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 그리고 또 한 명의 악처로 불리는 여인이 여기 있습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입니다. 톨스토이는 말년에 대문호 그 이상의 존재였습니다. 러시아 민중들에게 성자로 불릴 만큼 추앙받았지요. 그러나 아내 소피아의 생각은 달라서 훗날 이런 회고를 남겼습니다. “그는 진정한 온정이라고는 찾기 힘든 사람이에요. 그의 친절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조에서 나온거예요.”
과연 악처답게 남편을 폄하한 것인가 싶지만, 이어지는 말을 들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그의 전기에는 그가 물통을 나르는 노동자들을 어떻게 도와주었는가 하는 이야기가 기록되겠지만, 정작 자신의 아내를 마음 편하게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는 지금까지 서른두 해를 같이 살아오면서 아이들에게 물 한 모금 먹이거나, 아이들의 잠자리를 단 5분이라도 보살펴 온갖 일에 시달리는 나에게 잠시라도 쉴 틈을 준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를 거예요.”
실제로 소피아는 극도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습니다. 자녀를 열셋이나 낳았는데, 톨스토이가 모성으로 길러야 한다는 명분을 들어 절대 유모를 들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소피아가 해야 했던 일은 자녀양육과 가사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시달린 ‘온갖 일’에는 톨스토이가 초고로 쓴 글을 반듯하게 옮겨 적는 일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워낙 악필이라서 편집자들이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톨스토이의 작품들은 대부분 장편입니다. 게다가 《전쟁과 평화》는 대하소설이라고 부를만한 분량입니다.
그렇게 평생 극도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며 살았는데, 어느 날 남편이 자신의 재산과 저작권을 사회에 환원하겠노라 한 것입니다. 소피아는 극도로 분노했고, 분노는 극심한 갈등과 다툼으로 이어졌습니다. 톨스토이는 결국 가족에게 상속한다는 통보를 하고 가출해버렸고,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이상과 쾌락을 동시에 꿈꾸는 모순 때문에 끊임없이 갈등했습니다. 도박과 여자에 탐닉하는 쾌락 앞에 무릎을 꿇은 후에는 어김없이 자기 자신에게 환멸을 느꼈습니다. 이런 모순과 갈등이 노인이 되고 대문호가 됐다고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말년에 이르러,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 세상을 구원하고 싶은 갈망과 아내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는 현실 사이에서 괴로워했고, 끝내 이 모순과 갈등을 이겨내지 못한 채 객사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소피아를 악처로 부르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평생 반복된 모순과 갈등이야말로 인간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 대문호로, 또 평생 고백과 참회 속에서 구원을 갈구하게 만든 사상가로 만든 원동력이 아니었을까요.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받아 마땅한 악행을 저지른 것이 아닙니다. 악처(惡妻)니, 악부(惡婦)니 하는 것을 논할 자격 역시, 부부가 아닌 제3자에게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들이 세계 3대 악처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계기가 결국은 ‘돈’이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여성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된 시대에 남편의 무능력과 무관심은 자신은 물론 자식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으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녀들은 양처도, 악처도 아닌 그저 평범한 여성들이었을 뿐입니다.
남편에게 잔소리하고 악다구니를 쓰고, 돈 벌어오라고 내몰고, 유산 문제로 다툼을 벌인다는 이유로 악처라고 한다면, 글쎄요. 요즘 세상에 악처 아닌 아내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부부 사는 이야기가 정도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렇게 세상에 흔하디흔한 이야기에서 많은 남성들이 오해하는 점이 있습니다. 아내가 분노하는 것은 수입금액이 아니라 남편의 무관심과 무책임입니다. 남편이 가정을 살뜰히 보살피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못하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악다구니를 쓰며 남편을 밖으로 내몬다면 그야말로 악처라고 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내들이 분노하고 파탄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계기는 남편의 가정에 대한 무관심과 무책임이 끝내 무능력으로 이어지고 말 때입니다. 그 기준이 애매모호한 것 같아도 전자냐 후자냐는 이 질문 하나면 스스로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내와 가정을 위해서 한 선택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