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9월 19일, 지존파 사건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 1994년 9월 19일 지존파 일당이 검거되면서 ‘살인공장’까지 차려놓고 살인을 밥
먹듯이 저지른 이른바 ‘지존파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1994년은 이것 이외에도 유독 대형사건이 많은 한 해였다. 자신의 부모를 돈 때문에 살해하고 시체를
불태운 박한상 사건, 여성 6명을 납치해 성폭행하고 그 중 2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온보현 사건 등이 지존파
사건 전후로 발생하였다.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도 뒤숭숭했다.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했고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되어 49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그리고 연말에는 서울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로 100여명이 다치는 참극이 벌어졌다.
1993년 4월 두목 김기환(26세, 강간 치상 1범)을 중심으로 강동은(21세, 특수 절도 등 2범), 김현양(22세,
상해 1범), 문상록(23세, 특수 절도 등 3범), 백병옥(20세, 특수 강도 등 2범), 강문섭(20세, 전과 없음)
총 6명의 조직원이 도박판에서 서로 만나 ‘가진 자에 대한 맹목적인 복수’라는 목표 아래 홍콩 영화 ‘지존무상’
의 이름을 따서 ‘지존파’를 결성하였다.
두목 김기환은 일찍부터 사회 고위층을 겨냥한 살인을 계획했다. 초등학교 내내 반장을 했던
그의 생활기록부에는 “이해력이 빠르고 산수나 계산 능력이 우수하다”라고 의견이 적혀 있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김기환과 중학교 후배 강동은 그리고 강동원의 교도소 동기 문상록 3명이 의기투합하여 시작했다가
이 후 강문섭, 김현양, 백병옥 등이 합류하게 되었다. 유일한 여성으로 이경숙(당시 23세, 여, 절도 1범)
이 있었지만 이경숙은 부두목 강동원의 애인으로 지존파가 잡히기 얼마 전에 가담했고 직접적으로 살인행위
에 가담하지 않아 후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평소 가진 자에 대한 원한과 어린 시절의 불우한 환경으로 인한 억울함 등을 내세워 “1) 우리는
부자들을 증오한다. 2) 각자 10억 원씩 모을 때까지 범행을 계속한다. 3) 배반자는 처형한다. 4) 여자는
어머니도 믿지 말라.”라는 세부 강령 아래 본격적으로 '지존파' 활동을 하게 되었고, 결정적인 계기는 당시
사회를 온통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부유층 자녀들의 '대학 입시 부정' 사건 이었다고 한다.
약 한달 가량의 기간 동안 막노동을 하여 범죄의 아지트를 만들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였고, 본격적인 범행에
앞서 '살인 예행 연습'을 치르겠다는 목적 하에 1993년 7월 18일, 집으로 귀가하던 최모양(당시 20세)을
납치, 윤간 후 목 졸라 살해 후 암매장했다. 이들의 엽기적 연쇄 살인이 시작된 것이다.
다시 한달 뒤 같은 조직원이었던 송봉우(당시 18세)가 조직의 돈 300만 원을 갖고 도주해버리자
배반자는 처단한다는 강령에 따라 그를 추격하여 전남 영광군 야산에서 칼과 곡괭이를 이용, 잔혹하게
살해 후 암매장했다.
그 후 더 큰 '담력'을 키우겠다는 명분으로 지리산에 들어가 일주일 동안 살인을 위한 합숙훈련 실시, 범죄
조직에 관련된 기사와 책, 잡지 등을 탐독하며 완벽한 범행을 위한 사전준비를 했다.
1994년 5월, 김기환의 어머니 최모씨(78세)가 사는 전남 영광군 불갑면에 정착하여 4개월 동안 보수
공사를 한다는 명목 하에 대지 117평, 건평 38평의 범죄 아지트를 만들었다. 피해자를 감금할 쇠창살 지하
감방과 사체를 불태울 소각로, 외부인의 접근을 막기 위한 전력 검침기 등을 설치했다.
그런데, 6월 17일, 두목 김기환이 동네 선배의 조카인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을 강간한 혐의로 체포되었고,
이후 징역 5년 형을 선고 받고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 하지만 두목을 잃은 지존파 일당은
강동은을 부두목으로 삼고 감방에서 김기환에게 모든 범죄 지시를 받은 뒤 본격적인 범행 활동 개시한다.
