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산봉우리 이름은 아주 특이하게 지어져 있다.
이름을 붙일 때 형상화 할 수 있는 이름을 다 동원하였으며 그러다 보니 동일한 이름의 봉우리가 꽤 많다.
가장 대표적인 이름이 ‘시루봉’이다.
이는 아랫마을에서 올려다보면 마치 떡시루를 엎어 놓은 것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이름 중에는 ‘투구봉’이 있다.
이 봉우리도 마을 사람들이 보는 각도에 따라서 전투할 때 무사들이 머리에 쓰던 투구를 닮았다 하여 작명된 산봉우리 이름이다. 백두대간 제 27구간에도 시루봉과 투구봉이란 이름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가져올 수 있는 이름을 짓고 나면 더 이상 동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훈장선생, 유학자들, 스님을 찾아가 이름을 짓곤 하였단다.
마지막으로 남은 봉우리 이름은 일명 한문을 잘 아는 식자층에서 작명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보니 불교용어가 등장하면서 주변 마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불교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결말이 나고 만다.
가장 높은 정상에 오르면 함성을 지르거나 기념사진을 찍고 정상주를 한 모금씩 마시고 정상정복의 순간을 만끽한다.
허나 불교용어로 된 봉우리에 오르면 인간계를 떠나 신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그려보는 것도 정상 오름의 별미일 게다.
백두대간 제27구간에는 묘적봉(妙積峰)과 도솔봉(도率峰)이 있다. 이 구간은 인간계을 떠난 도솔천이 있는 곳이다. 불교의 우주관에는 3계 즉 색계, 욕계, 무색계가 존재한다.
3계에는 28천이 있으며 이중에서 욕계에는 6천이 있고 제4천이 바로 도솔천이다.
도솔천은 내원과 외원으로 되어 있으며 내원에는 미륵보살이 있는 정토이다. 외원은 천인들이 오욕(五欲)의 즐거움을 누리는 곳이다. 오욕이라 함은 인간의 감각기관이 느끼는 욕망으로 색(色), 성(聲),향(香),미(味),촉(觸)욕을 말한다.
도솔봉이란 이름은 도솔천의 봉우리를 의미하고 있다.
묘적봉은 말할 수 없이 빼어나고 훌륭함이 케케 쌓여 있는 봉이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렇다면 묘적봉에서 도솔봉 구간은 수미산의 중턱인 셈이다.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곳임에도 그곳에 서 있음은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어야 한다. 헌데 깨달음은커녕 온갖 욕정에 사로잡인 인간이니 도솔봉에 오를 자격조차 없지 않는가? 묘적봉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모든 번뇌를 내어던지고 미래불인 미륵보살에게 온전히 귀의해야 할 거다.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렇다고 무작정 인간의 욕정에 사로잡혀 살아가서 무엇하리.
난 도솔봉에 올라서서 끝없이 아래로 발길질을 한 능선들을 바라보며 인간의 불타는 욕망들을 보는 것 같았다. 한참 단풍이 아름답게 물든 것을 보노라면 필경 미륵의 정토인데 이를 마치 오욕의 대상인 양 즐기는 무리를 보면서 그 속에 서 있는 나를 꾸짖어 보았다.
이른 아침 공복에 홀로 앉아 무상무념에 빠져보기도 한다.
허나 온갖 번뇌가 수시로 찾아와 공의 세계를 가로막는다.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고정된 것이 없듯이 인간 또한 수없이 변화한다.
하여 변화의 끝은 번뇌로부터 벗어난 해탈의 경지이며성불하는 길일 게다.
묘적봉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작은 깨달음이라도 얻어 수미산의 영역으로 들어가야 할 게다.
28개의 천 중에서 도솔천에라도 이르러 미륵불의 정토를 여행해야 하겠지.
이는 꿈속에서 일어날 일장춘몽이 되어서는 아니되리라.
필경 살아있음에 도솔봉에 올라 인간계를 내려다보고 있는 미륵보살을 만나야 할 게다.
모든 인간은 불성을 타고 났다고 하지 않았던가.
‘교외별전 불립문자’라고 했다.
보조국사 지눌이 선종에서 참선과 수양을 통해서 부처에 이를 수 있음을 가르친 거다.
그렇다 어려운 경전을 읽지 못하여도 수행을 통해 성불할 수 있다하니 하찮은 인간의 무리도 가능성이 있는 거다.
백두대간길은 백두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한반도의 척추를 따라 걷는 산길이다.
<산경표>에서 정해 놓은 그 길을 내 작은 발길로 뚜벅뚜벅 가는 거다.
이는 산수의 화려함도 맛보고 느끼는 길이다.
허나, 불교의 세계를 가져다 놓은 봉우리에 들어갈 때만이라도 수행의 길을 걸어야 할 게다.
이는 다름 아닌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인간사의 오욕을 멀리하고 수미산을 바라보며 부처님의 도장에 드는 거다.
이는 일주문을 넘어서기 전에 속세의 모든 욕망을 내던지고 내 속에 숨어 있는 ‘참나’를 찾아내며 걸어야 할 산길이다.
멀고도 힘든 백두대간길을 왜 걸어가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감히 말하리라.
“오욕을 떠나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그 속에서 인간의 본성을 찾아 부처님 계신 곳,
수미산 중턱으로 간다.” 고 말해보련다.
다음 산행지가 소백산연능을 종주하는 길이다.
그곳에도 부처님이 계실 거다. 연화봉, 비로봉, 국망봉, 이 또한
불국토가 아닌가.
마음 단단히 고쳐먹고 준비해보련다.
발자국을 뗄 때마다 ‘교외별전 불립문자’를 암송하며 수미산에 희망을 두고 가보련다.
그래서 백두대간은 수행의 길이다.
첫댓글 백두대간 종주에서 수 많은 깨달음에 직면하시네요. 부럽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