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꿈
민구
야산에서 구멍 난 철모를 본 뒤로
자주 싸우는 꿈을 꾸었다
나는 여러 번 총을 맞고
고막이 터지고 머리가 날아갔지만
아침이 되어 살아날 때까지
적이 누군지 몰랐다
이렇게 악몽에 시달릴 때면
하늘을 날거나 순간이동을 하면서
꿈을 통제할 때도 있었는데
그저 도망가기에 바빴다
죽고자 하면 죽었고
살고자 해도 모두가 함께 죽었다
밤이 되면 총을 맞았고
팔다리가 날아갔지만
아침이 되면 멀쩡한 얼굴로 돌아왔다
엄마는 군대를 두 번이나 갔냐고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이게 마지막 밤이 될까 봐
먼저 전쟁을 일으킬 때도 있었다
죄 없는 사람들의 앞마당을 차지하고
남의 집을 털어 전리품을 획득하고
나보다 한참 어린 병사들을
찔러 죽이는 상상을 하며
끝을 알 수 없는 전쟁에 동원되려고
일찍 잠들기도 했다
ㅡ『청색종이』(2022,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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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구 : 1983년 인천 출생.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배가 산으로 간다』『당신이 오려면 여름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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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갤러리
민구, 싸우는 꿈
이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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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5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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