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전에 바다가 무척 아름다운 동해안에서 2년 반을 살았었는데 참 아름다웠었다. 아파트에서 창을 열고 베란다에 서면 앞산에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리고, 녹음 군데군데 벚꽃 나무 군락들이 화려한 꽃을 피우고 있고. 고개를 돌리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보였다.
바다는 참으로 천의 얼굴과 색깔을 하고 있었다. 특히 태풍이 불거나 장마가 지난 후에는 평소의 그 모습과는 완연하게 달랐다. 어쨌든 동해는 청색이 너무 짙푸르러서 강한 느낌이 많이 들던 하와이나, 너무 부드러워 무른 맛이 들던 보라까이와는 달리, 적당한 색깔과 강도를 함께 지녀 훨씬 아름다웠다.
난 그 것을 '긴장감이 드는 생명력'이라고 이름 붙였었는데, 어쨌든 그 바다를 오늘 한강에서 만났다. 사정없이 강변에 불던 살을 에이는 매서운 삭풍과 그 바람의 에너지가 계량·가시화되어 큰 파도로 출렁대던 바다를.
2. 기상과 함께 여의도로
아내는 등산을 하자고 한다. 등산과 마라톤의 우열을 난 가릴 수 없다. 일요일만큼은 아내와 함께 산엘 가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오늘아침은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고개를 두어 번 가로 흔들고 옷을 챙겨 입는다.
마라톤이 있는 날 전날이면 내가 사는 아파트 초입의 종합상가 떡집을 간다.
그 집에서는 하얗고 깊지않은 스티로폼 사각접시에 떡을 스물 또는 서른 쪽 가량 깔고 랩으로 덮어 깨끗하고 먹음직스럽게 포장해서 파는데 그 종류가 십여 가지가 넘는다. 굵은 검정콩을 넣어 네모나게 썰은 것, 노르스름한 인절미, 하얀 절편, 초록색 흰색 분홍색의 송편, 새하얀 백설기, 검붉은 시루떡, 가운데 불그스레한 단팥을 넣은 부드러운 '퓨젼' 떡 등등.
포장 하나엔 이천원인데 오천원이면 세포장을 준다. 그 중 두 접시 정도는 아이들 차지가 되지만 한 접시는 먹고 나올 수 있다. 오늘 아침에도 그 떡을 먹고, 내친 김에 김치찌개에 밥도 말아 몇 술을 더 뜨고 집을 나섰다.
집결지인 여의도로 향한다.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아나운서의 얘기가 긴장감을 준다. 지금 서울 기온이 영하 8도라고. 낮 기온도 영하 5도 안팎이 될 것이라고 한다. 아아, 이 추위에 달려야 할 것이냐...를 두고 순간 망설인다. 한편 날씨도 날씨이지만 이제 겨우 두 번째 도전하는 풀코스가 과연 어떨지 걱정이 된다.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여의도에 다다르고 대한생명빌딩을 끼고 외곽도로를 우측으로 돌아가니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처음 오는 길인데도 아주 잘 찾았다. 예감이 좋다.
3. 출발장 스켓치
9시 20분. 아주 운이 좋았다. 한강공원관리사무소 건물 바로 앞에 빈 공간을 발견했다. 다름이 아니라 노랑검정 페인트를 엇갈려 칠한 굵은 철봉으로 된 긴 교통통제 바가 놓여있었기 때문에 황금같은 그 자리가 남아있었던 것이다.
차를 세우고 발로 툭... 차 보았다. 끄떡도 하지 않았다. 잠시 난감해하다가 힘을 써보았다. 두 손으로 한 쪽 끝을 잡고 '끄응...' 들어올렸더니 '뚜욱!' 소리를 내며 들렸다. 아하, 그랬구나. 봉 자체는 무겁지 않았으나 바닥에 얼어붙어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재수 좋게 본부석에서 불과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 나만의 베이스캠프를 차린 셈이다. 얼마나 요긴했는지 모른다. 옷을 갈아입고, 휴식을 취하고, 드나들기에 더없이 편리한 캠프. 화장실엘 가니 그 곳에서 옷을 갈아입는 분들이 보여 미안하기도 하고 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다.
광장. 서울마라톤의 모든 회원들이 가족까지 동원되어 극심한 추위 속에서 전력투구하고 있었다. 여의도 강변에서 광장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온 몸이 덜덜 떨리고, 춥다는 느낌 정도가 아니라 아예 괴로웠다.
많은 분들이 배번을 수령하기 위하여 줄을 서 기다리는 동안에 통성명을 하고, 이 지독한 추위에 관하여 얘기를 나누고 있다. 보온에 최대한 만전을 기하지 않으면 큰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는 것, 얼굴, 손, 하반신의 보온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는 것 등등.
