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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훼절 아니라 배교했다
원제: 신사참배거부운동의 교회관
일부 교회사가들은 고신교회를 완전주의 교회관과 관련시킨다. 고신파가 분리주의적인 경향을 가졌다고 보면서 그 시원(始原)을 신사참배거부운동이 기성교회에 항거하여 독자적인 교회조직을 가지려고 한 것에서 찾는다. 한상동·이기선·채정민 목사 등이 3세기와 그 이후의 분리주의자들의 완전주의 교회관을 재현했다고 한다.1 노바투스주의자·도나투스주의자들처럼 개인의 거룩성을 교회의 본질로 여기고, ‘성자가 교회를 성(聖)하게 한다’고 하는 교회관을 가지고 기성교회를 적대시하고 정죄하면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분리하려고 했다고 한다.
순교나 순교자적 항쟁은 일련의 신념체계의 결과이다. 신사참배거부운동의 항쟁은 개혁주의 신론과 교회론과 경건의 결과이다. 개혁주의 정통신학이라는 신념체계와 신행일치, 생활순결, 지사충성이라는 경건의 열매였다.
한국교회가 우상숭배를 시행하기로 공적으로 결의하고 그것을 신자들에게 강요하자 신사참배거부 항쟁자들은 이에 항거했다. 신사참배를 하는 목사가 베푸는 세례를 받지 못하게 했다. 가정예배, 가정기도회를 장려하고 개최하여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신앙동지들을 획득해 나갔다. 이 운동의 지도자들은 평양에 모여 신사참배를 하지 않는 교회들로 구성된 노회를 조직하려고 했다. 그러나 체포되어 옥살이를 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만주지역의 신사참배거부운동만이 협회(Association)라고 하는 교회조직을 만들고 독자적인 교회를 꾸려나갔다. ‘장로교인 언약’(1940)이라는 신사참배거부운동 신앙고백문서를 만들고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것과 새로운 교회를 조직한 것이 정당하다고 밝혔다.
종교개혁신학자 존 칼빈(1509-1564)의 신학과 교회론은 신사참배거부운동이 독자적인 교회를 조직하려고 했거나 조직한 것이 분리주의 교회관에 해당하는가에 대한 일련의 통찰을 제공한다. 칼빈은 교회의 분열을 경계하고, 말씀과 성례가 유지되고 있는 한 그 교회에서 분리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노바투스주의-도나투스주의를 예로 들면서 교회가 완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분리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칼빈은 거짓교회에서 분리하지 않는 것을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행위로 여긴다. 우상숭배를 행하고 거짓예배를 드리는 교회에서 분리하는 것이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일이라고 했다.
교회의 하나됨(Unity)에 대한 칼빈의 논의는 『기독교강요』와 프랑스 남부의 카펜트라(Carpentras)의 주교 야코보 사돌레토(Jacopo Sadoleto, 1477-1547)에게 보낸 서한2과 국왕 찰스 5세 주재로 열린 스파이어국회(Imperial Diet at Spires, 1644)에 제출한 『교회개혁의 필연성』3 등이 담고 있다. 이 문건들은 모두 종교개혁자들이 교회를 분리시켰다고 하는 로마가톨릭교회의 비난을 공박한다.4
칼빈의 교회관에 따르면 신사참배거부운동이 우상숭배를 강요하는 교회에 항거하는 독자적인 교회조직을 가지려고 한 것은 개혁주의 교회론에 부합하는 것이었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찬과 성례를 갖고 있지 않은 거짓교회에 대항하는 참교회 운동이었다. 분리주의 교회관이나 완전주의 교회관을 반영한 것도 아니라 오히려 성경에 충실한 교회개혁운동이었다.5 신사참배거부운동은 16세기 종교개혁운동과 비슷하다.
1. 참교회로부터 분리하는 오류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4권 1장의 19개 항에서 신자들이 교회와 더불어 가져야 하는 하나됨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이 생기게 하고 믿음을 증대시키기 위해 외적인 장치를 첨가했다. 그것은 말씀과 성례이다. 하나님은 이 보물들을 교회에 맡겼고, 이 사역을 위해 목사와 교사를 세웠다. 사탄이 더럽히고 부패시킨 교황제도로부터 말씀과 성례를 가진 교회를 지켰다.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와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례가 거행되는 곳에는 그리스도의 참교회가 존재한다(IV.1.1.).
칼빈에 따르면, 우리가 ‘거룩한 공회를 믿는다’고 고백할 때, 그 ‘공회’는 가시적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모든 사람들로 구성된 불가시적인 교회이다. 교회를 ‘공회’(보편적 교회)라고 일컫는 것은 선택된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되어 서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IV.1.2).
‘성도가 서로 교통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서로 나눈다는 원칙 아래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소집되었다는 뜻이다. 바울이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엡4:4)고 말한 것은 교회의 기구적 통일성이 아니라 성도간의 교통이 이루어지는 신앙공동체를 뜻한다(IV.1.3.).
교회는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는 믿음의 영역에 속하며 우리의 이해력이 미치지 못하는 형태로 존재한다. 눈으로 명료하게 그것을 볼 수는 없다(IV.1.4.). 교회는 한 분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고백하는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모든 신자들로 이루어진 신앙공동체이다(IV.1.7.).
칼빈은 키프리안(Cyprian)과 마찬가지로 교회를 어머니로 여긴다. 어머니인 교회를 떠나거나 하나님을 대변하는 사역자들을 멸시하면 항상 비참한 결과가 초래된다. 교회는 복음선포에 의해 성장하며 성도들은 신앙의 유대에 의해 결합된다(IV.1.6.)고 말했다.
칼빈에 따르면, 신자는 세례와 성만찬을 거쳐 그리스도의 공동체로 들어간다. 하나님의 말씀이 순수하게 전파되고 경청되며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례들이 거행되는 곳에 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한다(엡2: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고 하신 약속은 변함이 없다. 보편적 교회는 하나님께서 모든 나라에서 불러 모은 큰 무리이다. 그 교회는 나누어져 각지에 존재한다. 거룩한 교리와 진리로써 서로 일치되고 연합되어 있다. 개 교회는 보편적인 교회에 포함된다. 그러므로 지역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존경하며 온전히 성례를 집행하면 통일성(Unity)을 유지하게 된다. 악령들은 항상 보편교회의 신앙고백적 통일성을 해치고 공동체를 분열시키려고 한다(IV.1.9.).
칼빈은 말씀과 성례를 교회의 표지로 여긴다.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할 때 그것은 교회가 진리의 신실한 파수꾼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진리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말씀과 성례를 도구로 주셨다. 교회의 사역과 수고로 말씀의 선포가 순수하게 유지되기를 원한다.
칼빈은 신앙공동체인 교회를 떠나는 신자를 배반자, 배교자로 단정한다. 그리스도는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는 자기의 신부(엡5:27)를 세웠다. 그러므로 참교회에서 분리하는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말씀과 성례가 유지되는 한, 교회분열을 피해야 한다(IV.1.10.).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성례를 베푸는 교회에서 이탈하는 것은 그리스도에게서 이탈하는 것과 같다. 사탄은 교회의 두 표지를 멸시하게 만들고 교회를 공개적으로 배반하고 떠나게 만든다. 사탄의 간계로 어떤 시대에는 말씀을 순수하게 선포하는 일이 사라졌다. 그리스도께서 제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사역(엡4:12)을 전복시키려고 사탄은 동일한 형태로 노력한다.
칼빈의 이러한 강조는 오염된 하나님의 말씀과 부패한 성례를 지닌 로마가톨릭교회를 떠나는 것이 그리스도께 충실한 행위라는 것을 말하기 위한 서론적인 서술이다.
