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운명의 시계는 그 때 이미 결정 되었다
경제학 용어로 경제재와 자유재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자유재는 공기, 햇빛 같이 아무런 대가 없이 소비하는 재화를 말하고 경제재란 대가를 반드시 지불하고 소비해야 하는 재화를 말합니다. 옛날에는 물은 자유재였는데 이제는 아주 비싼 경제재가 되었습니다. 환경도 마찬가지입니다. 환경보호를 위해서 친환경 제품을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세상에 공짜가 없는데 공짜에 익숙해지면 모든 게 저절로 생기는 줄 압니다. 청소년을 교육 시킬 때는 공짜 심리에 물이 들지 않게 하는 것이 세상에 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제 과거 일화를 하나 소개 합니다. 제가 고교 2학년 때 격물치지에 이르고 “절대로 모르면서 아는 체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세우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 그리고 알 때까지 파고든다.”는 각오로 약방에 가서 “잠 안 오는 약(요즘은 팔지 않을 것임)을 사먹고 죽기 살기고 공부에 몰두했던 시절의 이야기 입니다. 중간고사를 치는 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떠오르지 않는 문제가 하나 있어서 답안지 제출도 못하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4지 선다형 객관식 시험인지라 정답이 아닌 것으로 확실한 것 두 개를 제하면 남은 두 개의 문항에서 하나가 정답인데 어느 게 정답인지를 모르겠더군요. 시험 종료 종이 울리기 직전에 뒤에 앉은 친구가 답안지를 제출하러 나가면서 아무도 몰래 손가락 한 개를 펼쳐 보여 주었습니다. 1번이 정답이라는 수신호지요. 그 친구가 나를 도와주려는 우정에서 그렇게 신호를 보낸 것이라는 것을 제가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요. 그런데 나는 그 문항을 빈칸으로 남긴 답안지를 제출 했습니다. 무슨 답을 적든 정답을 맞힐 확률은 25% 인데도 답을 적지 않은 것입니다. 노력해서 얻은 열매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시험 칠 그때까지는 이 문항은 이해하지 못한 수준이다“는 것을 스스로 선언 해버렸던 것입니다. 시험 끝나자마자 바로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책을 통해서 확인 했지요. 계속 모르면서 아는 체하고 거짓 속에서 살 것인가?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알기 위해서 노력하는 학생이 될 것인가? 내 운명의 시계는 이미 그 때 결정되었던 것입니다.
나는 그 후 모든 시험 문제를 다 챙겨서 오답 노트를 만들었습니다. 시험에서 틀리는 문제는 대충 공부한 수준으로는 아무나 쉽게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출제하는 것이고, 꼭 기억해야 할 아주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에 출제되는 것입니다. 나이 칠십에 와서 지난 온 길을 뒤 돌아보니 공짜는 로또 복권 1등도 버리겠다는 각오로 살아 온 세월이네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단지 시차의 문제일 뿐이지요. 대장부로 태어나 스스로에게 당당한 마음으로 살다가 깨끗하게 죽으면 감사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