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수필문학상 응모작품)
지금별학교를 아십니까?
정 규 연
우리 집이 지금 행복한 별, 지금별이고, 제가 운영하는 다음카페가 지금별학교입니다. 나는 지금별, 아내는 달, 쉰둥이는 해, 그리고 큰 놈이 키가 커서 하늘이고, 둘째는 자기 맘대로 돌아다닌다 하여 땅이다. 쉰둥이가 태어나자, 그냥 하는 사람이 되라고 그냥 ‘해’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 덕에 나는 별이 되었고, 해와 한자가 들어오기 전에 우리가 사는 별의 이름인, 지금별을 연결해주는, 다리란 뜻을 가진 달이 엄마의 이름이 되었다. 다행히 엄마의 실명이 문주라서 Moon과도 맞아 떨어졌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 집은 하늘과 땅, 그 안에 있는 해와 달 그리고 별이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는 우주인 것이다. 지금별이 온라인에서 쓰는 이름이다. 우리 집은 온라인 지가다.
사람들은 우리 집을 지금별 댁이라 하지만, 나는 그냥 지금별이라 한다. 부를 때도 임을 붙이지 말고 지금별이라 부르라고 부탁한다. 해달별은 이미 하늘에 있기에, 우러르고 닮고 싶다는 의미의 ‘니미’가 준 말인, ‘님’이 붙어 있는 것과 같기에, 지금님님이 되어 우스꽝스럽고 불편하기에 그렇다. “자기 것이라도 다른 사람이 많이 쓰는 것은?” 하는 수수께끼까지 있는 것이 이름이기에 부르기에 불편한 말은, 규연이를 ‘기어니’라 왜곡되게 하고, 상대를 세워주자고 부르면서도, 저주를 퍼붓는다는 것이다. 지칭할 때나 활자로 볼 때는 괜찮지만, 부를 때는 세 음절이 아닌 것은 불편하다.
해를 부를 때는 “해님아!”라 석자로 늘려 부르고, 산악회와 인연을 맺게 해준 산메아리란 친구를 부를 때는 “산메알!”이라 줄여 부른다. 물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처럼 긴 이름도 전교조라 줄여서 부른다. 토론을 주로 하는 전교조 조합원목소리에 출몰하는 긴 이름 때문에 깨우치게 된 것이다. 전교조 1543이란 이름을 가진 조합원이 아무리 싫은 소리를 해도, 온라인상에서 토론하기 위해서는 이름 끝에 ‘님’을 붙여서 부르는 것이 이익이기에 붙이면 8자가 되어 숨이 가쁘고 해아할 말을 잊어버릴지 모른다. 시간도 그렇지만, 상대와 대화하기 위해 부르면서 ‘뭔 이름을 이리 길게 지어 불편하게 한 다냐?’고 불평한다. 한 두 번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쌓이고 쌓이면 좋은 결과가 나올 리 없다. 물론, 자신의 글은 한 꼭지도 없으면서 다른 사람의 글에 기대어 욕만 해대는 것을 보면 원래 그런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그 끝이 좋을 리 없다.
두 음절이라도, 그 뜻이 부르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면 안 된다. 불러주는 고마운 사람들을 배려하기는커녕 불편하게 하는 이름들은, 종국에는 좋지 않는 결과를 본다. ‘우리’라는 말처럼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한 이름들 말이다. 우리당이나 우리홈쇼핑은 이미 망했고, 우리은행도 망하기 직전이다. 이것은 동서를 통하고, 고금을 관하는 법이다. 그래서 성명’삶‘자라 한다.
만약 열린우리당이 창당할 때, 지금별이 바쁜 시간을 쪼개어 드린 팁을 받아 들였다면, 정권을 빼앗기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열린’이라 해놓고, 진짜 마음도 문도 열지 않았으니 겸허하지도 않는 최악의 이름이다. 민주당도 한나라당도 자신들을 지칭할 때는 무척 불편했을 것이다. 자기들도 ‘우리, 우리당은’으로 동어반복을 했으니 편치는 않았을 것이다.
말로 하는 정치에, 이렇게 말글살이에 어두운 자들이, 정치를 오죽이나 잘 할 수 있을까? 유권자들이 저주를 퍼붓고 외면하는 것은 당연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주를 퍼부었을까? 당연히 정권을 빼앗기고, 나라사람 최고의 스승이라 할 대통령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비극까지 일어났다. 그리고는 아직도 스스로 생명을 끊은 자를 등에 없고, ‘바르게 다스린다는 정치를 하겠다는 어처구니들이 있다. 한 때 지금별이 사숙할 정도로 똑똑한 유시민까지 끌려 들어갔다. 둘레의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사어가 된 책들로만 공부를 하여 잘 몰랐던지 안타까운 일이다. 비극은 또 다른 비극을 부른다. 비극을 통하여 배우지 못한 자들에게 고통을 안겨서라도 깨우치게 하지 않으면 더 큰 비극을 잉태한다. 진짜 바보가 된 노무현의 고향에서마저, 그런 반면교사를 관 장사를 하면서까지, 다 잘게 해주겠다는 정치를 하려는 자를 용납할 수 없다. 그것은 지역정서가 아니다. 생명을 가장 우선으로 두는 김해(을) 십성들의 가르침이다. 지금별은 그래도 한 때 사숙했던 유시민을 깨우치기 위해서 [깐 이마 또 까기]글로 침을 놓았다.