칼빈은 교회 분열을 금하면서도 말씀과 성례를 시금석으로 삼아 참교회성을 시험해 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말씀과 성례가 온전히 행해지고 있다면 그 집단은 거짓교회가 아니다. 다른 결점이 많이 있어도 그 공동체를 거부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순전한 말씀과 성례를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교회라고 하는 이름만을 내세우는 집단은 거짓교회이다. 우리는 그러한 거짓교회를 경계해야 한다(IV.1.11.).
칼빈은 교회를 떠나는 것이 잘못인 몇 가지 경우를 아래와 같이 열거한다.
첫째, 교리에 사소한 차이가 있다고 하여 믿음의 일치를 깨뜨리거나 교회를 이탈하는 것은 잘못이다. 말씀선포와 성례의 집행에 어떤 결함이 끼어 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이유로 성도의 교통에서 소원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이 종교의 올바른 원칙으로 확신하고 의심하지 않아야 할 필수 교리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필수적인 것은, 예컨대 하나님은 한 분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며,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총에 달려 있다는 것 등이다. 필수적이지 않은 것은, 가령 어느 교회는 영혼이 육체를 떠나자마자 곧 하늘로 날아간다고 믿고, 반면에 다른 교회는 언제, 어느 곳으로 가는지 단정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다만 주를 바라보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확신하는 경우이다. 비본질적인 문제들(non-essential matters)에 대한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분열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소한 교리의 차이는 그리스도인들의 분열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IV.1.12.).
둘째, 교회 안에 불상사가 있다고 하여 이탈하는 것은 잘못이다. 자신이 온전히 성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릇된 확신이다. 노바투스주의자들은 인간의 본성적 특징이 드러나는 사람들과 교제하기를 거절했다. 도나투스파와 재세례파 일부도 그러했다. 그들은 의(義)에 대한 그릇된 열심 때문에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복음대로 생활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 거기에 교회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했다. 극단적인 엄격주의로 무장한 나머지 철저하게 순결하려고 노력하지 않거나 온전한 생활이 없는 곳에는 교회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합법적인 교회를 떠났다. 그러나 교회에는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이 섞여 있다. 알곡과 가라지가 있다. 오점이 없는 교회를 찾는 노력은 헛된 일이다(IV.1.13.).
셋째, 교회 안에 도덕적인 결함이 많다고 하여 이탈하는 것은 잘못이다. 고린도 지역의 신자들 가운데에는 타락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회중 전체가 오염되어 있었다. 한 가지 죄가 아니라 수많은 죄를 범하고 있었다. 무서운 비행이 있었다. 신자들 사이에 분쟁, 분열, 시기의 불꽃이 있었다. 논쟁과 말다툼이 탐욕과 함께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이교도들조차 꺼려할 악행이 공공연히 저질러지고 있었다. 사도의 명예가 무례하게 훼손되고 있었다. 도덕적인 면만이 아니라 교리적인 면에서도 부패했다. 어떤 자는 죽은 자들의 부활을 비웃어 복음 전체를 파괴하려고 했다. 하나님의 값없이 주신 은사를 개인적인 야심을 위해 사용했다. 예의가 없고 질서를 깨뜨리는 일도 많았다. 바울 사도는 이런 교회와 관계를 끊으려고 했는가? 아니다. 그들을 여전히 성도의 공동체라고 불렀다(고전1:2). 복음이 선포되고 성례가 집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IV.1.14.).
넷째, 교회가 의무를 게을리 한다고 하여 떠나는 것도 잘못이다. 완전주의자들은 수치스런 생활을 하는 사람과 식사를 하는 일조차 잘못이라고 본다(고전5:11). “보통식사를 하는 것도 용납되지 않는데 주님의 떡을 나누는 것이 어떻게 용납되는가?”6라고 한다. 그러나 그 개인에게 교회를 즉각 떠날 결심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악인과 친밀한 관계를 피하는 것이 경건한 사람의 의무이지만, 악인들과 친밀한 교제를 피하는 것과 그들이 밉다고 하여 교회와의 교제하기를 포기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바울은 성찬을 거룩하고 깨끗하게 지키라고 권면하면서 ‘타인을 살펴보라’고 하거나 ‘전 교회를 살펴보라’고 하지 않고, 각 개인에게 ‘자신을 살피라’(고전11:28)고 말한다(IV.1.15.).
다섯째, 교회가 불완전하다고 하여 분리하는 것도 잘못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여 자신을 주시고,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웠으니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셨다”(엡5:25-27). 주께서 우리의 주름을 펴시며 티를 제거하기 위해 날마다 일하신다. 교회의 거룩은 아직 완전하지 않으며, 신자는 성화되는 과정에 있다(IV.1.17.).
여섯째, 교회가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부패했다고 하여 이탈하는 것도 잘못이다. 예루살렘에는 강도, 배신, 살육, 악행이 끊이지 않았다. 종교가 멸시를 받았다. 그런데도 예언자들은 독자적인 그룹을 만들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비행을 저질렀어도 거룩한 예언자들은 그들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지 않았다. 일부 사람들의 도덕생활이 우리의 표준에 맞지 앉거나 기독교 신앙고백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하여 교회의 교통에서 즉각 벗어나는 것은 지나친 행동이다(IV.1.18.).
일곱째, 교회 안에 불경건하고 방종한 생활이 널리 퍼져 있다고 하여 떠나는 것도 잘못이다. 바리새인들은 극도로 방종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사도들은 일반 백성과 함께 그들의 의식에 참여하고 성전에 모여 공중 예배를 드렸다. 깨끗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은 악인들과 관계를 가져도 오염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키프리안이 말한 것처럼, 교회 안에 가라지나 불결한 그릇이 있는 것 같다고 하여 우리가 교회를 떠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우리 자신이 알곡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우리가 금그릇과 은그릇이 되도록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질그릇을 부수는 것은 주께서 하시는 일이다(시2:9; 계2:27).
여덟째, 교회 구성원 소수 또는 다수가 죄를 범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들에게서 분리하는 것은 잘못이다. 불결한 사람들이 집행하는 성례전도 거룩한 것이고, 고결한 사람에게는 여전히 깨끗하고 유익하다(IV.1.19.). 신앙공동체 안에 도덕적 과오와 병폐가 있다고 하여 ‘교회’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이처럼, 칼빈은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가 올바르게 집행되는 한 그 교회의 외적인 교통에서 의도적으로 이탈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의 생각만을 완전한 것으로 여겨 고집하거나 그러한 이유를 빌미로 교회를 이탈하는 것은 마귀가 만들어 낸 생각이라고 한다. 교회분열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은 옳지 않다는 뜻이다.7 이상은 재세례파를 염두에 둔 것이다.
칼빈의 가르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릇된 교리와 예배를 가진 종교집단을 교회로 인정할 수 없으며, 그러한 집단에서 이탈하는 것이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로마가톨릭교회를 염두에 둔 말이다.
2. 거짓교회에서 분리하지 않는 오류
칼빈은 거짓교회에서 분리하지 않는 오류를 상세히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기독교의 근본에 해당하는 교리와 참된 예배에서 떠난 종교집단은 참교회가 아니다. 순수한 말씀이 선포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례가 집행되지 않는 교회는 배격되어야 한다. 참교회는 기독교의 본질적인 신조들이 파괴되지 않고 유지되는 곳에만 존재한다.
