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목 : 백제의 마을 시음리에서 하루
* 저 자 : 류갑희
* 분 량 : 304쪽
* 가 격 : 15,000원
* 책 크기 : 148mm x 225mm
* 초판인쇄 : 2025년 03월 25일
* ISBN : 979-11-94200-75-8 (03810)
* 도서출판 명성서림
<저자소개>
군물재 자락에 펼쳐진 어린 시절의 추억을 남겨두고,
낯선 타향으로 와 평생을 그리워만하다가,
그 그리움을 견디지 못하여 찾아 왔지만, 활기를 잃고
퇴락한 텅빈 고향이 아픔만 더 쌓이게 한다.
<작가의 말>
내 고향 시음리에 대한 글을 쓰려다 많이 주춤거렸다.
시음리가 결코 뛰어난 경관이 있는 것도 아닌 평범한 농촌 마을인데
무엇을 쓴단 말인가? 아무것도 쓸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내 고향 시음리는 유구한 역사를 지니
고 있으며, 우리 가족에 대한 선대의 사랑이 진하게 묻혀 있고, 버릴 수
없는 추억이 시음리 곳곳에 묻혀 있기에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군물재!
고향의 중앙에 우뚝 솟아 있다. 이 군물재를 어려서부터 아무 생각
없이 ‘궁물재, 궁물재’라고 불렀다. 때로는 누가 궁물(국물)만 먹다가 굶
어 죽었나?
아무튼 ‘궁물재, 궁물재’라고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이 군물
재가 백제 시대 군물軍物을 두었던 군사적 요충지로 군장산軍藏山의 군
물재라는 것을 알고는 나름 긍지를 가지고 군물재 주변의 지명에 대해
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보고, 때로는 고향 분들
에게 여쭤도 보면서 궁금증을 풀어 나갔다.
퇴직 후 이런저런 글을 쓰는 중에 시음리에 관한 자료를 부여박물관
의 ‘부여군 지’, 양화면·한산면사무소 ‘우리 마을 유래’, ‘옛 지도’, ‘나무
위키’, ‘신증동국여지승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향토문화전자대
전’, ‘서울지명사전’ 등에서 찾아 필요한 내용을 기록해 두었다.
어느 날 초등학교 동창인 보원 친구와 만나 대화하던 중 고향 이야기
가 나와서 기록한 것을 보여주니, 정리해서 보내 달라기에 대충 다듬어
보내 주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친척인 샘골 용갑이 형을 만나 식사를 하고 무심
코 전송하였더니, 그날 이후 여러 군데에서 뜻하지 않은 연락이 왔다.
일파만파는 아니고 일파백파는 될 것 같다. 그분들의 고향에 대한 사랑
과 관심이 절절 흘렀다.
감탄! 또 감탄! 고향을 잊지 않고 사는 것도 행복임을 새삼 느꼈다.
아차 싶어 다시 읽어 보니 내용이 단단하지 못하여 다듬어야 할 부
분과 보충할 부분이 있는데, 이렇게 많은 관심을 보여주시니 한편으로
는 고맙고 민망했다.
2000년 우리 집 워리 이야기, ‘진돗개와 치와와의 사랑’이 SBS 8시
뉴스와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왔을 때가 떠올랐다.
평소 시상詩想이나 제재가 떠오르면 마음속 응어리나 풀고, 나만이
즐기고자 글을 써서 ‘내 안의 뜰’에 정리해 둔다.
“채현아, 이 노트를 다음에 줄 테니 잘 간직하고 있다가 할아버지 생
각나면 보도록 해.”
“알았어, 할아버지 말대로 할게.”
그리고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드러내놓는 것을 즐겨하지
않아 기껏 독자라야 아내뿐인데, 그것도 간혹. 이렇게 번질 줄은 몰랐다.
끝으로, ‘한 사람의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는 아프리
카 속담처럼,
어릴 적부터 쌓여 있던 내 안의 창고에서 케케묵어 먼지를 가득 뒤집
어쓴 많은 것들이 새록새록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릴 적 체험을 위주로 쓰면서 역사적인 내용은 근거 자료를 바탕으
로 나름 읽기에 지루하지 않도록 쓰려고 노력하였다.
