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30]
이기선(李基宣, 1878-1950)①
이기선은 1878년 10월 1일 평안북도 박천군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한문교육을 받으며 성장했고 성인이 되어 포목상을 하다가 27세가 되던 1905년 예수를 믿고 교회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영수가 되었고, 1911년에는 평양신학교에 입학해서 1915년에 졸업했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의주 회창교회와 백마교회, 경남 울산교회, 김해읍교회 등을 섬겼습니다. 1931년 의주 북하동교회를 담임하고 있었을 때 의주경찰서 일본인 서장은 자기 외아들이 병으로 죽을 고비를 당하자 이기선 목사를 초대해서 안수기도를 받았습니다. 이때 병이 낫게 되어 일본인 서장은 이기선 목사가 의주 지역에서 걱정 없이 집회를 할 수 있도록 방패막이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가 강해지기 시작했고, 1938년에는 장로교회 총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함으로써 장로교회는 물론 대부분 교단이 일제의 강압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목숨의 위협을 당하고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신사참배를 거부했습니다. 북하동교회를 담임할 때 그는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일제에 정면으로 맞서 거부했고, 그로 인해 체포당해서 심한 매질과 혹독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고문을 당하는 중에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깨어나면 오히려 “주님 감사합니다. 저 같은 죄인에게 이게 무슨 은혜입니까?”라고 고백할 정도였습니다. 일본 경찰은 그가 나가서 신사참배 반대 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발목뼈가 부러질 정도로 심한 고문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얼마 후에 반대 운동에 앞장섰고, 결국 고문으로 악명높았던 평양 대동경찰서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참고: 김재현, 『한반도에 새겨진 십자가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