칼빈은 초기에 로마가톨릭교회에서 능동적으로 분리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다. 분리의 능동적 주체는 종교개혁자들이 아니라 칼빈 자신을 포함한 종교개혁자들을 더 이상 로마가톨릭교회 안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쫓아낸 자들이라고 말했다. 기성교회가 자신들을 쫓아냈다(nos expulerunt)는 것과 추방되었다(eiectos esse nos)는 점을 강조했다. 교회분열의 능동적인 원인을 종교개혁자들의 개혁운동에 돌리려는 시도를 원천적으로 봉쇄했다(I.2.6.). 칼빈은 종교개혁운동 초기에 자신이 로마가톨릭교회에서 이탈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독교강요』 제4권 2장에서는 로마가톨릭교회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신자가 분리의 능동적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을 말한다. 참교회가 아닌 집단에서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거짓이 종교생활의 요새에 침입하면 중추적인 교리와 성례의 효험을 파괴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교회는 틀림없이 죽게 된다. 사람이 목을 찔리거나 심장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으면 죽게 되는 것과 같이, 필수 교리와 성례의 효험이 파괴되면 그러한 신앙공동체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는 모퉁이의 머릿돌이다”(엡2:20)고 한 말에도 이 점이 뚜렷이 나타난다. 교회의 기초는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교훈이다. 교회를 지탱하는 이 핵심 교훈이 제거되면 그리스도의 교회는 존립할 수 없다. 이 기초가 무너지면 교회는 쓰러질 수밖에 없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이며 기초이다(딤전3:15). 거짓말과 거짓행위가 지배하는 곳에는 교회가 존재할 수 없다(IV.2.1.).
칼빈은 교회라고 하는 집단이 외형을 갖추고 있어도 참교회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설명한다.
첫째, 교회조직이 있다고 하여 무조건 참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교황의 지배 아래에 있는 교회에는 정교한 조직이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바로 그 조직이 복음의 순수한 빛을 꺼버리기도 하고 희미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 결과로 성찬 자리에는 더러운 모독 행위가 자리를 잡았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여러 가지 미신으로 더렵혀져 있다. 기독교의 본질에 속하는 근본 교리가 완전히 매장되고 제거되었다. 공중 집회는 우상숭배와 불경건을 가르치는 장소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면 로마가톨릭교회가 저지르는 수많은 치명적인 비행에 참여하지 않아야 한다. 교회의 교통은 그것이 우상숭배와 불경건과 하나님에 대한 무지와 기타 악폐에 우리를 빠뜨리는 데 이바지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리에 복종하는 생활을 유지하는 데 이바지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IV.2.2.).
둘째, 영적 은사, 순교자, 사도로부터 계승되었다고 하는 주교좌(감독좌)를 가졌다고 하여 참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자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분리주의자(Schismatics)로 단정한다. 자파의 교리에 반대하는 사람을 이단자로 여긴다. 로마가톨릭교회 외에는 지상에 참교회가 없다고 본다. 이러한 주장들은 모두 주교좌를 그 근거로 삼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로마가톨릭교회는 자신이 참교회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건전한 교리 위에 교회들을 세우고 또 피를 흘려 그 교리와 교회를 확립한 거룩한 사람들을 자기의 기원으로 삼는다. 영적 은사, 순교자, 주교좌를 근거로 제시한다. 이러한 주장은 무익하다. 동방교회의 주교좌는 로마가톨릭교회의 계산에 포함되지 않는다. 동방교회는 이른바 ‘사도의 교구’에서 분리했다. 그렇다고 하여 누가 그 교회를 분파 집단 또는 분리주의파라고 할 것인가? (IV.2.2.).
셋째, 성전(聖殿)과 의식(儀式)과 사제가 있다고 하여 참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거짓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지 않는다. 로마가톨릭교회의 상태는 옛날 유태인들이 불경건과 우상숭배로 예언자들의 책망을 듣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성전과 의식과 제사장의 역할을 자랑한다. 외양을 자랑한다. 그것들은 참 교회와는 거리가 멀다. 그것들이 없어도 교회는 훌륭히 존립할 수 있다. 주께서는 주의 말씀이 들려지고 그것이 양심에 맞게 준수되는 곳이 아니면 어떤 성전도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이 성소의 그룹 사이에 머물며(겔10:4), 그곳이 하나님의 영원한 거처가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제사장들이 사악한 미신으로 예배를 부패시켰을 때에 그의 영광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성소에서 거룩을 제거했다. 하나님의 영원한 거처로 성별된 듯이 보이던 성전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불경한 곳이 되었다. 주교직의 상속에 의해 교회가 계속 존재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교부들을 잘못 끌어들인 것이다. 사도성은 사도들이 전한 교리의 전승에 달린 것이지 주교좌의 계승에 달려 있지 않다. 교회의 출발 때부터 교부들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교리에 변동이 전혀 없었다. 교부들은 이 한 가지 원칙을 채택하여 사도시대부터 확고하게 만장일치로 유지되어 온 가르침 곧 중추적인 교리를 가지고 모든 새로운 오류에 맞섰다(IV.2.3.).
넷째, 교회라는 이름을 갖고 있고, 외형을 갖추고 있다고 하여 참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이름과 외형이 있다고 하여 그것이 있는 곳(롬9:6)에 항상 계시는 분이 아니다. 가야바의 집안에 경건한 제사장이 많았고 제사장직이 계승되었다고 하여 사악한 무리가 ‘교회’라는 이름을 가질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로마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의 가장 큰 대적이면서도 교회라고 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성전과 사제직과 그 밖의 외적인 것들을 유지하고 있지만 단순한 사람들의 눈이나 멀게 할 헛된 번쩍임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곳에는 교회가 없다. 표지가 없는 곳에는 참교회임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교회의 기초는 사람의 판단이나 사제직이 아니다.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교훈이다(요8:47). 지극히 거룩한 말씀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IV.2.4.).
칼빈은 참교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어느 신앙공동체가 기존교회의 법에 복종하지 않고, 자신들의 교리와 다른 교리를 선포하며 별도의 집회를 갖고 세례를 베풀며 성만찬과 기타 거룩한 활동을 한다고 하여, 그 신앙공동체를 두고 참교회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 로마가톨릭교회는 프로테스탄트교회가 분파와 이단의 죄를 짓는 것으로 취급한다. 개혁된 교회를 공연히 쓸데없는 논쟁을 일으켜 교회와 교통(communion)을 파괴하는 이단자, 분리주의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진정한 교통은 건전한 교리의 일치와 형제애에 의해 유지된다. 어거스틴은 이단과 분파를 구별했다. 그는, 이단자는 거짓된 교리로 진실한 마음을 부패시키는 자이고, 분리주의자는 같은 믿음을 가졌으면서도 가끔 친교를 깨뜨리는 자라고 했다. 사랑의 결합은 믿음의 일치에 달려 있다. 바울은 우리가 교회와 연합할 것을 권하면서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엡4:5)라고 강조한다. 주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신자간의 일치가 없고 오직 악한 사람들의 파당만이 있을 뿐이다(IV.2.5.).
둘째, 진리를 순수하게 고백하는 곳에 참교회가 있다. 신자의 연합 조건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과 믿음이다. 키프리안이 말했듯이 교회의 일치는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감독으로 모실 때만 가능하다. 이단과 분파 행동이 생기는 것은 사람들이 진리의 근원으로 돌아가지 않고, 머리이신 분을 찾지 않고, 하늘 교회의 가르침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칼빈은 개혁된 교회가 로마가톨릭교회에서 분리하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교회가 진리를 순수하게 고백하는 우리에 대해 참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파문과 저주로 수진수난(守眞受難) 신자를 추방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던 사도들을 분파주의자라고 정죄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에게 죄가 없다는 증거이다. 그리스도는 사도들이 회당에서 쫓겨나리라고 경고했다(요16:2). 주께서 말씀하신 그 회당들은 당시에 합법적 교회로 인정받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의 표지로 여기는 우리는 쫓겨났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쫓겨난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가기 위해서는 로마가톨릭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가야만 한다”(IV.2.6.).
