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은 왜 김종필을 비판하지 않았나?
'첫 만남이 좋았어요. 군정시대(1961-63년)에 김종필 정보부장이 나를 찾아와 공화당에
참여해달라고 설득을 하는 거예요.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군인 같지 않게 부드러웠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요사이 김대중 대통령을 가장 많이 비난하고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를 그 다음으로 많이 비판한다. 세번째는 김정일이다.
그런 그도 김종필 자민련 총재에 대해서는 거의 비판하지 않는다. 1995년 초 당시 여당인 민자당의 대표이던 김종필씨는 민자당의
민주계가 자신을 거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탈당하여 자민련을 만들었다. 이것은 김영삼 정권의 내리막길, 그 시작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작년에 나와 만났을 때 '그때 내가 직접 김종필씨 집을 찾아가 만류하는 건데 지금 생각하면 후회가 된다'고 말했었다. 오기가 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처럼 솔직하게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을 전에는 본 적이 없다.
내가 최근에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만나
'JP와는 뭔가 통하는 게 있는 모양이죠'라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첫 만남이 좋았어요. 군정시대(1961-63년)에
김종필 정보부장이 나를 찾아와 공화당에 참여해달라고 설득을 하는 거예요.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군인 같지 않게 부드러웠습니다. 물론 나는 딱
잘랐습니다. 그랬더니 JP는 '알았습니다. 그 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하고 우리 술이나 한 잔 합시다'라고 하더군요. 당시 정권의 실력자인데
그렇게 나오기가 참 어렵지요. 그날 우리 둘이서 기분 좋게 술 한 잔 한 기억이 납니다.'
김종필 자민련 총재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역사관과 정책은 비판하지만 인간 자체를 비판하는 일은 매우 삼가고 있다. 김종필 총재는 '아직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향력은 살아 있다.
다음 대통령을 만드는 데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이다'는 말을 하고 있다.
김영삼과 김종필 두 사람의 인간적 공통점은 주위
사람들을 편하게 한다는 점일 것이다. 김영삼씨는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당당하고 낙관적인 자세로 해서 주변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주었다.
김종필씨는 음식점에 가서도 심부름하는 사람에게까지 아주 자상하게 대하는 사람이다. 그런 자세는 표를 의식한 쇼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자신의
교양으로 묻어 있다. 욕을 안하고 사람 차별을 하지 않는 충청도 양반이 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에는
주변의 건의를 경청하고, 인간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결혼식장에 오면 부조만 하고 가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사람, 시간 약속에 철저한 사람이 YS였다. 그런 인간 김영삼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통령만 되지 않았더라면 지금 가장 인기가
있었을 사람'이란 농담도 한다.
김종필 총재의 매력은 좌중을 휘어잡는 이야기꺼리, 유머, 교양이다. 화제를 강제로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구수한 소재와 재미 있는 화술로써 자연스럽게 주빈이 되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그의 지식과 교유관계, 인물평, 역사 및 戰史
이야기는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아깝게 만든다.
예컨대 좌중의 누군가가 나서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찍을 때 여주인공 비비안 리가 영국의 대배우 로렌스 올리비에와 연애을 하고 있었고, 그 덕분에 이 영화에 나오는 비비안 리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고 아는 체를 한다.
그러면 김종필 총재는 그 말을 받아 그때 로렌스 올리비에가 영화를 찍고 있던 비비안 리를 만나기
위해 어디로 왔는데 거기서 무슨 사건이 생겼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가 기를 팍 죽인다. 김 총재는 아직도 잘 땐 항상 손에 책이 잡혀 있다고
한다.
아마도 한국에서 회고록을 썼을 때 가장 재미 있을 사람이 김종필 총재이다. 秘史와 秘話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일 뿐
아니라 그 역사적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다.
주변에서 그에게 '이젠 칼을 빼시지요'라고 건의하면 JP는 '사나이는 일생에 칼을 한번 빼는
거야. 나는 5.16 때 이미 한번 뺐어. 더 뺄 칼이 없어요'라고 말한다고 한다.
김영삼, 김종필씨는 일단 만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다. 반면에 만나고 나면 썰렁해지고, 짜증이 나는 정치인들도 많다.
첫댓글 김영삼 전 대통령.
오늘(22일) 새벽에 패혈증과 급성심부전으로 서거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빕니다.
문안 인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