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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서론: 『시론』의 문제의식
‘좋은 시란 무엇인가’, ‘시는 왜/어떻게 써야 하는가’ 등 근원적 질문에서 출발
정끝별은 시가 시론 너머에서 탄생한다고 주장
시는 의식보다 무의식의 작용, 시론은 길잡이일 뿐 본질을 다 포착할 수 없음
『시론』은 시인 정끝별의 치열한 성찰과 현장 중심의 문제의식으로 탄생
“시는 고백으로부터 출발한다”는 명제를 서문에서 선언
알레프(Aleph): 시인의 고유한 시선, 시의 무한한 딜레마를 상징
■ 책의 성격
30여 년간의 시 창작, 비평, 교육 현장을 아우른 체험적 시론
여성 시론가의 희소성 속에 의미 있는 문학적 산문
시인에게 ‘등대’이자 ‘교과서’ 같은 역할
시의 형식, 주제, 언어, 태도에 관한 총체적 정리
■ 『시론』의 12계단 (시 창작의 단계별 구조)
1. 내적 경험과 성찰로서의 고백
시는 자기 드러냄, 고통의 기억을 꺼내는 ‘부끄러움의 미학’
윤동주 「자화상」, 「서시」로 설명
고백은 인식으로서의 ‘발견’이며, 자기-타자, 자기-세계의 관계 맺기
2. 창조적 화자와 다성의 목소리
시의 화자는 시인과 다른 존재
화자는 시적 시점, 언어적 전략을 결정
기형도, 오규원, 문태준 등의 작품으로 예시
3. 반복과 병렬로 생성되는 리듬
리듬은 시인의 몸에서 나오는 숨결
모국어의 리듬은 유년기 경험과 관련
병렬과 반복, 애너그램, 불협화음 등으로 리듬의 다양성 제시
4. 이미지의 운동성과 영상성
감각·비유·물질·기억 이미지로 구분
이미지란 단순 시각의 차원 아닌 언어적 실현체
현대시의 이미지론은 회화, 영화 등의 외부 이론까지 수용
5. 명명에서 구조로 확장되는 은유
은유는 의미 생성의 핵심 장치
은유와 직유·환유·제유·상징·알레고리의 차이 및 중첩 강조
문정희, 김수영, 김춘수, 서정주 등의 작품으로 설명
6. 환유의 활용과 인접성의 층위들
21세기는 ‘환유의 시대’
환유는 묘사와 증식, 확산의 장치
시간·공간·초감각·언어음성의 4가지 인접성 범주로 환유 유형화
7. 상징과 풍자를 넘나드는 알레고리
알레고리는 확장된 은유이며 풍자, 우화 등과 연결됨
현대시에서 종교, 정치, 물질문명 비판과 연결
김지하, 신동엽, 김기택, 성미정 등의 작품으로 분석
8. 아이러니의 이원성과 다원적 지평
아이러니는 반성적 거리의 확보와 진실 탐구의 방식
언어적/구조적 아이러니를 내적/외적으로 구분
21세기 시에서 아이러니는 핵심 전략 중 하나
■ 종합적 평가
『시론』은 시 창작의 실천적 철학을 제시
이론과 실천, 전통과 현대, 자기 성찰과 언어 전략의 균형
시를 쓰는 자에게는 길잡이, 시를 읽는 자에게는 해석의 틀 제공
단순한 비평서를 넘어 시의 존재방식에 대한 깊은 고백과 탐구의 산물
https://naver.me/G8sapBvY
(문학평론) 정끝별의 『시론』에 관하여
솔뫼(松山) 안종일(安鍾一)
■ 첫 문장
좋은 시란 어떤 시일까. 좋은 시의 요건은 무엇일까. 이런 물음에 감동과 위안을 먼저 꼽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시의 본질을 시인의 ‘내적 경험의 순간적 통일성’, ‘그 강렬한 감정이나 정서’에서 찾곤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시(詩)란 무엇인가? 시(詩)는 왜 쓰는가? 어떻게 써야 하며 또 누구를 위해 써야 하는가? 또한 시(詩)는 어떻게 읽혀야 하는가? 인생을 살면서 한 번이라도 시(詩)를 써본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많지만, 이 질문에 내놓는 답은 어차피 천차만별일 것이다. 더러는 이 심오한 질문에 더욱 명확한 답을 찾기 위하여 문학 이론서를 찾아 분석하고 시론을 정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인식에서 정끝별 시인은 그의 저서, 『시론』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작가의 말 : 그러나, 시는 늘 시론 너머에서 탄생한다는 말이 있다. 시론을 잘 안다고 해서 시를 잘 쓰거나 시를 잘 읽는 것이 아니듯, 시인에게 시는 의식의 너머에서 작동하는 그 무엇이다. 시인 자신이 쓰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실제로 자신이 쓴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는 지점에서 시는 완성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가 지나치게 시론을 의식할수록 오히려 시의 본연에서 멀어진다는 것도 시의 역설적 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시론서에서 언급되지 않은 시들이야말로 시 본연에 가까운 시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지금 여기의 시는 늘 당대의 시론을 비웃으며 스쳐가고, 미래의 시는 시론에 이루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좋은 시인지?’,‘어떤 것이 남들과 다른 시를 만들어 내는지?’,‘어떤 시는 왜 자꾸 읽게 되는지?’ 정끝별 시인의 『시론』 역시, 그 해법을 찾기 위한 생생한 현장의 고민에서 만들어진 저술이다. 정끝별 시인은 『시론』의 서문에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알레프(Aleph)’를 인용하고 있다. ‘알레프(Aleph)’는 시인에게서부터 결코 빼앗아 갈 수 없고, 양도될 수도 없는 시인만의 시선이다. 또한, 비록 손바닥만 한 딜레마와 모순을 그대로 품고 있는, 손바닥만 한 우주로 존재하는 바로 그 심연을 ‘알레프(Aleph)’라고 한다. 시를 쓰는 모든 이들이라면 이 알레프를 지면이라는 공간 위에 활자로써 구현하려 한다. 그러나 그 길은 하나같이 의문과 좌절의 길이다. ‘무엇이 좋은 시인지?’, ‘어떤 것이 남들과 다른 시를 만들어 내는지?’, ‘어떤 시는 왜 자꾸 읽게 되는지?’ 끝없는 의문과 좌절과 도전이 시인의 앞에 펼쳐져 있다. 이러한 그녀의 현장 밀착형 문학적 고민은 “시(詩)는 고백으로부터 출발한다.”라는 첫 번째 명제를 본 저술의 시금석으로 내놓게 되었다. 그녀의 내적 경험과 치열한 성찰로서의 포문을 이렇게 열고 있다. 제1장의 출발을 그렇게 하여 그녀의 언어적 견해를 확실히 밝히고 있다. 시를 창작한다는 것은 결국 지성과 분석과 논리와 진단의 글쓰기에서 벗어나 고해성사하듯 기도하고 고백하고, 상처를 드러내 펼쳐놓고, 감각과 기억을 소환하는 자아의 몸부림이라는 듯이 말이다.
