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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
40: 1, 9-11, 16-17
1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 주 애굽 왕에게 범죄 한지라.
9 술 맡은 관원장이 그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10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더니.
11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 노라.
16 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이 길함을 보고 요셉에게 이르되 나도 꿈에 보니 흰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17 그 윗 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식물들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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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신 구약 66권의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은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증거하고
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기를 바라서이다.
성경은 무신론자들의 이야기가 아니고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고 섬기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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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4/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 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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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들에 대하여 하나님은 별로 많은 말씀을 하시지 않고 어리석어서 그렇다고 평가 절하해 간단하게 언급을 하실 뿐 성경은 이제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을 정확하게 분리를 해 올바른 믿음으로 생명을 얻는 자와 잘못된 믿음으로 멸망을 받는 자들과 생명을 얻는 자들 중에서도 칭찬을 받는 자와 책망을 받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실제의 사람들과 또는 비유를 들어서 두 부류를 정확하게 나누어 우리에게 보여주어 멸망을 받는 신앙을 하는 자는 생명을 얻는 쪽으로 책망을 받는 자는 칭찬을 받는 자로의 신앙으로 돌이키라고 수많은 모델들을 등장시켜서 우리에게 설명해서 가르치시는 것이다.
가인과 아벨, 야곱과에서, 사울과 다윗, 부자와 거지 나사로, 큰 아들과 집을 나간 탕자,
베드로와 가롯 유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 마르다와 마리아, 등
많은 모델들을 등장시켜서 그들이 왜 멸망과 책망을 받는지를 나누어서 보여 주셔서 우리에게 돌이키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지금 기록한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의 이야기도 똑같은 이야기로 술 맡은 관원장과 같은 믿음은 생명을 얻고 떡 굽는 관원장은 멸망을 받는 모습에서 이 이야기 속에다 그 이유를 담아 놓으시고
이 시대에 하나님을 믿는다는 모든 사람들에게 멸망을 받는 신앙에서 생명을 얻는 신앙으로 돌이키라는 그분의 간절한 마음인 것이다.
"그 후에 애굽 왕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 주 애굽 왕에게 범죄 한지라."
성경은 이 두 사람이 무슨 죄를 범했는지는 몰라도 다 범죄를 했다고 말씀하신다
이 두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 땅에 모든 사람을 대변하고 애굽 왕 바로는 만 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그림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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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사람이 범죄 했던 것처럼 우린 모두 다 이미 죄를 범하였고 또 앞으로도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연약하여." 란
주님의 말씀처럼 마음은 죄를 범하지 않고 싶은 원함이 있지만 연약한 육신을 입고 있는지라
이 육신으로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그런 우리가 만 왕의 왕이신 하나님께 나아가 어떻게 하면을 생명을 얻을 수 있고, 또 저주를 받는지
이 두 사람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설명을 해주시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의 신앙의 모습의 다름 점을 찾아보려고 해도 오히려 두 사람 다 죄를 범하고 똑같이 꿈을 꾸는 모습이다. 성경을 좀 더 자세히 보면 이 두 사람이 똑같이 꿈을 꾸지만 다른 점은 꿈의 내용이 다를 뿐 다른 점은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꿈의 내용에 해답의 열쇠가 있는 것이다. 먼저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살펴본다.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성경은 비유법을 참 많이 사용하신다 어떤 단어에나,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여서 비유로 쓰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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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양으로 비유한다든가 땅 하면 한 줌 흙으로 지으신 우리 사람을 비유하시고