셋째, 공공연하게 주님의 말씀을 짓밟고 순수한 말씀의 선포를 파괴하는 종교기구는 참교회가 아니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여로보암 때의 이스라엘과 비슷하다. 유태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의 율법을 지키는 동안에는 그들 가운데에 진정한 교회가 있었다. 율법에서 진리의 교리를 얻었으며,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은 말씀을 선포했다. 그들은 할례를 받아 종교에 입문하고 기타 성례를 행함으로써 믿음을 강화했다. 그들은 주께서 교회에 주신 영예로운 칭호들을 의심할 바 없이 자신들의 사회에 적용했다. 그 뒤에 그들은 여호와의 율법을 저버리고 우상숭배와 미신에 빠져 그 특권을 부분적으로 상실했다. 하나님께서 말씀의 선포와 성례의 집행을 맡기신 백성에게서 누가 감히 교회라고 하는 이름을 빼앗았는가? 주님의 말씀을 공공연하게 짓밟고도 벌을 받지 않으며, 교회의 가장 중요한 힘과 생명 자체가 되는 말씀의 선포를 파괴해 버리는 무리를 누가 감히 ‘교회’라고 부를 것인가?(IV.2.7.).
넷째, 가짜예배를 드리는 교회는 참교회가 아니다. 유태인들이 율법을 가지고 있고, 제사장 계급을 갖고 있었으나 하나님은 그들의 모조예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이 금지한 것을 어기고 금송아지를 만들고 불법적인 성소를 봉헌하여 종교를 완전히 부패시켰다(왕상 12:28이하). 르호보암 통치 하에서는 이미 여러 가지 타락한 의식들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는 여전히 율법이 가르쳐지고 있었으며, 제사장 계급이 있었다. 그 밖에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의식들이 존속했다. 그렇기 때문에 경건한 사람들에게 괜찮은 교회가 있었다(IV.2.8.). 여로보암의 명령에 따라 할례가 존속했고, 제물을 드렸다. 사람들은 거룩한 율법을 지켰고, 조상의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금지된 모조예배 때문에 거기서 행한 일을 모두 인정하지 않고 정죄했다(왕상12:31). 벧엘에서 예배하거나 제사를 드린 예언자나 경건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들은 그런 행위를 하면 반드시 신성모독이 되며, 몸이 오염되리라는 것을 알았다(IV.2.10.).
칼빈은 이상의 논거에 따라 우상숭배를 행하거나 교리가 순수하지 않거나 배교하는 교회를 배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한 교회와 교제를 단절하고 분리해야 한다. 신성모독적인(사1:14) 모임을 승인하는 것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일이다. 만약 기존 교회(로마가톨릭교회)가 참교회라면 교회는 진리의 기둥(딤전3:15)이 아니라 거짓의 버팀목이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막이 아니라 우상의 소굴이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사악한 음모에 지나지 않는 집회에서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와 미신과 불경건한 교리에 오염된 종교집단과 완전한 교통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중대한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로마가톨릭교회가 참교회라면 ‘천국열쇠’의 권한이 교황에게 있다고 하는 주장이 옳을 수 있다. 그 열쇠는 말씀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러나 로마가톨릭교회 안에는 말씀이 파괴되어 있다. 만일 그들의 교회가 참교회라면 “네가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다”(마16:19; 18:18; 요20:23)고 말한 그리스도의 약속이 그들 사이에서 효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진심으로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과 교통을 끊었다. 그리스도의 약속은 쓸모없는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러한 종교집단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IV.2.10.).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4권 제1장에서 예루살렘의 예언자들이 부패한 유태종교의 상태를 보면서도 그들로부터 분리하지 않고 새로운 교회를 만들지 않은 점을 말한다. 신앙고백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약간 있다고 하여 교회의 교통에서 즉각 벗어나는 것을 잘못이라고 한다(IV.1.18). 제2장은 예언자들이 부패한 종교에서 분리하지 않은 것을 지적하고 그 까닭을 논한다. 레위족 제사장들은 거룩한 의식을 집행하는 자로 임명을 받은 상태였고(출29:9), 파면된 일이 없었으므로 여전히 그 직무를 행할 권리를 갖고 있었다. 예언자들은 미신적인 예배를 강요받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제정한 의식 이외의 것을 행하거나 그러한 예식에 참석하라고 강요받지 않았다(IV.2.9.). 예루살렘의 예언자들이 부패한 유태의 종교 상태를 보면서도 그들로부터 분리하여 새로운 종파를 만들거나 새로운 교회를 세우지 않았다.
그러나 칼빈은 로마가톨릭교회를 단호하게 반대했다. 교황주의자들과 함께 모임을 가지면 우상숭배로 더러워지게 마련이며, 그들의 미사(성찬식)는 최대의 신성모독이라고 지탄한다. 모독적인 예배를 드리는 집단은 참교회가 아니므로 그들과 교통을 하지 않는 것이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칼빈에 따르면, 교황제도 아래에도 교회의 흔적은 남아있다. 건물이 헐려도 그 터가 남는 것과 같이 여호와께서는 적그리스도가 교회의 기초까지 완전히 파괴하여 평지로 만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주의 말씀을 멸시한 사람들의 배은망덕을 징계하기 위해 교회가 무서운 동요와 분열을 겪는 것을 허락했지만 건물이 절반쯤 남도록 했다. 로마가톨릭교회 안에 여호와의 언약의 증거인 세례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IV.2.11.).
그러나 그 집단 안에 건전한 요소가 약간 남아 있다고 하여 배교하는 교회가 참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교황주의 집단은 ‘교회’가 아니다. 다니엘(단9:27)과 바울(살후2:4)은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전에 앉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교황은 사악하고 가증스러운 왕국의 지도자이며 기수이다. 신성 모독적인 불경건으로 교회를 더럽히고, 잔인한 지배자처럼 괴롭히고, 독약처럼 악하고 치명적인 교리로 부패시켜 거의 죽게 했다. 그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는 거의 묻히고 복음은 폐지되어 있다. 경건은 사라졌으며 하나님께 대한 예배는 거의 멸절되어 있다. 모든 것이 혼란에 빠져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이 아니라 바벨론과 같이 되었다. 로마가톨릭교회에 속한 자들 사이에도 ‘교회’가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악마의 간계와 인간의 패악에도 불구하고 파괴할 수 없는 교회의 표지가 다소 남아 있다. 그러나 로마가톨릭교회에는 개별적으로나 전체적으로 보아 합법적인 교회의 형태와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IV.2.12.).
칼빈이 말하는 로마가톨릭교회에 속한 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그 ‘교회’는 무엇인가? 종교개혁운동은 교회관의 개혁운동이었다. 칼빈은 교황을 정점으로 하여 구성된 사제계급(hierarchy)을 교회로 보는 로마가톨릭교회 교회관을 알고 있었다. 교황이 적그리스도이면 그의 통치를 받는 로마가톨릭교회가 적그리스도 단체라고 보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적그리스도의 지배 아래 있는 ‘그리스도의 신부’는 무엇인가? 로마가톨릭교회 안에 있는 일부 지역교회들을 말하는 것인지,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왈도파, 영국의 존 위클리프가 이끈 롤라즈 무리, 보헤미아 지역의 얀 후스의 개혁신앙을 추종하는 후스파와 타볼파, 플로렌스의 지롤라모 사보나롤라를 추종하는 무리들, 마르틴 루터가 속한 어거스틴 수도회와 같은 종교개혁 이전의 종교개혁운동과 관련된 신앙공동체들을 말하는 것인지는 좀 더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어쨌든, 칼빈이 『기독교강요』 제4권 20장과 사돌레토에게 보낸 편지에서 강조하는 종교집단 곧 반드시 분리해야 한다고 말하는 ‘교회’는 교황이 지배하는 로마가톨릭교회가 틀림이 없다.
3. 훼절인가 배교인가?