글을 쓰고 정리하는 동안 어린 시절로 돌아가 시음리에 살고 있었으
며, 잊고 지냈던 말들이 나도 모르게 떠오를 때면 원시 상태의 언어나
발견한 것처럼 깜짝 놀라는 기쁨도 누린 즐거운 작업이었다.
더불어, 글을 쓰고 다듬으면서 정겨운 고향에 대해 그리움으로 맺혀
있던 응어리도 많이 풀렸다.
고향은 단순히 잔뼈가 굵어진 곳만은 아니다. 나의 모든 가치관이나
행동의 기반이 되며, 순수한 영혼의 뿌리가 되는 곳으로 시간을 초월한
보물이다.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七十而從心所欲 不欲 不踰矩’
- 일흔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도 그것이 법도를 벗어나
지 않았다.
공자여!
70이 되어 무슨 이익을 취하고자 법도를 어긴단 말인가?
그냥 하루하루 즐기면 되지!
<목차>
들어가며 ● 04
에필로그 ● 300
제1부_시음리를 떠나 서울 생활
■ 시음리 → 서울 구로동 → 방화동 → 도곡동 → 역삼동
이제 내일은 떠나는 날 ● 13 | 다음 날 ● 14 | 2층집 장만 ● 17
제2부_귀향
■ 서울 → 한산 → 동자북 → 구동리 → 마량리 → 온동리 → 연봉리 → 강성굴 → 신성리
귀향 ● 23 | 한산韓山 ● 24 | 林碧堂 金氏(1492~1549) ● 25 | 건지산과 건지산성乾芝山城
● 26 | 생물 시간 ● 27 | 고향 나들이 ● 28 | 한산읍성(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34호) ●
30 | 한산 찐빵 ● 30 | 동자북(동산리) ● 31 | 한산 모시 ● 33 | 한산 소곡주 ● 35 | 구동
리 ● 36 | 구실 다리(구슬 다리) ● 38 | 신체검사 ● 39 | 복사(복숭아)밭 ● 41 | 역참驛站
● 42 | 온동리溫洞里 ● 44 | 연봉리蓮峰里 ● 45 | 연봉국민(초등)학교 ● 47 | 강성굴 ● 47
| 한산들 ● 48 | 동상凍傷 ● 52 | 늦은 귀향 ● 53 | 신성리 나룻개 ● 54
제3부_백제의 길을 걷다
■ 다릿개 → 상짓말 → 군물재 → 샘골 → 보통개 → 신성리 → 잿말 → 아랫말 → 강당 → 고라실 → 옥
샘 → 마구생이 → 옥배미 → 정자나무 → 시릉개 → 육골 → 드메기 → 짝굴 → 앙굴 → 장틀 → 상
촌 → 각살
다릿개 ● 59 | 중우 ● 61 | 시음리 621번지 생가生家 ● 62 | 생가生家를 판 죄책감 ● 65 |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 67 | 불놀이 ● 70 | 불난 웃집 짚눌 ● 71 | 솜씨 좋으신 할아버지
● 72 | 군물재 ● 79 | 드디어 시음리에 ● 82 | 군물재 정상의 큰 묘 ● 86 | 왕텡이(장수말
벌) ● 87 | 원삼국 시대의 주거지 ● 90 | 통제 불능의 대나무 ● 92 | 금강유역문화권 ● 94
| 상짓말 ● 94 | 시음국민학교 ● 97 | 신광식 교장선생님 ● 99 | 오줌싸배기(오줌싸개) ●
100 | 똥싸배기(똥싸개) ● 101 | 국민학교 졸업식 ● 103 | 역사적인 날(2024년 2월 29일)
● 106 |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 107 | 이보원 ● 109 | 은사님들과의 만남 ● 112 | 김정
규 ● 114 | 오수철 ● 116 | 채알(차일) 귀신 ● 119 | 추억 속의 앞산 ● 120 | 도장풀 ● 121
| 재수 옴 붙은 권구 ● 122 | 도깨비불燐火 ● 123 | 도깨비와의 씨름 ● 124 | 미리 잡아먹
은 소 ● 125 | 외로운 안장 바위 ● 126 | 말매미 ● 126 | 세심정(洗心亭, 마음을 닦는 정
자) ● 128 | 금강 ● 129 | 의자왕 ● 129 | 공주산 ● 134 | 공개(곰개) ● 134 | 지네와 이무