『시론』은 시인, 평론가, 연구자, 교육자로 활동해 온 정끝별이 30여 년의 문학적 경험을 집대성한 책이다. 저자의 현장 경험과 시행착오를 밑거름 삼아, 지난 30여 년간 꾸준하게 진행·축적해온 ‘경험적 시론’을 독자들에게 내놓은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주옥처럼 갈고 다듬어 차근차근 정성으로 쌓아 올린 시론들을 한자리에 모은 『시론』은 여성 시론 연구자가 점점 사라져가는 작금의 시대에 나온 귀하고 반가운 책이다. 같은 문인으로서 내가 이 책을 탐독하고 판단해 보니 문학평론이라기보다는 문학적 산문으로서 시를 쓰는 사람들에게 교과서와도 같은 것이며 등대와 같은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수식도 붙이지 않은 『시론』이라는 순정한 제목은 한국의 현대시와 현대시론과 현대시사와 정면으로 마주한 것이자 그 어떤 치우침도 없이 시와 시론 그 자체를 다루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저자는 시가 무엇인지 막막할 때, 자신이 진심으로 쓰고 싶거나 읽고 싶었던 시라는 것에 대해 알고 싶을 때 기존의 시론을 뒤적여 보았노라고 말한다. 그 깊은 고민이 이 책의 첫 문장을 쓰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이라는 깊은 성찰과 고백이 아닐 수 없다.
성찰과 고백, 화자와 목소리, 반복과 병렬, 이미지의 운동성과 영상성, 은유의 맥락성과 구조, 환유와 인접성, 상징과 풍자와 알레고리, 아이러니의 이원화와 다원적 지평, 패러디와 패스티시와 키치, 환상과 그로테스크, 상징·도상·형태, 영향과 모방과 표절 등을 분석하여 가지런한 실타래로 엮어 놓았다. 이 체계적인 실타래는 시를 쓰거나 접하기 어렵게 된 지금에도 시의 주변을 지키는 독자들이 ‘한 편의 시’를 씨줄과 날줄로 찾고 또 쓰게 하도록 정끝별이 마련해놓은 시의 열두 계단이다. 이 중에서도 시 창작의 가장 기본이 되는‘고백’과 ‘표절’ 부분은 시인 정끝별의 정체성이 가장 묻어나는 장이다. 시의 발아점인 ‘고백’부터 인증점인 ‘표절’의 원리를 시인인 저자의 내밀한 목소리로 전달하고 있다. 특히, 신인과 기성을 막론하고 난색일 수밖에 없을 ‘표절’에 관해서는 모방의 다양한 양상을 비교·분석함으로써 명쾌함을 선사함과 동시에 시를 시이게 하는 시적 자세와 작가의 태도를 역설하고, 창작은 발명이 아닌 발견이라는 데까지 나아간다. 『시론』의 저자, 정끝별은 나만의 시를 찾고-쓰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열두 계단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 정끝별 시론의 열두 계단: 1. 내적 경험과 성찰로서의 고백 ➜ 2. 창조적 화자와 다성의 목소리 ➜ 3. 반복과 병렬로 생성되는 리듬 ➜ 4. 이미지의 운동성과 영상화된 이미지 ➜ 5. 명명에서 구조로 확장되는 은유 ➜ 6. 환유의 활용법과 인접성의 층위들 ➜ 7. 상징과 풍자를 넘나드는 알레고리 ➜ 8. 아이러니의 이원성과 다원적 지평 ➜ 9. 패러디, 패스티시, 키치 ➜ 10. 환상과 그로테스크의 연금술 ➜ 11. 상징·도상·형태의 시적 가능성 ➜ 12. 표절과 영향·모방의 위태로운 경계
「제1장 내적 경험과 성찰로서의 고백」에서, 시는‘자기 드러냄’을 기본 조건으로 하는 고백에서 출발한다는 명제에서 출발하여 왜 고백하는지에 관한 예시를 윤동주의 「자화상」과 「서시」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 두 작품이야말로 자신을 들여다보는 행위, 이른바 자기성찰에 따른 고백의 정수를 보여주는 시로써 시 쓰기의 본질과 맞닿아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면서 나의 존재를 새롭게 하는 것이 고백의 정석이라고 설파한다. 정직을 목표로 하는 고백은 죄와 거짓과 비밀로부터 발설되므로 역시 부끄러움을 동반하는데, 상처의 시간을 들춰내는 고통 또한 마주해야 한다. 이러한 들춰냄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감추었던 것을 드러내야 하는 고백의 역설을 정직한 시선과 미적인 언어형식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데 있다. 따라서 이 지점에서, 시인은 무엇을 고백하고 어떻게 고백할 것인지를 자문해야 하며 이러한 고백은 인식으로서의 발견에 이르렀을 때, 완성된다고 정끝별은 주장하고 있다. 자신의 결핍과 부재로부터 자신을 재발견하고 재구성하기 위해, 또 그로부터 해방되기 위하여 타자와 소통하는 내면의 발견은 시인이 꿈꾸는 고백의 이유이자 윤리라는 것이다. 자기비판에서 자기반성으로, 자기 정화에서 자기 고취로 나아가도록 한 단어, 한 구절, 한 문장의 발견이야말로 시인이 꿈꾸는 진정한 고백의 양식이라고 적시하였다. 함민복, 기형도, 백석의 작품을 추가적인 본보기로 내세워 시적 성찰로서의 고백은 자신을 창조하고 창조된 자기를 승인하는 과정이자 나-나, 나-너, 나-우리, 나-시간, 나-세계의 연대를 생성하는 과정이기도 하다면서 ‘나’라는 한 개인의 정체성이 거듭나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개인이 관계하는 우리의 정체성 역시 새롭게 형성됨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제2장 창조적 화자와 다성의 목소리」에서, 시적 목소리의 주체는 무엇인가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현대 시에서 시인과 구별되는 화자(persona, 페르소나)의 발견은 20세기 시론의 혁명이라고 작가는 주장한다. 전통 서정시는 과거와 현재에 대한 감정과 일인칭의 고백으로 자기동일성을 확보한 시인의 목소리로 가정되어 시에서 말하는 주체는 시인과 동일시되었다. 그러나 시의 장르적 규범상 ‘가정’되었을 뿐 ‘실제 시인’과 ‘시를 발화하는 주체’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시에 도입된 ‘말하는 사람’ 혹은 시를 발화하는 사람인 화자를 시인이 적합하게 선택하여 그의 눈과 입을 통해 세계를 다채롭게 형상화한다는 것이다. 