9월 8일 새벽, 첫 번째 범행을 개시했다. 경춘가도 양수리 근처에서 고급승용차를 타고 귀가하던 밤무대
악사 이종원(당시 34세)과 카페 여종업원이자 애인인 이 모양(당시 27세)을 트럭으로 납치했다. 지존파
일당은 이 모양을 윤간한 뒤 이종원이 예상과 달리 부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남자를 살해하기로 결정했다.
김현양은 여자만은 살려두자는 제의를 했고 서로 몸싸움이 생길 정도로 의견차를 보였고 결국 이
모양은 살려두는 대신 함께 살인에 가담시키기로 했다.
다음 날 이모씨를 죽이는 과정에서 강제로 이 모양을 투입시켜 목을 조르게 했다. 그리고 9월 10일 남자의
시신은 훔친 차에 실어 음주 사고로 위장한 후 전북 장수군의 절벽에서 밀어 떨어트렸다.
9월 13일, 추석 전날, 경기도 분당에서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는 소윤오(당시 42세), 박미자(당시 35세)씨
부부를 납치, 아내를 인질로 잡아둔 후 소 씨에게 현금 1억 원을 가져오도록 지시한다. 거액을 강탈한 후
돈을 주면 풀어주겠다는 약속을 어긴 채, 증거를 인멸하기 위하여 칼과 도끼, 공기총으로 잔혹하게
살해하고 시신은 소각시켰다. 그 와중에 김현양은 피해자 박씨의 인육을 먹었다고 진술했다.
소 씨 부부를 살해한 후 '세상을 향한 전쟁'을 준비하겠다는 명목 하에 다이너마이트, 군용 검, 공기총,
가스총 등의 무기를 다량 구입하고, 압구정 현대백화점의 진짜 '부유층 고객 명단'까지 입수했다. 그리고
그들은 하루 600-700만원 이상 물품을 구입하는 사람이 우선 범행대상으로 지목되었다. 당시 1000
여명의 우수고객명단에는 정, 관계 유명인사, 재벌 2세 등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김기환이 없는 상황에서 조직원이 부족하다는 판단 하에 강동은의 애인인 술집 종업원 이경숙을
끌어들여 9월 17일 조직에 가담시켰다.
한편 9월 15일, 다이너마이트 폭파 실험을 하던 중 김현양은 부상을 당하게 되었다. 김현양은 9월 8일
납치되어 인질로 있던 이 모양을 동행하고 병원에 갔다. 당시 “이 년을 죽여야 한다”고 했던 문상록
등으로부터 이 모양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치료를 받는 도중 이 모양은 극적으로 탈출하여 택시를 타고 도주했다. 김현양이 쫓아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3번씩이나 택시를 갈아 타고 도착한 곳은 서울 서초경찰서, 시간은 1994년 9월 16일
새벽 2시였다. 이로써 사회를 온통 경악하게 만들었던 지존파의 끔찍한 살인 행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들이 거처하며 엽기적인 살인행각을 일삼은 전남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 아지트 지하실은 끔직한
‘인간 도살장’이었다. 잔인한 고문과 살인행위가 벌어졌던 감금시설과 시체를 태우는 소각장까지 모두
갖춘 지하실현장에는 유골 2구가 소각장에 그대로 남아 있었고 시체를 태울 때 뿜어 나온 가스가 그대로 남은
듯 매캐한 냄새가 났다.
붙잡히자마자 수많은 취재진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스스로 인간이 길 포기했다는 둥, 어머니를 못 죽여
한이라는 둥, 인육을 먹었다는 둥 주장했던 김현양과 강남의 야타족, 오렌지족을 다 못 죽여 한이 된다고
이를 갈았던 강동은 등은 재판 과정에서 비로소 회개를 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두목
김기환 만큼은 마지막 순간에서도 뉘우치는 모습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회와 가정에게 이 모든 원인을 돌렸다고 한다.
살인·강도·사체유기죄 등을 적용, 사형을 선고 받은 지존파 일당 김기환, 강동은, 김현양, 강문섭,
문상록, 백병옥은 1995년 11월 2일 서울구치소에서 사형에 처해졌다.
1994년 9월 22일 현장 검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