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楚) 장왕(莊王)이 정(鄭)나라를 치자 정백(鄭伯)이 웃옷을 벗고 어깨를 드러낸 채
왼손에는 모정(茅旌)을, 오른손에는 난도(鸞刀)를 잡고 나아가 장왕에게 이렇게 사죄하였다.
“과인은 어질지 못한 변방의 신하로서 큰 화를 불러 일으켜
대국의 임금께서 화를 내며 멀리 이곳까지 욕되게 오시도록 하였습니다.”
그러자 장왕은 이렇게 말했다.
“그대의 옳지 못한 신하들이 내게 와서 좋지 않은 말을 하면서
과인에게 직접 와서 그대의 얼굴을 보도록 하기에 국경을 조금 넘어왔소.”
장왕은 부절을 받고 좌우의 신하에게 군대를 칠 리 정도 물러서도록 하였다.
그러자 장군 자중(子重)이 나서서 이렇게 간언을 올렸다.
“무릇 남쪽의 우리 도성 영(郢)과 이곳 정나라 사이의 거리는 수천 리나 되고,
이번 전쟁에서 죽은 대부만도 여러 명이며, 노역을 한 사람은 수백 명에 이릅니다.
그런데 지금 이기고서도 이 나라를 차지하지 않으시니, 이는 신하와 백성의 힘을 허비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에 장왕은 이렇게 말하였다.
“내 들으니 옛날에는 물그릇 하나 깨지 않고 가죽 하나도 좀이 쏠지 않도록 아껴 쓰며
재물을 위해 국토를 넓히려고 사방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하오.
이 때문에 군자라면 예(禮)를 중시하고 재물을 천하게 여겼던 거요.
사람만 내 편으로 만들었으면 됐지 땅은 필요 없으니,
사람들이 순종하겠다고 하는데도 놓아주지 않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행동이오.
내가 상서롭지 못한 일로 천하에 우뚝 선다면 틀림없이 재앙이 내 몸에 미칠 텐데 그 땐 취할 것이 무엇이 있겠소?”
이윽고 진나라가 정나라를 구하겠다고 달려와서는 장왕에게 “한번 싸워 봅시다.” 라고 청하였다.
장왕이 응전을 허락하자 다시 장군 자중이 나와 이렇게 간하였다.
“진나라는 강국으로 이곳에서 거리도 가깝고 군사도 날랩니다.
우리 초나라 군대는 오랫동안 지쳐있는 상태이니 허락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장왕은 이렇게 말했다.
“안 되오. 강자라고 피하고 약자라고 위협을 가한다면 과인이 천하에 설자리가 없어지는 것이오.”
그리고는 군대를 돌려 진나라 군대를 맞아 싸웠다. 장왕이 북채를 잡고 독려하자 진나라 군대는 대패하였다.
도망치는 병사들은 서로 다투어 배에 오르느라 먼저 오른 자가 뱃머리에 매달리는 자의
손가락을 잘라내니 끊어진 손가락을 주워 담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를 본 장왕은 “아! 우리 두 임금이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을 뿐인데, 저 백성이 무슨 죄가 있는가?”
하고는 군대를 후퇴시켜 진나라 군대가 도망갈 수 있게 해주었다.
『시』에서는 이렇게 노래하였다.
“부드럽다 삼키지 말며, 딱딱하다고 뱉지도 말라.”
✼ 정백(鄭伯): 鄭나라의 군주. 伯은 公․侯․伯․子․男의 작위 칭호이다.
✼ 모정(茅旌): 사죄의 뜻을 보이는 깃발이다.
✼ 난도(鸞刀): 고대에 제사나 종묘 참배 때 쓰는 난 새 무늬가 새겨진 칼. 제사의 희생에 쓴다고도 한다. 여기서 는 ‘사죄’, ‘항복’의 뜻이다.
-《한시외전(韓詩外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