이제 추위는 어차피 각오하고 나온 것, 누구를 탓 할 수 없는 본인이 선택한 길,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전의를 불사르며 마음을 강하게 먹어본다.
서울, 아니 전국 아마추어 마라톤의 기라성같은 분들이 대거 이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지만 직접인사를 나눈 적이 없는 탓으로, 그냥 눈이 마주치면 목례만 보내고 만다. 사실 다른 대회에서 뵌 몇몇 분이나 셀 수 없이 인구에 회자되던 분들은 사진을 눈여겨보아 둔 탓으로 낯이 설지는 않았지만, 어디 그게 내가 그 분들을 안다고 선뜻 손을 내밀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있으랴...
경험이 아주 많아 보이는 한 분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다소 준비가 허술한 분들에게 걱정과 도움의 말을 챙겨주신다. 나는 다행히 두툼하고 매우 따뜻한 팬츠를 입고 그 위에 운동복을 입었기 때문에 추위를 견딜 수는 있었다. 위에는 반 팔 면 티, 긴 팔 면 티, 그 위에 모자 달린 바람막이 옷을 입었다. 아아... 벌써 발도 시리다. 겨울 보온용 마라톤화가 있을까? 한 번 알아봐야겠다. 발이 너무 차다. 이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분주히 여기저기를 챙기시는 나이를 잊으신 회장님과 많은 분들의 행동이 민첩해지더니... 드디어 출발 총성이 울렸다.
4. 출발, 그 암담함
난 항상 출발할 때가 제일 힘들다. 완전히 풀로 남은 거리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다. 반면 앞으로 나아가면 갈수록 몸은 피곤해질지 모르지만 남은 거리가 짧아지므로 마음은 가벼워진다.
힘이 드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육체가 느끼는 것으로, 이는 달리면 달릴수록 힘이 든다. 즉, 하프를 달리면 그 동안 달려온 피로가 누적되어 출발선에서보다는 육체가 훨씬 힘들어 할 것이며 골인 지점에 가까워질수록 그 현상은 심해질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신이 느끼는 것으로 이와 정 반대의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달려온 거리가 많아질수록, 즉 남은 거리가 작아질수록 마음은 희망으로 고통을 잊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잘 달리는 사람은 처음에는 힘이 넘치는 육체의 강점으로, 후반으로 가면서는 완주의 희망을 향한 정신력으로 마라톤의 고통을 극복하는 것이 아닐까.
아, 어찌 되었든 이 추위에, 이미 삭풍에 얻어맞은 얼굴은 추위는 잊은 지 오래, 감각도 없고 쓰라려오기 시작하는데 어느 세월에 광진교를 다녀온단 말인가.
5. 한강변의 다리들
한강에 있는 다리들의 이름을 아는가, 그리고 그 다리들을 순서대로 나열해보면?
티비의 '생방송 퀴즈가 좋다'에서 이런 문제가 나온다면... 그리고 누군가가 숨도 쉬지 않고 대답해버린다면 이 사람은 서울시청의 교량관리담당이나 토목기사가 아니라 마라톤선수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 의미 없는 '대교'라는 말을 빼 버리고 헤아려보면 원효, 한강철교, 한강, 동작, 반포(잠수), 한남, 동호, 성수, 영동, 청담, 잠실, 잠실철교, 올림픽, 천호, 그리고 공사중인 광진교까지... 뉘라서 이 많은 다리들을 한 치 오차 없이 순서는 물론 생김새까지 꿰차고 있단 말인가? 나아가서 어느 분이 말씀하신 바람귀신 산다는 풍귀터널(다리)까지. (물론 마포대교에서 김포대교까지의 강 하류 쪽의 다리와 상류의 강동대교가 있지만)
마라톤을 하고 난 후부터는 이제 단순히 거기 있었던 다리들, 또는 멋없이 지었다고 탄식해대던 대상으로서의 다리가 아니라, 그 하나 하나가 남은 거리를 알려주고, 포기하지 않도록 위로의 말을 던져주는 의미있는 주체들이 되었다.
앞으로는 교량의 형태나 특징, 얽힌 역사까지도 관심을 가져보고 싶다.
6. 반달모임 장소의 매점 아저씨
이런 저런 생각 속에 어느덧 반포에 이르렀다. 깨끗한(사실은 아주 검은색의) 아스팔트 포장... 문득 모임장소를 반포에서 여의도로 옮길지 여부를 토의하던 생각이 났다. 이렇게 우리를 위해서 말쑥한 포장공사를 마쳤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근거지를 옮겨버렸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니 옮기지 않은 것이 다행스러웠다.
언젠가 반포매점에서 음료수를 사는데 아저씨가 물었다.
'선생님은 어느 동호회 소속입니까?'