숫자에도 3 이란 삼위일체 하나님 또 사흘 만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사역,
4 하면 고난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사백 년 동안 종살이로 고난을, 또 애굽에서도 구원을 받고도 사십 년이나 광야에서 고난을, 예수님께서 사십 일을 주리시고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시는 등 고난을 설명하실 때는 의도적으로 4라는 숫자를 넣으신 것이다
5라는 숫자는 은혜의 숫자이다 제 오순절에 은혜로 성령이 내려왔고 성막에 번제로 제사를 드리는 번제단 즉 은혜를 베푸는 시은 좌의 규격을 고와 광의 길이를 오 규빗으로 하시는 등 은혜를 나타내실 때는 오라는 숫자를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이 외에도 많이 발견을 할 수 있다
6이라는 숫자는 여섯째 날 한 줌의 흙으로 지으신 우리 사람들을 의미하신다
요한 계시록에 666이라는 것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처럼 인간이 하나님 행사를 하는 적 그리스도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런 의미들을 생각하면서 성경을 상고하면 깨닫는데 유익하고 성경이 재미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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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맡은 관원장이 왕 앞에 나아가야 하는데 드릴 게 없고 손에 빈 잔뿐이다
잔, 그릇도 흙으로 지은 우리의 육신을 말하는 것이다
술 맡은 관원장은 자기의 것이 비워져 하나님께 드릴 게 없는 것이다
왕에게 나아가야 하지만 드릴 게 없어서 근심 중에, 포도나무의 세 가지가 나타나고 포도 열매가 맺히기에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그 포도 열매의 즙을 짜서 그것만을 바로 왕에게 드린 술 맡은 관원장의 신앙이다.
여기서 포도나무.....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말씀하시고 세 가지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그분의 사역을 의미하시고 그 즙을 짜서 드렸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발가 벗기심을 당 하사 찔리시고 포도가 찢겨야 즙을 흘리듯 예수님 당신의 몸을 찢기셔서 고통을 받으사 우리의 죄를 씻으시기 위해 흘리신 피 즉 보혈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술 맡은 관원장은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자기로서는 하나님께 드릴 게 없어서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포도나무의 세 가지에서 달린 포도즙 즉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 만을 의지해서,
하나님 저는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입니다
저를 보시지 말고 나를 위해 피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 밖에 드릴 것이 없는 이 피를 받아 주세요 하는
오직 그리스도의 피를 믿음으로 나아간 신앙인의 그림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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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0/20,21
제 삼일은 바로의 탄일이라 바로가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할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으로 머리를 그 신하 중에 들게 하니라.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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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맡은 관원장은 죄를 용서받아 신원이 회복이 되어 다시 왕의 잔치에서 왕에게 잔을 드리며 영광의 잔치에 참여 한자가 됨은 장차 천국에서 하나님의 어린양 혼인 잔치가 있는데 이 혼인 잔치에 참여해
왕에게 즉 하나님에게 영광과 감사의 잔을 드리며 기뻐하며 즐기는 즉 구원을 받는 자의 모습을 이렇게 그려 놓으신 것이다.
무엇이 이 영광스러운 잔치에 참여할 수가 있게 하였는가
오직 그리스도의 피 만을 믿는 믿음이,,,
"떡 맡은 관원장이 그 해석이 길함을 보고 요셉에게 이르되 나도 꿈에 보니 흰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 위에 있고.
그 윗 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은 식물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
떡 굽는 관원장은 드릴 게 너무나 많은 것이다. 흰떡 세 광주리에 또 그 위에 각종 구은 식물들까지,,,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떡 굽는 관원장이 머리에 이고 간 세 광주리의 흰떡도 우리가 성찬식 할 때 먹는 흰떡 즉 예수 그리스도이다.
흰떡만 가지고 가야 하는데 그 위에 각종 구은 식물로 흰떡을 가려버렸다
식물이란 땅에서 나온 즉 우리의 육신이 땀 흘린 가인이 드려서 하나님이 받으실 수 없었던
땅의 소산을 의지해서 그리스도의 보혈을 가려 버렸다는 것이다
즉 이 떡 굽는 관원장의 신앙은 예수를 믿는다고 나름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그리스도의 보혈은 이론이고 자기의 행위를 의지하고 나아갔다는 것이다.
