사라는 절은 없으니 참고 하십시요
부산지부분들은 뒷산처럼 자주 다니시겠죠?ㅋㅋ 부산 놀려가야 하는데... 숙제가 많아서~
멋진 성벽이 잘 보존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산11산 할 때 지나가겠죠? 방장님과 같이~ㅎㅎ
ㅎㅎ
금정산 지역은 사대성문으로 마치고
이제 다른 고을로 답사차 갑니다
답사후 개념도 그려 올리겠습니다
부산의 금정산 사대성문 다녀오셨네요
주변의 역사적인 사실도 읽어봅니다
나중에 멋진코스를 기대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번주에 다른 고을로 가서 3곳정도 답사할까 합니다.
편안산길 되도록 잘 마무리 하겠습니다
부산에 있어서가 아니라
언제, 어느시간에 가더라도 편하고 부드러운 길이
인상적인 금정산성길입니다.
국청사는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그 앞을 지나다녔는데
다음에 지나갈 때는 새로이 보일것 같습니다.
다음 행선지는 빛고을이 아닐까 생각되지만....ㅎ
멎진 풍경이 함께할것 같은 답사 잘하고 오시길 바랍니다.
모르고 지나면 그저 그렇고 알고 지나면 참 소중한 곳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죠
운동삼아 두번에 걸친 금정산 구경 잘하고 왔구요
이제 다른곳 몇번 더가면 답사도 마무리 될듯 합니다.
글 감사드리고 지맥길에도 추워지니 따뜻한 걸음 되시기 바랍니다
역사 기록들 야사들 설화들은 어디서 찾는지 산행과 별개로 역사강의 하셔도 충분하실 듯 합니다.
한양도성을 98일만에 쌓았다니 빨리빨리 문화가 이때에도 있었나 봅니다.
그 시절에도 작업자 실명제가 있었군요.
어릴때 시골에서는 농사를 지으려면 소가 필요해 집집마다 소를 키워 도로나 들에 소똥 천치라 쇠똥구리를 쉽게 만났는데 지금은 다 사라져 볼 수가 없네요.
성문이 평화로울때는 삶의 구멍 전란때는 죽음의 구멍이었겠네요.
같은 길도 역사를 알고 이해하고 지나는 것과 그냥 생각없이 지나는 것은 의미가 다르긴 한 듯 합니다.
오늘도 방장님 덕분에 역사공부 잘 했습니다^^
울산에서 쉽게 갈수 있는 곳이라
산악회원들 데리고 산성길 예전에는 매년 다녀온것 같은데
방장님과 함께 눈으로나마 산성길 걸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