일제 말기의 한국교회의 우상숭배, 백귀난행, 친일행각은 신앙의 극심한 변질, 곧 훼절(毁節)을 한 것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할 수 없는 정도로 배교했는가? 대부분의 한국교회사가들은 그 당시의 한국교회의 행태를 ‘변절,’‘훼절’ 따위의 단어로 서술한다. 그 시대의 교회가 배교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일제 말기의 한국교회는 백귀난행을 저질렀다. 예배는 주 1회 드렸고, 예배 대신 이른바 애국행사들을 가졌다. 국방헌금을 바치고, 전쟁에 출정한 군인 유가족들을 돕기 위해 매월 헌금을 했다. 교회는 지역 교회들을 통폐합하고 매각하여 일제에 바쳤다. 폐합하여 생기는 교회당, 부속건물, 대지, 전답 등을 매각하여 전쟁비용으로 사용하도록 자진 상납했다. 교회는 가마가제 특공대 해군용 비행기를 애국기(愛國機)라는 이름으로 헌납했다. 교인들에게 애국기 헌납 헌금을 바치라고 지시했다. 교회당의 종과 철탑과 철문을 뜯어 이른바 성전(聖戰) 무기제조용으로 헌납했다. ‘목사,’ ‘부목사’라는 명칭을 ‘정교사,’ ‘보교사’ 또는 ‘교회사’(敎悔師)로 고쳐 부르게 했다. 무기구입을 위한 특별헌금을 했고, 출정하는 병사들을 위한 감사예배를 올렸다. 시국에 순응하여 주일예배를 전폐하는 경우도 있었다. 교회지도자들은 일본과 한국의 신궁소재지를 성지(聖地)라고 하여 ‘성지순례’를 했다.
교회가 이러한 백귀난행, 친일행각을 했다는 이유로 그 당시의 한국교회를 배교한 집단 또는 거짓교회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 시대의 교회는 이런 저런 형태로 일제의 강압 아래에 있었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우상숭배를 하고 신앙고백과 신학을 신도교(神道敎) 이데올로기로 바꾸거나 혼합시키고 변질된 교리를 고백한 것은 이족침략과 지배를 빌미로 변명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한국교회는 우상숭배를 했다. 교회가 그것을 공적으로 결정하고 솔선수범했다. 신자들에게 그것을 강요했다. 한국교회는 기독교의 중추적인 교리들을 저버렸다. 이단적인 교리를 신봉하고 고백했다. 당시의 한국교회 안에서 그리스도는 거의 매장되었고, 복음은 폐지되었다. 하나님 말씀이 부재한 상태였고, 오염된 성례가 거행되었다. 독약과 같이 악하고 치명적인 교리와 이교이데올로기와 혼합된 ‘신학사상’이 교회를 부패시켰다. 교회는 그 존재가 달려 있는 일치성·보편성·사도성·거룩성을 완전히 잃었다. 한국교회는 교회라는 이름은 가졌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이 아니라 우상숭배하는 바벨론이었다. 한국교회는 배교집단이었다.
필자의 조만간 출간할 『신사참배거부운동』(잠정제목)은 일제 말기의 한국교회의 행태를 살펴보고 그 사건과 이와 관련된 주제들을 신학적으로 분석한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당시의 교회의 모습을 개괄적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교회는 일본적 신학을 수립하여 기독교회의 존재가 달려 있는 본질적인 교리들을 파괴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믿고 고백한 것 아니라 신도교이데올로기와 혼합된 교리, 일본화된 신학을 수납했다. 기독교의 유일신론과 그 신앙을 포기하고 그리스도의 왕 중 왕 되심을 부정했다. 신론·인론·기독론·구원론·교회론·종말론에 이르기까지 이교화되고 변질된 교리를 가르쳤다. 교회는 신자들이 이단적인 교리를 신봉하고 고백하도록 강요했다.
둘째, 그리스도나 여호와 하나님보다 천조대신이 더 높다고 고백했다. 각 지역 교회들은 ‘여호와 하나님보다 천조대신이 더 높다’고 기록하고 교회의 대표자가 그 문건에 서명한 것을 일경에게 제출했다. 일제의 하급 관리들조차 “그리스도가 높으냐, 천황이 높으냐”8 하는 질문을 서슴지 않았다. 한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보다 일본제국주의의 상징인 천황을 더 숭상했다. 그리스도가 아니라 일본 천황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쳤다. 이런 배교행위는 교회가 ‘순일본적 신학’을 수립한 결과였다. 한국교회는 기독교의 일본적 토착화를 훨씬 더 넘어섰다.
셋째, 기독교의 핵심교리들을 고백하지 못하게 하려고 그러한 내용이 담긴 찬송가들을 삭제하게 했다. ‘십자가 군병들아,’ ‘만왕의 왕 내주께서,’ ‘환란과 핍박 중에도 등 그리스도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 메시아의 재림 등에 관한 찬송들을 모조리 삭제했다. 이러한 찬송들이 제거된 책을 인쇄하고, 그러한 내용의 찬송들을 가위로 잘라버리거나 종이를 오려 붙이도록 했다. 『장로회보』는 교회의 이러한 결정을 “긴급통보”9로 보도했다. 민경배 교수(전 연세대학교, 교회사)는 자신이 초등학교 5학년생 때 황해도 장연에서 경험한 일을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성경책은 도처에 먹칠을 하거나 떼어버려야 했다. 유대사상을 배제하고, 그들 말대로는 소위 순복음(純福音)만의 교의(敎義)를 선포한다고 하여서, 구약성서와 신약의 묵시록을 삭제하고 4복음서만 읽게 하였다. 이런 것은 물론 감리교단에 내려진 조치였지만 모든 교회가 다 그런 아픔을 겪었다. 찬송가 역시 상당수가 먹칠을 하고 뜯어내고 한, 만신창의 책을 들고 다녔다.10
넷째,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유태사상을 시정하고 이를 위해 새로운 해석 교본을 만들었다. (1) 일본기독교를 확립하기 위하여 특히 전문가로서 일본교학의 연찬에 노력하고 일본적 신학을 수립시킬 것, (2) 말세, 심판, 재림 등은 세상적 물질적 해석을 고쳐 그것을 종교적 심령적으로 해석할 것. (3)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비기독교적 유대사상을 시정하기 위하여 그 적당한 해석 교본을 편찬할 것 등을 지시했다.
위 내용을 담은 교회의 지시공문은 평양신학교 교장 채필근 목사의 이름으로 전국 각 노회, 교회에 하달되었다. 유호준 목사는 “문제는 경전이었다. 혁신교단 측은 경전을 신약성경으로 하고 구약성경을 해석교본으로 낸다는 것이었는데 반해 일본기독교조선장로교단의 것은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본 교단의 경전이 제1은 신약성경이고 제2가 구약성경’이라 하여 동등해야 할 경전의 차등을 두어 그 경중의 차별을 인정하고만 꼴이 된 것이다”11고 증언한다.
