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사만 사천과 고난의 학교-4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 사만 사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계 14:3).
처음 익은 첫 열매 십사만 사천인이 가진 특성 중에 매우 의미심장하고 흥미로운 특성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는 십사만 사천 외에는 아무도 능히 부를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
1)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
성경 다른 장에는 마지막 때에 짐승의 표의 환난을 이기고 벗어난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라고 말하고 있다. 곧 이 세상의 모든 싸움이 마쳐지고 모든 성도가 본향으로 모일 때, 찬란한 유리바닷가에 서서 아름답고 웅장하고 형언할 수 없이 놀라운 화음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가 무엇인가? 먼저 모세가 부른 노래는 승리의 노래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여 홍해에 다다랐을 때, 뒤에는 바로의 군대가 공격해오고 앞에는 바다가 가로막힌 사면초가에 빠져 두려워할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기적과 능력으로 홍해를 가르셔서 그들을 건너가게 하셨다. 그들이 안전하게 홍해를 건넌 후, 모세와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승리의 노래를 불렀다. 얼마나 감격하고 감사했겠는가?
모세의 노래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셔서 승리하게 하셨는가 찬양하고 고백하는 경험의 노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지막 백성인 십사만 사천이 부를 노래도 승리의 노래인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단을 이기게 하셨는지, 죄의 권세를 이기게 하셨는지, 어떻게 세상을 승리하게 하셨는지, 특별히 짐승의 표와 짐승의 우상을 이기고 어떻게 최후의 승리를 거두게 하셨는지 고백하고 찬양하는 승리의 노래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린 양의 노래는 무엇일까? 그것은 어린 양 되신 예수께서 구속하신 은혜와 구원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각 사람은 예수님께서 그들 각 자를 어떻게 부르시고, 어떻게 회개하게 하시고 또한 변화시켜 구원하셨는지에 대한 체험과 간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간 경험, 곧 어떤 고난의 길이든, 고통의 길이든 주님을 따른 경험이 있다. 특히 어린 양의 성품을 이루기 위해 연단시키시는 고난의 불을 통과한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고난의 단련의 과정을 겪은 체험의 노래는 그것을 겪은 사람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이다. 그래서 그것을 경험의 노래라고 부른다.
그 노래는 14만 4천 명밖에 배울 수 없는 노래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은 지니지 못한 경험과 체험의 노래, 보좌 앞에서 부르는 “새 노래”인 것이다. 이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다. 그들은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의 시기를 지내고, 야곱의 환난을 견디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마지막으로 내릴 때 중보자 없이 선 자들이다. 이제 머지않아 이 세상이 끝나고 예수께서 재림하시면,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긴 자들의 무리가 보좌 앞에 있는 수정같이 맑은 바다, 불이 섞인 유리바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바닷가에 모일 것이다. 땅에서 구속 받은 십사만 사천 명은 하나님의 거문고를 손에 들고 어린양과 함께 시온산에 서서 노래를 부를 것이다.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소리가 온 우주를 진동시킬 것이다.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살아 있는 자들 가운데서 땅으로부터 끌어 올림을 받은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인 그들은 그 영원한 노래를 부를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실 것이다.
그들은 이 세상이 기근과 질병으로 황폐해지고, 태양이 심한 열로 사람들을 태우는 광경을 목격하고, 그들 스스로도 고통과 기갈을 당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제는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2) 첫 열매와 깨어짐의 고난
앞에서 우리는 첫 열매를 바치는 방법, 첫 곡식을 빻아 가루로 만든 다음 떡을 만들어 바치는 것을 연구하였다.
하나님께 바쳐지는 떡이 되기 위해서, 또 우리를 먹여 살리신 생명의 떡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떡이 되기 위해서, 십사만 사천이 반드시 해야 할 경험이 있다. 그것은 보리알과 밀알이 깨어지고 빻아져 가루가 되어야 떡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완전히 깨어지고 빻아지는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고난, 첫 열매가 깨어지는 경험이다.
1. 소제가 되기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 중에 소제가 있다. 소제 제물은 고운 가루로 만들어졌다. 소제 제물이 되기 위해서 깨지고 빻아져야 한다. 첫열매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가루로 부서지는 경험을 하셨다. 예수님의 생애야말로 깨어지고 빻아져서 완전히 없어지는 실례의 대표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깨어지고 부서져서 우리의 생명의 떡이 되셨다. 그렇게 깨어짐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되려면 ‘나’라는 존재가 부서져야 한다. 통밀알 같은 내가 부서져 만지면 ‘뽀드득’ 소리를 낼 정도로 고운 가루가 되어야 한다. ‘고운 가루’라는 말은 하나님 안에서 완벽하게 내가 죽은 상태를 말한다. 이렇게 자기 자신이 다 죽은 사람이라야 다른 사람을 살리는 떡이 될 수 있다. 곱게 빻은 가루로 반죽한 떡은 매우 부드럽고 사람들이 먹기 좋은 떡이 된다.
