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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
신앙인의 변화와 변질 요3:1-8, 딤후4:9-18
어떤 분이 변화와 변질에 대해 이런 글로 재미있게 표현을 했습니다. 이런 것이 변화라는 것입니다. *여우같은 여자가 여유 있는 여자로, *화난 여자가 환한 여자로,
*따지는 여자가 따뜻한 여자로, *착각하는 여자가 자각하는 여자로, *색기 있는 여자가 생기 있는 여자로, *밝히는 여자가 밝은 여자로, *애먹이는 여자가 애태우는 여자로, *답답한 여자가 답을 아는 여자로, *빚을 지은 여자가 빛을 내는 여자로 바뀌는 것이 변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변질은 반대입니다. *여유 있는 여자가 여우같은 여자로, *환한 여자가 화난 여자로, *따뜻한 여자가 따지는 여자로, *자각하는 여자가 착각하는 여자로, *생기 있는 여자가 색기 있는 여자로, *밝은 여자가 밝히는 여자로, *애태우는 여자가 애먹이는 여자로, *답을 아는 여자가 답답한 여자로, *빛을 내는 여자가 빚을 지는 여자로 바뀌는 것이 변질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인 가운데는 변화를 체험 하고, 변화를 이루어가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그 중에는 신앙이 변질 된 자들이 있습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신앙인의 변화와 변질”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성도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성도는 반듯이 거듭나는 변화를 거쳐야 하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한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본문 요3:3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하셨고, 5절에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거듭남의 변화 없이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거듭남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필수 과정입니다.
거듭남 혹은 중생이란 니고데모의 말처럼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는 영적 체험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은 세례와 말씀 이 두 가지 면으로 볼 수 있는데, 세례라는 면에서 벧전3:21에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물이 말씀이라는 면에서 성경에 거듭남에 대해 언급할 때 말씀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많은 학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으로 봅니다. 약1:18에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했고, 벧전1:23에는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세례와 말씀을 같은 의미로 나타내는 표현이 있는데, 엡5:26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영어 본문을 보면 "the washing of water with the word" ‘말씀과 함께 물로 씻어 깨끗케 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세례의 물은 죄를 씻음을 의미합니다. 주님을 믿고 세례를 받을 때 묻는 여러 질문 중에 중요 질문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이 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것을 믿는가?’ 라는 질문과, *‘성부하나님을 창조주로, 성자예수님을 구속주로, 성령하나님을 인도 주로 믿습니까?’하는 질문입니다. 기록된 말씀대로 믿는 신앙 고백을 하는 자에게 세례를 주지 믿음의 고백 없이 주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거듭남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은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된 것처럼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가 능력이요 권세이기 때문입니다. 수원시내 최대 조직폭력단체인 남문파 보스였던 허윤석씨가 전도사로 변신하여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이름 앞에 언제나 붙어 다니는 것은 전과 10범이라는 꼬리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어머니의 눈물어린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소원하며 3년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시다 교통사고를 당해 산소호흡기로 연명 하시면서도 막 출소한 저의 손을 꼭 잡으며 주님에게 가자는 마지막 말씀에 통한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후 허씨는 "과거의 허벽이는 죽었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는 의미로 이름도 바꾸고 수감 중 어머니가 넣어준 성경책과 더불어 참 인생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신앙생활 4년째인 그가 수원제일교회 집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오늘도 이렇게 고백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살아온 젊은 날을 속죄하고 이웃에게 사랑과 복음을 전할 때면 가슴이 벅찹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말씀 안에서 성령을 받고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그야말로 그는 자신의 고백처럼 다시 태어났습니다. 우리 모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변화된 새로운 피조물로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거듭난 성도라도 성화를 통해 계속해서 변화되어 가야 합니다.
거듭난 성도는 성삼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모습에 이르기까지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런 자들은 신실한 모습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역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바울의 사역 가운데도 그런 자들의 도움이 많았습니다. 서신서 본문을 기록한 바울 사도는 예수를 만나고 난후 변함없는 모습으로 언제나 한 결 같이 주님만을 사모하며 주님 닮기를 소망하면서 주님의 십자가 발자취를 따르는 삶을 살다가 이제 백발이 되어 순교의 제물로서 하나님께 자신이 드려질 것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는 언제나 겸손하여 장성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자신의 목회를 회고하면서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마지막 권면을 하는 내용이 바로 디모데후서입니다. 디모데 역시 어려서부터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받은 신앙의 감화와 사도 바울을 만난 이후 신앙이 장성하여 바울이 신뢰하는 신실한 주님의 사역자가 되어 복음의 일꾼이 된 자입니다. 바울은 너는 속히 내게 오라고 디모데에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속히 오도록 요청한 것은 따뜻한 사랑의 교제와 함께 위로를 받기도 하고, 디모데로 하여금 복음사역의 귀중함을 가르쳐주며, 목회에 있어서 방해하는 사람과 유익한 사람이 있음을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또 바울 곁에는 의사 누가가 있어 큰 힘이 되었습니다. 누가는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에서부터 바울과 동행을 했고, 그 이후에 한 번도 바울의 곁을 떠난 적이 없는 바울의 가장 충실한 동역자였습니다. 누가는 평생을 바울의 개인주치의사로서 육체의 가시인 지병을 가진 바울을 치료했고, 바울 곁에서 사역을 도왔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나, 제1차로 로마감옥에 갇혔을 때나, 제2차로 로마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한 번도 바울의 곁을 떠나지 않고 바울을 돕고 선교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했던 동역자였습니다. 누가는 신약성경은 1/3의 해당하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습니다. 바울이 성경을 구술할 때 몇 권의 성경의 대필자일 가능성도 많습니다. 누가와 같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바울의 곁에서 충성스럽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성도들이야 말로 성숙하고 장성한 신앙인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11절에 보면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고 했습니다. 마가라는 이름은 로마식 이름이요, 그의 유대식 이름은 요한입니다. 마가는 부요한 가정에서 신앙심이 좋은 어머니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의 집은 교회처럼 사용되어 졌는데,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을 나누었던 곳이 바로 그의 집이었습니다(눅22:12-13). 베드로가 투옥되었을 때 여러 사람이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서 기도했고,(행12:12)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 120여명의 성도들이 기도에 힘쓰면서 성령을 받던 장소가 바로 이 곳이었습니다(행1:13-15,2:1).