다섯째, 성경을 편집했다. 한국교회는 처음에 “신약성서를 기초로 하야 교의를 선포하고 구약성서의 새로운 해석 교본을 제정”12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구약성서는 물론 사도신경을 삭제하고, 묵시록을 빼고, 4복음서의 산상수훈만이 경전이라고 결의했다.”13 한국교회는 성경을 새롭게 해석하고 교리를 바꾸는 데 그치지 않았다. 전필순 목사를 포함한 친일파 인사들의 지도 아래에서, 한국교회는 이른바 천황의 절대 신성에 위배되는 구약성경을 경전에서 빼라고 명했다. 신약성경만을 경전으로 하고 구약성경은 해석교본으로 하기로 했다.14 신약성경 가운데서도 유태민족사상이 강하게 대두되는 부분과 묵시적인 부분을 삭제했다. 4복음서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삭제토록 했다. 가위로 오려버리거나 먹칠을 하게 했다.15 구약은 유태민족의 역사이기 때문에 일본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한국교회가 정경에서 구약성경을 빼버리고 유태민족사상을 제외시킨 것은 그 성경과 유태민족이 신봉하는 여호와 하나님을 부정한 것과 다르지 않다. 주일예배의 제1부는 천조대신에게, 제2부는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지만, 신앙고백에서 구약성경을 폐기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부정한 것과 다르지 않다. 이는 성경을 편집하여 구약성경과 신약의 유태민족적 요소를 제거한 마르시온주의가 여호와 하나님과 선한 하나님을 나누고 유태인의 신 여호와를 악신으로 규정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여섯째, 한국교회를 해체하고 배교적인 ‘순정(純正)일본적기독교’로 거듭났다. 군소교단의 총회장들은 ‘전향성명서’라고 하는 개종고백서를 발표하고 교회들을 해체했다. 조선예수교장로회는 새로운 일본장로교단을 만들어 다른 교파보다 황국(皇國)에 대한 충성도가 더 강하다는 것을 경쟁적으로 보여주었다. “하루라도 빨리 완전한 황민화하는 것을 최대 급선무로 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조선예수교장로회도 교의신학과 성서해석과 교회조직과 의식습관 등에 있어서 종래의 사상태도를 깨끗이 청산하고 순일본적기독교로 신생(新生)”16하고자 대한예수교장로회를 폐기하기까지 했다. 한국장로교회를 해체하고 일본기독교조선장로교단을 만들었다. 나중에는 그것조차 없애고 일본기독교조선교단에 폐합시켰다. 한국교회는 친일파 인사들의 지도 아래에서 골수에 사무친 황민화의 이상(理想)을 드러냈고, 혼합종교로 신생(新生)했다.
일곱째, 올바른 성례를 거행하지 않았다. 천조대신이 여호와 하나님보다 더 높다고 고백하면서 가진 세례와 성찬이 정당했을 까닭이 없다. 성례는 일본귀신의 이름으로 신도침례를 받은 목사들이 베풀었다. 목사들은 신도침례(미소기)를 받았다. 신도교 사제로부터 개종을 의미하는 계례(契禮)를 받았다.17 계례는 불교나 신도교에서 행하는 입교예식으로 기독교의 세례와 같다. 성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와 목사 안수를 받은 자들이 ‘천조대신 보다 더 높은 신은 없다’는 신앙고백을 하고 일본신의 이름으로 침례, 세례를 받았다. 이방신과 여호와 하나님을 함께 섬기면서 세례를 베풀었고 성찬을 나누었다. 사악하고 가증스런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모독적인 불경건으로 그리스도의 교회의 성례를 더럽혔다.
여덟째, 가짜예배를 드렸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예배는 이교신 예배와 우상숭배로 점철되어 있었다. 교회는 신자들의 일본적 정신무장을 위해 교회당마다 일본의 개국신을 ‘모신’ 가미나다(神壇), 곧 이동신사(portable shrine)를 설치하게 했다. 교회당마다 ‘거룩하게’ 모셔놓고 그것에 극진한 예를 올렸다. 절을 하며 일본왕실의 조상신들과 현인신(現人神)과 잡신들을 예배했다. 여러 해 동안 매 주일 일제 판 바알 신 천조대신(天照大神)과 여호와 하나님을 동시에 섬겼다. 교회가 드린 기도는 황국무운장구와 일본의 전승에 관한 것이 주를 이루었다.
아홉째, 우상숭배와 배교와 백귀난행을 솔선수범했다. 한국교회는 살아남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일제에 아부하는 교회 지도자들의 지도 아래에서 자의로 그것들을 시행했으며, 열(熱)과 성(誠)을 다했다. “이 즈음해서 교직자들 간에는 이상한 심리가 전염병처럼 돌아… 당국자도 깜짝 놀랄 조처를 서슴없이 솔선하는 혼탁한 공기가 나돌았다.”18 일제의 강압 때문이었지만 그 강압에서 시작한 한국교회의 배교와 친일행각은 일제를 “깜짝 놀라게 해 줄 정도”19였다.
열 번째, 솔선수범하여 신사참배권유운동, 신사참배인식운동을 펼쳤다. ‘시국인식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우상숭배운동을 펼쳤다. 앞에서 상론한 바와 같다.
열한 번째, 충성된 그리스도인들을 제명하고 파면했다. 교회는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목사들을 해임시켰다. 평양노회가 주기철 목사를 파직시키고 봉천노회가 한부선 선교사를 제명하고, 여러 지역의 교회들이 담임 목회자가 시국에 순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목회직을 사임하게 했다. 거창읍교회 목회자 주남선 목사는 신사참배거부운동을 전개하다가 경남노회로부터 담임목사직 해임 통보를 받았다. 경남노회는 “주 목사에 대하여 거창읍교회 위임목사 해제 통보”20를 했다. 총회가 신사참배를 행하기로 결정한 후였다. 그가 교회를 사면하도록 강요했다. 노회의 압력을 받은 교회측은 그 가족에게 사택을 비워달라고 통보했다. ‘순정일본적기독교’로 개종한 목사들은 물찬 제비처럼 좋아하며 경쟁적으로 우상숭배, 배교, 친일행각을 했다.
열두 번째, 주님의 말씀을 바르게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을 공공연하게 짓밟았다. 교회의 표지인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를 파괴한 것이다. 배교하지 않는 신자들을 일경에 고발했고, 감옥생활을 하게 했다.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그리스도인들을 괴롭혔다.
낮에 취한 강주정을 부렸고 날도깨비의 장난이 횡행하였다…. 일본기독교 조선교단이 결성되던 무렵의 희한한 암투는 극에 달했고 추태는 말의 표현을 넘어섰다. 구약성서는 물론 사도신경이 삭제되고, 묵시록이 빠지는 등, 4복음서에서는 산상수훈만이 경전이라는 결의가 기탄없이 이루어졌다.
간부 목사들의 옥고야 짐작이 가지만 어쨌든 ‘예수를 배반하고서야’ 출옥[했으며], 교역자들은 앞다투어 열변과 웅변을 토했다. 아첨의 재사나 기발한 언설이 많았던 가운데 A 목사는 태양이 솟으며 암흑이 사라진다는 넋두리를 읊었고, P 목사는 만일 미국의 선교사가 다시 이 땅에 오면 일본도로 배를 잘라버리겠다는 욕설을 내뱉었다. [항일적 목사들을 전원 총살시키도록 그 명단을 목사들이 제공해 주는 등] 이 나라 기독교가 그 시련을 당하여 너무 부끄러운 자취를 남긴 것이 애통하다.21
오랜 역사를 가진 서울의 어느 장로교회는 40년 동안 봉사해 온 담임목사의 인도로 주일예배를 그 교회를 관할하는 왜경이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틈을 이용해 신사참배 없이 끝마쳤다. 동방요배도 하지 않고 황국신민서사도 외우지 않은 채 예배를 은혜롭게 끝냈다. 이것을 지켜본 어느 목사가 예배 직후 관할경찰서 고등계 주임을 찾아 고발했다. 담임목사는 그날 서산에 해가 채 저물기 전에 경찰 유치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고, 며칠 동안 구금되었다. 해당 노회는 그 목사를 파직시키고 하고 강제로 축출했다. 일제의 강압 때문에, 불가피하여, 마지못해, 억지로 한 것이 아니었다.
4. 완전주의 교회관의 발로인가?