시가 전개되는 순간 화자가 형성되기 때문에 화자가 존재하지 않는 시는 없다. 화자가 시에서 발화를 이끄는 주체, 시적 메시지를 언어화하는 전략적 주체가 된 것이다. 시인이 화자를 설정한다는 것은 시점과 목소리를 선택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시점으로서의 인칭과 위치에 준거하여 시적 대상과 상황이 목소리로 제시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화자에 대한 이해는 시의 의미는 물론 창작 의도와 시적 효과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이해를 돕기 위하여 정끝별은 서정주의 「추천사-춘향의 말 1」,「해일」과 박목월의「이별가」, 「하관」, 박남철의 「아버지」, 문태준의 「비가 오려 할 때」, 기형도의 「오후 4시의 희망」, 오규원의 「대방동 조흥은행과 주택은행 사이」, 조연호의 「사키네 가(家)의 근조동」등의 일부를 인용하고 있다.
「제3장 반복과 병렬로 생성되는 리듬」에서, 정끝별은 말하기를 ‘시에서 리듬은 온몸에서 터져 나오는 시인의 호흡 혹은 숨결’이라고 정의한다. 그런 의미에서 리듬은 언어형식에 의존하지만, 언어가 지닌 물질성을 뛰어넘어 언어 너머의 세계를 소환한다면서 시의 언어가 ‘부족방언’으로서 모국어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모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심장박동이나 호흡의 역할을 하는 것이 리듬이고 그러한 리듬 의식은 모국어의 발성법과 목소릴 규정하고 있으므로 모든 시가 유년에 들었던 말과 노래에 뿌리를 두는 이유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적 리듬은 유년의 기억부터 시의 형식을 경험하기까지, 마법처럼 지속해온 몸의 감각이기에 생래적이며 생리적이라고 하고 있다. 그 때문에 시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어야 할 것이 리듬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리듬감은 언어마다 다르고 각자의 목소리처럼 타고나는 부분이 있기에 그것을 객관적으로 이론화하기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정끝별은 리듬에 대해 정의하기를, 광의의 ‘율동(주기적 운동, 어떤 규율에 따라 움직이는 현상)’과 협의의 ‘운율(시의 음성적 형식)’이라면서 율동과 운율을 포괄한 리듬은, 소리의 모형화 차원의 운율을 넘어서 ‘의미를 수식하고 변형’하기 위한 텍스트 속에 구조화되는 모든 반복된 패턴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리듬이 어떻게 실현되는가에 대해서는 고영민의 「계란 한 판」, 박용래의 「저녁 눈」, 이상의 「오감도」, 강은교의 「우리가 물이 되어」, 김춘수의 「타령조 5」, 이성복의 「그날」, 김소월의 「가는 길」, 박정대의 「틈 사이로 엿보다」, 정끝별의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파란 나팔-애너그램을 위한 변주」 등을 예시하여 리듬을 생성하는 기본 자질로서 병렬과 반복 그리고 리듬의 혁신을 꿈꾸는 불협화음의 형식화, 압운과 율격에 의한 라임과 애너그램도 설명하였다.
「제4장 이미지의 운동성과 영상화된 이미지」에서, 정끝별은 이미지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리고 있다. 이미지란 시각적으로 보이는 감각에만 한정하여서는 아니 되며 현대시의 이미지 역시 재현과 표현, 신체와 물질, 감각과 상상, 기억과 자유, 순간과 지속, 정지와 운동, 공간과 시간 사이에서 발생하는 언어적 실현체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1971년 김춘수를 필두로 개진되었던 한국 현대시론사에서의 이미지 개념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이승훈, 김준오, 오규원 등을 거론하면서 이들의 감각 이미지와 비유 이미지를 차용하고 이에 더해 현상학적 이미지의 핵심을 이루는 물질 이미지와 기억 이미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1) 감각 이미지: 묘사적 차원이든 비유적 차원이든, 음성적 차원이든 의미적 차원이든, 모든 시어는 감각 이미지를 내포한다. (2) 비유 이미지: 상징, 은유, 제유, 환유, 상징, 알레고리 등의 체계로 생성되는 비유는 시인의 정서나 사상을 직접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보조관념, 다시 말하면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구체화함으로써 미적 가치를 구현한다. (3) 물질 이미지: 불, 물, 공기, 흙에서 파생된 물질 이미지는 물질 자체로서의 대상과 물질에 대한 주체의 상상력 사이에서 나오는 상호주관성에 의해 생성된다. 이때 물질의 질료적 상상력에 의해 내면화된 기억의 총체를 중심으로 역동적 이미지가 발생하며 이러한 현상학적 상상력에 의한 역동적 이미지는 시인의 경험과 욕망이 반영된 의식 지향성에 자리한다. (4) 기억 이미지: 물질 이미지에서 물질의 질료적 특성이 강조되었다면, 기억 이미지에서는 기억의 총체가 더 강조된다. 과거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 지속해서 이완하고 수축하는 주의 깊은 식별의 기억으로 인해 매개 작용이 일어나 물질적 실재로서 이미지는 재구성된다. (5) 이 외에도 철학, 미디어, 심리학 분야를 포함해 회화, 영화와 같은 타 매체 영역에서 논의된 서구의 이미지론을 원용해 새로운 패러다임의 현대시 이미지 개념들이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들이 어떻게 실현되는가에 대해서는 기형도의 「가는 비 온다」, 김광균의 「추일서정」, 김종삼의 「북치는 소년」, 이용악의 「낡은 집」, 장석남의 「그리운 시냇가」, 최승자의 「청계천 엘레지」, 허수경의 「혼자 가는 먼 집」, 이상의 「오감도」, 강성은의 「Ghost」 등을 불러내고 있다.