바나바의 생질이기도 했던 마가는 바울의 1차 전도여행에 동행을 하게 되지만, 힘든 전도여행을 끝까지 감당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행13:13). 이 일로 한 때 바울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마가는 후에 뉘우치고 바나바와 함께 전도 여행을 가게 되었고, 후에 바울이 1차 로마감옥에서의 투옥 때 마가도 함께 옥중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바울과 사역하면서 연약한 모습을 보였던 마가는 어느 순간에 이렇게도 성숙한 모습으로 바울 곁에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바울 곁에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 함께 사역을 도왔습니다. 우리도 계속 성화를 이루어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충성스런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3.신앙인의 변질은 믿음에서 떠나 타락한 자의 모습입니다.
본문 10절에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라고 했습니다. 데마는 처음에는 바울을 도왔던 일군이었습니다. 몬1:23- 24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데마는 바울의 사역에 동역자 위치에서 주님을 위해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과 함께 옥에도 갇힐 정도로 복음에 대한 열정도 가졌던 사람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환난을 겪은 사람입니다. 이러한 그는 바울에게 뿐만 아니라 많은 성도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다. 골4:14에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고 했는데, 이렇게 바울에게 사랑의 대상이 되었고, 복음을 위해서 환난을 받았던 자가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을 향해 떠나버렸다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돌아간 것은 그의 믿음이 변질된 것이요, 복음을 버린 것이요, 주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천국의 소망보다는 이세상의 쾌락을 추구한 것입니다. 그가 왜 그런 길을 택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주님을 위해 그렇게도 헌신한 사도 바울을 보면서 왜 하나님은 저렇게 헌신한 사람을 옥에 갇히게 하는 등 온갖 고난을 당하게 하는가에 대한 회의에 빠졌는지 모르고, 주님을 위해서 고난 받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져서인지도 모르고, 고난 보다는 세상의 연락과 명예가 더 좋은 것으로 여겨져 그런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그가 세상으로 다시 돌아감으로 한 때 성도로서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던 자’(히6:5)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악한 세대를 더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 세상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은 세상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사단은 어느 시대에나 믿는 자들을 유혹하여 세상을 사랑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늘 깨어 있지 못하면 사단이 유혹하는 미끼에 넘어가 신앙이 변질되게 됩니다. 신앙이 부패하여 타락하게 되면 변질된 음식처럼 버림을 받게 됩니다. 불가사리가 조갯살을 먹을 때, 취하는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조개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다가 조개가 안심을 하고 그 앞에서 입을 벌리면 재빨리 조갯살을 간지럽게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조개는 간지럼 때문에 입을 더 크게 벌리고 좋아합니다. 그때 불가사리는 조갯살의 심장을 서서히 누릅니다. 그러나 그 즐거움에 도취한 조개는 자기의 심장이 눌리고 있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가 결국은 죽임을 당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세상의 즐거움에 빠지면 내 영혼이 죽어가는 것도 모릅니다. 내 심장이 짓눌려 압박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채 그렇게 죽어가는 것입니다.
또 바울은 본문 14절에서 특별히 신앙이 변질 된 한 인물에 대하여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이 알렉산더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처음에 바울을 따라 다니며 복음 사역을 위해 봉사하며 바울을 도왔던 자였었는데 그 후, 진리에서 떠나 급기야 바울을 대적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바울은 이 자에 대하여 딤전1:19-20에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알랙산더를 언급 하면서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한 자’라고 정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인 가롯 유다에게 배신을 당하신 것처럼 한 때 바울과 함께 복음에 동역했던 알랙산더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큰 피해를 입기까지 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 앞에 가는 날까지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됩시다. 정리^^
두 본문을 중심으로 “신앙인의 변화와 변질”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성도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거듭난 성도라도 성화를 통해 계속해서 변화되어 가야 합니다.
★.신앙인의 변질은 믿음에서 떠나 타락한 자의 모습입니다. 아멘.
<2022. 10. 26. 호현낙선>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