신사참배거부운동을 주도한 한상동 목사는 동지들에게 이 운동을 ‘종교운동’만으로 전개하면 목적 달성이 어려워지므로 조속히 ‘정치운동’으로 전환하자고 했다. 말세가 이미 도래하여 악마의 지배 아래에 있는 현 사회는 조만간에 멸망하고 지상신국(地上神國)이 건설될 것이므로, 동지들이 견고한 신념을 가지고 다수 동지를 획득하여 목적을 달성하자고 했다.22
신사참배거부운동 동지들은 한상동의 이 제안에 찬성하면서 다음 사항을 다짐했다. 첫째, 신사참배를 긍정적으로 보는 노회원들로 하여금 노회의 각종 집회에 출석하지 못하도록 초치(招致)하고, 각 교회로 하여금 각 노회 부담금을 바치지 못하게 하여 결국 기존의 노회가 파괴되도록 만든다. 둘째, 신사불참배주의 신도들로 새로운 노회를 조직한다. 셋째, 신사참배를 긍정하는 목사에게 세례를 받지 못하게 한다. 넷째, 신사불참배 동지의 상호원조를 도모한다. 다섯째, 가정예배와 가정 기도회의 개최를 장려하고 시행하는 동시에 개인 전도로 신사불참배주의 신도를 동지로 먼저 획득하고 그 다음에는 기회주의 태도를 지닌 신도를 동지로 삼는다.23 신사참배를 긍정하는 목사에게 세례를 받지 못하게 한 것은 우상숭배를 행하는 ‘교회’가 참교회의 요건을 갖추지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더 이상 순수한 교회가 아니라고 하는 확신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사참배거부운동이 기성교회를 파괴시키려고 하고 새로운 교회를 조직하려고 한 것은 고대 노바투스주의와 도나투스주의의 완전주의 교회관의 발로인가? 경남의 한상동, 평북의 이기선, 채정민 등 신사참배거부운동 지도자들은 완전주의 교회관을 가지고 독자적인 노회를 만들려고 한 것은 ‘3세기 이후에 있었던 교회론 논쟁’을 재현한 것인가? 이러한 역사해석의 바탕에는 교회가 완전할 수 없으며, 일제 말기의 한국교회가 배교하는 교회가 아니라고 보는 전제가 깔려 있다.
칼빈이 일제 말기의 한국교회의 현장을 목격한다면 이러한 역사해석을 무어떻게 볼까? 우상숭배를 하고 여호와 하나님과 벨리알(천조대신)을 동시에 섬기는 교회, 천조대신이 여호와 하나님보다 더 높다고 고백하고, 그리스도가 왕 중 왕임을 부정하여 성경을 편집하여 구약성경과 요한계시록을 제거한 교회는 참교회인가? 주한 장로교 외국 선교부들을 그러한 ‘교회’를 진정한 교회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하여 선교관계를 끊었다.
배교(背敎: apostasy), 배도(背道)는 신앙을 거스르는 죄이다. 이 용어는 신앙을 배반한 자의 관점이 아니라 그가 배반한 종교의 관점에서 사용된다. 믿음의 형태를 달리한다고 하여 배교자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배교의 정의는 시대마다 달랐다. (1)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버리는 것, (2) 신앙의 중추적인 교리를 포기하는 것, (3) 기독교의 행습을 포기하는 것 등을 일컫는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수도 생활 또는 성직 생활을 포기하는 것을 배교행위에 포함시켰다. (4) 마음속으로는 그리스도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겉으로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행동을 하는 것도 배교로 간주된다. 17세기 일본의 기독교 대박해 시기에 로마가톨릭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성화에 침을 뱉고 그것을 발로 밟는 것을 배교로 여겼다. 수많은 사람들이 배교를 거부하여 순교했다.24
봉천노회는 광복 후에 공적 참회고백을 하면서 작성한 ‘우리의 과거의 연약함’이라는 제목의 고백문서는 “우리는 지금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 여러분을 향해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를 그리스도의 교회의 배교자 집단(an apostated branch of the Church)이라고 하여 거부하지 말아주시기를 바랍니다”25고 말한다. 일제 말기의 한국교회가 저지른 우상숭배와 여러 가지 이교적인 행위가 변절, 훼절을 한 정도가 아니라 배교였다는 것을 솔직히 시인한다.
신사참배거부운동 지도자들은 ‘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조직체로부터 제명되거나 쫓겨난 신자들이다. 그들은 우상숭배를 하고 배교하는 교회에 항거했다. 우상숭배를 하지 않고 배교하지 않는 새로운 교회조직을 만들려고 했다. 기성 교회에서 떠나는 것이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일이며, 떠나지 않는 것이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일이라고 보았다.
신사참배거부운동교회가 우상숭배를 하고 그것을 강요하는 기성 교회에 항거한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실한 고백적 행동이었다. 그 교회에 사소한 그릇된 교리가 있거나, 도덕적으로 타락했거나, 교회의 의무를 게을리 했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다. 일부 신자들이 우상숭배를 했거나, 불경건하고 방종한 생활이 널리 퍼져 있었거나, 교회 구성원 다수가 죄를 범했다는 것 때문도 아니다. 일제 말기의 한국교회는 교회조직을 갖고 있었다. 총회, 노회, 당회가 있었다. 의식(儀式), 설교, 성례를 집전하는 목사(사제)가 있었다. 교회당(성전), 신학교, 신학자도 있었다. 예배의식과 형식과 절차가 있었다. 그러나 그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요건을 잃은 상태였다. 교회를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들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일제 말기 한국교회에 교회의 흔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조직 안에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있었다. 우상숭배하지 않은 일부 목회자들이 있었고, 그들이 베푸는 세례가 있었다. 시골지역에는 변질되지 않은 신앙을 가진 상당수 교회들이 있었다.
칼빈은 “교회 안에 약간의 건전한 부분이 약간 있었다고 하여 그것이 부패한 교회를 참교회로 만들 수는 없다”(IV.2.12.)고 말한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매 주일 신사참배라고 하는 이교예배를 올렸다. 총회, 노회, 연회가 모일 때마다 대표자들은 행렬(行列)을 지어 신사에 찾아가 참배했다. 이러한 우상숭배 행위는 6-7년 동안 계속되었다. 일제 말기의 한국교회는 칼빈이 거짓교회로 본 종교개혁시대의 로마가톨릭교회보다 신앙고백적으로나 교리적으로 훨씬 더 이단적이었다. 이러한 ‘교회’를 그리스도의 교회로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성모독이다(IV.2.10.).
칼빈의 교회관에 비추어보면 신사참배거부운동이 우상숭배와 미신과 불경건한 교리로 점철된 교회를 거부하고 새로운 교회조직을 갖추려 한 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충실한 행동이었다. 장로 요한은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요이9-11)고 말한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후6:14-17)고 한다. 또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라고 한다. 이 말은 우상숭배를 하고 배교하는 교회와 더불어 기구적인 단일성을 유지하라는 뜻이 아니다.
일제 말기의 한국교회와 종교개혁시대의 로마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이탈하고 보편적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분리하고 우상숭배를 하는 교회였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 교회는 신사참배거부운동 항쟁자들이 교회의 우상숭배 명령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제명하고 면직하고 축출했다.
피동적으로 쫓겨난 사람들은 능동적으로 교회조직을 가지려고 했다. 제1계명과 제2계명을 범하지 않는 참교회를 세우고자 했다. 로마가톨릭교회에 대항하여 독자적인 교회조직을 만든 종교개혁자들과 궤를 같이 한다. 사도성·보편성·통일성·거룩성을 가진 그리스도의 교회를 능동적으로 세우고자 했다.
5. 독일고백교회, 헝가리개혁교회, 중국가정교회
독일교회―독일기독교연맹이 나치의 민족주의 정치이데올로기에 아부하고 있을 무렵, 이에 항거하는 교회들이 부페탈에 모여 ‘바르멘신학선언’(1934)을 채택하고 독자적인 교회조직을 구성했다. 독일고백교회라는 새로운 교회조직을 출범시켰다. 기존의 독일교회가 비기독교적인 것들과 타협하고 민족적인 것을 ‘신앙’하자 일부 교회들이 그것을 우상숭배로 규정하고서 분리하여 새로운 교단을 조직했다. 한국의 진보주의 신학자들은 독일고백교회운동을 영웅적인 행위로 칭송하면서 지도자들을 “신앙적 용사,” “영웅적 전사”26라고 극찬한다. 독일고백교회를 노바투스파나 도나투스파 또는 분리주의 교회관과 동일시하는 사람은 없다. 그 출범을 완전주의 교회관의 결과로 보는 사람도 없다.
