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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균 칼럼니스트
국회에 입법권이 있지만 3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은 국회가 만든 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을 갖도록 우리 헌법에 명시하고 있다. 재의요구는 국회가 여·야 합의 없이 특정 정당의 당리당략에 따라 입법을 하거나 민심에 반하는 법안을 만든 경우, 또는 국회의 입법과정이 정당한 규정과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경우와 법 자체가 헌법 질서에 어긋나는 경우다.
아무리 입법 권한이 국회에 있다고 아무 법을 다수당의 수적 우세를 앞세워 만들어도 되는 것일까? 특히 특검법은 지금까지 여·야가 합의하지 않고 통과시킨 적이 없었는데, 21대 국회에서 절대다수 의석을 갖고 있는 민주당의 일방독주로 몇 개의 특검법을 통과시켰지만 결국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인해 법안의 효력은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의 입법 독재가 되레 여·야 협치의 발목을 잡고 있는데, 민주당은 대통령이 헌법에 따라 거부권을 행사했음에도 연일 윤 대통령에게 탄핵까지 들먹이면서 특검법을 받아들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민주당 등 범야권은 총선 압승의 여세를 몰아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을 압박하는 정당성을 '총선 민심'이라고 주장한다. 국회 상임위원장 독식도, 해병대 채 상병 특검과 김건희 여사 특검 추진도, 양곡법 개정안과 민주유공자법 국회 통과도 '총선 민심'을 들먹인다.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이 이를 거부하면 '국민과 역사에 대한 거역'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윤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자 "위헌적"이며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고 한 것은 단적인 예다. 대통령의 법률안 재의요구권은 헌법(제53조 2항)에 규정된 대통령의 권한이다. 이것이 어떻게 '위헌적'인지 의문이다. 대통령 거부권은 지난 1987년 개헌 때 '대통령 국회 해산권'의 삭제에 따른 행정부의 입법부 견제 기능 약화를 보완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이마저 없으면 현행 헌법하에서는 대통령과 행정부는 다수당의 집행부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를 행정독재라고 비난하기 전에 자신들의 '의회 독재'부터 성찰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의 합법적 정치 행위는 헌법과 법률에 따르면 문제 될 것이 없다. 국가운영에 대한 대통령의 철학은 합법성의 테두리 안에서 행해지는 관례와 전통을 따르면 헌정주의에 반하지 않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렇게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권한행사를 탄핵대상이라고 우기는가.
민주당이 국회의 수적 우세를 앞세워 당리 당략적으로 입법권을 행사하는 것이 국민의 뜻인 민심이라면, 같은 논리로 그러한 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도 대선 승리를 안겨준 국민의 준엄한 명령인 것이다. 총선 승리의 원천은 민주당이 민생 정치를 잘해서 얻은 것이 아님을 민주당이 모를 리 없다. 고물가와 고금리로 국민의 삶이 팍팍하고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한 가운데 여당인 국민의힘이 국민에게 비전도 제시하지 못한 것이 총선 패인임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민주당의 '총선 민심'은 왜곡 과장이다. 민주당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총선 민심을 입법 독재 합리화를 위해 남용하고 있는 것이다. 결코 우리 국민은 입법 독재를 해도 좋다고 민주당에 표를 몰아준 것은 아니다.
우리 헌정질서의 기본은 '민주공화정', 그리고 '견제와 균형'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통치는 국가와 국민의 공적 이익을 보장해야 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입법, 사법, 행정부 간의 균형 잡힌 견제 관계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으로 국가원수다. 대통령은 합법적으로 의회의 입법권을 견제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가 다당제를 하는 것도 다양한 국민의 의견을 입법과 정치에 반영하기 위함이다. 더욱이 여당과 야당은 국회에서 입법을 할 때 충분한 논의를 거쳐 합의 후에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상대방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려는 최선의 노력은 법안 제정에 있어서 필수 과정이어야 입법권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과연 지금의 국회가 이러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민주당은 자신들이 검찰을 불신해 만든 공수처에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 주도록 고발한 바 있다. 그런데 고발 후 이틀 만에 공수처가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한 특검법을 민주당이 앞장서 만들었다. 민주당은 사건 수사가 본질인가? 아니면 대통령의 특검법 거부권을 이용해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것인가. 민주당의 특검 만능주의가 도를 넘고 있어 22대 국회에서도 여·야 협치에 빨간 신호등이 켜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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