내가 전도를 많이 했어, 기도도 잘해, 헌금도 많이 드렸어, 나는 착해, 나는 이웃을 사랑했어 등
자기를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는 거듭나지 못한 신앙인들의 그림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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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0/22
떡 맡은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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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맡은 관원장은 왕의 잔치에 참여해 왕에게 잔을 드리며 기뻐하며 자기를 구원하신 그 왕을 찬양할 때에 떡 맡은 관원장은 사형대에 매달려 사망을 당하는 무서운 비극이다.
하나님께서 이 두 사람을 비교해 보여 주면서 오직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행위를 의지하고 나온 자들을 영원한 사망 즉 지옥 불에 던져 버리실 것을 가르쳐 강하게 경고를 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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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9/32
어찌 그러 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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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이 자기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받기를 간절한 마음이 있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받지 못함에 안타까워 그 원인을 살펴보니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그 원인의 결과를 믿음에 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해 부딪힐 돌 즉 그리스도에게 대적이 되는 걸림이 되어 부딪히는지가 되었다고 그 원인을 증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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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0/2,3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은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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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열심은 있으나" 즉 기도도 잘하고 헌금도 잘하고 봉사도 잘하지만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즉 성경에서 말씀이 무엇이라고 하는지 발견해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그 말씀 즉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를 의롭게 해놓으신 복음을 믿음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즉 자기가 무엇인가를 잘해 가지고 인정을 받아 자신을 높이고 세워 보려고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의롭게 해 놓으신 복음을 복종치 않고 대적을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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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3 / 1, 2, 3, 4, 5, 6
어리 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꽤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 로냐 듣고 믿음이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려 하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 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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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믿음으로 받았지만 이제 신앙은 내가 열심히 선을 행하여 행위로 나아가게 하는 이단 논리가 만연이 되어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 복음을 전파해 교회가 형성이 되었다
바울이 다른 지방으로 전도 여행 중 구원은 은혜로 받았지만 이제 삶에서 행위를 강조하는 이단 사상이 갈라디아 교회에 침투해 들어온 것이다
이에 바울이 격노하여 갈라디아 교회에게 편지로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하면서 질타를 하는 것이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 로냐 듣고 믿음 이로냐." 하면서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너희가 무엇을 잘해서 받은 게 아니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받지 않았느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고 질타를 하시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시작했으면서 자신의 육체로 무엇인가 잘해 보려는 시작과 끝이 다른 이 거짓된 마귀에게서 나온 사상을 성경은 이단이라고 하고 이 이단 사상을 사도 바울은 무섭게 질타를 하면서 책망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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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 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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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진리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오직이란 단어는 다른 방법과 길이 없을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시작도 오직 믿음 끝도 오직 믿음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진리이다.
오직 이 믿음을 가지려면 먼저 자기가 부인이 되어야 그 믿음을 선물로 받아서 구원을 얻을 수 있고
또 구원을 얻은 후에도 나는 연약하여 스스로는 빛 된 삶을 살수 없는 자인 것이 인정이 된 자라야 내 안에 영으로 계신 그리스도에게 나를 부인하고 온전히 그분을 의지(믿음) 할 때에
빛 되신 그분이 내 안에서 능력이 되셔서 나를 빛 된 세계로 이끄시는 것을
야고보서는 "행함이 있는 믿음." 즉 능력이 있는 산 믿음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내 스스로 빛 된 삶을 살려고 하는 자는 그리스도를 믿는 게 아니고 즉 자신을 믿는 "행함이 없는 믿음"
즉 아무런 능력이 없는 자신을 믿는 죽은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성경은 교만한 자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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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후서 4/7
우리가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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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
보배로 우신 즉 그리스도의 성령을, "질그릇" 한 줌 흙으로 지은 그릇 즉 흙으로 지은 육체 안에 가졌으니....
능력의 심히 큰 것이 보배로우신 그분에게 있지 우리에게는 아무런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고 싶다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아멘!!------------------------------------------------!!
출처: 아낌없이 주는 나무* 원문보기 글쓴이: 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