독일기독교연맹이 민족이데올로기라고 하는 ‘우상숭배적인 것’을 추종할 때, 한국교회는 우상숭배적인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여러 해 동안 우상숭배를 했다. 이교신을 예배했다. 독일기독교연맹에 견주어 볼 때 한국교회의 우상숭배와 배교의 정도는 훨씬 더 심각했다.
헝가리개혁교회가 무신론적 공산주의 정권과 야합하면서 정치권력의 꼭두각시가 되어 있을 무렵, 헝가리지하교회는 그것에 항거하여 독자적인 교회를 구성했다. 이 교회는 공산통치가 끝난 뒤에도 독자적인 교회로 존재하고 있다. 이 교회를 분리주의와 동일시하거나 그들이 3세기와 그 이후의 분리주의자들, 노바투스주의나 도나투스주의와 동일시하는 사람은 없다.
중국의 가정교회는 현재 약 6천만 명 또는 1억 명 이상의 신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26 공산주의 정부의 종교 정책과 삼자교회(三自敎會)라고 일컫는 국가공인교회를 반대하고 지역마다 독자적인 교회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교회는 통상적인 교회조직을 갖추고 있지 않다. 목사도, 장로도, 집사도 없다. 총회도 연회도 노회도 당회도 없다. 동공회의(同公會議)라고 하는 지도자 모임이 교회를 지도한다. 오순절적인 성령의 역사와 정통신앙과 왕성한 선교의 열기가 있다.
2000년 동안의 기독교 역사에서, 교회가 스스로 우상숭배를 결정하고 그것을 강요한 경우는 한국교회 밖에 없다. 교회가 공적으로 우상숭배를 결의한 바 없다. 우상숭배인식운동, 우상숭배권유운동을 펼치고, 배교하도록 권하고,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축출한 전례는 없다.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제명하고 면직시키거나 스스로 교회를 해체하고, 이교와 혼합하여 폐합된 바 없다.
칼빈의 교회관에 따르면 이교예배, 이교교리, 이교의식을 가진 배교하는 교회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일이며 하나님께 대한 신성모독이다. 독일고백교회, 헝가리지하교회, 중국가정교회, 한국의 신사참배거부운동교회는 모두 승리하는 교회이며, 영광스런 교회이다. 한상동, 이기선, 채정민이 주도한 신사참배거부운동이 신사불참배노회를 조직하려고 한 것은 정당하고도 바람직한 행동이었다.
신사참배거부운동과 그 지도자들을 3세기와 그 이후의 분리주의 집단과 동일시하거나, 그들이 완전주의 교회관을 가지고 교회를 분리하려고 한 것으로 단정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종교개혁교회와 로마가톨릭교회의 자리를 뒤바꾸어 평가하는 것과 같다. 한상동이 주도한 신사참배거부운동은 루터와 칼빈이 주도한 16세기 교회개혁운동과 궤를 같이 한다.
주
1민경배, 『순교자 주기철 목사』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5), 6-7, 254; 김의환, “밖에서 본 고신교단,” 『월간고신』 (2002.3.), 53; “고신신학의 역사적 조명,” 『총신대논총』 (1995), 49; 이상규, “주기철 목사의 신사참배와 저항,” 제1회 소양 주기철 목사 기념강좌, 연세대 발표논문 (서울: 주기철목사기념사업회, 1997), 79.; 『기독교사상연구』 4 (고신대학교, 1997), 229-230.
2John Calvin, A Reformation Debate: John Calvin and Jacopo Sadoleto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76).
3John Calvin, The Necessity of Reforming the Church (1544) (Edmonton, Alberta: Still Water Revival Books, n.p.), Reformation Bookshelf, vol. 24, 123-234.
4Ibid.; David C. Steinmetz, “Luther and Calvin on Church and Tradition,” Michigan Germanic Studies 10 (1984): 98-111.
5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72), 345. 김양선도 그릇된 시도로 본다. 『한국기독교해방십년사』 (서울: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교육부, 1956), 155.
6재건파는 광복 후에 독자적인 교회를 설립하고서 다른 교회와 교제를 금했다. 고신파 신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조차 ‘동참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하여 엄금했다. 최훈, 『한국재건교회사』 (서울: 성광문화사, 1979), 94를 보라.
7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김명혁 교수는 “한국교회와 연합운동”(『한국교회 쟁점진단』, 서울: 규장, 1998)이라는 글에서 칼빈이 분파주의를 맹렬히 비판했다고 하면서 “이와 같은 칼빈의 교훈은 근본주의적 배타성을 당연하게 여기는 일부 한국교회 신학자들과 그 추종자들에게 심각한 도전을 던져준다고 하겠다”(p.355)고 말한다. 그는 『기독교강요』 제4권 1장만 소개할 뿐 ‘분리하지 않는 죄’를 책망한 제2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8최석우, 『한국천주교회의 역사』 (서울: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373.
9“찬송가 개정에 대하여,” 『장로회보』 긴급통보 (1941.10.1.); “긴급통보문,” 『장로회보』 (1941.1.21.); 긴급통보 『조선감리회보』 (1942.4.1.).
10민경배, 『정인과와 그 시대』 (서울: 한국교회사학연구원, 2002), 223.
11유호준, 『역사와 교회: 내가 섬긴 교회, 내가 살던 역사』, 유호준 회고록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3), 175.
12“순복음만 선포하기로,” 『기독교신문』 (1944.5.1.), “Survey-Korea,” The International Review of Missions (1946), 15.
13“되새길 수 없는 역사, 『기독교사상』 (1974.8.), 74.
14위 문헌.
15“논쟁의 중심이 된 구약 성서의 해석,” 『매일신보』 (1943.3.21.).
16『일본기독교조선장로교단규칙』 (경성: 협판인쇄소, 1943), 1. 이 책의 발행인은 김관식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복구의 필연적 사실』(1946년 추정), 8-9 참고하라.
17자세한 내용은 앞의 문헌 9-10에 요약되어 있다.
18“되새길 수 없는 역사,” 『기독교사상』 (1974.8.), 74.
19위 문헌, 72.
20심군식, 『해와 같이 빛나리』 (서울: 교회교육연구원, 1990개정판), 76.
21“되새길 수 없는 역사,” 74. 최덕성, “과거사 무엇을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 『개혁신학과 창의적 목회』 (서울: 본문과현장사이, 2005), 97-137을 보라.
22“예심종결결정문,” 한상동, 10.8, 안용준, 『태양신과 싸운이들』 (부산: 칼빈문화출판사, 1956), 318-319.
23앞의 문헌.
24엔도 슈사쿠의 『침묵』(서울: 홍성사, 2003)은 17세기 일본의 기독교에 대한 박해 사건을 소재로 쓴 소설이다. 다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배교자가 된 어느 사제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신앙을 부인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고민하는 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다.
25Austin Fulton, Through Earthquake, Wind and Fire: Church and Mission in Manchuria 1867-1950 (Edinburgh: St. Andrew, 1967), 375-377.
26김재준, “한국교회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낙수이후』 (1946.10.). 『장공김재준전집: 신학논문』 2 (서울: 한국신학대학출판부, 1971), 58-59. 김재준은 일제와 야합하여 신학교를 세운 따위의 친일 행위와 독일고백교회운동을 동일시한다.
27중국가정교회는 국가가 교회 위에 있을 수 없고, 마르크스-레닌-모택동 사상이 성경 위에 있을 수 없다고 하면서 국가의 신앙간섭, 교회간섭을 거부한다. 전통적인 교회조직을 갖고 있지 않다.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
http://www.reformanda.co.kr/theology/1075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