「제5장 명명에서 구조로 확장되는 은유」에서, 시는 비유의 언어라고 말한 정끝별은 이러한 사실을 우리가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비유란 ‘무엇(표현하고자 하는 것)을’‘무엇으로(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다른 형태로)’빗대어 말하는 것인데, 이때 표현하고자 하는 원래의 그 ‘무엇’을 원관념이라 하고, 비유되는 다른 형태의 그 ‘무엇으로’를 보조관념이라고 한다. 이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결합하는 특성에 따라 비유는 대표적으로 은유(직유), 환유(제유), 알레고리, 상징으로 나뉜다. 중세까지는 상징이나 알레고리가 비유를 대표했다면 20세기는 은유의 시대였으며 21세기에는 환유가 은유의 자리를 넘보는 중이라고 분석해 놓았다. 하나의 은유는 텍스트의 문맥 속에서 어떻게 해석되느냐에 따라 직유, 환유, 알레고리, 상징 사이를 오가며 그 경계를 넘나들기도 하기 때문이리라. 그러한 차원에서 은유와 그 유사 비유들에 대한 개념 정리가 필요함을 인지한 정끝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유사성(차이성도 포함)’에 의해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의/이다’ 형식으로 결합할 때 은유라 하고, ‘~처럼(같이/듯이/만큼)’의 형식으로 결합할 때 직유라 한다.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대상이나 대상의 속성과 밀접한 ‘인접성(인접한 성질)’으로 결합하면 환유라 하고, ‘인접성’에 의해 보조관념이 원관념의 부분 혹은 전체로 비유될 때 제유라 한다. 또한,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1:1의 관계를 이루면서 숨겨진 원관념이 하나의 의미로 선명하게 해석될 때 알레고리(풍유,우화,우유)라 하고, 多:1의 관계로 숨겨진 원관념이 다양한 의미로(다의적으로) 해석될 때 상징이라 한다. 알레고리나 상징을 교훈적·풍자적·정치적·종교적 속성이 강화된 ‘확장적 은유’라고도 한다. 이처럼 은유와 그 유사 비유들은 은유/직유, 은유/환유, 환유/제유, 알레고리/상징 등으로 대립적으로 정의되고 이론화되어 왔다. 그러나 은유와 그 유사 비유들은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중첩된다.
(1) 은유의 작동 원리와 유형을 파악하는 차원에서 1) 치환 은유를 설명하고자 문정희의 「분수」를, 2) 병치 은유를 예시하고자 김수영의 「아메리카 타임지」를, 3) 모순어법 은유를 위해서 나희덕의 「오 분간」을, 4) 남용된 은유(catachresis)를 설명하고자 박인환의 「열차」를, (2) 맥락적이고 구조화된 은유의 차원에서 1) 명명의 은유를 위해 김춘수의 「꽃」을, 2) 부분(전체)으로써 전체(부분)를 읽어 내는 제유의 인접 유사 비유와 중첩적 작동 원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김소월의 「산유화」를, 3) 지시틀을 중심으로 은유적 전이와 환유적 전이를 거듭하며 구조적으로 변주되는 은환유의 양상을 살펴보기 위해 서정주의 「꽃밭의 독백-사소 단장」을, 4) 하나의 은유가 다소간은 환유(제유)적이고 다소간은 상징(알레고리)적일 때가 있는 비유들의 교직 상태가 시의 모호성을 증폭시키어 다양한 의미론적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확장된 은유’로서 살아있는 시가 갖는 의미 생산에 일조하는 것을 설명하고자 김수영의 「꽃잎2」를 인용한 것은 정끝별이 아니고는 못 할 일이다.
「제6장 환유의 활용법과 인접성의 층위들」에서, 작가는 21세기를 환유의 시대라고 명명하였다. 은유가 명명하거나 의미화하면서 응집되는 반면, 환유는 묘사하고 증식하면서 확산한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환유의 징후나 실제를 구체적인 시작품에서 찾아내기란 쉽지 않음을 토로하였다. 은유의 ‘유사성’과 비교되곤 하는 환유의 ‘인접성’이 갖는 포괄성 때문이다. 따라서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 인접성의 개념을 설명하고자 시간(인간적 서사), 공간(현상적 묘사), 초감각(초현실적 연상), 언어 음성(기표적 증식)이라는 작동 범주로 나누어 그에 부합하는 환유의 양상을 유형화하였다. 인접성의 개념 안에 제유적 속성이 내포되어 있으므로 직유나 의인화를 은유에 포함했듯 제유 또한 환유에 포함하여 논의를 이어 나갔다. 먼저 시간적 인접성에 의한 서술-서사적 환유를 설명하고자 박후기의 「모터수리공」과 이시영의 「타는 목마름」을, 공간적 인접성에 의한 현상-풍경적 환유를 설명하고자 오규원의 「양지꽃과 은박지」 그리고 문태준의 「장대비 멎은 소읍」을, 초감각적 인접성에 의한 환상-내면적 환유를 살펴보고자 김혜순의 「잘 익은 사과」와 김행순의 「에코의 초상」을, 음성적 인접성에 의한 언어-리듬적 환유의 예시를 위해 오은의 「래트맨」과 이제니의 「기린이 그린」을 소환하여 여전히 발견 중이고 진화 중인 인접성의 요체를 환유의 작동 원리로서 드러내었다.