기 ● 135 | 용龍 ● 139 | 용오름 ● 141 | 사마귀 ● 143 | 달걀구신(귀신) ● 145 | 약방 할
아버지 ● 145 | 샘골 우물 ● 147 | 한 동네 샘골과 상짓말 ● 149 | 상짓말과 샘골은 왜 한
동네일까? ● 150 | 시음리의 중심 ‘상짓말의 샘골’ ● 151 | 웃집 ● 152 | 장가갈래요 ● 155
| 거위 ● 156 | 석굴 ● 156 | 토굴 ● 157 | 사라진 정원과 팽나무 ● 157 | 금계의 아쉬운
알 ● 158 | 윤순수 ● 159 | 임백호 ● 163 | 이발소 ● 164 | 도장병(버짐병) ● 165 | 어린
송아지 ● 166 | barbor ● 167 | 순덕이 ● 167 | 보통洑通 ● 169 | 달수 형 ● 171 | 아이고,
배야! ● 172 | 뱀 고기 ● 173 | 왕호 형 ● 174 | 뱀사탕과 뱀술 ● 175 | 풀빵 100개 ● 176 |
참외 서리 ● 179 | 썰매 타기 ● 180 | 쥐잡기 ● 181 | 익사 사고 ● 182 | 우리 집 술 내력 ●
182 | ‘형’이라는 호칭 ● 187 | 고창연 ● 187 | 영구 아저씨 ● 189 | 빨간 완장 ● 191 | 신
성리 ● 193 | 신성리 물난리 ● 193 | 신성리 S씨 ● 194 | 처녀 귀신 ● 196 | 신성리 갈대밭
● 197 | 다릿개 ● 197 | 다릿개 양철집 ● 198 | 아버지의 복막염 ● 200 | 더위팔기 ● 203
| 앵맥이(액막이) ● 204 | 다리 밟기와 쥐불 싸움 ● 204 | 팥밥 얻어 오기 ● 205 | 눈싸움
● 206 | 땅개 ● 207 | 불도그를 사러 서울로 ● 207 | 잿말 ● 213 | 고창집 ● 213 | 고창약
● 214 | 아랫말 ● 216 | 김 부잣집 ● 216 | 물까치 ● 217 | 가마우지 ● 218 | 가마우지 경
제 ● 218 | 강당의 신우대 ● 221 | 부모님 산소 앞 대나무 ● 221 | 사군자四君子 ● 222 |
고라실(고래실) ● 223 | 기계화된 농업 ● 224 | 옥샘 ● 227 | 바가지 옥샘 ● 229 | 승천
아저씨 ● 232 | 싸움닭 ● 235 | 안곡천 발원지 ● 238 | 마구생이 ● 239 | 옥배미 ● 240 |
곱졸(곱절) ● 241 | 탑거리 ● 242 | 정자나무(느티나무) ● 244 | 시릉개(시음개, 시음2리)
● 246 | 이곡(稼亭 李穀. 1298 ~1351) ● 247 | 서낭당 ● 249 | 뱃턱(나루터) ● 249 | 노름
● 250 | 육굴(육골) ● 252 | 드메기 ● 253 | 짝굴(작골) ● 253 | 이덕원 씨 ● 254 | 공동
묘지 ● 256 | 삼성산 ● 256 | 안골 ● 257 | 장틀 ● 258 | 상지포 ● 260 | 집당골 ● 261 |
각살 ● 264
제4부_우리집 신앙의 뿌리 시음교회
우리나라의 기독교 ● 269 | 종교인 학살 ● 271 | 시음교회 ● 272 | 부흥회 ● 273 |
박준필 목사님 ● 274 | 우리 집의 기독교 ● 275 | 할머니(1896.2.23.~1962.2.14. 양
력 3.19) ● 275 | 할아버지(1894.9.19.~1966.6.19.) ● 277 | 어머니, 권정신 권사
(1916.11.14.~1997.5.29) ● 278 | 어머님 장례식 ● 282 | 탑산리 ● 282 | 송덕 기념비 ●
284 | 광희 누나 ● 285 | 남희 누나 ● 286 | 젖국배미 ● 287 | 산소 ● 289 | 뻐꾸기 ● 291
| 산비둘기와 참새 ● 293 | 하늘 잠자리 ● 294 | 감나무 ● 294 | 할아버지 ● 296 | 할머
니 ● 296 | 아버지 ● 297 | 울엄니 ● 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