2. 고난의 불에서 구워지다
떡이 되려면 불에서 구어져야 한다. 불에 구워진다는 것은 불같은 시련 속에서 연단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안과 밖이 모두 익을 때까지 뜨거운 불에서 단련을 받아야 한다. 불에서 연단을 받아야 주님께 바쳐질 떡이 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고난의 불을 통과하게 하신다. 떡은 고난과 관계가 있다. 성경은 종종 떡을 “고난의 떡”이라고 불렀다.
“이레 동안은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을 그것과 함께 먹으라”(신16:3).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사 30:20).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빌3:10)라고 말했다. 첫 열매 되신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참여하기 위해 우리도 주님을 따라 고난을 받아야 한다.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아야 한다. 부활에 참여한다는 것은 죽으심을 본받는 것이 아닌가! 고난의 과정에는 반드시 죽음을 통과하는 과정이 있다. 부활에 참여하려면 죽어야 하는데, 나의 모든 것, 자아, 욕심, 이기심, 야망, 탐욕 등이 다 죽어야 한다. 렇게 정결하게 되기 위해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것이 고난이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8:17).
3) 십사만 사천과 고난의 학교
십사만 사천의 이마에는 아버지의 이름과 어린 양의 이름이 쓰여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어린 양 되신 예수님의 성품을 이룬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성품을 단련시키시기 위해 우리를 고난에 학교에 입학시키신다. 깨어짐의 학교에 들어가게 하신다. 고난과 시련과 박해를 통과한 자들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의 품성이 잘 드러난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증오와 박해를 받는 것은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훈련을 받는 것이다. 그들은 세상에서 좁은 길을 걸으며 고통의 풀무에서 순결하여진다. 그들은 쓰라린 투쟁을 통해 그리스도를 따르고, 극기를 실천하고, 쓰라린 실망을 통하여 죄의 악함과 비애를 배워 죄를 증오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게 된 그들은 흑암 저편의 영광을 바라보고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고 말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항상 고난의 풀무에서 당신의 백성들을 시험하셨다. 찌꺼기가 그리스도인 품성이란 순금에서 제거되는 것은 뜨거운 풀무 가운데서이다. 예수께서는 그 시험을 주목하여 보신다. 욥은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 23:10)고 간증했다.
깨어짐의 경험을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축복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이 고난과 시련을 허락하신 이유를 깨닫고 그 깨어짐을 온전히 겪어내야 한다. 깨어지는 것은 아프고, 고통스럽고, 슬프고, 깨진 흔적을 남기지만, 그 고난의 과정을 통과한 사람들은 귀한 공과를 깨닫게 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깨어지셨다. 깨어진 예수님의 몸에서 물과 피가 흘러나왔다. 반석이 깨어짐으로 생수가 쏟아지듯, 예수님의 몸이 깨어질 때 생수가 쏟아지고 보혈이 쏟아졌다. 예수님은 자신을 깨뜨려 살과 피를 나누어 주셨다. 그와 똑같이 예수님의 고난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자신이 온전히 깨어지는 경험을 하고 연단을 받아 정결한 품성을 갖추게 될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마지막 백성들이 될 자격을 갖추게 될 것이다. 그런 모든 고난의 과정, 깨어짐의 관정을 견디고 승리한 사람들만이 경험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치면서
하나님께서는 지금 첫 열매를 모으고 계십니다. 그들은 땅에서 구속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가 될 십사만 사천입니다. 하나님의 첫열매가 되기 위해, 그 사람들은 깨어지고 으스러지고 자신이 완전히 죽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 고난의 과정을 통과하고 승리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보좌와 시온산과 하늘 유리 바닷가에 서서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 경험의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땅에서 구속함을 받은 처음 익은 열매인 십사만 사천이 부르는 노래는 아무도 따라 부르지 못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첫 열매로 준비되고 계십니까? 고난을 통해 온전하게 변화된, 아름다운 성품을 가진 첫 열매가 되어 하늘 시온산에 서서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하게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