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모더니즘시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일반적으로 70년대는 정치적인 차원에서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가 노골화된 시기이고, 사회적, 경제적 차원에서는 산업화가 본궤도에 진입한 시기다. 한편 우리 시사의 차원에서 보면, 70년대는 내용면에서 시의 사회적, 현실적, 역사적 기능이 강화되기 시작하던 시기이고, 방법적인 면에서는 지난 60년대의 난해시 내지는 관념시의 흐름이 조금은 지속되면서 그것을 구체적인 삶과 밀착된 이른바 쉬운 시, 일상시, 민중시 등의 세계로 전환시켜 나가던 시기다. 따라서 70년대는 6.25이후 50년대와 60년대를 통과하면서 한 동안 우리 시가 지독히도 시달렸던 서구 지향성과 현실 이탈의 관념 세계에 대한 경도 현상을 점차 극복하면서,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시가 대지와 현실적 토양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그런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70년대의 우리 시단에서 의식적으로, 본격적으로 모더니즘이 무엇인지 분명히 인식하면서 그것을 삶의 세계관이자 행동양식으로 선택하여 모더니즘시를 써온 시인들은 드물다. 그렇다고 해서 모더니즘적 특성이 70년대의 우리 시단에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정효구는 70년대 우리 시단은 60년대의 유행했던 관념적인 난해시도, 80년대에 유행했던 형식 파괴의 해체시도, 90년대에 이야기되고 있는 포스트모던한 징후들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이런 전제하에서 70년대는 모더니즘시의 전개에 대해 알아본다.
노향림은 70년대 우리 시단에서 모더니즘의 특성을 그의 시에서 잘 구현시킨 사람 중에 하나다. 김현은 김광균이 개척하였고, 김춘수가 그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그리고 김종삼이 훌륭하게 그 변주를 이룩한 세계, 다시 말하면 모더니즘의 한 특성이 살아있는 그의 작품으로 잘 구현시키고 있는 시인을 노향림이라 하였다.
70년대 출간된 첫 시집, <K읍 기행>과 시선집 <연습기를 띄우고>에서 보여준 모더니즘적 특성은 첫째, 그의 시에서 시인 자신이 철저히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의 시를 읽으면서 독자는 시인을 만날 수 없고 우리 주변의 대상들을 만나게 될 뿐이다. 그러니까 노향림은 대상으로 하여금 간접적으로 말하게 하기 또는 보여주게 하기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시인은 분명 자신의 시에서 시인 자신은 뒤로 몸을 감춘 채 대상으로 하여금 말을 하게 만들고 대상이 주체적인 존재로 작용하게 이끌고 있다. 이런 사실은 노향림의 시가 상당히 주관적인 고독의 세계이자 시인만의 개성이 스며든 자의식 세계임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모더니즘의 기본 정신이 세계의 절대적 진리라든지, 사회나 집단의 절대적 규범 같은 것을 거부하고, 개인의 주관성과 개성을 옹호하는 데 있다면, 노향림이 보여준 이런 특징들은 모더니즘의 기본 정신과 상당히 밀접하게 닿아 있다. 셋째, 노향림은 이미지를 중시하고, 그 이미지를 비인간적이라 할 만큼 냉정한 태도로 한 면에 병치시키거나 나열시키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둑 너머 샛가에는/ 준설기들이/ 문명을 퍼올리고 있다.
강변도로가/ 그 앞을 지나가고 있다.// 공중에서 화강암 자갈돌들이/ 시커먼 입으로/
웃으며 쏟아지고 있었다.
그 웃음소리 하나가/ 강물에/ 내장이 시뻘겋게 터진 채/ 떠내려 가고 있었다.
검은 철책가에/ 말라깽이 꽃들이/ 물거품같이 붙어서서/ 보고 있었다.
- 노향림, <바람 부는 날> 전문 -
인용시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이 노향림은 즉물시 내지는 사물시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대상의 이미지 제시만으로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 여기서 언어들은 지극히 자기 지향적인 성질을 띠고 있을 뿐, 세계에 대하여 주장도, 계몽도, 설교도 하지 않는다. 잘 꾸며진, 유리 속의 세계와 같은 그의 시에서 우리는 형식에 대한 그의 집착이 어떠한지 짐작할 수 있다.