이름 하나가 이런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산다는 것이 바로 의미부여이고, 이름붙이기이기 때문이다. 소설도 그럴 것이다. 원래 없었던 새로운 인물을 창조하고, 작가가 생명을 불어넣고 성격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천착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확장하거나 줄여서, 또는 지인들이나 그들의 삶에서 얻은 것들을 짜고 깁고 하여 스토리를 만들어 형상화한 인물들이 살아있는 허구가 소설이다.
만약 스스로가 그런 삶을 살고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치열한 삶의 기록들을 매일매일 기록을 한 것들을, 숙성시키면 가스처럼 가벼운 것들은 휘발하여 날아 갈 것이고, 찌꺼기들은 가라 앉아 앙금이 될 것이니, 사람의 삶에 활력을 주는 술 같은 것만을 소설의 틀에 부으면 그대로 소설이 되지 않겠는가..
나는 서울 문성중학교에서 교사로 명예퇴직을 하고, 일주일 후에 지금 살고 있는 지금별에 귀농했다. 귀농 후, 복분자와 오디 그리고 오미자 등 작은열매 농사를 하였으나, 상품으로 만들어 파는 것보다는 선물을 한다거나 즙을 내어, 오복주를 만들어 먹고, 오미자주스로 입가심하면서 살다보니, 다시 말해 농사지은 것들을 전혀 살림에 보태지 않았어도 연금만으로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우쳤다. 산밭과 텃밭에서 반찬이나 군것질 할 것은 충분하니, 쌀만 사먹으면 되니, 충분했다.
그러다 보니 좋은 생각이 막 떠올랐다.
아이들을 교육시킨답시고 외지로 학교만 보내지 않는다면, 시골사람들이 경제적으로 고통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 시골에 살다보니 그동안 애경사에 들어갔던 비용이 들 필요가 없어졌다. 김어준의 ‘한 방에 해결’은 대부분 공감을 했는데, 이 부분은 나보다 약했다. 그냥 밥값이다. 신랑이나 신부한테 축하 밥, 먹고 밥값 낸다. 사자의 마지막 밥을 먹은 대가를 내자, 생각 하면 아주 간다하다. 친구들 만나기 위해 기다릴 필요도 없어지고 그 비용도 필요 없다. 담배를 피우는 것이 몸에 안 좋고 돈이 들어가니 손해다. 바쁠 것이 없으니 면도날 하나로 1년을 써도 된다. 이것도 조선시대에서 본다면 가장 잘 드는 칼날일 것이다. 머리도 일주일만 자라면, 지금달이 깎아도 보기 흉하지 않다. 옛사람들은 비누도 없었을 것이다. 얼굴에는 화학약품은커녕 비누도 안 쓴다. 설거지는 뜨물로 한다. 농약이 필요한 작물은 숫제 심지를 않는다. 고추도 풋고추만 먹는다. 멀칭이나 제초제가 없어도 농사 잘 짓고 살았다. 등등
그래도 먹을 푸성귀는 많다. 봄에는 냉이, 달래, 취 등이 산밭에 자생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먹을 수 있고, 지금별 주변에 심어놓은 두릅과 옻나무에서 순을 따먹으면 5월 말까지는 또 난다. 5월 말이면 죽순도 쑥쑥 나온다. 예전에는 살림에 보탰는데, 이젠 별 쓸모가 없어진 죽순을 모두 캐, 삶아서 보관하면 1년 내내 먹을 수 있다. 텃밭에는 겨울을 난 상추가 그 잎이 두텁고 단 맛이 난다. 다 다른 풀들과 벌레랑 어울려 살기 때문에 굳이 제초제나 농약을 하지 않아도 잘 큰다. 특히 우리가 봄꽃이라고 알고 있는 민들레는 서리가 내릴 때까지는 나물로 계속 먹기에 먹고 싶을 때는 언제든 민들레 나물을 먹을 수 있다. 겨울을 위해서 고사리나 머위 죽순 그리고 고구마 순을 삶아서 저장하면 언제든 먹을 수 있다. 애호박 썰어 말린 것이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무말랭이도 그렇고, 풋고추 나 들깻잎도 초간장에 절여놓았다 먹으면 일품이다. 그렇다고 지금별 식구들이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회식이 있을 때는 고기를 먹는다. 삼겹살을 먹으려면 냄새가 나고, 그 그릇을 씻을 세제를 써야 하는 등, 불편한 게 한 둘이 아니기에 가능하면 삼가고 단백질이 부족하면 계란과 우유를 먹는다. 고기가 꼭 먹고 싶으면 족발을 택배로 시킨다. 돈 들어갈 곳이 거의 없다. 돈 들어가는 것이야 이따금 먹는 막걸리 값 정도다. 그 맛있는 함평월야막걸리를 한 말을 가져와도 17,000원이다. 그 정도면 항아리에 부어놓고 보름이상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연금만으로도, 서울 봉천동 보람빌라, 열악한 주거환경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반 지하인 B01호에 살던 내가, 지금별에서는 밤나무단지 1,500 평이 딸린, 대지 800평에 건평 70평인 대저택에서 대각장군을 거느리고 옥녀봉을 품에 안고서, 오복주를 마시고, 오미자주스로 입가심하면서 신선처럼 살 수 있다. 진짜로 서울 집을 팔았던 돈으로, 대궐 같은 지금별을 건설했다. 맞바꾼 거나 같다. 물론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없던, 지금별을 가꿔야 되었지만 그것도 행복이다.
그 기록들이 연금사랑방에도 있지만, 세배나 많이 담겨있는 것이 다음카페 지금별학교다. 자주 들러서 그 노하우와 깨우침을 가져가셔서 임들도 지금 행복한 별이 되기를! 지금별
첫댓글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