「제7장 상징과 풍자를 넘나드는 알레고리」에서, ‘확장된 은유’로서 알레고리는 좁게는 우화의 차원에서, 넓게는 은유·환유·상징을 넘나드는 비유의 차원으로 이해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알레고리는 우유(寓喩, 빗댄 비유), 풍유(諷喩, 풍자적 비유), 우언(寓言, 빗댄 말), 우의(寓意, 빗댄 뜻) 등과 같은 전통적인 비유 방식과 맞닿아있다. 요즘 들어 알레고리와 상징의 시적인 위상이 약해진 것은 사실이다. 알레고리는 그 자체보다 패러디나 환상의 관계 속에서, 상징은 도상적 형태성과의 관계 속에서 시적인 가능성이 더 조명받고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현대시가 종교, 이데올로기, 물질문명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발전해 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이런 관점에서 알레고리는 현대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알레고리를 통해 시가 지닌 역사성, 시대성, 사회성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현대시의 양상을 살펴볼 수가 있는 것이다. 이때 풍자와 자주 겹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화나 비유담에서부터 독서의 알레고리까지 그 변화과정을 다음과 같이 다루었다. 상징과 알레고리와 풍자의 경계에서는 한용운의 「알 수 없어요」와 김지하의 「오적」을, 상징적 이데아를 향한 알레고리 측면에서는 최승호의 「희귀한 성자」와 김현승의 「눈물」, 유치환의 「깃발」을, 정치풍자적 알레고리는 임화의 「우리 오빠와 화로」,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 김남주의 「노래」, 김수영의 「나는 아리조나 카우보이야」를,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적 알레고리는 김기택의 「쥐」, 김신용의 「그 겨울의 빈대」, 이영광의 「건제」를, 파편화된 흔적으로서의 알레고리는 성미정의 「동화-백살공주」, 김참의 「강철구름」, 서정학의 「핫도그맨」을 동원하였다.
「제8장 아이러니의 이원성과 다원적 지평」에서, 이승훈, 오세영, 김준오 등 기존의 시론에서 논란이 되었던 아이러니의 개념과 유형을 정끝별이 재검토한 후 포스트 모더니즘 아이러니의 특징과 양상을 간추렸다. 그녀가 말하는 아이러니는 상호모순되는 대상 혹은 상황들에 대해 감정적으로 매몰되지 않은 채 진실을 발견해 가는 지적 통찰과 반성의 시선을 필수적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거리 의식을 통해 세계의 복잡성과 가치의 상대성을 인식할 수 있는 날카롭고 깊이 있는 통찰을 얻는 것이 아이러니의 목표이기 때문이란다. 21세기야말로 아이러니가 편재하는 시대이자 최근의 시들이야말로 아이러니 그 자체라는 심증은 분명했지만 그러한 아이러니를 이론화하고 실제 시에 적용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정끝별은 기존의 분류에서 선명하게 구분되었던 언어적(말의) 아이러니와 구조적(상황적) 아이러니 개념만을 사용하여 그 이중화가 작동하는 범위(텍스트 내적·외적)에 의해 4가지로 나누었다.
1) 모순 형용의 아이러니를 설명하고자 이육사의 「절정」, 한용운의 「님의 침묵」, 오규원의 「구멍」을, 2) 반대 진술의 아이러니를 설명하고자 김수영의 「모르지?」, 최승자의 「삼십세」를, 3) 극적 전환의 아이러니를 설명하고자 최승자의 「꿈꿀 수 없는 날의 답답함」, 황지우의 「심인」을, 4) 시적 진실의 아이러니를 설명하고자 한용운의 「모순」, 이성복의 「이별1」이 인용되었다. 또한, 정끝별은 아이러니는 어떻게 실현되는가를 오규원의 「문」을 예시하여 앞서 분류한 아이러니의 네 가지 유형이 동시적으로 작동함을 보여주고 있다. 오규원의 이 작품은 말장난 같은 반대 진술을 특화시켜 고정관념을 뒤집고 있다. 한 편의 시에서 아이러니의 발화점과 작동 원리는 여럿일 수 있으며 복수의 아이러니 유형이 동시적으로 작동할 수 있으므로 독자의 해석력에 따라 그 유형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으며 그 의미 또한 열려 있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다. 이처럼 아이러니스트의 은폐와 독자의 해독, 그 길항작용을 통해 아이러니는 완성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에 더하여 최근의 우리 시에 나타난 포스트모더니즘 아이러니의 표현양상을 다음과 같은 네 범주에서 살펴보고 있다. 1) 비재현적 기표의 아이러니로서 백은선의 「가능세계」를, 2) 마조히즘적 언어유희의 아이러니로서 김민정의 「입추에 여지없다 할 세네갈산(産)」을, 3) 파편화된 파라바시스의 아이러니로서 김현의 「◉인간」을, 4) 타자화된 수행성의 아이러니로서 임솔아의 「티브이」를 인용하여 가상의 현실감을 드러낸 새로운 리얼리티로서의 아이러니 그 자체를 선명하게 설명하고자 하였다.