노향림과 더불어 70년대 시인에게서 나타나는 모더니즘적 특징을 살펴보고자 할 때, 김승희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러면 김승희의 초기시에 어떤 모더니즘적 특징이 있는지 살펴보자. 첫째, 70년대 출간된 첫 시집 <태양미사>에는 소위 <자의식>이라고 부를 만한 세계가 강하게 내재돼 있다. 세계보다 자아를, 사회나 집단보다 개인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세계란 무엇인가 묻기 전에, 나란 무엇인가를 묻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모더니즘의 한 속성이라면, 김승희가 그의 첫 시집에서 보여주는 강한 자의식은 이럼 모더니즘의 특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나에게는 집이 없어/ 반짝이는 먼지와 햇빛 속의 창대가,/ 훨, 훨, 타오르는 포플린 모자./
작은 잎사귀 속의 그늘이/ 나의 집이야./ 조약돌이 타오르는 흰 들판./
그 들판 속의 자주색 입술.
- 김승희, <흰 여름의 포장마차>, 부분 -
인용시에서 보는 바와 같이, 김승희의 관심은 그의 주체적인 내면으로 향하여 있다. 소위 내면의 탐구와 자의식 분출에 골몰하고 있다. 그러므로 위 인용시의 모든 것은 <나>에게로 집중된다. 위 작품에서 <나에게는 집이 없어>라는 말로 시작하여 외부 세계와는 관계 없는 짐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그녀의 시는 철저히 나로부터 시작하며, 나를 통과하다, 나로 수렴되는 주관적 자의식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김승희의 첫 시집에서 우리는 언어에 대하여 그가 보여준 커다란 관심으로부터 모더니즘적 특성의 한 부분을 찾아낼 수 있다. 그의 제4 시집인 <달걀 속의 생>에 수록된 자신의 작품 <내가 없는 한국문학사>에서, 김승희는 자신이야말로 우리 시단의 어떤 유행 사조와도 무관한 채, <아무튼, 언어가 나의 아멘이었지>의 심정으로 언어에 매달려 왔음을 고백하고 있다. 김승희는 세계를 반영하는 수단으로서의 언어가 아니라 자족성과 자기 지향성을 가진 언어에 큰 매력을 느끼고 그것을 작품 속에서 탐구한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 <모짤트 주제에 의한 햇빛 풍경 한 장>에서 김승희는 언어와 함께 유희를 즐긴다. 그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상상력의 흐름을 쫓아가다 보면, 그가 상당 부분 자동연상기법이라고 부를 만한 무의식의 세계에 기대어 작품을 쓰고 있다는 점이 발견된다.
끝으로 70년대 우리 시단에 모더니즘적 기미를 드러낸 시인은 이하석이다. 그의 첫 시집인 <백자도>와 둘째 시집인 <투명한 속>을 통하여 이하석은 시작 방법의 측면에서 특히 모더니즘과 관련시켜 생각해 볼 만한 특징을 부분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하석은 묘사의 힘으로 시를 구성하는 시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하석의 시에서도 말하여진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려진 세계를 본다.
타이어 조각들의 구멍 속으로/ 하늘은 노랗다. 마지막 비행기가 문득
끌고 가 버린 하늘
- 이하석, <부서진 활주로>, 부분 -
위 시에서 시인 대신 등장하는 주체는 하늘, 비행기 등이다. 그는 이런 대상들의 풍경을 보여 줄 뿐이다. 말하자면 이하석은 이미지스트처럼 이미지로써 세계를 보여 주고 세계를 읽어 내려고 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럼으로써 그는 자신을 대상화시키지 못하고 자기 자신 속에 빠져 버린 낭만주의자들과는 달리, 자기 자신을 대상화시켜 바라다볼 수 있는, 이른바 <거리두기>를 이룩한 시인이 되었고, 이미지를 통한 시세계의 지성화에 성공한 시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