난 깜짝 놀랐다.
서울마라톤, 런클, 서지마, 반달, 토달... 매점의 아저씨는 음료수를 건네주는 동안에 여러 마라톤 관련 이름들을 주섬주섬 대고 계셨다. 비상금이 없을 때는 외상으로 좀 달래도 충분히 그러실 것 같은 인상의 아저씨. 이도 정겨웠다.
조금 더 달리면 어느 님이 개를 데리고 나왔다가 사고를 당할 뻔했다던 다리가 나온다. 그분의 글을 읽은 후로는 이곳을 지날 때는 꼭 그 개가 금방이라도 어디서 뛰어나와 내게로 달려올 듯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식으로 조금만 더 세월을 산다면 온통 한강변은 마라토너들에게는 추억의 동산이 될 듯하다. 추억의 동산이 어릴 적 고향에만 생기는 것은 아닐 테니까.
7. 반환점 까지
10킬로 급수대에 이르렀다. 춥지만 물을 좀 마시기로 했다. 목으로 넘어가는 차가운 물은 정신을 맑게 해준다. 반팔티에 반바지를 입은 청년이 힘겹게 달리고 있다. 곁에 가서 말을 던졌다.
'괜찮아요?'
이는 공허한 물음이었다. 묻기 전에 사실은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을 했었다. 과연 바람막이 윗도리라도 벗어줄 수 있는가. 나는 겉옷 하나를 벗어줘도 긴팔티를 입고있으니 견딜 수 있을텐데 그럴 용기가 있는가. 자신이 없었다.
'예...'
기운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누가 힘들다고 대답하겠는가.
자괴심속에서 다행히 뒤에서 부는 바람을 등에 업고 큰 어려움 없이 동호대교와 영동대교를 거쳐 잠실에 이르렀다. 급수대에서 쵸코파이를 하나 베어 물었는데 세상에 턱이 얼어 상하운동이 잘 되지 않았다. 최전방의 군 시절 이후 20년만에 느껴보는 추위다. 이를 다시 한 번 악다물었다. 잠실벌을 지나 올림픽대교 근처에서 반환점을 돌아오는 분들을 만났다. 손을 들어 반가움을 표하긴 했지만 서로가 정신이 없다. 드디어 반환점에 도착했다. 1시간 54분이다. 그리 나쁜 기록은 아니다.
잠시 쉬는 곁에 서있는 분의 뒷머리에 고드름이 여럿 허옇게 달려있다.
'아저씨, 그 머리에 고드름입니까?' 물었더니
아마 아시안 외국인인 듯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돌아오면서 곰곰히 생각해보아도 고드름 이외에는 짚히는 게 없었다.
8. 바람이 많은 곳
올림픽대교를 지나 잠실대교에 오니 바람이 거세다. 목전의 강물은 바다처럼 출렁대어 묘한 기분이 든다. 망망대해... 이곳은 주로와 강수면의 해발이 거의 비슷하여 시각적으로 물결이 바로 눈에 들어온다. 정말 춥다. 안간힘으로 탄천을 지난다. 항상 몇몇은 자리를 지키던 낚시꾼도 보이지 않는다. 청담, 영동대교를 지나 성수대교까지의 직선구간은 지대가 높아 맞바람을 정면으로 받는 구간이었다. 산넘어 산이란 말은 이를 두고 한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발이 감각을 잃어가는 듯한 느낌과 체온저하로 의식이 '멍멍'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경기후 어느 여성주자께서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 구간은 아주 죽음 그 자체였어요...' 나는 아무 생각없이 달렸다.
9. 성수대교
이 다리에는 얽힌 기억이 있다.
'다리가 연결이 안돼요...다리가...연결이...안돼요, 정말입니다...'
당시 과천에 살던 나는 버스를 타고 영동으로 출근하는 길이었는데 서유석씨가 진행하는 아침교통안내 프로그램에서 시청에 나가있는 리포터가 모니터를 보면서 당황해서, 설명을 하던 모습이다.
교각과 교각사이의 교량이 무너져내려 믿기 어려운 모습을 연출했던 성수교.
국가적으로도 세계적인 망신감이 되었고 때문에 한 때 세계에서 건설공사 수주가 어려웠다던가...
나는 당시 외국인들을 안내하여 공항을 드나들던 일이 많았었는데, 그 곳을 지나다닐 때마다 설명하기에 얼마나 진땀을 빼었는지 모른다. 때로는 성수교를 지날 때쯤 일부러 다른 화제를 꺼내어 주의를 돌려보기도 했다. 다른 화제로 겨우 문제의 현장을 지나고 여의도를 지나며 안도의 한 숨을 쉬는데,
'미스터 우, 아까 지나올 때 그 무너진 다리는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고 물어올 때의 허탈감은 지금 생각해도 실소를 금치 못한다.