「제9장 패러디, 패스티시, 키치」에서, 정끝별은 패러디와 그 유사 형식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패러디’라는 용어는 포스트 모더니즘과 함께 유입되었으나 서양 문화 전통에서만 언급될 수 있는 표현 양식은 아니며, 문화의 수용 및 창작원리로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존재해 왔기에 우리 전통에서도 구비전승의 방법이자 기존 텍스트로 합리화하거나 간접화하는 방법으로 애용되어왔다고 하였다. 따라서 패러디의 소통구조와 범주의 관점에서 패러디스트가 원텍스트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고 어떤 의도와 목적으로 인용하고 있으며 어떠한 미학 구조를 구현하고 있는지와 독자는 또 이러한 구조를 어떻게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보았다. 결국, 패러디의 효과는 패러디스트의 ‘모방 인용 심리’와 독자의 ‘해독 과정 심리’가 상호작용하면서 발휘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현대시에서 패러디 대상이 된 원텍스트를 그녀는 다음과 같이 범주화하였다. ①우리의 전통 문학장르나 작품을 원텍스트로 하는 경우: 신화, 설화, 속담, 판소리, 민요, 고전소설, 고전시가 등을 원텍스트로 하는 시 ②비문학장르나 작품을 원텍스트로 하는 경우: 고전 예술작품이나 대중문화 예술 전반의 작품들을 원텍스트로 하는 시 ③서구 문학작품들을 원텍스트로 하는 경우: 성경, 서구의 유명한 작품들을 원텍스트로 하는 시 ④우리 현대시를 원텍스트로 하는 경우: 앞선 동시대 시인들의 작품(구절)들을 원텍스트로 하는 시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원텍스트로서 패러디 대상이 없는 패러디는 없으므로, 패러디에서 원텍스트에 대한 패러디스트의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고 하면서 이를 중심으로 모방적, 비판적(풍자적), 혼성모방적 패러디라는 세 가지 유형을 제시하였다. ①모방적 패러디는 원텍스트를 모방적으로 인용하기인데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김소월의 「춘향과 이도령」, 윤동주의 「팔복」을, ②비판적(풍자적) 패러디는 원텍스트를 비틀어 인용하기인데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서정주의 「무등을 보며」와 문병란의 「가난」을 대비시켰다.
③혼성모방적 패러디는 원텍스트를 짜깁기하기인데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오규원의 「제라늄, 1988, 신화」, 정남식의 「표절 같은, 아니아니 인용 같은, 아니아니아니, 작품같은」을 등장시켰다. 현대시사에서 서양도 마찬가지이지만 한국도 역시 잘 알려졌거나 인정받은 작품들은 후배 시인들에게 지속해서 패러디 대상이 되기 쉽다는 지적도 빠뜨리지 않고 언급되었다. 김소월의 「왕십리」,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 김춘수의 「꽃」, 김수영의 「풀」, 정현종의 「섬」등이 대표작이 되어 패러디 시의 계보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렇게 유명한 작품을 패러디하는 동기는 일차적으로 원텍스트의 권위를 재생시켜 그 영향력을 강화하거나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하고자 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고 그와는 반대로 원텍스트의 권위에 저항하면서 그 의미를 비판적으로 재해석하는 예도 많다고 지적해 놓았다. 김혜순의 「썩는 말」, 함민복의 「광고의 나라」, 이원의 「재크의 콩나무」, 함기석의 「해부도」등이 그 예시이며, 포스트 모더니즘 패러디의 양상으로는 유하의 「드루 배리모어, 장미의 이름으로」와 박정대의 「단편(短篇)들」을 인용하여 서정적 판토스와 단편들의 퓨전을 설명하였으며, 김춘수의 「라스코리니코프에게」와 이성복의 「45 보채지 좀 마라」를 통해 주체의 자기 증식과 다시 쓰기를 예시하였고, 성기완의 「환생(幻生), 혹은 죽음에 이르는 병」과 서정학의 「컴퓨터, 꿈, 키보드」일부분을 통해 게임-가상-유희의 테크노 패러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제10장 환상과 그로테스크의 연금술」에서, 정끝별은 현실과 초현실, 사실과 허구, 정상과 비정상, 진선미(眞善美)와 환악추(幻惡醜)의 경계가 모호해진 시대에서 이분법적 인식으로 현실을 해석하는 일은 불가능해졌다고 진단하였다. 이러한 차원에서 환상과 그로테스크는 이렇게 이분법으로 구획된 영역들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비이성과 광기에 대한 새로운 조명, 전복적 상상력에 의지해 파편화된 현실 그 자체를 재현하면서 관념화된 현실을 담아내고 있다고 하였다. 환상과 그로테스크를 연금술에 빗대어 문학의 가능성과 범위를 확장한다는 점에서 현실을 넘는 현실을 반영하려는 21세기적 전략이라고 그녀는 주장한다. 불교의 선사들이 주고받았던 선문답도 환상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예시하면서 문학의 초현실적 재정의와 형이상학적 근본은 다르지만 드러난 표면적 구조는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사실적인 것을 경험적인 것으로 간주하면서, 이러한 리얼리티를 고정되어 있고 불변하는 것으로 믿어 왔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 이런 리얼리티가 결코 확고하거나 분명하지 않다는 인식이 사회문화 전반에 급속도로 확산함에 따라 비사실적이고 환상적인 것들이 또 하나의 유효한 리얼리티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시에서는 더욱 환상과 리얼리티는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 교류할 수 있는 보충적 개념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환상은 리얼리티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리얼리티의 탐색과 재현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되고 있다고 작가는 주장한다. 영화와 비디오와 텔레비전과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독자를 빼앗기게 된 문학은 이제 그것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창작 방식과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 모색 과정에서 환상과 그로테스크가 시적 가능성으로 다가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문학에서 그로테스크는 매우 우스꽝스럽고 특이한 익살의 형태로 표현되는데, 부분적으로는 유머러스하고 부분적으로는 아이러니한 대립과 모순으로 표현된다고도 하였다. 환상이 어떻게 실현되는가를 설명하기 위하여 이상, 김춘수, 김종삼, 김혜순 등의 작품들에서도 그러한 징후가 있다고 언급하면서 21세기 시들을 중심으로 함기석의 「우울이 환상을 낳아요」, 박상수의 「돌고래 숲」, 진은영의 「지도를 찾아서」 등을 인용하였다. 또한, 그로테스크가 어떻게 실현되는가를 설명하기 위하여 오장환의 「고전」,박상순의 「빵 공장으로 통하는 철도」, 김언희의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를 인용하였다.