10. 마지막 구간
마지막 급수대. 따라주시는 물을 마시며 아예 땅바닥에 주저앉아 쵸코파이를 먹었다. 졸음이 왔다.
'아이고, 졸려 죽겠네. 한 숨 잤으면 좋겠어요.' 했더니
자원봉사자께서 말도 안될 소리라고 웃으며 대꾸해주신다. 대신에,
'지금 이대로 가면 적어도 4시간 10분 안에는 들어가겠네요.' 라고 희망적인 예측을 해주셨다. 기운이 났다. 이 악천후에 4시간 10분이면 얼마나 황송스런 기록인가. 하지만 상황은 달랐다. 의지는 아무리 달리고자 하여도 몸은 거의 제자리걸음 수준이었다. 정말이지 걷는 속도보다도 느렸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니... 젖먹던 힘을 내기로 했다. 목표를 수정했다. '절대로 걷지는 않는다. 뛰다가 쓰러지더라도 걷지는 않겠다'로. 그리고 목표를 달성했다. 단 5초도 걷지를 않았으니까.
한강철교를 지나고 드디어 대생빌딩이 마치 황금빛 스커트를 입은 거인국의 여인처럼 눈앞에 나타났다. 얼마 후에 골인지점의 직선주로가 펼쳐졌다. 무선기를 입에 댄 봉사자가 배번을 보이라 한다. 바람막이의 지퍼를 내렸다. 내 배번과 내 이름이 낯선 사람들의 입에서 연호된다. 드디어 해냈다는 감동이 일었다. 이런 환대는 아마 다시 없으리라. 회장님이 걸어주시는 메달을 받고 불과 십여미터 거리에 있는 개인 베이스캠프로 갔다. 그 추위에도 땀은 흘러서 속옷을 적시고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간이 천막식당으로 가서 떡국을 먹었다. 앞에 앉으신 분이 내 뒤를 바로 따라오셨다며 어쩜 그렇게 잘 달리시느냐고 칭찬을 해주셨다. 사실 내 기록은 형편없지만 마지막 구간에서 걷지 않고 죽기살기로 끈질기게 달려가는 내 투혼을 높이 사주신 듯했다.
11. 송구영신
언제부터인가 해가 바뀌어도 마음의 설레임이 없어졌다. 아마도 새로운 것에의 희망이 감퇴된 탓이며 그만큼 순수함을 잃어버렸다는 뜻이 아닐까.
오늘 한강변을 달리며 퇴색하고 무감각해진 나의 오장육부를
매섭고 날카로운 삭풍의 銳氣로 씻고 닦아내어
본연의 선명함을 찾을 수 있기를 염원했다.
그래서 내년 한 해는 좋은 일에의 순수한 소망도 품고, 두려움 없이 변화하는 삶도 추구하리라. 작금의 키워드인 구조조정이 대수인가. 내 자신을 먼저 구조조정하여 대비를 하면, 다가오던 구조조정은 오던 길로 돌아가든지(復歸) 다른 길로 돌아가든지(迂廻) 제 스스로 알아하겠지.
2000년의 끝 날에 극한의 추위 속에서 달린 백오리 길은 이렇게 또 하나 잊지 못할 송구영신의 의미를 부여해주었다.
첫댓글오늘(2월16일 새벽 두시) 오늘 서울에서 내려와 엊그제 한강변 모임 얘기를 이보다 더 길게 적었는데, 날라가 버렸다. 감상이 많이 들어갔던 글이라 애착이 많이 가 눈물이 날 정도다. 내일 출근을 위해 이제 자야 하는데, 너무 아쉬워서 옛날 글이나마 한강변 얘기라 올려본다. 미안하다, 옛 글을 올려서.
첫댓글 오늘(2월16일 새벽 두시) 오늘 서울에서 내려와 엊그제 한강변 모임 얘기를 이보다 더 길게 적었는데, 날라가 버렸다. 감상이 많이 들어갔던 글이라 애착이 많이 가 눈물이 날 정도다. 내일 출근을 위해 이제 자야 하는데, 너무 아쉬워서 옛날 글이나마 한강변 얘기라 올려본다. 미안하다, 옛 글을 올려서.
기억력도 좋고 어쩜 그리 표현을 잘하니? 얼마나 달려야 이렇게 줄줄이 꿸까? 내가 달리는 것 같았어~
와우야! 내가 생각해도 아깝다.바람이 그리도 세게부는 한강바람에 날라갈뻔했는데 그리구 힘들게 뜀박질했는데.. 한꺼번에 30여명 개띠들이 말이다....
황금빛 스커트를 입은 거인국 여인처럼... 실감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