「제11장 상징·도상·형태의 시적 가능성」에서, 정끝별은 언어주의와 형태주의 시의 유희 정신을 언급하면서 상징시와 도상적 상징시, 형태시들의 변주로서 해사시, 구체시, 상형시, 형상시 그리고 낙서시와 디카시, 사진시와 회화시를 소개하고 있다. 상징시는 송찬호의 「지팡이」를, 도상적 상징시는 민용태의 「바람개비」를, 해사시는 박상배의 「희시·14-「밤바다 여행」을 읽고」와 백미혜의 「들꽃 소묘 2-금낭화」를, 구체시는 황인숙의 「죽은 풀도 입을 벌리고」등을 인용하였다. 시각적 형상성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구체시는 상징과도 연관성 있는데 언어적 질감과 시 형식을 미학적으로 시청각적 효과를 드러내는 오선홍의 「소리그림」이라는 다음의 독특한 작품은 매우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시각적인 글자와 청각적인 음성으로 이루어진 언어의 물질성과 시청각적 형태성을 극대화하는 구체시 혹은 형태시는 당대의 사회문화적 흐름과 관련이 깊다면서 다른 두 매체의 텍스트 간 이종교배에서 빚어지는 역동성, 유희성, 상보성 등을 강조하면서 또 다른 분야로 세분되는 낙서시(그림시)로서 박정대의 「레이지 버드에서-제해에게」를 소개하였다. ‘언어로 못다 드러낸 여백(사물)’이나 ‘언어화되지 않은 풍경의 여백’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전달하는 디카시나 문자시 또한 최소의 문장으로 최대의 의미를 구축하는 시인의 기본적 역량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리호의 「투영」, 이민하의 「첫 키스」를 적시하였다. 정끝별은 시의 시청각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이러한 언어주의 혹은 형태주의 시들은 시 언어의 노화 또는 타락이 낳은 필연적 소산이라고 보았다. 시청각 매체의 발달과 맞물린 활자 매체의 퇴조, 장황한 수사와 공허하고 상투적인 미사여구의 남발, 개념화되고 관념화된 언어 조작 등이 시의 언어를 쉽게 노화시키거나 타락에 이르게 하곤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징후에 맞서 새로운 언어를 창출하고 언어의 물질성(본래의 리듬·음향·이미지·상징성)을 회복하려는 것은 모든 시인의 욕망일 것에 착안, 청각 매체와 시각 매체의 경계를 가로질러 새로운 시 형식을 발견하려는 노력으로써 디지털 매체의 일상화라는 시대적 흐름에 발맞추어 멀티미디어를 활용하려는 시도로 멀티포엠, 포에트리 슬램, 웹툰시 등의 출현과 독자의 능동적 해석을 자극하는 혼종성(Hybridity)의 진화 또한 소개하였다.
「제12장 표절과 영향·모방의 위태로운 경계」에서, 정끝별은 시를 시이게 하는 기본적인 자세 혹은 태도라는 점에서 ‘표절’의 기준과 그 양상을 살펴보는 것으로 본 『시론』의 마무리를 짓고 있다. 1993년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와 2008년 교육인적자원부의 규정에 따른 표절의 판단기준도 소개한 12장은 시를 쓰거나 발표하기도 쉬운 시대에 표절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하고자 하는 시도였다고 작가는 후기에서 밝히고 있다. 무의식적인 영향과 의식적인 모방이 창조의 어머니일 수는 있으나, 의식적인 모방을 감추고 남의 것을 자기 것인 양 취하는 표절은 공공의 적이라고 하면서 시대나 사조에 따라 표절의 기준이나 평가에 다소간의 차이가 있음을 짚고 있으며 모방과 표절이 다른 지점, 모방이 방법적 창작이 되는 지점에 대한 시대적 성찰을 더욱 요청하는 차원에서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폴 엘뤼아르의 「자유」를 대조 예시하였으며, 사애녹의 「오감도 패스티시 2003-시제1999호」, 오세영의 「서울은 불바다」, 이대흠의 「봄은」, 이영옥의 「마지막 봄날에 대한 변명」, 그리고 신인문학상 당선이 취소된 다수의 표절 의혹작을 인용하였다.
이상의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는 정끝별의 『시론』은 어느 한 주제나 시론, 사조에 편향되지 않고 시에 관하여 이 정도는 필수적으로 반드시 알아야 할 핵심 요소들로만 술술 풀릴 실타래처럼 체계적으로 구성한 꼼꼼함이 탁월하다. 한국 시문학에 있어 조화와 균형을 이루려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녹아있다. 정끝별은 각 장마다 기존 시론에 대한 이론적 검토를 바탕으로 시에 작동하는 원리, 실제 시 분석을 통한 정의, 기능 및 실현의 실제, 유형 분류, 실현과 전개 양상을 꼼꼼하게 살피고 있다. 또한, 각 요소를 설명함에 있어 익숙한 개념이라고 하여 허투루 짚고 넘어가지 않으며, 쉬이 규명되지 않는 개념이라고 하여 추상적인 서술에 그치지 않는 성실함을 선보였다. 시론의 토대가 되는 질문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것에서 출발한다. 이를테면 작가는 시를 어떻게 이해하고 정의하는가? 작가가 인식하는 세계는 시에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는가? 작가의 개성적인 언어 또는 수사학적 특성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해명을 얻기 위하여 각 장의 시론 주제에 맞도록 한국 특정 작가의 작품을 적절히 인용한 노력이 돋보인다. 이와 같은 연관작품의 감상과 해석을 통해 더욱 명확한 시론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좋은 시(詩)인지?’, ‘어떤 것이 남들과 다른 시(詩)를 만들어 내는지?’, ‘어떤 시(詩)는 왜 자꾸 읽게 되는지?’ 정끝별 작가가 이 모든 것에 대한 해법을 내놓았다고는 할 수 없다. 전체적인 저술의 맥락을 여는 물꼬라 할 수 있는 서문에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거론하여 알레프를 인용하였고, 2장 창조적 화자와 다성의 목소리에서는 I.A.리처즈, T.S.엘리엇의 문학론을, 3장 반복과 병렬로 생성되는 리듬에서는 로버트 프로스트를, 4장 이미지의 운동성과 영상화된 이미지에서는 베르그송, 에드워드 마이브리지, 마르셀 뒤상, 질 들뢰즈, 쉬잔 엠 드 라코트를, 5장 명명에서 구조로 확장되는 은유에서는 움베르토 에코, 흐루쇼프스키 벤자민을, 6장 환유의 활용법과 인접성의 층위들에서는 볼프강 가스트를, 7장 상징과 풍자를 넘나드는 알레고리에서는 아서 폴라드를, 8장 아이러니의 이원성과 다원적 지평에서는 C.B.휠러, D.C.뮈케, M.H.에이브럼스, 웨인 C.부스, 앨런 와일드, 에른스트 벨러, 클레어 콜브룩, 데리다, 드 만, 주디스 버틀러, 질 들뢰즈, 베르톨트 브레히트, 슐레겔을, 9장 패러디, 패스티시, 키치에서는 프레드릭 제임슨, 린다 허천, 게오르그 루카치를, 10장 환상과 그로테스크의 연금술에서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프랑수아 레시몽, 다니엘 콩페르, 필립 톰슨, 로지 잭슨, 볼프강 카이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를, 11장 상징·도상·형태의 시적 가능성에서는 C.S.퍼스, 기욤 아폴리네르, 에른스트 얀, 오이겐 곰링거, 피터르 몬드리안, 바실리 칸딘스키를, 12장 표절과 영향·모방의 위태로운 경계에서는 리처드 앨런 포스너, 피에르 바야르, 린다 허천 등 수많은 서양의 철학사상가, 언어학자, 기호학자, 미술화가, 영화감독, 문예비평가, 시인, 소설가들의 저술이나 사고를 인용하고 우리 문학비평가들과 한국 시인들의 작품을 연결 짓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야별 전문가들의 사고와 연결 지어 외국 시인들의 시작들도 함께 인용되거나 해석되었더라면 금상첨화가 되었을 것인데 그렇게는 하지 아니하여 아쉬움이 있다. 샤를르 보들레르의 시,「독자에게」극히 일부분만을 9장 패러디 부분에서 주체의 자기 증식과 다시 쓰기를 설명하고자 인용하였고 폴 엘뤼아르의 시, 「자유」를 12장 창조적 모방으로서 표절을 설명하고자 인용하였을 뿐이었다. 12개의 각 장에서 인용된 작품은 대부분이 우리나라의 시였다.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없다는 ‘인정의 어색함(awkwardness of acknowledgement)’을 넘어서야 한다. 모든 것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표현해야 발견으로서의 시, 시의 알레프가 탄생할 것이 아닌가? 우리 시문학과 해외 시문학의 감성적 비교와 이성적 분석을 통하여 더욱 수준 높은 창작의 길을 모색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종합적 바람을 갖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유럽과 미주 대륙은 물론 중국이나 인도, 일본 등 아시아의 다양한 시문학 작품도 앞으로는 같이 수록하여 정끝별의 빛나는 『시론』이 더욱 풍성하고 다채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왜, 무엇을, 어디까지, 어떻게 고백할 것인가라는 시의 뿌리를 이루는 핵심적이자 원초적 질문에 시인은 각자의 답을 찾아야 한다는 정끝별의 주장에 동의하므로 하는 말이다.
“시인에게 시는 의식의 너머에서 작동하는 그 무엇”이라고 말하는 정끝별 작가는, 시를 쓰고 읽는 사람들에게 밑그림을 그려주는 마음으로 『시론』을 펴냈다고 한다. 21세기에 시를 쓰고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반딧불 같은 작은 빛이 되었으면 한다는 그녀의 바람처럼 열두 단계의 계단을 모두 접하다 보면, 모든 시는 어떻게 써야 하고 어떻게 읽혀야 하는지 스스로 체득하는 유용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 작가의 말 : 그리하여 시를 향해 리듬은 말을 걸고, 비유들은 손가락을 걸고, 이미지는 마술을 건다. 그러니 시는 세상에 말을 걸고 그 말에 손가락을 걸고 그 손가락에 마술을 건다. 화자는 시인을 걸고, 아이러니는 딴지를 걸고, 패러디는 수작을 건다. 그러니 시는 세상에 다른 나를 걸어놓고 다른 나를 향해 딴지를 걸고 그 딴지에 수작을 건다. 이렇게 걸고 걸며, 시를 쓰고 시를 읽는 사람들에게 밑그림을 그려주는 책이었으면 한다. 2021년 여름에 정끝별
현장 밀착형으로 쓴 『시론』, 꼭 필요한 것들로만 이루어진 『시론』, 현장과 이론의 장을 자유자재하게 넘나들며 마름질한 『시론』, 그리하여 시를 읽고, 쓰고, 가르치는 모두에게 부족함이 없는 『시론』이란 것이 가능할까? 작가는 이 책을 행운에 빚진 ‘가까스로’의 시론이라 표현했지만, 이를 이제 한창 또는 바로 지금을 의미하는 ‘바야흐로’의 시론으로 바꾸어 읽는 건 어떨까? ‘나만의 시-한 편의 시’에 다다르게 할 ‘바야흐로’의 『시론』을 드디어 만나볼 시간은 바로 지금이다. 2024년이 지나기 전에 이 책을 읽지 않고 2025년을 맞이한다면 스스로 미안해할지도 모른다. 문학을 하는 시인의 삶은 소금처럼 그대 앞에 하얗게 쌓이고 있으니 정끝별의 『시론』을 음미하여 영혼의 샘물과 만나야만 맛깔나는 음식으로 탄생하지 않겠는가. 시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바탕으로 창작에 이르기까지 교과서와도 같은 지침서라고 생각되어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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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송산(松山) 안종일(安鍾一) 이력
「Asia서석문학」 2020년 신춘문예 수필분야 당선으로 문화예술인 등단. 기획재정부 퇴직 후 現) 시인, 수필가, 소설가, 문학평론가로서 50여편의 문학작품 발표, 한국문협 세종지부 회원, 백수문학회원, 세종시인협회 운영위원, 한국작가회의 초빙편집위원,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운영위원 등으로 활동 중.